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87
289화
– 여어. 우리 범석이 많이 출세했네. 그런 곳에도 가고 말이다. 축하한다. 하하하.
연회장 문을 나서는 범석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 뭐가 심상치 않은데?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네. 있습니다. 방금 들은 내용인데, 아주 심각합니다.”
하며 범석이 조금 전 벤에게 들은 내용을 소상히 설명함은 물론, 예상되는 자신들의 피해를 예측해 언급했다. 가만히 듣던 렉스터가 화가 난 표정으로 버럭 소리쳤다. 블루버드는 비영리 법인이기에, 주식회사 성격을 띠지 않고 있었다. 정말 그 안건이 통과된다면, 훗날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렉스터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 아니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아무래도 느낌상 흑사회가 저희를 치기 위해 딴짓을 거는 것 같습니다.”
– 어째서?
“이 안건의 제출자가 바로 쿠퍼 계파입니다.”
렉스터가 미간을 찌푸렸다. 쿠퍼 계파와 흑사회의 친분을 고려해볼 때 그 가능성은 확실히 높았다.
– 이런 젠장 할……. 별 치사한 수를 다 쓰는군.
“휴. 그렇죠.”
– 그런데 범석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요.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해결할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많은 검투팀이 찬동할 텐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중간적인 입장에 선 인원 대다수가 쿠퍼일파를 지지한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니까요.”
– 다른 인사들이 찬동해? 어째서?
“빤한 것 아닙니까? 저희의 시스템을 채용한 팀이 많아질수록 기존 팀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죠. 사실 엘프의 전투의지로 같은 전력이라도 우리 쪽이 유리할뿐더러, 팀 운영비가 적고 주주들에게 제공하는 배당금이 없으니 자금적인 면에서 큰 이득을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돈만 있다면 전혀 꺼리지 않고 상위급 검투사들을 영입할 수 있고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속으로는 꽤 불편해할 겁니다.”
렉스터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 젠장 더러워서. 이거 세력 약한 놈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그렇기는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당연하지. 혼자는 못 죽지. 너 오늘 그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새끼들 명단 파악해서 다 내게 가져와.
“아니 왜요?”
– 뭐긴 연방경찰청장님께 말해서 본보기로 대표 몇 놈 골라 족쳐야지.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새끼들은 없다. 특히 이 계통 얘들은 더 그래. 팀 운영 자체가 편법이거든.
범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후처리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가 않았던 탓이다. 이곳에서 상정된 안건은 총회에 부쳐지는데, 투표권을 행사하는 인사가 족히 만 명을 상회했다. 이런 본보기 처방으로 이들 모두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만찬회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그래 봐야 소용없습니다.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꼴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 하긴 그렇지만……. 아차 범석아. 이렇게 건 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요?”
– 우리가 검투사 영입사항을 마구잡이로 언론에 알리겠다고 하는 거야. 그럼 기존 팀들도 쫄 것 아니야. 잦은 영입공세를 받은 팀은 아예 망가져 버릴 테니까.
괜찮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너무 상대를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지금은 좀 더 이성적으로 풀어버리는 편이 좋았다. 이 협박을 하는 순간, 기존 세력과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방법은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효과는 큰 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좀 부드러운 대화로 푸는 편이 나중을 위해 좋습니다.”
–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잖아. 범석아. 잘 생각해봐? 이번에 삐끗 나버리면 우리가 리그 밖으로 쫓겨날 수 있어. 그럼 따로 리그를 만들어 독립하지 않는 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고.
순간 범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리그를 만들기 어렵겠지만, 충분히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었다. 리그를 양분한다는 것은 기존 세력의 이권을 떼어낸다는 소리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리그가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크게 성장한다면, 검투 시장을 양분하게 되었다.
‘문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야?’
새로운 검투 경기 리그가 성장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팬들이 기존의 연방프로검투협회라는 대형 시스템이 존재하는 가운데, 군소 리그를 구경 올 리가 만무한 탓이다.
하지만 새롭게 리그를 만드는 일은 협상을 위한 카드였다. 성공 여부를 떠나 그럴싸하게 꾸민다면, 기존 검투 세력에게 통할 수가 있었다.
“경감님. 일단 전화를 끊겠습니다. 지금 급히 할 일이 있어서요.”
– 무슨 일?
“협상 카드를 만드는 일인데, 시간이 촉박해서 그럽니다.”
– 그, 그래 알았다. 그럼 나중에 결과를 꼭 알려줘라.
