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298
300화
“저런 프리더 같은 애를 봤나!”
아멜리에의 새로운 검술의 경지를 확인한 범석이 순간적으로 노성을 내질렀다. 이제 그녀를 거의 다 따라왔다 싶었는데, 새로운 능력으로 무장하며 멀찌감치 도망가버린 것이다. 지금 자키드가 받아내는 공격은 그도 어떻게 대적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 기술이었다.
지금껏 침묵을 지켜왔던 젤소미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범석을 바라봤다.
“선배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치잇. 아무래도 아멜리에가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고 나온 모양이다. 이거 한 방 제대로 맞았는데.”
“그럼 자키드 선배와 아멜리에 중 누가 이기게 되나요?”
“그건. 나도 자세히 모른다. 검술적 센스와 신체능력은 암만 봐도 자키드씨가 앞서는 듯 보이는데, 아멜리에의 저 기술은 그 차이를 뒤덮고 남음이 있다. 한 마디로 예측 불가다.”
“그, 그래요? 그래도 선배님이 예상하시는 결과가 있을 것 아니에요.”
“내 예상을 묻는다면 무승부다.”
“어째서죠?”
범석이 손가락으로 본진 간의 전투를 가리켰다. 지금 다크 하이에나즈는 채플린 위스퍼에 밀리며, 거의 지리멸렬 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곧 경기가 끝이 날 테니, 저들의 승부는 이번 라운드에서 결정짓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크 하이에나즈가 곧 무너질 테니까. 지금 양 팀 본진 간의 전력비는 7대 2다.”
“그, 그렇군요.”
젤소미나는 대번 이해했다. 아무리 갑작스러운 기괴한 공격에 고전하지만, 자키드가 그 짧은 시간 안에 패하리라는 생각되지 않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다크하이에나즈는 곧 무너져 내렸고, 아멜리에와 자키드는 승부에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악! 젠장!”
자키드의 외침이 경기장을 울려 퍼졌다. 사력을 다했음에도 자신이 이렇게 밀려버리다니 분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다행히 본진이 무너져내려서 무승부가 된 것이지, 아니었다면 종래에 패할 자는 자신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패하는 편이 낫지 이런 찝찝한 기분은 그를 더욱 화나게 했다. 결국, 자키드는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길길이 날뛰었다.
돌아가던 아멜리에가 고개를 돌려 한 마디 건넸다.
“그럼 다음 라운드는 푹 쉬고. 4라운드에서 봐요. 그때는 확실히 패배를 안겨주겠어요.”
“그래. 그때 꼭 좀 보자.”
이를 부득 간 자키드가 애꿎은 땅을 세차게 한 번 걷어차고는 바로 더그아웃을 향해 걸어갔다. 검투경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라운드가 다섯 번이나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아직 상대할 기회가 더 남아 있으니, 충분히 복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검투 경기의 가장 큰 단점은 어느 한 팀이 3승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끝난다는 점이었다. 이어지는 3라운드에서 채플린 위스퍼의 2진이 다크 하이에나즈의 2진을 깨었고, 이들의 다음 승부는 내년 봄까지 미뤄지게 되었다.
와글와글. 와글와글.
경기가 끝난 직후 스탠드에 있던 관중이 일제히 콜로세움을 빠져나갔다. 서로 밀리고 밀치는 입구의 혼잡을 좌석에 앉아 바라보던 범석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거 나가는 것도 문제네.”
“그러게 말이에요. 어떻게 하죠?”
“좀 기다리지 뭐. 설마 평생 저러겠어. 괜히 저기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선글라스나 모자가 떨어져 나가면 골치 아프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 젤소미나가 수긍을 표했다. 아까 입장할 때도 얼굴 한 번 들어내 보였다가 몰려드는 팬들로 보안 요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 지금은 그들도 없으니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그렇기는 하겠네요.”
그때 경기장 쪽에서 걸걸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젤소미나 아직 거기 있냐!”
대충 누군지를 짐작한 젤소미나가 난간까지 걸어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입장 터널 앞까지 나와 있는 자키드의 모습이 보였다.
“네. 아직 있어요.”
“그래? 범석이라는 자는?”
“네. 같이 있어요.”
“잘 됐네. 좀 있다가 같이 식사나 하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헤어지기가 그렇다.”
젤소미나가 범석의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배님. 자키드 대사형이 같이 식사하시자는데, 어때요?”
그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빠져나가는 인파 탓에 기다려야 했고, 자키드와는 여러 가지로 대화할 내용이 많았다.
“가겠다고 해.”
대답을 들은 젤소미나가 자키드를 쳐다봤다.
“가시겠데요. 그런데 몇 시쯤에 뵐까요?”
“으음. 정리작업 좀 해야 해야 하니, 한 시간 후에 요 앞 공원에서 보자.”
