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85
287화
세계의 중심 도시 세노사이드의 한 호텔 앞. 갓즈나이츠의 문양이 선명한 플라잉 카가 입구 쪽에 내려서고 있었다. 대기 중이던 엘프 호텔 종업원이 일제히 달려나와 문 앞에서 90도로 정중히 인사하며, 손님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정장을 차려입은 범석과 에스더가 밖으로 나오자 종업원들이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저희 엘케인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범석이 턱을 올려 높게 솟은 호텔 꼭대기를 바라봤다. 세계 최고의 호텔인 엘케인호텔이 어떤 곳인지 확인해 두기 위해서였다.
“저기 연방프로검투협회 연례 만찬회가 열리는 곳이 어디지?”
“네. 6층의 대연회실입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겠군.”
한 금발의 엘프종업원이 양손으로 문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절 따라와 주세요.”
에스더와 팔짱을 낀 범석이 차분하게 걸음을 옮기며, 종업원의 뒤를 따랐다. 오늘 연방프로검투협회 연례 만찬회에 처음 참가하기에 진중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괜히 경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협회 관계자들에 찍힐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문 안으로 들어서자 무언가 그의 앞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점박이 개였는데, 생김새로 달마시안 같았다. 놈은 입안 가득 음식 쓰레기봉투를 문 채, 한 벨보이와 식당 종업원에게 쫓기고 있었다.
범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품격 높은 고급호텔 로비에서, 개와 인간들의 쓰레기 쟁탈전이 벌어지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뭐야. 저건?”
황급히 안내하던 엘프종업원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먼저 올라간 어느 손님이 맡겨놓은 개가 탈출했나 봅니다. 거듭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좀 특이한 장면이군.”
이해하기로 한 범석이 발밑으로 이어진 음식쓰레기 국물 줄기를 넘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괜히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진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6층으로 올라갔다.
“치사한 쫌팽이 같은 새끼. 팁이 고작 10크랑이 뭐야! 애들 사탕값도 이것보다 비싸겠다.”
마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는 벨보이를 본 범석이 눈을 흘기며 나갔다. 아무리 팁을 적게 줬다고 하더라도, 손님을 뒤에서 욕하는 호텔직원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복도를 걷던 그가 안내하는 엘프 종업원을 보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이 호텔은 팁을 적게 주면 손님의 뒷다마를 까는 모양이지?”
황송한 표정을 지은 엘프 종업원이 고개 바짝 숙였다.
“저, 절대 아닙니다. 저희 엘케인은 세계 최고의 호텔로, 손님들에게 팁을 요구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럼 조금 전에 엘리베이터 탄 놈은 뭐야?”
“아, 아마…….”
“아마 뭐? 저 사내는 여기 직원이 아니야?”
엘프 종업원이 꿀 먹은 벙어리 된 것처럼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범석이 직접 목격한 사실을 토대로 크레임을 거니 변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깊이 숙이며 사죄를 청했다.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범석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굳이 자신의 일도 아닌 일로, 전혀 관계없는 그녀를 탓할 이유가 없었다.
“됐다. 그냥 가자. 빨리 안내나 해라.”
대연회장에 도착한 범석이 50크랑 짜리 지폐를 꺼내 엘프 종업원에게 팁으로 건넸다. 평소 같으면 그냥 가거나 10크랑 짜리 한 장 던져줬겠지만, 아까 벨보이의 행동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나름 인기로 벌어 먹고살고 있는 자라, 주변 평판에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프 종업원은 잠시 거절했지만, 그가 재촉하자 받아 주머니에 챙기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활짝 열린 연회장의 입구로 들어선 범석이 수백 명의 신사숙녀가 자리한 주변을 휘휘 살폈다. 자신의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냥 빈자리에 찾아가서 앉을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었다. 모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듯 보이지만, 일정한 규칙이 존재했다.
연방프로검투협회 연례 만찬회는 프로검투계의 큰 행사 중 하나로, 센트럴리그 팀 이상의 주요관계자와 연방협회 내 주요 인사만 참가할 수 있었다. 전 세계 모든 프로팀의 인사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연회장을 수백 개를 빌려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은 놀고 즐기는 장소만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니, 협회의 주요 사항 건의와 논의되었고, 이는 프로검투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각 계파 간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고, 따로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다른 세력과 구분을 지었다. 그래서 함부로 자리에 앉았다가는 특정 계파의 수족으로 오인 받게 되고, 이 일로 나중에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일단 루이스부회장님 계파와 함께하는 편이 낫겠지.’
그가 넓은 광장과도 같은 연회장을 훑으며 루이스계파의 영역을 찾았다. 범석은 루이스부회장과의 친분이 있을뿐더러,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채플린 위스퍼팀도 그들 계파에 속했다. 세력 간 다툼이 치열한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있는 것보다야, 친인들과 함께 하는 편이 나았다.