“네.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은 범석이 새로운 리그에 대한 대략의 시스템을 구상해 나갔다. 게임 내의 승강제와 현실의 프로 스포츠계의 제도를 접목하는 일이라, 금세 끝을 낼 수 있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범석이 곧장 루이스부회장에게 찾아갔다. 일단 분위기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주변에 앉아있던 다른 검투계 인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루이스 부회장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루이스 부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자네 왔는가? 벤의 말로는 무척 놀라 밖으로 나갔다고 하던데. 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말 쿠퍼 일당이 프로리그 진입 요건 중 하나로, 주식회사 구성 여부를 넣어야 한다는 안건을 올린 것이 맞습니까?”
“그렇다네. 나도 조금 전에야 알고 우려하고 있네. 이거 시간이 없으니 대처할 방도가 뾰족이 없네.”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스의 표정으로 보아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는 지금 범석과 시선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휴~ 그럼 지금 상황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으음. 첫 번째 안건은 이브라힘 계파가 앞장서서 막는 터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두 번째 안건은 좀 힘드네. 다들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 내 설득이 먹혀들지 않네.”
역시 예상한 결과 그대로였다. TNGL방송사는 이브라힘 계파와 친분을 맺는 경제인 단체의 기업이었다.
첫 번째 안건을 막는 일에 이브라힘 계파가 발 벗고 나서서 막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후자의 안건은 범석을 포함한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프로팀에게 이득이 갔다. 아마 루이스 부회장의 휘하 계파 쪽 사람들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은근히 바라고 있을지 몰랐다.
범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부회장님.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면 누구를 설득해야 합니까?”
“일단 이브라힘 계파를 설득해야겠지. 내 세력과 그들 세력을 합치면 반절이 넘어가니까.”
그렇다면 목표는 정해졌다. 이브라힘 계파만 설득하면 득표수가 과반을 넘으니, 문제는 해결되었다.
“으음. 그럼 이브라힘 회장님의 마음만 돌린다면 해결되겠군요.”
“그래야 하겠지. 그런데 설득이 쉽지 않을 걸세. 내가 계속 이 일로 협상 타진을 넣는데, 반응조차 하고 있지를 않네. 그리고 나와 이브라힘 회장이 뜻을 합한다고 해도 과반을 넘는다는 보장을 못 하네. 이권에 관련된 문제라 우리들의 말을 듣지 않는 조직원들이 나올 수도 있거든.”
“그, 그렇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확실한 결과를 위해서 중소 계파 하나 정도는 끌어들이는 편이 낫겠지. 아니 그편이 이브라힘 회장을 설득하기에도 좋을 걸세. 자네를 지원하는 계파가 많으면 회장도 부담이 갈 테니 말일세.”
납득이 갔던 범석이 멀리 반대편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테이블들을 바라봤다. 바로 안젤라 계파가 있는 장소였다. 안젤라는 좀 순진한 면이 있어서 기분만 잘 맞춰준다면 자신을 도와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가 급히 루이스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안젤라 계파라면 어떻겠습니까?”
루이스가 잠시 턱을 쓰다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젤라 계파라……. 작지만 아주 좋은 패군. 안젤라 여사는 경제인단체 소속의 회원으로 이브라힘 회장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네. 설득만 한다면 아마 제법 도움이 될 걸세. 그런데 자네 설득할 수 있겠나? 안젤라 여사는 외골수적인 면이 있어 한 번 아닌 건 절대 아닐세. 이미 쿠퍼일당의 안건에 호감을 느끼고 있다면 대화 자체가 안 될 걸세.”
범석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더욱 쉽습니다. 한 번 신뢰를 얻으면 끝까지 믿거든요.”
“그게 무슨 뜻인가? 자네가 알젤라여사의 신뢰를 얻었다는 얘기인가?”
“네. 그렇습니다. 전에 샤일라 사건을 해결할 때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석이 데레사라는 잡년의 꼬리를 잡는데, 그 어미인 안젤라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그리 자신한다면 해보도록 하게. 난 계속 다른 계파와 이브라힘 회장을 설득하고 있을 테니까 말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가 황급히 자리를 떠나 안젤라가 앉아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지금 몇몇 계파 인사와 딸인 데레사와 함께 식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범석이 짧은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내었다.
“흐흠. 안녕하십니까? 안젤라님.”
마침 고기를 썰던 안젤라가 그를 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자신에게 큰 만족감을 안겨다 준 범석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 범석씨. 어서 오세요!”
“그간 별고없으셨습니까?”
