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93
295화
“하하하.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콜로세움 관계자 출입구에 들어선 줄리앙이 털털하게 웃으며 범석의 등짝을 두드리고 있었다. 개망신당할 뻔했는데 그로 말미암아 모면했기 때문이다.
인상을 찌푸린 범석이 그를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너 정말 암표장사를 한 거냐?”
“딱히 암표 장사라고는 할 수 없지. 고의성이 없으면 범죄는 아니잖아.”
“고의성이 없다니?”
“사실 오늘 아버지와 고위 경영진들이 관람하러 오시기로 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취소됐거든. 그래서 입장권이 남아돌기에 그냥 버리기도 아까워서 판 것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기장 앞에서 표를 파면 어떻게 하냐? 암표장사꾼으로 오인 받고 체포되면, 그 개망신이 어떻게 감당하려고?”
“어쩔 수 없었어. 돈이 좀 많이 필요했거든.”
“네가 뭔 돈이 필요해? 우리 팀의 단장은 업계 최저봉급을 받는데, 연봉 80만 크랑이 넘는다. 그 돈이면 한 사람 살아가는데 불편할 일이 없잖아.”
“후후. 미안하지만, 내 월급은 1만 2천 크랑이다. 그 돈 중 3,500 크랑이 원룸 월세로 나가지. 여기에 식비에, 전기세, 냉난방비, 기타 세금까지 다 합치면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범석이 의아한 눈으로 줄리앙을 쳐다봤다. 그렇다는 얘기는 연봉을 대략 15만 크랑 밖에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센트럴 리그팀의 단장이라는 작자가 그만한 봉급밖에 받지 못한다니, 이해되지가 않았다.
“설마 다크 하이에나즈팀이 경영상 위기를 겪는 거냐?”
“그건 아니다. 일단 단장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근신 기간이 풀리지 않아서 말…….”
줄리앙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위기를 벗어났다는 방심에 자신의 사정 얘기를 너무 술술 늘어놓았던 탓이다.
그가 어색한 웃음으로 방금 한 말을 얼버무렸다.
“하하하. 하여간 그런 일이 좀 있다. 하하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범석이 슬며시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사원식당이 있었는데, 달마가 뒷문 옆에 있던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물고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너. 설마 음식물 쓰레기까지 손 대냐?”
줄리앙이 버럭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자신이 지금 바닥을 기고 있지만, 남들이 먹다 버린 음식쓰레기를 식량 삼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아니지!”
범석이 줄리앙의 발밑에서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물어뜯는 달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건 뭐냐?”
“그건 달마가 먹을 거다. 이놈은 자신이 사냥한 음식이 아니면 절대 먹지 않는다. 도심이란 야생에서 자란 놈이거든.”
“참나.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와 봉투를 뜯는 게 사냥이냐?”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지만, 적어도 저놈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긴 개의 관점을 인간의 생각으로 조율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달마가 그렇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후. 하여간 사룟값은 안 들어서 좋겠네.”
“좋긴. 덕분에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는 개를 키우는 것이 금지인데, 거기다 동네 음식물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아작내고 있으니…….”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하냐? 밖에서 잘 수는 없잖아.”
줄리앙이 전자수첩을 흔들며 피식 웃었다.
“괜찮다. 오늘로서 개를 키울 수 있는 아파트를 구매할 만한 자금을 마련했거든. 오늘 판매한 표까지 합치면 자그마치 330만 크랑이나 벌었다. 하하하.”
330만 크랑이면 평범한 아파트라면 하나를 사고도 남음이 있었다. 개 한 마리와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그렇다고 문젯거리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음식물쓰레기는 어쩌고? 거기 주민이라고 마음이 넉넉하겠냐?”
“후후. 뭐 어떻게 되겠지.”
“휴. 너도 참 힘들게 산다.”
“뭐. 팔자지. 후후.”
마침 관객 이동통로로 들어선 범석이 다시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줄리앙을 쳐다봤다. 이제 헤어질 때가 온 것이다. 곧 경기가 시작되니, 관람석으로 가봐야 했다.
“하여간 잘 있어라. 난 빨리 스텐드로 올라가 봐야 하니까 여기서 헤어지자.”
줄리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은 단장 지정석으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팀 비용으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으니, 저녁 식사 비용을 아낄 수가 있었다.
“그래라. 그럼 다음에 보자.”
그와 헤어진 범석이 젤소미나와 함께 관객석으로 들어섰다. 좌석의 위치는 B2-01번과 02번. 다크하이에나즈 입장 터널 바로 위였다. 그렇다는 얘기는 입장할 때 자키드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 이런 표를 장만해준 줄리앙이 아주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가장 가상자리 의자에 착석하고는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이미 양 팀 검투사들은 입장 터널 앞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젤소미나. 네 대사형의 검술 어느 정도냐?”
