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01
303화
차. 차창.
격돌 음이 계속해서 터짐과 동시에 작은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강한 힘이 담긴 계속된 공방에 서로의 검이 버티지 못하고 손상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특수 금속 재질로 제작된 검이라고 하지만, 월드리그급을 능가하는 신체능력을 지닌 범석과 자키드의 힘을 버텨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외형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으니, 대결을 계속 펼쳐나가는 데에는 하등 문제가 없었다.
“받아라!”
자키드의 강한 일격이 그의 허리로 빠르게 날아왔다. 범석이 급히 검을 되돌려 막았지만, 정확하지 않았는지 중심을 잃고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때다 싶은 자키드가 튕겨져나가는 반탄력을 무시하고 검을 사선으로 세차게 그었다. 호기는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석은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오른쪽 발을 넓게 벌려 안정감을 찾은 후 적절히 대응하고 있었다.
“후후. 그런 수는 안 통하죠.”
자키드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후후. 당연하지. 여기에 당할 놈이라면 나와 일대일로 맞상대할 자격이 없다.”
“아 그렇습니까? 이거 영광스럽군요. 그럼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범석이 검이 출렁거리듯 흔들리더니 마치 뱀처럼 자키드를 향해 쏘여졌다. 휘하 엘프인 레이미의 필살기인 ‘스네이크 스워드’였다. 이에 식겁한 자키드가 온몸을 뒤틀어 튕겨내고는 한 참 뒤로 물러났다.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이 마치 아멜리에의 ‘토네이도즈 임팩트’를 연상시키게 했기 때문이다.
“이, 이건 대체 뭐냐! 설마 아멜리에에게 필살기를 전수받은 거냐?”
범석이 코웃음 치며 그에게 접근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하지 마십시오. 그녀가 저에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줄 리가 있겠습니까?”
자키드는 곰곰이 고민해보니, 그의 말이 맞음을 알아챘다. 아멜리에의 강력함은 ‘토네이도즈 임팩트’에서 나오는데, 이를 경쟁자인 범석에게 가르쳐준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그가 약점을 분석해 내고 공략해 온다면 그녀는 큰 장점 하나를 잃게 되었다.
“그렇군. 그럼 방금 기술을 뭐야?”
“아. 우리 팀 코치로 있는 레이미에게 배운 겁니다. 아멜리에의 기술은 워낙 유명해, 이를 보고 어설프게 따라 한 검투사가 제법 많거든요.”
자키드가 창피한지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아무리 아멜리에에게 고전하기는 했지만, 저런 조잡한 기술에 과민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오늘 경기도 스승님께서 보셨을 테니, 꽤 꾸중을 늘어놓을 터였다.
그는 열이 받았는지, 칼자루를 꽉 움켜쥐고는 범석을 향해 우직하게 돌진했다.
“자. 간다! 각오해랏!”
자키드의 검이 마치 폭주열차를 연상하게 하듯 직선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허공을 가득 메운 기괴한 파공음. 범석은 그의 무거운 공격에 감히 대적하지 못하고 스텝을 밟아 공격방향에서 몸을 회피했다.
‘칫. 이 들소 같은 작자를 어떻게 상대하지.’
다음 공격을 검을 맞대어 옆으로 흘린 범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힘만 넘쳐나는 검사라면 손쉽게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자키드는 본연의 검술까지 극한까지 연마한 자였다.
검격 하나하나에 힘과 깊은 정수가 묻어나와 상대하기가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범석은 연방 뒤로 물러나며 간신히 그의 공격을 뿌리쳐나갔다.
“대단해! 역시 기대한 대로야. 정말 오기를 잘했어.”
“이거. 장난이 아닌데! 정말 놀라운 대결이야!”
철교에서 갓즈나이츠와 다크 하이에나즈 본진 간의 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스텐드를 가득 메운 관중의 시선은 항시 범석과 자키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수준 높은 양 검사의 대결이 더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범석이 일방적으로 밀리고는 형세였지만, 자키드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하여간 그는 새롭게 발전을 거듭한 아멜리아를 접전 끝에 무승부를 기록한 출중한 검투사였다.
팬들은 이내 범석의 선전을 기원하며 목청껏 응원을 퍼부었다.
“오범석 반드시 이겨라! 우리는 너를 믿는다!”
