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74
276화
‘쟤들 뭐하는 거지?’
에르피나가 돌진을 주저하는 이스트 윈드즈팀을 바라보며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이 정도 전력차이면 별 부담 없이 공격해도 충분히 승리를 점할 수 있는데, 계속 뜸을 들이니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도 좀 이상했다. 이동 중에 대오를 교차하며 진을 약간 흐트러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몰래 진형을 변경할 때나 간혹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녀는 지그시 전광판에 나열되어있는 이스트 윈드즈팀 명단을 보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견 중에 선봉의 소양이 있는 검투사가셋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큰일이다! 내가 중앙에 막고 있음을 보고, 저들이 봉시진을 펼치려는 거야!’
에르피나는 경험이 많은 대신, 피지컬 능력이 무척 떨어졌다. 만약 저들 선봉 6명의 집중된 한 점이 자신에게 향한다면 대책 없이 중앙이 뚫리게 되고, 대장인 아겔리아가 노출되었다. 그렇다면 어이없는 패배를 당할 수 있으니 이쪽도 진형을 변경할 필요가 있었다.
에르피나가 바로 양옆에 서 있는 비너스, 시야에게 살며시 속삭였다. 그녀들의 힘이라면 지원 여하에 따라 강력한 봉시진의 공세를 막을 수도 있어 보였다.
“비너스. 시야. 봉시진 대응법 연습했지?”
“네. 언니.”
“그럼 시야는 그대로 서 있고, 비너스는 저들이 돌진을 시작하는 즉시 나와 진형을 교차한다. 알았지?”
“알았어요. 염려하지 마세요.”
대화를 마친 에르피나가 머리 위로 오른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교차시켰다. 작전 변경을 알리는 수신호였다. 간단하지만 이쪽도 진형 변화를 시도할 참이었다. 봉시진을 막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역 V자 형태의 역 안행진으로 상대의 꼭지를 꼭지로 맞선 후 대장을 뒤로 물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앙 쪽에 창끝을 집중시킨다면 더욱 금상첨화였다.
“이피스. 레이메이. 돌진이 시작되면 창끝으로 중앙을 지원해줘. 알았지?”
“네.”
긴장의 시간이 잠시 흐른 뒤 이스트 윈드즈팀의 진형이 급변했다. 완성된 형태로 보아 봉시진이었다.
1번의 등번호를 단 대장검투사의 뾰족한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일제히 돌격해!”
진의 구성을 완료한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들이 매마른 대지를 힘차게 박차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의 꼭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정중앙. 바로 대장인 아겔리아였다.
이에 에르피나가 비너스와 위치를 바꾸고는 모두에게 소리쳤다.
“역 안행진으로 진을 변경해!”
순간 갓즈나이츠의 진형이 변화되었다. 그저 날개부위가 뒤로 쳐지고, 대장과 후위에 있는 검투사 간의 자리교체만 있었기에,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이 모습을 본 1번 검투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갓즈나이츠가 이쪽의 작전을 간파하고 대비를 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명령을 되돌리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곧 커다란 출동이 일어나고, 양 진형의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콰쾅. 창. 쾅. 창. 휙.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 사력을 다했지만, 비너스와 시야의 방패에 막혀 더는 전진할 수가 없었다. 모든 갓즈나이츠 팀원들의 집중된 힘이 이들을 뒤에서 보조해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진형 틈새에서 간간히 날아오는 이피스와 레이메이의 창끝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밀집된 형태에 가려 창끝이 지척까지 날아올 때까지 감지하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꺄아아악!!”
창 촉에 오른쪽 어깨를 당한 8번 검투사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한쪽 팔을 늘어뜨린 그녀를 쳐다본 1번 검투사가 이를 잘근 깨물었다. 계속 작전을 수행하다가는 피해가 가중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흘러간 시간이 아쉽지만, 일단 지금은 뒤로 물러날 때였다.
“작전이 실패했다. 모두 뒤로 물러나!”
대장의 명령에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들이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워낙 상대의 저항이 완강해 방어막을 뚫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이럴 때는 뒤로 물러나 대오를 다시 정비한 다음, 재공격하는 편이 나았다.
거리를 벌린 이들은 다시 추행진으로 진형을 변경한 후. 공격할 기회를 탐색해나갔다.
“호오. 에르피나가 잘해 주는데. 역시 경험자는 틀려.”
더그아웃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범석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위기의 순간에 에르피나가 적절히 판단해 이스트 윈드즈의 첫 번째 공세를 잘 막아낸 탓이다.