젤소미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어눌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아니 대사형이라면서 검술 실력도 몰라?”
“그게 대사형은 저를 상대로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거든요. 개조인간과 비 개조인간이라는 차이도 있었지만, 검술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나서요. 그저 가볍게 대련해줬을 뿐이니, 저로서는 자세히 실력을 알 수가 없어요.”
젤소미나는 개조 시술을 받고 난 직후 바로 갓즈나이츠로 영입되었다. 그전까지는 보통 인간이었으니, 확실히 자키드와 대련다운 대련을 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오래 함께 했으니, 대충 실력은 알 것 아니야?”
“일단 저보다는 훨씬 강하리라고 생각돼요. 제 스승님께서 말씀하기를 대사형은 신체적으로 보나 검술을 보나 모두 자신을 능가한다고 했어요. 이를 볼 때 하여간 검술에 관한 한 최강임이 확실해요. 특유의 그 덜렁거림만 없으면요…….”
그 말에 범석의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믿지는 않지만, 빈센트감독의 말을 빌려보면 젤소미나의 스승인 렘란트는 세계 최강의 검사라고 했다. 다만 신체적으로 열악해서 월드리그에서 큰 활약을 못했을 뿐이지, 검술 하나만큼은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그런 자가 자신보다 낫다고 인정을 하다니, 새삼 자키드가 대단해 보였다.
“그, 그래? 그런데 왜 이제야 검투계로 진출한 거야? 너 정도만 돼도 충분히 검투계에서 큰 활약을 펼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건 스승님께서 막았기 때문이에요.”
“아니 왜 막아?”
“한 마디로 자존심이죠. 심혈을 기울여 애지중지 키우는 제자가 뭇 검투사들에게 패하면 스승님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보아하니 네 대사형은 사회에 진출하고 싶어 하던 것 같던데. 그냥 무시하고 검투계로 진출하면 됐잖아.”
젤소미나가 손과 머리를 동시에 흔들었다.
“대사형은 스승님의 말씀을 절대 무시 못해요. 어려서부터 스승님의 손에 키워진데다가 신체개조시술도 스승님이 과거 월드리그를 활약하며 번 돈을 톡톡 털어 시켜줬거든요. 그리고 이후에도 막대한 돈을 퍼부어 완벽한 훈련시설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와 같은 분을 배신하다니 말도 안 되죠.”
“그, 그렇기는 하겠군.”
그 말을 하고 난 범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금한 점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정보를 파악해야 했다. 멀리 심판석이 분주해 짐을 볼 때 곧 경기가 시작될 듯 보였다.
그는 난간에 머리를 내밀고는 자키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 양 팀 검투사! 출전해 주십시오.
방송에 맞추어 검은색 슈트를 껴입은 검투사들이 줄지어 밖으로 나왔다. 모두가 슈트를 착용한 터라,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범석은 자키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키가 큰 엘프들이 겨우 가슴팍에 닿은 만한 장신의 소유자는 그 외에는 없었다.
‘한 번 볼까?’
마침 자키드가 앞을 지나자 범석이 급히 정보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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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자키드 그로우.
구분 : 개조인간(17년).
소속 : 다크 하이에나즈GC.
명성 : 37.
악명 : 0.
호감도 : ??.
스테미나 : 11000/11000.
사회성 : 100, 근력 : 100+10 체력 : 100+10.
민첩 : 100+10, 균형감각 : 100+10, 지능 : 100.
정신력 : 100. 판단력 : 100, 재주 : 98.
운 : 99.
현재기량/잠재능력 : 99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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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천상의 신패왕.
특이 사항 : 월광검문 도장주인 렘란트의 수제자. 스승으로부터 최강임을 인정받고 최강의 검투사가 되기 위해 사회에 진출했음. 40세 중반에 신체개조시술을 받고 개조인간이 됨. 무엇하나 뒤지지는 뛰어난 검사이기는 하지만, 덜렁대는 면이 약점임. 포지션은 경험이 적어 프리롤에 특화되어 있고, 검을 주 무기로 다루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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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런 개사기는!’
범석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자키드의 어이없을 정도의 능력에 화가 난 것이다. 1,000에 이르는 잠재능력과 거의 개발이 끝난 현재 기량. 여기에 ‘천상의 신패왕’이라는 유니크급 특성은 그를 질리기 하기에 충분했다.
천상의 신패왕은 평시에는 모든 신체능력 +10이 되는 패시브적 기능이 있었는데, 발동 시 150분간 모든 능력을 +10 올리는 액티브 성격의 옵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자키드는 150분간 모든 신체능력 +20에 나머지 정신적인 스텟도 모두 +10이 된다는 소리였다.
