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90
292화
열대 나무가 우거진 무인도의 한 별장 앞으로 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잔잔한 에메랄드빛 바다는 몽환적인 풍광을 사방에 뿌려댔고,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뭉게구름은 천천히 동쪽으로 이동하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별장 난간의 비치체어에 누워 낮잠을 자던 범석이 얼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모자를 푹 눌러썼다. 오랜만에 즐기는 달콤한 낮잠을 방해받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멀리서 해변가에서 들려오는 여인들의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체를 잠시 들더니,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에 눈길을 주었다. 그곳에는 잘빠진 수영복을 입고 있는 나탈리와 카렌이 서로를 향해 물을 뿌리며 놀고 있었다.
‘뭐. 나쁘지만은 않군.’
시끄럽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두 여인이 해변에서 노니는 모습은 보기에는 참 좋았다. 굳이 방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범석이 수영복 차림의 여체를 감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한 카메라 맨과 PD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지금 카렌은 휴식시간이라 범석을 화면에 담으려는 것이다. 그는 곧 방긋 웃으며 자신을 향하는 렌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카렌의 성인축하선물로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지만, 범석이 이 무인도로 찾아온 표면상의 이유는 바로 촬영이었다.
PD가 그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범석씨 그동안 뭐하셨나요?”
“낮잠을 잤습니다.”
“그래요? 벌써 점심때가 다되었는데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있나요?”
그 말에 입맛을 다신 범석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오늘 점심의 식사 당번은 바로 그였다. 귀찮은 일이지만, 촬영 일정 중 하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쩝. 지금 시작할 겁니다.”
범석이 슬리퍼를 신고,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단한 요리상은 차릴 수는 없지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을 정도의 실력은 되었다.
그는 주방에 들어가더니, 냉장고에서 양파와 파, 감자 그리고 돼지고개를 꺼내 채를 썰었다. 이에 요리 제목이 궁금했던 PD가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요리를 하시나요?”
“중국요리요.”
“오. 그래요? 이거 참 기대되는데요.”
범석이 피식 웃었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하려는 요리는 짜장면, 그 어떤 요리보다 만들기 쉬웠다. 게다가 본 요리만 완성하면 단무지 외에는 부수적인 밑반찬도 준비할 필요가 없어 아주 편했다.
그는 곧 면을 꺼내 끓는 물에 삶으며, 채 썬 야채, 감자와 춘장을 프라이팬에 넣어 볶았다. 그리고 대략 5분여가 지난 후 테이블 위로 세 그릇의 짜장면을 올려놓았다.
“자. 완성이다.”
너무도 짧은 촬영에 담당 PD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원래 식사준비과정은 방송분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게 끝인가요?”
“당연하죠. 여기서 더 뭐가 필요합니까?”
그 말을 한 범석이 거실로 창문을 열어 해변에서 노닐고 있던 카렌을 불렀다.
“자 다들 밥 먹어라!”
카렌과 나탈리가 범석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놀이를 멈추고 별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물장난으로 시간을 보낸 터라, 배가 고픈 것이다. 그녀들은 욕실로 가 샤워를 하고는 식탁 앞에 모여들었다.
“범석 오빠! 짜장면이네요.”
카렌의 물음에 자리에 앉아있던 범석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들이 샤워하는 사이에 준비한 짜장면의 양이 두 배 가량 늘어난 탓이다.
“아니. 다 불어터진 짜장면이다.”
상관없다는 양 카렌이 탁자 위에 놓인 나무젓가락을 뜯어, 짜장면 면발을 비볐다. 정말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짜장면인 줄 몰랐다. 가난한 무명시절에는 자주 먹었지만, 지금은 할아버지인 레퍼드가 영양균형에 맞지 않는다며 금식목록에 올려놓아 맛보기가 어려웠다.
카렌이 한가득 짜장면을 입 안에 넣더니 엄지를 치켜올렸다. 배가 고프니 뭔들 맛없겠느냐마는, 범석이 한 짜장면은 일류는 아니더라도 동네 중국집에서 파는 정도의 맛은 냈다.
“오빠 맛있어요.”
그러자 나탈리도 젓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는 스텝이지만, 범석이 만들어놓은 짜장면은 세 그릇이었다.
“저도 먹어도 되나요?”
“그래. 너 먹으라고 만든 거니까.”
나탈리가 부하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미안한 일이지만, 그녀는 범석이 요리한 음식을 꼭 맛보고 싶었다.
이 시대의 여성이 남자가 해주는 밥을 먹기란 무척 어려웠다. 잠시 이어지는 식사시간.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세 남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연출하며 대화를 나눴다.