옆에 앉아 있던 다이아나가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은 전투 지역까지 거리가 멀어 상대 팀 진형의 소소한 변화를 읽기 힘들었다. 그녀도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들이 돌진하는 시점에서야 봉시진을 채용했다고 눈치챘다. 에르피나가 잘 대처해주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중앙이 뚫리고 결국에 가서는 어이없는 패배를 맛봤을 터였다.
“그러게요. 위급한 시기에 에르피나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어요. 참으로 다행한 일이에요. 역시 팀 내에는 경험 많은 검투사가 최소한 한둘쯤은 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범석이 얼굴에 순간 근심의 기색이 어렸다. 생각해보니 갓즈나이츠에는 노련한 검투사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에르피나와 에리카뿐인데, 그녀들은 센트럴리그에 올라서게 된다면 활용도가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앞으로 대장 역할을 맡을 아겔리아는 빠른 발과 뛰어난 생존성을 지녔지만, 작전지휘 능력이 없었다. 아무리 그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오늘처럼 부상당해 경기에 참가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노련한 검투사 한둘을 팀에 들여야 하겠지?”
“네. 그것도 시급히요.”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돈 나갈 구속이 하나 더 생긴 탓이다. 아무리 나이 든 검투사라도 쓸만한 아이를 데려오려면 만만치 않은 몸값을 지급해야 했다. 그는 지금 팀을 월드리그 체질로 변모시키려고 생각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팀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 검투사들로만 구성시킨다면 경기운영도 서툴러지고 위기극복에 큰 장애가 발생했다. 반드시 에르피나를 대체할 자원이 필요했다.
범석이 다시금 시선을 경기장에 두었다. 막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의 재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정석인 추행진 돌진이었다.
“반드시 뚫어야 해! 모든 힘을 한 곳에 집중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돌입했지만 갓즈나이츠의 튼튼한 밀집력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실력은 떨어지지만 피지컬적인 측면에서는 그녀들이 다소 앞섰다. 짜증 섞인 표정을 지은 1번 검투사는 계속해서 돌진을 명령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체력만 낭비하는 꼴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석적인 전술로는 갓즈나이츠의 방진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지. 허투루 봤는데, 실상 경험해보니 갓즈나이츠의 진이 너무 견고해.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해.’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에르피나에게 닿았다. 상대의 견고함은 강인한 힘에서 나오지만, 응집력은 그녀로부터 비롯되었다. 에르피나만 제거하면 갓즈나이츠의 저항력을 급감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지금 외곽으로 빠져 있어, 낚아채기가 편했다.
“모두 다시 봉시진을 취한다!”
그 말에 곁에 있던 4번 검투사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대장. 갓즈나이츠의 피지컬이 대단한 것쯤은 알잖아. 함부로 봉시진을 취했다가는 우리가 역으로 당할 수 있어.”
“상관없어. 우리도 힘으로는 만만치 않아. 게다가 노리는 곳은 정 중앙이 아니라, 우측 외곽이야. 바로 에르피나 말이야.”
4번 검투사가 힐끔 에르피나를 쳐다봤다. 확실히 그쪽이라면 상대도 방심할 테니 전술이 성공할 가능성이 많았고, 외곽이라 실패해도 포위당할 염려가 없었다. 그리고 에르피나는 갓즈나이츠 명령의 중추였다. 일찌감치 제거해두면 차후의 경기가 수월해졌다.
“그럼 나쁘지 않지.”
동료의 동조를 얻은 1번 검투사가 진형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숨을 죽이며 기회를 엿보던 1번 검투사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갓즈나이츠가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돌격!”
봉시진 형태로 모인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들이 또다시 돌진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이동의 끝은 일단 정중앙을 향하고 있었다. 이에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중앙으로 꼭지점을 세우며 충돌에 대비했다.
그때 급격히 방향을 돌리는 이스트 윈드즈. 최후의 순간에 계획대로 우측으로 공격을 집중했던 것이다. 목표가 된 에르피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진형에 몸을 더욱 붙였다. 그 좁은 간극 사이를 파고드는 거대한 힘 앞에 어쩔 수 없는 듯 허무하게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됐다! 모두 달려들어 해치워!”
네 명의 검투사가 순식간에 에르피나를 포위하더니, 공격을 감행했다. 그녀는 방패를 사력을 다해 휘둘렀지만 동시에 4면을 막을 수 없었던지 얼마 안 가 등에 큰 타격을 입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젠장 할! 에르피나가 당하다니…….’
경기 장면을 주시하던 범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에르피나가 당했음은 단순히 검투사가 쓰러졌다는 차원을 떠나 팀의 조직력에 막대한 타격을 미쳤다. 아직 에리카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팀 지휘에 재능이 없어, 효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팀을 건사할 사람은 에리카뿐이었다.