범석과 자키드의 검이 마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허공에 충돌을 빚었다. 규칙적인 듯 보이기는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현란할 정도의 변칙성을 보였고, 리듬을 타듯 흐르는 검세는 기이한 형태로 한 점에 모이더니 이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한 공방전에 보는 이의 눈이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관중과는 달리 자키드가 안면은 계속해서 경직되어 갔다. 유리한 형세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범석의 묘한 검술에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의 검격에는 여전히 쓸데없는 힘이 부여되고 있었다. 이런 변칙적인 동작도 한두 번이지 계속 이어지니 화가 났다.
결국, 참다못한 자키드가 검을 맞댄 상태에서 버럭 소리쳤다.
“그만해! 그런 수법으로는 내게 절대 안 된다!”
잠시 힘 대결에 들어갔던 범석이 난데없는 그의 화기에 뜬금없다는 눈빛을 지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잔수라니요!”
“몰라서 물어! 아까부터 계속 무리한 동작을 펼치고 있잖아! 왜 최상의 자세를 유지하지 않는 건데!”
“네? 이 이상 더 어떻게 합니까?”
그의 진실한 눈빛을 읽은 자키드가 적지않이 당혹해했다. 지금까지 이어온 허튼 짓거리가 장난이나 기교가 아니었다니,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살인술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지만, 범석이 익힌 검술에는 여러 가지 단점이 있었다.
첫째는 공격에 무리한 동작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전쟁 시 장수들이나 병사들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적의 살과 뼈를 도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힘을 검에 가미했다. 그런데 범석의 검술에 이와 같은 징후가 또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검격을 나누면서 풀어가는 장면은 정말 완벽 그 자체인데, 최후의 순간 상대를 베기 위해 검을 내리칠 때에는 슈트까지 벨 요량으로 온몸에 힘을 잔뜩 불어넣고 있었다.
둘째는 공격이 너무 급소에 편중된 것이다. 인간이란 약한 듯 보이지만, 실상 강한 존재였다.
아무리 칼로 도륙한다고 해도, 쉽사리 죽지 않은 것이 바로 인간의 생명력이었다. 이에 검으로 찔렀다고 어중간에서는 절명하지 않았고, 바로 반격을 날아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공격자의 검은 상대의 몸에 박혀있는 상태라, 그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직면할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뛰어난 실전 검사는 상대의 급소를 베어 일격필살의 기회를 노리게 될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범석이 이런 경우였다.
전쟁터라면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검투경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머리나 몸통 아무 곳에 제대로 된 일격만 넣으면 되는데, 굳이 어렵게 급소를 노릴 필요가 없었다.
아니 자키드처럼 그의 특징을 알아낸 사람에게 큰 단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인간의 급소가 어딘지 아니, 범석의 검이 정확히 어디로 향할지 모를 리가 없었다.
셋째는 살인술의 특징 중 하나가 너무 수세적이라는 것이다. 상대를 죽여야 하니 살인기법이 공격적이라고 착각할 경우가 많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암살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모든 살인술은 먼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상대와 자신 중 누군가 하나가 죽어야 하는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석의 검술에 심하지는 않지만, 이런 기색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소 애매한 기회는 포기하고 수세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대련이나 검투경기는 한 번 패하면 다음 기회가 있었다.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공격의 기회를 살리는 편이 좋았다.
‘이 괴물 같은 자식은 또 뭐야! 뭘 어떻게 해야 이딴 놈이 탄생하게 되는 거야!’
그가 공격의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지금의 과중한 무거움이 여전히 기만전술일 수도 있겠지만, 이 궁금증을 풀지 않고서는 오늘 제대로 밥도 넘길 수 없을 듯 보였다. 만약 사실이라면 오늘 그는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와 직면하게 되었다.
“천상의 신패왕!”
특성을 발동시키면서까지 최대의 능력을 이끌어낸 자키드가 강력한 일격을 연속적으로 내지리며 범석을 엄습해나갔다. 거의 폭주상태에 가까운 공격이라 범석은 간신히 검을 내지르며 버티기만 할 뿐이었다. 현격한 능력치의 차이가 그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젠장 할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뭐가 너무해! 빨리 네 본 실력을 내보이면 되잖아!”