특별히 대본은 없었지만, 워낙 친한 사이기에 이야깃거리가 아주 많았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또다시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으로 나아갔다. 해변에서의 일상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카렌은 카메라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래의 목적대로 노는데 여념이 없었다. 오랜 기간 카메라 단련된 탓에 무시의 경지까지 오른 것이다.
그리고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까지 촬영을 마친 후, 긴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이에 카렌은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고 곤히 잠을 청했다. 온종일 물장구를 치며 놀았더니, 제법 피곤이 몰려든 모양이었다.
“나탈리. 카렌 자냐?”
“네.”
“그래? 그럼 나 좀 밖에 좀 나갔다 올게.”
고개를 주억거린 범석이 별장 마루를 지나 문쪽으로 걸어갔다. 조용히 산책이나 즐기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별장 안에는 휴식을 취하는 스텝들로 번잡해 정신이 사나웠다. 마찬가지인지 나탈리가 그 뒤를 따랐다.
직원들이 자신보다 다들 나이가 많아, 이런 으레 휴식시간 오면 좀 멋쩍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촬영 때는 업무상 야단도 치고 소리도 지르지만, 자유롭게 쉴 때에는 할 말이 없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수였다.
“범석님. 같이 가요.”
마침 밖을 나선 범석이 문을 잡은 채로 나탈리를 기다렸다. 그녀는 신발을 신기 전 뭔가 생각이 났는지,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뒤졌다. 술과 안주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어두운 밤 해변에서 기울이는 한 잔의 술은 참으로 꿀맛 같았다.
다시 베란다로 간 나탈리가 위스키와 안주가 담긴 비닐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술 한 잔 어때요?”
“당연히 좋지. 후후후.”
그녀의 손에서 봉투를 빼앗듯이 든 범석이 목조계단을 내려가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무인도라 어두컴컴하기는 하지만, 조명 불빛과 유난히 둥근 보름달로 사위를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그는 옆으로 따라붙은 나탈리의 팔짱을 슬며시 끼고는 어두운 해변을 바라봤다.
“나탈리 근래에 LKS방송은 어때? 잘 되어가?”
“네. 시청자들이 다소 늘어 이제 무료방송을 시작해도 될 듯싶어요.”
“무료방송? 그럼 매출이 떨어지지 않아?”
“네. 처음에는 많이 떨어질 거예요. 하지만 거대 방송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한 번쯤 반드시 겪어야 할 홍역이에요.”
“아니 어째서?”
“유료보다는 무료가 훨씬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으니까요.”
납득이 간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그럼 앞으로는 광고로 매출을 올리겠네?”
“네. 그래야죠. 단 재방송은 유료 컨텐츠를 계속 이어나갈 거예요.”
범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실과 달리 이 세계의 광고시장은 회사 대 방송사의 직접 거래방식이었다. 덕분에 무한 경쟁이 벌어졌고, 제대로 영업하지 못했다가는 그대로 쪽박을 차게 되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광고가 쉽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잖아?”
“네 그렇지만, 다행히 주변 여건이 좋아 무리해 보기로 했어요. 저희 방송이 프로 엘프선수들에게 워낙 인기가 높아 메이저 스포츠웨어 판매사에서 적극 호응을 보이고 있고, 자가용 플라잉카 제작 회사나 다른 패션의류 회사에서도 계속해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거든요. 게다가 앞으로 선거철이 다가오니, 정치 관련 광고도 많이 늘 테고요.”
LKS방송을 보는 주 시청자는 스포츠 스타로 널리 알려진 엘프 프로선수들이었다. 이들은 항시 언론에 노출되기에, 입고 있는 옷과 타고 다니는 플라잉카 제품들은 간접 광고를 얻는 효과를 발휘했다.
만약 LKS방송을 보는 엘프 스포츠스타들이 자사의 제품을 구매하면 수십 수백 배의 광고효과를 추가로 얻을 수 있으니, 관련 회사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선거철이 돌아왔다. 이곳 세상에서는 정치인들이 TV를 통해 자신의 공약과 이념을 광고로 내보낼 수 있기에, 방송사들은 제법 수입이 되었다. 지역에서 인지도 높은 LKS방송이 무료 방송을 시작하면 에이번드지역에서 높은 시청률을 얻을 수 있기에, 해당 지역 정치인들의 광고를 많이 수주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군. 그래도 기존의 매출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인데, 불안하지는 않냐?”
“휴~ 불안하죠. 무료화나 유료화 전환을 잘못해서 망한 방송사들이 제법 많으니까요. 그리고 매출이 떨어져 고생하는 곳은 부지기수고요. 하지만 메이저방송사와 붙으려면 어쩔 수 없어요. 유료방송으로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
나탈리가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메이저 방송사들의 행패에 분기를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스포츠 중계방송도 그렇지만, 프로그램 재발송 문제와 중요 뉴스 촬영 시 많은 불이익을 당했다.
