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00
302화
리그 세 번째 경기 당일. 범석은 갓즈 나이츠팀을 이끌고 리마시티 콜로세움을 찾았다. 그 앞 광장에는 눈이 돌아갈 만큼 막대한 인파가 모였는데, 바로 범석과 자키드가 벌이는 경기를 관람하기 위한 관중이었다.
관계자 출입구 앞에 내려선 범석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에스더의 뜻하지 않은 시즌권 판매 보고로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하긴 아멜리에와 자키드가 그 말을 했으니, 인파가 몰릴 수밖에.’
개막전 경기에서 호각에 가까운 일전을 보인 그들은 2주간 언론에 집중적으로 노출되었다. 월드리그에서도 대적할 상대가 없었던 아멜리에를 동률에 가까운 접전을 펼친 자키드가 나타났으니, 전 세계 검투계가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그는 물론 아멜리에까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쟁자의 이름에 범석을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이번 하이른 센트럴리그는 세계 최강 검투사를 가리는 장. 결국, 그는 흥이 난 언론에 크게 주목받았고, 오늘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에 분위기에 휘말린 팬들이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시즌권과 오늘 당일 입장권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로써 범석이 이번 경기로 벌어들인 돈은 세금 빼고 총 2억 7,430만 크랑으로 현 팀 보유자금을 6억 2,061만 크랑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크크크. 이 돈이면 이번 전반기에 얻을 당일 입장권 수입과 합치면 충분히 7억 크랑이 넘어선다. 그럼 그럴싸한 검투사 하나를 영입할 수 있다.’
그는 팀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검투사대기실에서 휴식 겸 간략한 전략회의를 마친 후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경기 시작시각이 시시각각 다가옴에 따라 스텐드 분위기도 크게 고조되어 갔다. 양 팀의 서포터즈는 관중몰이를 하며 자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을 했고, 출전할 검투사들은 경기장에 나가 간단히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었다.
먼저 가볍게 스트레칭을 마친 범석이 근처에 관람석에 앉아있던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다이아나. 오늘 경기 전망이 어때?”
그의 말에 다이아나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암만 봐도 대책이 서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다크 하이에나즈의 전력은 월드리그 중위권에 이르는 전력인데 반해, 갓즈나이츠는 범석을 빼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약체였다. 기본적인 베이스가 충족되지 못하니, 전략인들 제대로 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너무 암울해요. 솔직히 주인님이 자키드라는 자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급격히 저희 본진이 무너질 가능성이 무척 크니까요.”
“그래도 방법은 있을 것 아니야?”
“글쎄요. 딱히 방법은 없어요.”
“변칙 전술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다이아나가 바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변칙 전술은 저희 2진이 상대 주력이 2라운드에 출전 못 하게 만큼 체력을 허비시킬 수 있을 때에만 빛을 발해요. 그런데 저희 2진이 다크 하이에나즈 주력과 맞붙으면 과연 몇 분이나 버틸까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 저들의 주력에게 준비운동 정도의 체력낭비도 시키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요.”
하긴 자키드를 비롯한 세계랭킹 23위와 52위의 이에나와 샬롯이 포함된 다크 하이에나 주력을 갓즈나이츠의 2진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이아나의 생각대로 손쉽게 제압되고, 다크 하이에나즈 주력은 2라운드에 재출전하게 될 공산이 아주 컸다.
“휴~ 그렇겠군.”
“지금은 계획대로 방어로 일관하며 최대한 시간을 끄는데, 집중하는 편이 나아요. 승리는 못 하겠지만, 주인님과 자키드님 간의 대전시간을 길게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오늘 온 관중은 모두 주인님과 자키드님의 결투를 지켜보러 왔어요. 아무리 저희 팀이 패전하더라도 주인님만 승리하신다면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으음. 그렇기 한데. 정말 그 수밖에 없냐?”
“네. 그러니 오늘은 다른 곳에 신경 쓸 생각 마시고 자키드님을 쓰러뜨리는 일에 최대한 집중해주세요.”
범석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팀 승리가 요원하다면 이번 경기의 이벤트를 살리는 편이 좋았다. 어차피 지난 2경기에서 승리를 얻어 승점은 충분히 쌓아놨으니, 이번 경기는 팬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펼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알았다. 그럼 나는 자키드씨를 상대하는데 온 힘을 쏟을 테니, 너는 본진 간의 전투를 대비해라.”
“네. 알겠어요. 주인님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할게요.”
그 말을 들은 범석이 자신의 벤치로 돌아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2주 전 아멜리에와 자키드의 결전을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결투장면은 누누이 리플레이를 하며 돌려본 터라,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 곧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될 예정이니, 모든 검투사들은 출전을 준비해 주십시오.
