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78
280화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저 카렌이에요. 오늘 갓즈나이츠와 플라이 울프즈의 승격토너먼트 결승전이 벌어지는데 여러분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무척 궁금하시죠? 오늘 한 번 저와 함께 즐겁게 지켜봐요.”
마이크를 잡고 갖은 아양을 떨며 중계하는 카렌을 보며 범석이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나운서처럼 딱딱한 멘트를 흘리지 않지만, 뛰어난 언변으로 경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대본도 없이 즉흥적으로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역시나 재주스텟이 극에 달한 여인답게 상당한 예능감이 있었다.
카렌이 갑자기 그를 바라봤다.
“오늘 이 자리에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오범석 검투사가 나왔어요. 무척 모시기 어려운 분이신데, 운이 좋게도 구내식당에서 만나 이렇게 끌고 왔답니다. 여러분 박수로서 맞이해 주세요.”
그러자 응원복을 입고 있던 엑스트라 연기자들이 힘차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멋쩍었지만, 범석이 정면에 붉은 불이 켜진 카메라를 바라보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졸지에 끌려온 오 범석 검투사입니다. 오늘 경기 상황을 자세히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범석님. 오늘 어느 팀이 이길 것 같아요?”
길게 헛기침을 내뱉을 범석이 대답했다.
“당연히 갓즈나이츠팀이 이기리라 확신합니다.”
“어째서죠?”
그가 카렌을 멍하니 쳐다보며 말했다.
“카렌씨. 그럼 제가 갓즈나이츠 팀이 지리라고 말할 것 같습니까?”
범석과 갓즈나이츠의 상관관계를 떠올린 카렌이 배시시 웃었다.
“호호호. 하긴 그렇네요. 이거 아무래도 오늘 상당한 편파방송이 될 텐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요.”
“상관없습니다. 다 저를 섭외한 LKS방송에서 감수할 일입니다.”
나탈리가 신호를 보낸 탓인지, 아니면 정말 웃겨서인지 모르지만, 바로 엑스트라 연기자들에게서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이런 LKS방송이 실수를 한 것 같네요.”
“뭐. 그렇지도 않습니다. LKS방송이 리마 시티의 방송국이니, 좀 편파로 나가도 상관없을 겁니다.”
“호호호.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범석님. 오늘 양 팀이 어떤 경기를 펼쳐 나가리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일단 월드리그 진출을 노리는 포레스트 오크즈와 포이즌 티스의 3, 4위전 경기결과를 봐야 알겠죠.”
“어째서죠?”
“그야 그 경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플라이 울프즈와 갓즈나이츠의 경기를 수행하는 의지 달라질 테니까요. 포레스트 오크즈가 이긴다면, 양 팀 다 승격이 바로 결정되니 오늘 경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테고, 포이즌 티스가 승리한다면 양 팀 중 하나가 탈락 되니 적극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할 것입니다. 당연히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오. 그렇군요. 그럼 먼저 포레스트 오크즈와 포이즌 티스의 경기 결과를 알아봐야 하겠네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탈리가 월드리그 승격토너먼트 3, 4위전 실황 중계화면을 띄웠다. 현재 포레스트 오크즈는 라이드 승수 1승 1무인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히 기분 좋은 일이기에 범석의 입이 티가 날 정도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황급히 이 소식을 메일쪽지에 담아 다이아나에게 보냈다. 급히 작전을 변경할 필요가 있던 탓이다. 원래대로라면 갓즈나이츠는 1라운드에 2진을 내보내는 변칙 전략을 채용했을 터였다.
카렌이 모든 경기 상황을 소상히 설명한 후 범석에게 눈길을 주었다.
“범석님. 결과가 이런데, 양 팀이 어떤 전략 카드를 꺼내 들을 것으로 생각하나요?”
“일단 플라이 울프즈는 적극적인 승부를 피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어째서죠? 자동 승격될 가능성이 높으니,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범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2라운드까지의 결과로 승부 향방을 논하기란 어려웠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마 체력을 비축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겁니다.”
“아니 왜죠?”
“사실 플라이 울프즈의 전력이 갓즈나이츠보다는 강하다고는 하지만, 한가지 밀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피지컬 측면이죠. 그렇기에 지금부터 전심전력을 다해 싸운다면 후반부에 가서 갓즈나이츠에게 일격을 당할 공산이 커집니다. 거기다 지금 포레스트 오크즈가 승격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에 플라이 울프즈 검투사들은 기필코 승리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적게나마 결여 되어 있을 테니, 플라이 울프즈 감독은 승격 확률을 높이는 차원에서 위험이 따르는 공격보다는 다소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쳐 후반 부에 있을 체력 저하를 막고자 할 겁니다.”