“물론이죠. 자자. 여기 앉으세요.”
안젤라가 옆에 있던 중년의 계파 인사를 밀어내고, 자리를 마련했다. 이에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범석이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데레사를 응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리 직접 본 일은 처음이지만, 샤일라 사건 때 그녀의 독심을 겪은 터라 항시 주의를 기울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루빈의 죽음은 범석에게도 충격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앞에 계신 어여쁜 미인은 누구십니까?”
순간 안젤라가 서늘한 시선으로 데레사를 쏘아봤다. 아무리 딸이지만, 범석의 관심을 받다니 질투가 생긴 것이다. 이에 데레사가 화들짝 표정을 정리하고,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데레사라고 해요.”
마지못해 안젤라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제. 딸아이기도 하죠.”
“아. 그렇습니까? 어쩐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역시 어머니인 안젤라님을 닮은 것이군요.”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안젤라와 데레사는 자매를 보듯 빤히 박듯 닮아 있었다. 하긴 모녀나 자매나 한 핏줄 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급격히 표정을 바꾼 안젤라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해석하자면 자신의 미모를 칭찬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호호호. 범석씨도 참. 모녀니 어쩔 수 없죠.”
비단 실 같은 데레사의 흑발과 여릴 정도로 마른 몸매를 쭉 훑어본 범석이, 슬며시 그녀의 캐릭터창을 열어보았다. 만만치 않은 적이니, 정보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샤일라 사건 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뒷골이 당겼다.
————————————————-
이름 : 데레사 안젤라.
구분 : 개조 인간(13년).
소속 : 데절트 스콜피온즈GC.
명성 : 8371.
악명 : 1369.
호감도 : 0.
H유무 : 무.
스테미나 : 5200/5200.
사회성 : 98+10, 근력 : 58, 체력 : 52.
민첩 : 59, 균형감각 : 59, 지능 : 100+10.
정신력 : 100+10. 판단력 : 100+10, 재주 : 100+10.
운 : 98+10.
현재기량/잠재능력 : 824/824.
————————————————
특성 : 헤라의 독심.
특이사항 : 월드리그 팀인 데절트 스콜피온즈GC의 단장으로 안젤라계파의 수장인 안젤라의 딸임. 탁월한 미래 예측을 통한 조언으로 팀 감독으로부터 신뢰를 받음. 심성이 사특해 주의가 요망됨.
————————————————
‘뭐야? 얘는?’
데레사의 능력치는 실로 대단했다. 지능, 정식력, 판단력, 재주 스텟이 극에 다다라 있었고, 사회성과 운도 98이나 되었다.
게다가 특성은 ‘헤라의 독심’은 그가 이제껏 처음 보는 유니크 특성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한 명만이 보유할 수 있는 사기적 특성이었다. 즉 범석의 ‘도플갱어의 제왕’으로도 카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젠장. 썅! 아무리 유니크특성이라도 해도 그렇지! 이런 개사기가 어디에 있어!’
‘헤라의 독심’이라는 특성에는 두 가지 옵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첫째는 바로 모든 정신능력을 +10을 패시브적 능력으로 엠마와 ‘탁월한 지식’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두 번째 옵션이 턱이 벌어질 만큼 아주 가관이었다.
바로 액티브적 능력으로 발동 시 지정한 사안에 한에서 한 시간 이후의 벌어질 사건을 인지할 수 있던 탓이다. 비록 하루의 리미트 타임이 있고 한 사안에 한해 한 시간 이내에 벌어지는 일만 알 수 있다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범석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아는 자와 싸움이 결코, 쉬울 리가 없었다.
‘이거.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자칫 삐끗하면 내가 당한다.’
범석은 일단 본론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든 먼저 저 특성을 사용하게 해야만, 일이 잘 풀려나갈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안젤라의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데레사에서 알려진다면 어떤 식의 방해가 올지 상상도 못했다.
정보창을 닫은 그가 안젤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안젤라님. 저번에 청년기업연합회에서 루이스 부회장님의 따님에게 좋지 않은 수작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당황해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그 사건만 떠올리면 너무 아찔했다.
아무리 젊어도 그렇지, 세상에는 건드려서 될 것과 그렇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었다. 루이스 부회장은 연방 프로 검투계에서 제2의 세력을 구축한 데다가 많은 거물급 친구들이 있어 함부로 했다가는 경제인 단체도 큰코다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청년기업연합회에서 치기 어리게도 그의 딸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니, 그런 무모한 일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