구내 방송 멘트를 들은 범석이 헬멧을 착용하고는 경기장 입구 터널로 나아갔다. 평소 같으면 휘하 검투사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쳐 전의를 북돋았겠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지금 그는 자키드를 상대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곧이어 입장을 알리는 신호가 콜로세움 내로 울려 퍼졌고, 범석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경기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오범석 검투사! 오늘 반드시 승리해라! 우리는 네가 최고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 저 배신자 점박이 개자식을 확실히 눌러버려라!”
리마시티 팬들의 응원소리는 어느 때보다 컸다. 범석과 자키드의 대전에 기대감도 크지만, 다크 하이에나즈가 과거 리마 시티에서 해체된 그레이트 하이에나즈팀과 동일 기업의 팀임이 한몫했던 것이다. 사실 갓즈나이츠의 팬 중 상당수는 과거 그레이트 하이에나즈팀에 성원을 보냈던 자들이었다.
이에 범석이 허리에서 검을 뽑아들고는 팬들을 향해 그 끝을 가리켰다.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표명이었다. 남사스럽기는 하지만, 관중은 갓즈나이츠의 돈줄이니 성원에 보답해줄 필요가 있었다.
“범석아. 여유가 넘치는구나. 자신 있나 보지? 하지만 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먼저 경기장 중앙에 도착해 있던 자키드가 넓은 시내 너머의 범석을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자신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정작 그는 여유를 부리니 심통이 났던 것이다.
이에 범석이 얼굴에 드러난 초조함을 감추고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아. 이래서 초짜는 안된다니까요. 검투사들은 팬심으로 연봉을 받고 명예를 얻습니다. 팬들을 절대 무시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중요한 대전을 앞두고 있더라도 성원을 보내주면 화답해줘야 하는 것이 저희가 할 일입니다.”
“후후. 돈과 명예? 그런 것은 최강이 되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다. 대중들은 강자를 좋아하는 법이거든.”
그것도 맞는 얘기였다. 검투사들의 인기도는 대부분 성적에 비례하게 되었다. 막상 오늘만 해도 자키드와 자신이 최강자의 자리를 놓고 붙는 이벤트로 리마시티 콜로세움이 만원사례를 이루었다.
싱긋 미소를 지은 범석이 오른쪽 공터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후후. 하긴 그렇군요. 자 그럼 슬슬 준비해 보실까요?”
“좋지.”
이 둘이 본진에서 나와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서자 스텐드가 크게 일렁거렸다. 몇몇 팬들이 이들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무심코 일어서자, 덩달아 앞을 가린 나머지 팬들이 일어선 것이, 관중석 전체로 퍼져 나간 탓이다.
이러기를 잠시. 홀로그램 전광판 시계의 초침이 움직임과 동시에 경기장을 떠나갈 듯한 호각소리가 터져 나왔다.
– 삐이익! 경기 시작!
일제히 간이 철교로 내달리는 양 팀의 본진. 이를 힐끗 한 번 바라본 범석이 중앙 시내를 건너기 위해 높게 도약했다. 착지점 지척에 자키드가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최강자의 자리를 노리는 그가 얍삽한 방법을 자신을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철석같이 믿은 것이다.
무사히 착지에 성공한 범석이 자키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그는 검조차 뽑지 않은 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역시 공격을 하지 않는군요.”
“후후. 그럼 너 같은 하겠냐?”
“크크크. 네. 저 같으면 당연히 공격합니다. 자키드씨만 쓰러뜨리면 1라운드를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데, 그 기회를 왜 놓칩니까?”
자키드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네가 소중히 여기는 팬들은 염원은 어쩌고?”
“어차피 5라운드 경기니, 기회는 많습니다.”
그가 허리에 찬 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그런가? 꼭 참조하지. 자. 그럼 쓸데없는 소리는 이만 하고 시작하지. 어차피 결착을 지어야 하니, 빨리 끝내는 편이 낫겠지.”
범석이 슬그머니 2보쯤 우측으로 이동하며 검을 중단에 세웠다. 근처 바닥에 돌이 몇 개 떨어져 있었던 탓이다.
“물론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자키드씨를 빨리 쓰러뜨리고 본진을 지원하러 가야 하거든요.”
“후후. 나를 쓰러뜨리고 본진에 간다고? 꿈도 야무지구나.”
“해보지 않는다면 모르죠. 자 오십시오. 아님 제가 먼저 갈까요?”
“동시에 가는 편이 좋겠군. 모양새가 나니 팬들도 좋아하겠지.”
동조하듯 범석이 머리를 끄덕이며 몇 보 뒤로 물러났다.
“좋습니다. 그럼 셋을 세고 가겠습니다. 하나, 둘. 셋!”
동시에 이들이 뽑아든 검을 치켜세우며 맹렬한 기세로 앞을 향해 내달렸다. 범석이 중간 힘껏 바닥을 발길질하며 자키드의 안면에 돌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손목을 뒤틀어 돌을 쳐냈다. 범석이 돌무리 있는 쪽에 자리에 잡았을 때쯤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잔재주 안 통한다!”