범석이 힐끗 전광판 시계를 바라봤다. ‘투지의 광전사’를 펼쳐도 될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시선이 닿은 본진을 상황을 보니, 시간에는 그리 구애받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지금 갓즈나이츠의 본진은 다크 하이에나즈의 본진에 현격하게 밀리며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어차피 곧 끝날 듯 보이니 라운드 후반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좋습니다! 확실히 보여 드리지요! 투지의 광전사!”
순간 범석을 내리치던 자키드가 뜻하지 않은 반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검에 막힌 자신의 검이 크게 튕겨져나간 것이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지금 자신의 수준과 동일하거나, 아니면 다소 우위에 있다는 뜻이었다. 자키드는 잠시 왼쪽으로 회피하며 범석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캉. 까캉! 카캉!
여지없이 막히는 검을 그대로 유지한 자키드가 그 상태에서 몸을 앞으로 전진시키며 범석을 밀어붙였다. 힘 대결을 펼쳐 범석의 완력이 얼마나 상승해 있나 확인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자키드가 여지없이 밀리는 자신의 검을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범석이 자신보다 막중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찌 된 놈이야. 경기 자료화면에서는 분명히 이런 괴력을 선보인 적이 없었는데?’
범석이 경기 중에 ‘투지의 광전사’를 발동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니, 당연히 자료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로써 자키드는 그가 지금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껏 꼭꼭 감춰두고 있었던 근력을 선보일 정도이니, 고의였다면 지금의 무거운 자세도 교정했으리라 생각되었다.
자키드가 손목을 뒤틀어 범석의 검을 옆으로 흘린 후, 곧바로 공세에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힘의 증가에 대한 대략의 정보를 얻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의 검술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번의 접전 후, 여지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직도 범석은 그전 그대로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참나. 그럼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이라는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달리 판단할 길이 없었다. 사력을 다해 검을 뻗는 저 모습과 오늘 경기의 중요도를 봤을 때, 그가 장난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따져보니 그의 기록에도 무척 문제가 많았다.
자신도 놀랄 정도의 노련미와 연륜을 지닌 그가, 실상 살펴보면 능력대비 성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문제가 있지 않았다면 그런 저조한 성적을 기록할 리가 없었다.
마침 가슴 쪽으로 날아오는 검을 비껴쳐 낸 자키드가 급히 뒤로 물러나 검끝을 내렸다. 자신의 혼란스러운 머릿속 실타래를 확실히 풀기 위해서는 그의 솔직한 답변이 필요했다.
“너! 검술을 어디서 배운 거지?”
전투의지가 없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범석이 내지르던 검을 멈추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솔직히 말해봐? 그딴 살인 검술을 가르치는 데가 도대체 어디야! 네 검술은 상대를 죽이는데 최적화된 기술이라고!”
범석이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것이다. 최초로 경험한 온라인 가상현실게임 플레이할 당시부터 그는 게임상의 몹을 죽이며 검술을 익혔다. 당연지사 모든 기술이 살인술로 승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말할 수 없었던 범석이 변을 늘어놓았다.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독학?”
“어렸을 때 우연히 동양 중세의 전쟁기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장수의 검술이나 전투 시 개인전술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었거든요. 부족분은 다른 검술로 채워 넣었고요.”
예상이 여지없이 맞아들어갔지만, 자키드의 표정은 가히 볼만할 정도로 구겨졌다. 도대체 어디서 뭘 했기에, 독학으로 살인검을 이 지극한 수준까지 올렸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키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들의 승부는 여기서 끝이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네게는 일반 대련에 어울리지 않는 큰 약점이 몇 가지 있다. 이를 내가 알고, 네가 모르는 이상 너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범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잘 싸워놓고 인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납득이 될 리가 없었다.
“지금 저와 말장난하시자는 겁니까?”
“훗. 장난? 장난인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경험해 보면 알 거다. 자 와라! 확실히 너를 베어주마!”
“좋습니다. 단단히 각오하십시오!”
그의 무시에 화가 난 범석이 눈빛을 일렁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오는군. 일단 견제 동작으로 몇 번 검을 맞부딪치겠지.’
자키드의 예상대로 범석은 처음에는 가벼운 검격을 내지르며 검세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때 같으면 극도의 몸놀림을 전개해 과감한 공격을 퍼부었겠지만, 상대는 자키드였다. 그랬다가는 단번에 베여 행동불능상태에 빠져들 공산이 컸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실수였다. 지금 그는 부처님의 손의 손오공처럼 자키드의 의도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는 범석이 이런 행동을 보일지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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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