가히 사기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무하잖아. 이런 놈이 검술까지 뛰어나면 어떻게 상대하라고!’
범석은 우거지상을 지었다. ‘도플갱어의 제왕’을 익혀 천하무적 특성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더한 놈이 나타나 버린 것이다.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때 그의 옆으로 다가왔던 젤소미나가 자키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자키드 대사형! 오늘 잘해야 해요!”
차분하게 걸음을 옮기던 자키드가 그녀가 위치한 관람석 쪽을 응시하더니 환하게 미소 지었다.
“여어. 이게 누구야! 젤소미나 아니야! 표도 없을 텐데 어떻게 왔냐!”
“여기 계신 선배님이 구해 주셨어요!”
그가 젤소미나의 옆에 서 있는 범석을 쳐다봤다.
“이거 오 범석 검투사가 아니신가? 우리 전에 한 번 슬쩍 본 적이 있지?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군.”
“아, 아. 네. 뵙게 돼서 저도 반갑습니다.”
“하여간 자네와의 일전도 무척 기대하고 있으니, 오늘 경기 잘 보라고. 얼마 후면 한 판 붙을 테니, 내가 누군지는 잘 알고 있어야지. 후후후.”
범석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갓즈나이츠는 리그 세 번째 경기에서 다크 하이에나즈를 홈으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즉 2주 후면 그와의 결전이 성사된다는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무척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후후. 그 패기가 마음에 드는군. 좋아. 오늘 내가 아멜리에를 쓰러뜨리고 네게로 향하지. 즉 나를 이긴다면 네가 최강의 검투사가 되는 거야. 어때 생각만 해도 신이 나지?”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아멜리에는 범석이 점찍어둔 먹잇감이었다. 그녀와의 일기토에서 무승부를 기록했기는 하지만, 내용상으로 패배나 다름없었다. 만약 아멜리에가 자신에게 앞서 먼저 그에게 패한다면 무척 찝찝한 기분이 들 터였다.
“과연 쉽게 아멜리에를 이길 수 있을까요?”
자키드가 허리에 찬 검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놈이 있는 이상 나를 이길 검투사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건 아멜리에도 마찬가지지.”
“글쎄요.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오늘 당신이 상대해야 할 자는 아멜리에만이 아닙니다. 검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거든요.”
“후후.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전력은 12대 12 똑같으니까.”
“하지만 브레인이 틀리죠. 머리가 딸리면 손발이 고생하는 법이거든요.”
자키드가 은근슬쩍 더그아웃 쪽을 바라봤다.
“그 말 우리 감독이 들으면 무척 열 받아 할 텐데.”
“어쩔 수 없죠. 괜찮은 감독이기는 하지만, 빈센트 감독님에 비할 바는 못되거든요.”
“그런가? 참고하지. 그럼 나중에 보자.”
범석이 자리를 떠나가는 자키드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날렸다. 감독의 성향과 능력을 파악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그는 빈센트 감독의 전략에 다소 고생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 삐이익!
범석이 자리에 앉기에 무섭게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 팀 검투사들은 견고한 진형을 짠 채로 견제하듯 경기장 중앙을 돌았다. 아마도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상대의 조직력을 살피는 시간을 갖는 모양이었다.
이때 후미에 서 있던 자키드가 진영에서 이탈하더니 중견에 있던 아멜리에를 도발하듯 바라보며 나오라며 손짓했다. 그는 1대1 결투를 통해 아멜리에를 쓰러뜨리려는 듯 보았다.
‘하지만 빈센트감독이 과연 넘어가 줄까? 아멜리에가 쓰러지면 바로 패전이라는 사실을 잘 알 텐데 말이야.’
역시나 아멜리에는 진형 가운데 콕 박힌 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자키드의 정보를 알고 있다면, 누구나가 당연히 취할 전략이었다. 프리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일은 모험에 가깝지만, 상대는 바로 초짜 검투사였다. 프리롤이 본진과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없으니만 못했다.
그때 범석의 뒤편에 앉아있던 한 팬이 경기장을 향해 고성을 내질렀다.
“아멜리에. 뭐하냐! 겁 먹었냐!”
그 말과 동시에 벌떼처럼 일어서는 다크 하이에나즈의 팬들이, 동시에 아멜리에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범석과 달리 그들은 자키드와 그녀와의 결전을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비싼 값을 들여 입장권을 구매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채플린 위스퍼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들로 말미암아 발생한 입장 수입은 모두 다크 하이에나즈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들은 계속 진형을 유지한 채, 프리롤을 뛰는 자키드를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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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