범석이 굳어있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너는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앞으로도 잘할 거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일심회 회원도 많이 밀어줄 테니까.”
그것참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일심회가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일심회의 회원은 범석을 비롯한 나탈리, 렉스터, 마가렛, 글로리아, 카렌, 레퍼드등 7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일심회가 빠르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지난 연방프로검투협회 연례 만찬회 사건이 주원인이었다.
당시 리그에서 퇴출당할 뻔한 개인회사 성격의 프로 검투팀 이사장들이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범석의 밑으로 모여든 것이다. 그가 검투계의 거물인 루이스부회장과 안젤라여사를 움직여 이브라힘회장을 설득하는 장면을 면전에서 봤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에 처음에는 아마스와 로벤이 들어오더니, 차차 나머지 80여 명의 검투팀 이사장들도 차례로 일심회로 가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특징은 개인의 자금으로 최소 수억 단위가 들어가는 프로 검투팀을 만들 만큼 거부라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자신이나 부모가 거대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 그들이 제공하는 광고만 받아와도 LKS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뭘. 그동안 네가 애쓴 것이 얼만데. 네 덕분에 글로리아님의 레인보우 그룹도 지켰잖아.”
어느덧 한적한 해변에 도착한 범석이 휴대용 조명등을 켜고 자리를 폈다. 아무도 없는데다가 주위 풍광도 좋으니 이곳에서 술을 마실 참이었다.
그가 마른안주와 술병을 꺼내 돗자리에 올려놓더니, 이내 들고 온 비닐봉지를 뒤적거렸다. 술잔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엥. 술잔이 없네.”
“그래요? 죄송해요. 급히 오느라 깜빡했나 봐요. 제가 지금 가지러 갈게요.”
일어서려던 나탈리를 멈춰 세운 범석이 위스키 한 병을 까더니 그대로 넘겨주었다.
“뭐. 술잔 없다고 술 못 마시냐? 그냥 마시면 되지.”
“괜, 괜찮겠어요?”
범석이 다른 위스키병을 까더니 그대로 나발을 불었다. 그리고 몇 모금 마시더니 나탈리를 쳐다봤다.
“당연히 상관없지.”
피식 웃은 나탈리가 위스키를 병째로 쭉 들이킨 후 안주를 집어먹었다. 그리고 불연 듯 무언가가 생각난 것이 있는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참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혹시 렌카라는 아이는 왜 영입하신 거예요? 제법 비싸게 주신 것 같은데, 제가 얼마 전에 훈련하는 장면을 보니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요.”
“후후. 우리 나탈리 사장님. 제법 눈썰미가 좋아졌네. 렌카의 실력이 몸값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도 눈치채고 말이야.”
“당연하죠. 제가 갓즈나이츠에 숙소에 지낸 지가 얼마인데요. 이제 검투경기라면 빠삭해요.”
하긴 그녀가 갓즈나이츠에 온 지가 벌써 만 3년이 넘었다. 그간 항시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휘하 검투사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촬영했으니 검투 경기에 관해 자세히 알 터였다.
‘말해 줘야 하나?’
범석이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렌카가 아직 출중한 실력을 선보이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지금 당장 능력치 상승 특성을 카피하면 월드리거급에 해당하는 실력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범석은 렌카에게 능력치 상승 특성을 익히지 못하게 했다. 바로 ‘기원의 응답’을 익히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 특성은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옵션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치성의 기간이었다. 바로 특성을 발동하는 시간을 뜻하는데, 이 기간이 길면 길수록 얻어지는 과실이 크게 달라졌다.
한 예로 특성의 원주인인 로벤은 450억 크랑의 당첨금을 받기 위해서 31년이라는 기간을 투자했다. 물론 렌카에게 똑같은 시간을 투자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한 3년 정도 치성 기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그 정도만 되도 43억 크랑 정도가 들어오니, 꽤 수준급의 검투사를 영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점을 외부에 알리기가 좀 껄끄러웠다. 범석은 렌카가 리그에서 저조한 활약을 하게 해 그동안 자신이 쌓은 이적 성공신화를 무너뜨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래에 이적 때마다 다른 팀들이 여러모로 견제하는 바람에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히 못 할 것도 없었다. 그간의 노력으로 나탈리의 호감도는 거의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과 다른 여인들 간의 관계를 몰랐다면, 진작에 공략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주의만 준다면 외부로 이 사실을 발설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됐다. 그는 차근차근 연유를 설명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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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즐거운 주말되십시오.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