그때 누군가가 범석의 어깨를 툭 건들었다.
“여어. 이게 누구야? 갓즈나이츠의 이사장님이 아니신가?”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바로 줄리앙이었다. 놀란 눈을 한 범석이 말했다.
“뭐야? 줄리앙이잖아? 네가 여기 웬일이냐?”
“뭐긴. 나도 자격이 되니 왔지.”
하긴 그는 다크 하이에나즈 팀의 단장이니,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되었다. 비록 올해 월드리그에서 강등되기는 했지만 다크 하이에나즈는 센트럴리그 팀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린 범석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후후. 너도 참 많이 컸다. 나랑 같은 자리에 참석하다니 말이야.”
“난 원래부터 컸다. 네놈이 잘 자란 거지. 하지만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이에나 그룹과 갓즈나이츠가 동급일 수는 없으니까.”
“훗. 당연히 동급일 수가 없지. 한낱 단장 따위와 이사장인 내가 같이 놀 수는 없잖아. 급수 자체가 다르니 말이야.”
줄리앙이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말하는 본새는 여전히 변함없구나.”
“네놈 잘 난 체만큼은 아니다.”
과거사를 떠올린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일은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철저히 망가졌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아직도 오한이 들 정도였다.
“됐다. 그만하자. 옛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범석은 같은 생각이었다. 사실 과거사 외에도 그에게 궁금한 점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궁금한 내용이 있는데. 정말 자키드라는 자가 그렇게 강하냐?”
“두말하면 잔소리지. 한 마디로 대적불가다.”
“그래? 그런데 얼마큼 강하냐? 월드리거 세 명을 동시에 쓰러뜨렸다는 걸로는 파악이 도저히 안 된다.”
“그건 나중에 직접 경기를 봐. 말로는 설명 못 하니까.”
“당장에 궁금하니까 그렇지. 혹시 대련 영상도 없어?”
“없어. 자키드에 관한 사항은 팀 내에서 특급 기밀로 다루기 때문에, 언론인 출입금지는 물론 자체적으로도 그가 훈련하는 장면이나 대련 장면을 절대 안 찍는다.”
범석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쳇. 정말 더럽게 비싸게 구네.”
“후후. 어쩔 수 없지. 이번 하이른 센트럴 리그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말이야. 하지만 약간의 배려 정도는 할 수 있지.”
줄리앙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표 두 장을 꺼냈다. 인쇄된 면을 보니 다크 하이에나즈의 당일 입장권인 듯 보였다. 이에 범석이 깜짝 놀란 눈을 했다. 아직 대진표도 발표되지 않았는데, 당일 입장권이 나오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뭐야? 이건?”
“우리 이번 리그 개막전 경기 표다.”
“그걸 몰라서 묻냐? 어떻게 당일 입장표가 벌써 나오냐? 인쇄 면에 상대 팀 명이 나와야 하는데, 그건 대진표를 봐야 알잖아.”
“훗훗. 우리 하이에나그룹이 이브라힘 계파에 소속되어 있는 걸 아직 몰랐냐? 대진표쯤은 진작에 입수했지.”
“쳇. 그래. 네 똥 굵다.”
입장권을 받아챙긴 범석이 내용을 살피더니 더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다름 아닌 채플린 위스퍼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표는 대박표였다. 자키드의 정보가 새어나가는 바람에 지금 전 세계 언론은 그와 아멜리에의 대전을 기대 어린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줄리앙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때? 구경하러 올만 하겠지? 거리도 가까우니 말이다.”
범석이 바로 수긍을 표시했다. 다크 하이에나는 같은 중앙정부 내 있어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하긴 그렇겠네. 그나저나 너희 팀도 지지리 운도 없다. 하필 중요한 개막전 상대가 채플린 위스퍼 팀이라니……. 쯧쯧.”
“그게 뭐 어때서?”
“몰라서 물어? 채플린 위스퍼는 아멜리에 혼자만의 팀이 아니다. 실력 있는 동료가 잔뜩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고.”
“괜찮다. 우리 다크 하이에나즈도 그에 못지않다.”
“후후. 그런 팀이 강등 당했냐?”
틀린 말은 아니기에 줄리앙이 헛기침을 연발했다. 현재 채플린 위스퍼팀은 최소 월드리그 중간급 이상 전력은 되었다.
“큼큼. 하지만 우리 팀도 이번에 새롭게 검투사를 영입할 방침을 가지고 있다. 그럼 충분히 채플린 위스퍼팀을 이길 수 있다.”
“누구를 영입할 생각인데?”