“네. 알겠어요. 그때 봬요.”
자키드가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젤소미나가 제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30여 분쯤 후. 관객들이 빠져나간 한산한 복도를 거닐며 콜로세움을 밖을 나섰다.
메이런시티 콜로세움 북쪽의 간이 공원. 범석과 젤소미나가 목제 벤치에 앉아 차분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심심했던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젤소미나. 너희 도장 사람들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냐?”
“글쎄요. 수련생들이 시간별로 30명씩은 오니, 대충 200명은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걸 왜 물으세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와 자키드와 같은 출중한 검투사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니, 쓸만한 영입대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젤소미나만큼만 되어도 팀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그냥. 팀에 들일만 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거지.”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그의 생각을 모를 리가 없었다.
“프로 검투사가 될만한 사람은 별로 없어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취미 삼아 검술을 익히는 것뿐이거든요. 일반 검술 도장 취미반 수련생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그래……. 그럼 몇몇은 어느 정도인데?”
“저 정도는 돼요.”
범석이 눈을 반짝였다.
“여자는 있어?”
“없어요.”
실망스러운 얼굴을 한 범석이 입맛을 다셨다. 가장 중요한 요소를 충족시켜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긴. 좀 데려오기가 그렇지. 개조인간이 아니니, 경기에 투입할 수도 없는 얘기고. 그렇다고 신체개조시술을 시키자니, 괜찮은 성장성을 지닌 신체로 거듭날 가능성도 극히 낮고 말이야…….”
젤소미나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자가 아니라는 말에 금세 변명을 토로하며 관심을 끊으니 그 의도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범석은 몇몇 인간 연인을 두고 있고 팀 전체를 여성들로 도배할 만큼 여성을 밝혔다.
그녀가 손톱을 바짝 세우며 범석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설마 제가 생각하는 짓을 벌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겠죠?”
“내가 무슨 짓을 하는데?”
“가령 여자였으면, 친히 신체개조시술을 시켜주고 연인으로 삼으려고 하려던 것 아니었나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범석이 엉덩이를 멀찌감치 떼어냈다.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겸사겸사 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야.”
“흐흐흐. 그렇다면 제 예상도 맞는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순간 몸을 날리는 젤소미나. 범석이 그녀의 양팔을 잡았지만,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워낙 갑작스러운 공격이었고, 그동안 젤소미나는 높은 신체성장을 이루었다.
“자, 잠깐. 너 왜 이래?”
“몰라서 물어요! 왜 자꾸 바람둥이처럼 행동하시는 거예요!”
“그, 그야. 그건 남자의 본능이니까 그렇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범석이었다. 젤소미나가 바라는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름의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변명이 원하고 있었다.
“그럼 엘프만 안으면 되잖아요. 굳이 인간 여성을 안는 이유가 뭐에요!”
대충 젤소미나의 심리상태를 인지한 범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지금 내면에 꼭꼭 잠재워 두고 있었던 질투를 표출하고 있었다. 하긴 젤소미나의 호감도가 90이 넘어가는 마당이니, 이런 행동을 보일만도 했다.
범석이 양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확 끌어안았다. 이거 잘만 하면 오늘 공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탓이다.
“후후후. 너처럼 사랑스럽기 때문이지.”
그가 곧장 젤소미나의 입술에 입을 맞추더니,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잠시 몸을 바동거리더니, 이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범석의 혀가 입안을 파고들며 감미로운 움직임을 보이자,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감정이 심장을 마구 뛰게 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열정적인 몸놀림으로 그를 탐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뜸만 들이면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시대에 흐름에 방해하는 인물이 꼭 악당처럼 등장하는 법이었다.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도 그런 자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만나기로 한 자키드였다. 그는 둘의 사랑놀음을 보더니, 피하기는커녕 휘파람을 물려 놀려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 우리 젤소미나 능력이 제법인데. 남정네도 꾀고 말이야! 세상 다시 살고 볼 일이야.”
황급히 옷맵시를 정돈하며 일어나는 젤소미나. 서서히 상체를 일으킨 범석이 자키드를 노려봤다. 이런 기연을 방해하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아. 참나. 대충 분위기를 봤으면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 아닙니까?”
자키드가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실수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 그런가? 이런 미안. 미안. 그럼 나는 잠시 자리를 피하고 있을 테니. 하던 일. 마저 끝내라.”
하지만 그가 물러난다고 깨어진 산통이 다시 회복될 리가 만무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범석이 붉게 물들인 얼굴을 푹 숙이고 있는 젤소미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식사하러 가시죠.”
“아이. 그럼 내가 미안한데.”
“정 미안하시면 근사한 데 가서 밥이나 사십시오.”
그 말에 발길을 되돌린 자키드가 대답했다.