순간 자키드의 검이 기괴한 파공음을 흘리며 대기를 갈랐다. 이에 범석이 검을 역으로 세워 옆으로 흘린 다음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어깨 차징을 시도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측면으로 밀린 자키드가 뒤로 점프하며 간격을 벌렸다. 흐트러진 자세에서 범석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이 따르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이거 제법인데, 일단 작은 공격은 내 자세를 무너뜨리겠다. 이거지. 역시 싸움에 도가 튼 놈이군. 아무래도 조심해야겠어. 일거에 끝낼 요령으로 큰 기술을 사용했다가는 자잘한 공격에 막혀 크게 고전할 수도 있으니까. 이럴 때는 기세를 선점해 승부를 유리하게 이끌고 갈 필요가 있어.’
자키드가 검을 중단으로 내리고 진중한 자세를 취했다. 범석을 상대함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것이다. 그는 일반 검투사들과 전혀 급이 다른 대물이었다.
“자. 그럼 또 갑니다.”
범석이 스텝을 최대한 복잡하게 밟으며 그를 향해 나아갔다. 시선을 현혹해 실수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자키드는 차분한 검세로 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정통파 검사의 최대 장점은 정석적인 자세에서 비롯되는 안정감이었다. 그런 촐싹거림에 휘둘릴 그가 아니었다.
‘이거 안 되겠어. 역시 만만치 않아. 아무래도 꽤 시간을 허비할 듯 보이는데.’
하는 수없이 범석도 자세를 안정시켰다. 이 상태에서 계속 기교 섞인 공격을 가하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불의의 일격에 맞아 크게 당하는 수가 있었다. 이럴 때는 차분히 전황을 이끌어나가며 호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았다.
차. 차창. 창.
연거푸 쏟아지는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요란한 금속음을 터뜨렸다. 극도로 긴장감을 얼굴 사이로 드러낸 이들은 검격 하나하나 정심을 담으며 상대를 공략해나갔다.
일단 밀리는 쪽은 신체조건이 떨어지는 범석이었다. 그간 능력치를 많이 올렸지만, 극에 오른 자키드에는 미치지 못했다.
물론 지금 특성을 발동하면 힘의 우위가 역전되겠지만, 그러기에는 페널티가 두려웠다. 지금 그가 카피한 특성은 ‘투지의 광전사.’이었기에, 한 번 사용하게 되면 오늘 나머지 경기는 다 뛰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핫!”
쩌렁쩌렁한 기합소리와 함께 자키드의 묵직한 공격이 범석의 머리 위로 내리쳐졌다. 큰 키와 완력에서 바탕이 되었기에, 위력적이기 그지없었다. 이에 범석이 측면 회피를 선택했다. 이런 공격을 일일이 막다 보면 자신의 손목이 남아돌지 않기 때문이다. 괜히 본전도 안되는 장사에 정심을 쏟을 필요는 없었다.
“치사하게 힘 대결로 나가자 이겁니까?”
“검투경기에서 치사하고 자시고 어디 있냐? 룰에 위반되지 않게 상대를 쓰러뜨리면 되지. 정 억울하면 어미 젖 좀 더 먹고 힘을 키워와라.”
날아오는 검을 위로 쳐낸 범석이 이를 아득 깨물었다. 머리 위를 스친 그의 검끝이 위협적이어서 아니었다.
바로 그의 놀림이 짜증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5분만 버티면 상황이 역전하게 되었다. 10분을 남겨놓은 시점이니 충분히 ‘투지의 광전사’를 발동할 수 있었다.
그럼 아무리 자키드가 특성을 띄워도 자신의 힘에 못 미치게 되었다.
‘뭐지. 이건?’
한참을 검을 나누던 자키드가 묘한 시선으로 범석을 바라봤다. 자꾸 그의 검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범석의 검에서는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오기에 처음에는 위압감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검을 맞대보니 그 느낌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와 무리한 동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리 저으며 지금의 상념을 지웠다. 인간을 확실히 죽이기 위한 살인술이 범석에게서 펼쳐졌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됐다.
‘저놈이 중세에나 있을 법한 전쟁을 경험했을 리가 없잖아. 그래 내가 잘못 느낀 것일 거다. ’
자키드는 이 느낌을 높은 경륜에서 나오는 색다른 검세의 일종이라고 납득했다. 평화로운 현대의 세상에서 살인 검술을 익힐 자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문적인 검술가인 그도 스승인 렘란트에게 과거 이런 부류의 실전 검술이 있다고 들었을 뿐, 실질적으로 배워보지는 못했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선거일입니다. 저는 눈을 뜨자 마자 씻고 투표소로 향할 참입니다. 괜히 미적거리다가는 귀찮아서 못가게 되거든요. 하하하.
그럼 모두들 즐거운 투표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