“스카이 자칼즈의 이에나와 스노우 걸즈의 샬롯이다. 이들을 시작으로 우리 다크 하이에나즈 명문 팀으로 거듭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스카이 자칼즈의 이에나와 스노우 걸즈의 샬롯이라면 각각 현재 전체 검투사 순위 22위와 51위에 올라있는 최상위급 검투사였다. 모두 주인이 있는 검투사라 몸값이 12억과 7억에 불과하지만,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연봉이 나가게 되었다.
코 울음을 거하게 울어댄 범석이 비꼬듯 말했다.
“쳇. 누구는 좋겠네. 돈도 많아, 그런 검투사도 영입해오고 말이야.”
“설마 너보다 많겠냐? 최소한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수억 크랑을 쓰레기통에 처박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카젤라와 렌카에 관한 얘기 같았다. 범석이 그녀들을 영입하며 뿌린 돈은 총 7억 3,150억 크랑. 이 중 5억 크랑이 잠자리와 동시에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당연히 다크 하이에나즈의 씀씀이만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 미안하다. 자식아. 나 돈이 마구 썩어나 허공에다 뿌리고 다닌다. 하지만 쓰레기도 종종 쓰일 데가 있다. 허투루 날리는 돈이 아니라든 얘기다.”
“쓰레기가 쓰일 데가 어디 있냐?”
“아주 많지. 가령 오늘 같은 경우도, 점박이 개 한 마리가 음식 쓰레기 봉투를 물고 호텔 안을 쏘다니더라. 최소한 개먹이는 되잖아.”
줄리앙이 순간 표정을 경직시켰다.
“뭐? 음식 쓰레기를 문 점박이 개?”
“엉. 달마시안 같은데, 호텔 로비에서 벨보이와 요리사에게 쫓기고 있더라.”
줄리앙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
“으음. 그렇군. 그런데 나 좀 어디 좀 가봐야겠다. 깜빡 잊고 처리 못 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마 안 있으면 만찬회가 열리기에, 그와 잡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라.”
“그럼 다음에 보지.”
그 말을 하고 난 줄리앙이 횅하니 자리를 떠나갔다. 잠시 그의 뒤를 지켜본 범석이 에스더와 함께 루이스부회장 계파의 자리를 찾아갔다. 마침 레베카와 빈센트 감독을 발견해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루이스부회장을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빈센트 감독에게 다가갔다.
“빈센트감독님 이거 오랜만입니다.”
빈센트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범석을 맞이했다.
“아. 자네 왔는가? 반갑군.”
레베카도 그를 발견하고는 인사했다.
“범석님 오셨어요. 옆에 자리가 비었으니, 앉으세요.”
“아. 고마워.”
범석이 먼저 에스더를 앉힌 후, 빈센트 감독의 옆에 착석했다.
“빈센트 감독님. 새로운 시즌 준비 잘되어 갑니까? 아멜리에까지 팀에 복귀시킨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번에 월드리그진출을 노리는 듯 보이는데요.”
“후후. 아주 잘 되어가고 있지.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우리 팀이 다음 시즌 리그에서 우승한 후 승격토너먼트를 통해 월드리그에 진출할 걸세.”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고생 좀 할 것 같습니다. 다크 하이에나에서 이번에 단단히 전력 강화를 계획하고 있는 듯 보이니 말입니다.”
빈센트 감독이 심히 궁금한 표정으로 범석을 쳐다봤다. 자신감 넘치게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다크 하이에나가 신경 쓰였다. 믿고 있지 않지만, 아멜리아와 비견된다는 정체불명 검투사가 출현했다는 언론기사가 마음 한 편을 불안하게 했다.
“자네 다크 하이에나즈의 정보를 알고 있나?”
“네. 대충 정보를 파악했습니다.”
“그럼 혹시 그 정체불명의 검투사에 관한 정보도 파악하고 있나?”
범석이 마침 웨이터가 가져온 샴페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네. 대충요.”
“어느 정도나 알고 있나? 혹시 언론에 나온 기사내용 정도는 아니겠지?”
그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에이. 아무리 대충이라고 말했지만, 그 정도로 안다고 하겠습니까? 이름과 내부 테스트 내용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한번 말해 보게. 대체 그 작자가 누군가?”
범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그는 10만 크랑이라는 출혈을 감소해야 했다.
“에이. 공짜 좋아하시면 이마가 벗겨지십니다. 저도 이 정보 알아내려고 제법 공을 들였습니다.”
빈센트 감독이 꿍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봤다.
“자네 정말 치사하게 이러긴가? 자네 엘프 중 상당수가 바로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잘 알죠. 또 감독님 덕분에 더욱 싸게 살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아주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긴 빈센트 감독만 아니었다면, 범석은 호구인 아놀드를 톡톡히 털어 많은 자금을 아꼈을 터였다. 그 사실을 감독도 잘 알고 있는 터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바쁜 하루를 보내서 제법 정신이 없습니다. 하하하.
그럼 즐거운 한 주 맞이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