“다이아나. 에리카에게 연락을 넣어 팀 지휘를 맡으라고 해!”
“네, 네.”
팀의 중추가 된 에리카. 그러나 예상대로 팀 조직력에 문제가 발생했다. 오랜 시간 검투 경기를 경험한 탓에 적절한 명령은 내리고는 있지만, 반 박자 느리게 대처하고 있었다. 당연히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급변하는 경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곧 굳건했던 방진은 사방에서 균열이 발생했고, 저돌적인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들의 돌진 앞에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모두 모여! 진을 재구성해!”
에리카의 간절한 목소리가 경기장을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난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제대로 모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하나둘씩 행동 불능 상태가 되어버렸고, 아겔리아가 진형을 이탈해 뜀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 모습에 범석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아겔리아가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지만, 지금은 단지 경기 시작 후 5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나머지 15분간을 도망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 이번 라운드는 패배로 끝날 것임을 자명했다. 역시나 예상이 맞았는지, 분침이 10분여를 가리킬 때쯤 아겔리아가 쓰러지며 1라운드 경기가 종료되었다.
저벅저벅.
1라운드에 출전한 2진들이 힘없이 더그아웃으로 걸어들어왔다. 면목이 없던지 하나같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팀 분위기가 저하될지 모른다고 우려한 범석이 손뼉을 치며 맞이했다.
“목적한 결과는 충분히 얻었다. 다들 잘해줬다.”
다이아나도 같은 생각인지, 범석에게 행동에 동조했다.
“그래 잘해줬어. 어차피 1라운드는 버리는 라운드였잖아. 10분이나 끌어줬으니, 이스트 윈드즈의 주력도 많이 지쳤을 거야.”
그제야 안색을 편 2진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범석과 감독인 다이아나가 그리 말하니, 그런가 보다 싶은 것이다. 하긴 전력 차가 극명한 상황에서 이 정도 시간을 끌었으면, 나름 성공한 성과라 평할만했다.
겨우 팀 분위기가 살아나자 범석이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는 주력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2라운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알았지!”
“넷!”
힘차게 대답했지만, 갓즈나이츠 주력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1라운드를 패한 이상, 2라운드에서 소귀의 성과를 얻지 못하면 팀은 큰 위기에 빠졌다. 반드시 승리해야 할 상황이니, 압박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간의 휴식을 취한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은 2라운드 출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나갔다.
“자. 모두. 긴장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하도록 해! 그리고 자신의 역할만 착실히 수행해. 그럼 우리 갓즈나이츠가 반드시 이겨!”
갓즈나이츠의 대장 검투사는 에르피나였다. 2라운드는 승리가 목적이었으니, 아겔리아의 빠른 발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1라운드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양, 니키타와 비너스의 철저한 호위를 받으며 팀을 지휘해 나갔다.
“다들. 확실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이번에 무승부 이상을 기록하면 오늘 경기는 우리 이스트 윈드즈가 가져간다! 그럼 센트럴리그에 올라갈 수 있어!”
대장인 1번 검투사의 명령에 이스트 윈드즈가 방진을 짜나갔다. 이들의 센트럴리그급 이상 검투사는 7명. 8명인 갓즈나이츠와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많이 달랐다. 7명 중 3명이 후미였기에, 주로 전투를 수행하는 중견과 선봉에는 4명밖에 없었다. 반면 갓즈나이츠는 후미에 배치된 센트럴리그급 검투사는 단둘이었다. 나머지 6명이 중견과 선봉에 배치되어 있는데다가 후미 중 하나인 니키타는 긴 장창을 이용한 기습공격에 아주 능숙했다. 공격력에서 극명한 차이가 나니 정면승부를 펼쳤다가는 패배할 공산이 컸다.
물론 리그전이라면 관객들의 흥미를 위해 모험을 걸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단판에 운명이 결정되는 토너먼트였다. 괜히 객기로 공격하기보다는 안정된 방어태세를 구축해 무승부를 펼치는 편이 나았다.
삐이익!
“돌격!”
긴 호각소리와 함께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추행진 형태로 돌진해 들어갔다. 경기 시작 후 나타나는 짧은 방심을 이용하려는 듯 보였다. 다만 이상한 점은 기습 전략치고는 돌격 형태가 무척 느리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공격이라면 충분히 상대가 대처할 수 있었다.
공고한 진형을 긴급히 구축한 이스트 윈드즈 검투사들을 희미한 미소로 바라본 에르피나가 니키타를 향해 외쳤다. 새롭게 개발한 돌파전법을 선보일 때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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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