“뭐. 그러지. 근처에 음식 잘하는 식당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
“네. 그러십시오.”
“자. 그럼 따라와라.”
그가 손짓하며 앞장서자 범석과 젤소미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곧 근처 주차장에 있던 다크 하이에나즈팀 전용 플라잉 카를 타고, 메이런시티 시내의 한 유흥가로 이동했다.
휘황찬란하게 내부장식의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선 젤소미나가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반들반들한 검은색의 대리석 바닥과 넓은 실내공간. 그리고 고급스러운 장식품과 은은한 조명등들 따위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녀도 제법 많은 연봉을 받기에, 이런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식사할 때가 종종 있었던 탓이다. 젤소미나가 정작 놀란 것은 저 자키드가 이런 장소로 식사하러 왔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자키드사형이 이런 곳에 오다니…….”
멋쩍은 자키드가 옷깃을 가다듬더니, 헛기침을 연발했다.
“흐흠. 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근래에 제법 돈을 버니, 이 정도 식사를 즐긴 수준은 된다.”
“그래요? 그럼 실컷 먹어도 되겠네요.”
“당연하지. 마음껏 먹어라.”
카운터로 간 그가 자리에 앉아있는 엘프종업원을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여어. 셀리 오랜만이야.”
“어머. 자키드님 아니세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후후. 경기를 마치고 식사하러 왔지.”
셀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 경기. 저도 TV를 통해 봤어요. 자키드님. 정말 대단하세요. 그 아멜리에와 그런 대결을 펼치다니요. 마포질도 그만큼 하셨으면, 주인어른께 그리 혼나지는 않았을 텐데요.”
자키드가 곤욕스러운 시선으로 범석과 젤소미나를 바라봤다. 그들도 자신이 레스토랑에서 일한 사실은 알지만, 주인에게 하루가 멀다고 꾸중을 들었다는 것까지 알릴 필요는 없었다.
“아. 그 얘기는 그만하고. 지금 세 명이 앉을 자리 있어?”
“네. 있어요. 룸으로 드릴까요?”
“그러는 것이 좋겠다. 나나 오늘같이 온 손님이나, 외부인들과 얼굴 대면해봐야 좋을 것 없거든.”
“그럼 블루룸으로 가세요. 창밖 정경도 좋고 분위기도 아늑하니까요.”
“그래 알았다. 그럼 이따 보자.”
푸른색 문패가 보이는 룸으로 향하던 자키드가 순간 셀리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참. 직원 디스카운터는 안 되냐?”
“호호호. 지금은 직원이 아니시잖아요. 절대로 안 돼요.”
“쳇. 치사하게.”
입을 삐죽 내민 자키드가 능숙하게 범석과 젤소미나를 안내하며, 룸으로 들어섰다.
“자. 안으로 다들 앉아라. 그리고 메뉴는 고를 필요도 없이 로스트 비프다. 이 레스토랑은 그게 제일 맛있다.”
범석과 젤소미나가 별 말없이 그의 의견에 찬성했다. 보아하니 자키드가 이곳에서 일한 듯 보이니, 음식 맛에 대해서는 잘 알리라 생각되었다.
“네. 그러세요.”
자리에 앉은 범석이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자키드를 쳐다봤다. 지금부터 할 말은 그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었던 탓이다.
“그런데 오늘 아멜리에와 상대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자키드가 착잡한 듯 애꿎은 머리카락만 쓰다듬었다.
“글쎄. 이거 보통이 아니더군. 쉽게 생각했다가 하마터면 개망신을 당할 뻔했어. 아멜리에가 괜히 최강의 자리에 괜히 앉아있던 것이 아니야. 하지만 다음번에는 틀리다. 오늘 그녀의 쌍검술을 견식했으니, 대처할 방법은 분명히 찾을 수 있다.”
“그렇습니까? 그럼 나중에 방법을 아시면 저에게도 귀띔해 주십시오.”
우두커니 범석을 잠시 바라본 그가 단번에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아멜리에와 자신 그리고 범석 정도의 실력자라면 스스로의 길을 알아서 닦아야 했다. 괜히 남의 조언을 듣다가는 자신만의 검술에 해가 되었다.
“천만의 말씀. 우리 정도의 검사라면 자신만의 길이 있는 법이다. 나는 검술의 정수. 아멜리에는 끝없는 기술의 발전. 너는…….”
자키드가 범석의 길을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길을 상당히 애매했던 탓이다. 범석이 가는 길은 지극한 연륜과 경험인데, 그 경지에 이르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마치 도깨비가 인간으로 변모해 검투사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오늘 늦었네요. 지금 들어와서요. 일 때문에 내일은 더 늦을 것 같으니, 아침 해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면 기다리지 마시고 그냥 주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요. 전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