“아. 그런가요? 그러다가 포레스트 오크즈가 패하면 어쩌려고요.”
“그때는 소속 검투사들이 정신을 바짝 차릴 테니, 그동안 비축한 체력을 바탕으로 갓즈나이츠를 공격하겠죠.”
나름 이해되는 설명이었다. 승리에 대한 의지가 결여된 소속 검투사로 공격을 감행했다가는 동료 간의 불협화음 탓에, 자칫 역으로 위기에 처할 수가 있었다. 그러느니 지금은 무승부 전략으로 체력을 보존했다가, 경기 후반부에 나타날 불안요소를 제거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갓즈나이츠가 공격해 온다면, 의미가 없잖아요?”
“후후. 어떤 전쟁이든 공격 측보다는 철저히 대비한 방어 측이 유리하기 마련입니다. 검투 경기도 고대 시대의 전쟁을 접목한 경기이라 이 정의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흔히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방진을 통한 방어전을 펼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그런데 전력이 떨어지는 갓즈나이츠가 공격해온다? 그럼 플라이 울프즈로서는 감사할 따름이겠죠.”
“그렇군요.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방어가 더 유리하다면 왜 프로검투팀 모두가 방어로 일관하지 않는 것이죠? 강팀들을 보면 무리하게 상대의 방진을 뚫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잖아요.”
범석이 피식 웃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후후. 그야 양 팀 모두 방어로 일관하면 경기가 재미없어지니 그렇죠. 그럼 프로검투경기가 팬들로부터 외면받게 됩니다.”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지 카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TV를 보면 약팀은 여전히 방어만 일관하잖아요. 그럼 강팀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프로검투협회에서 승강제를 시행하고 있죠.”
“승강제요? 그럼 승강제가 방어일변도의 경기를 막아준다는 건가요?”
“물론이죠. 카렌 씨도 알다시피 승격하게 된다면 해당 팀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승격을 위해서는 최소 리그 내 1, 2위에 들어야 하는데, 그런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고득점이 필요하게 되니 무승부를 통해 얻어지는 1점보다는 승리에서 얻어지는 3점을 노려야 합니다. 그래서 승격을 원하는 강팀이 좋은 검투사를 영입해 전력을 꾸준히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죠. 그와 반대로 약팀은 그러한 강팀에게 휘둘리다가 승점을 얻지 못해 강등될 위험성에 빠지게 되죠.”
“오. 승강제에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그럼 혹시 승강제가 채택하지 않는 스포츠리그는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무척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 시대의 모든 스포츠 경기가 승강제를 채택하고 있으니, 없을 때의 폐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석은 현실에서 항시 승강제가 없는 프로스포츠 경기를 측은하게 지켜봤었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첫째, 아까 말했다시피 방어일변도의 플레이로 일관하면 경기가 느슨해지니 팬들이 흥미를 잃습니다. 그럼 입장수입, 팀 엠블럼 수입, TV방송 수입이 떨어지니, 해당 리그 프로팀들의 재정상태가 나빠집니다. 둘째는 장기적으로 볼 때 해당 스포츠 리그 수준이 질적으로 하락한다는 겁니다.”
“아? 그건 저도 알겠어요. 바로 돈을 벌지 못해서요? 돈이 없으면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없을 테니까요.”
카렌이 대충 눈치가 오는지 잘난체하며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범석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으음. 그런 면도 있지만, 다른 이면도 있죠.”
“뭔데요?”
“바로 방어 일변도의 경기에서는 공격수의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공격수의 실력이 정체하거나, 하락을 면치 못하게 되죠.”
“하지만 대신 역으로 방어에 역점을 둔 선수는 우대받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방어에 역점을 둔 선수의 실력도 질적으로 하락하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카렌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째서죠?”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서죠. 포식자가 없는 자연계에서 초식 동물의 진화가 느리듯이, 강력한 공격이 없이는 공고한 수비도 없습니다. 즉 약한 공격수를 오랫동안 경험해온 수비수들이 자연스럽게 실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해했어요. 그럼 다른 폐해도 있나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범석은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다. 곧 경기가 시작될 분위기라, 설명에만 집중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럿 있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죠. 바로 해당 리그의 선수들이 불법 스포츠도박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아니 왜요?”
“간단합니다. 팬들의 외면으로 수입이 없으니, 해당 팀은 소속된 선수에게 많은 연봉을 줄 수 없게 됩니다. 그럼 주머니가 가벼워진 선수들이 불법 스포츠도박을 종용하는 브러커에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되죠. 여기에 또 한가지. 자기가 일부러 실수해 패하더라도 팀이 강등하는 일은 없으니, 옵션계약에 의해 연봉이 깎이거나 동료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즉 해당 선수에게 금전적인 손해도 없고 도덕적인 방심까지 생기니 유혹에 더욱 약해진다는 겁니다.”
승강제 존재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한 카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저 단순히 리그를 운영하는 한 제도라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현대의 모든 스포츠경기에서 승강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군요. 그런 좋은 제도를 하지 않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요.”
범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작금의 편안함에 안주해 앞날을 보지 못하는 바보는 항시 존재하는 법이지요.”
그때 카렌이 급히 일어나 VIP좌석 창밖에 펼쳐진 경기장을 바라봤다. 막 양 팀 검투사가 입장 터널을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제 경기가 시작될 모양인데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갓즈나이츠 출전자의 등번호를 확인한 범석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이아나가 주전 검투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제 1라운드는 손쉽게 비기게 되었다. 유일하게 플라이 울프즈가 공격으로 일관할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갓즈나이츠가 2진을 보낼 때였다. 극심한 전력 차이는 상대의 공격의지를 불태우게 하기 마련이었고, 주력이 나올 2라운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앞으로의 경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듯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범석이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흥미진진이라뇨? 아까 제가 말했다시피, 이번 라운드는 지루한 경기가 펼쳐질 겁니다. 양 팀 모두 방어 일변도로 나갈 거니까요.”
“그, 그런가요? 그럼 재미없겠네요?”
“후후.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왜요?”
“이번 경기는 승격이 좌지우지되는 중요한 경기니까요. 양 팀 모두 리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천상과 나락을 경험하게 되니, 피를 말리는 신경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 검투경기를 관람해온 팬들이라면, 그 기운을 느끼고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카렌 씨는 안 느껴지십니까?”
카렌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검투경기 팬이 아니니, 그런 분위기를 느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 중이니 범석의 질문에 호응해야만 했다.
“그렇군요. 왠지 양 팀 사이에서 발산되는 예기가 장난이 아닌 듯 보이는데요. 이거 손에 땀에 날 지경이에요.”
“후후. 당연히 그렇겠죠.”
이내 호각 소리가 터져 나오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범석의 예상이 맞았는지, 양 팀은 방진을 짠 채로 서로 견제하듯 노려볼 뿐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아니 간격의 넓어짐이나 좁아짐도 없을 정도로 정체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에 몇몇 관중이 목청껏 소리쳐 분발을 촉구했지만, 경기장 내에 드리워진 긴장된 고요함 속에 묻혀버렸다.
카렌이 책임 프로듀서인 나탈리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도저히 중계할 거리가 없어,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중계화면은 갓즈나이츠 서포터즈의 응원석에 나가 있는 촬영 스텝들이 보낸 온 영상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쇼 형식의 프로그램이었기에, 중계 화면만 보내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었다.
그 사이 범석은 포레스트 오크즈의 경기 상황을 주시했다.
‘이거 이번에는 단단히 붙는데.’
포이즌 티스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며 포레스트 오크즈를 압박해갔다. 1패를 안고 이상, 승격을 위해서는 반드시 1승을 더해 승부를 제자리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방진을 유지하며 굳히기 들어간 적진을 쉽게 뚫지는 못했다. 포레스트 오크즈 승격을 위해 이 1승을 지켜야 하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카렌이 넌지시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오빠. 누가 이길 것 같아요?”
“글쎄다. 워낙 백중지세라 예측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포레스트 오크즈가 유리하겠지.”
“왜요?”
“수비로 일관하면서 체력을 아끼잖아. 반면 포이즌 티스 정반대 상황이고. 게다가 포이즌 티스는 너무 무리하고 있어. 저러다가는 자칫 불의의 일격을 맞을 수 있지.”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방진의 내부를 과감하게 파고들던 포이즌 티스의 7번 검투사가 명치에 창끝을 맞고는 서서히 몸을 경직시켰다. 이제 12대 11의 상황, 하는 수 없이 포이즌 티스의 대장검투사가 일제히 후퇴명령을 내렸다. 이 상태에서 공격을 계속했다가는 수적 열세로 패할 공산이 컸다. 1패를 또다시 얹히느니 차라리 이번에는 무승부작전으로 일관하고, 다음 라운드에서 승리의 기회를 노리는 편이 나았다.
이에 포레스트 오크즈는 묵묵히 상대가 후퇴하는 모습만 바라볼 뿐,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공격을 감행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1승을 얻은 상태에서 무리하기는 싫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포레스트 오크즈와 포이즌 티스의 3라운드 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 마찬가지로 갓즈나이츠와 플라이 울프즈의 1라운드 경기도 양 팀 모두 별다른 피해 없이 무승부를 기록했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