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02
304화
“자. 간다!”
자키드가 무리를 감수하고 범석을 향해 검을 여러 번 세차게 휘둘렀다. 미리 계산된 행동으로 일부러 빈틈을 보여, 그의 회심의 일격을 유도하려는 의도였다. 역시 예상대로 범석의 몸이 크게 열리고 있었다. 강한 일격을 가하기 위해 스트록 동작을 무리하게 가져간 것이다.
이때다 싶은 자키드는 회전하는 검을 급히 되돌린 후, 힘껏 그의 가슴 쪽을 향해 찔러넣었다.
쉐에엑. 창.
여지없이 막히는 그의 검. 범석이 황급히 허리와 검을 뒤틀어 막은 것이다. 안타까운 순간이지만, 성과가 없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방어동작으로 자세가 불안해진 터라, 범석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기세에서 이득을 챙긴 자키드가 본격적으로 돌진하면 그를 압박해 나갔다.
“후후. 자 이제 끝이다! 각오해랏!”
검격이 이어질수록 범석의 폼이 계속 무너져갔다. 폭풍과도 같이 사납게 몰아치는 자키드의 공세를 불안정한 자세로 떨쳐내기가 여간 힘겹지가 않았다. 그는 간신히 검을 휘저으며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젠장. 이게 대체 뭐야? 설마 자키드씨의 말대로 내 검술에 문제가 있었던가?’
범석의 미간으로 한 줄기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키드가 방금 쓴 전술은 단순한 기만전술이었다.
빈틈을 보이는 척 상대의 공격을 노리는 일은, 대결 중에 흔히 전개되는 속임수였다. 범석도 이런 경험이 많았고, 적절히 대응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 끝없이 밀리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자키드가 전체적인 능력치가 높다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에 이 난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신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천만의 말씀! 쉽게는 안될 겁니다!”
맞닿은 그의 검을 힘차게 밀친 범석이 측면 쪽으로 미끄러져 가며 발아래 돌맹이를 힘껏 걷어찼다. ‘투지의 광전사’에서 비롯되는 강인한 힘과 전투 센스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이에 자키드는 밀려난 검을 되돌려 돌을 튕겨낼 수밖에 없었고, 범석은 무사히 그의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쯧쯧 이런. 놈의 힘과 연륜을 잠시 잊고 있었군. 실수야. 실수. 자자. 자키드 정신 차리자. 범석은 보통이 아니다. 정신을 내려놓는 순간 바로 당한다.’
아쉬운 듯 자키드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섰다. 범석을 쓰러뜨릴 호기였는데, 잠시 잠깐의 방심으로 호기를 놓치게 되었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마구 휘저으며 정신무장을 다시 했다. 비록 약점을 파악하고 있지만, 상대는 범석이었다. 호락호락한 공격은 절대 통하지 않았다.
그가 겸연쩍은 모습으로 말했다.
“이런 미안한걸. 내가 너를 너무 무시한 듯 보이는데.”
범석이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고는 여유로운 시선으로 자키드를 쳐다봤다. 밀리고는 있지만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하긴 저도 너무 자키드를 무시한 듯 보이군요. 조금 전 공격. 좀 식겁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정말 조심해야겠습니다.”
자키드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너무 칭찬하지는 마라. 그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네가 못나서 그런 것이니까. 온통 빈틈투성이라 어디를 공격할지 모르겠더라.”
범석이 여전히 웃는 상태에서 미간을 꿈틀거렸다.
“과연 그런지 한 번 두고 보시죠.”
“정 못 믿겠으면, 다시 오라고 이번에는 확실히 요리해 줄 테니까. 아주 맛깔나게 말이야.”
자키드의 손가락질에 그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에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후후. 여전히 자기 버릇을 모르는 모양이군. 그럼 나야 좋지.’
순간 자키드가 힘껏 도약해 강한 일격을 내질렀다. 아까와 같은 패턴으로 범석의 무리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과 달리 쉽사리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위기 빠진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던 탓에, 허튼 공격을 극도로 삼가고 있었다.
‘이런 이번에는 안 넘어가나? 하지만 범석의 약점이 이것 하나뿐이 아니지. 한 번 방어로 일관하다가 실컷 당해봐라.’
창. 차창. 창.
몇 합의 공방이 빠른 속도로 부딪혔다. 공격을 퍼붓는 쪽은 바로 자키드였다. 범석이 수세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며 움츠러들자, 과감한 공격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주눅이 들어서 어떡해 나를 상대하겠냐! 화끈하게 덤벼보라고! 하하하.”
기괴한 파공음을 내며 사방을 스치는 검격에 갇힌 범석이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자키드가 펼치는 공세는 그가 이 게임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만큼 위력적이고 파괴적이었다.
마치 들소가 달려오며 길게 자라난 뿔을 마구 휘젓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투지의 광전사’의 발동으로 힘을 극도로 상승시키지 못했다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에 가서는 패배를 기록했을 것이었다.
‘이거 장난이 아니야. 이러다가는 내가 당하겠어.’
그는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빠져나가려고 갖은 애를 썼다. 굳이 이런 파상공세를 정면에서 맞상대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자키드가 이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바로 발동작을 극도로 전개하며 금세 범석에게 따라붙었다. 민첩 스텟이 20이 가량 차이가 나기에, 집중만 한다면 손쉽게 뒤를 따라잡을 스피드가 되었다.
‘곧 가겠군. 이거 멋들어진 승리의 인사말이라도 생각해둬야 하겠는데.’
자키드는 곧 범석이 자신의 검세를 얼마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지리라고 자신했다. 외부로 표출되는 긴장감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의 안면실드에는 초조함이 가득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몸이 움츠러들고 있었다. 게다가 발이 꼬여 몇 번이나 중심을 잃을 뻔했고, 공세는 꿈도 꿔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범석이 아직 간신히나마 형세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랜 경험과 노련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끝내야겠다고 판단한 자키드가 범석의 품 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몸으로 그를 밀치고는 좌우로 검을 세차게 휘저었다.
“자. 마지막이다! 각오해라!”
순간 놀란 범석이 검을 역으로 꺾어 막아냈지만, 뒤이은 자키드의 하단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관절 부위를 강타당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몸을 기울이는 범석이 상하로 그어지는 그의 육중한 검세를 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마지막 발악이었을 뿐, 그의 눈은 패배를 직감했는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넘어진 상태에서 자키드를 상대하기란 너무도 요원한 일이었다.
이어지는 서늘한 파공음. 곧 퍽하는 소리와 함께 범석의 안면 실드로 무수히 많은 흙 알갱이들이 튀겼다. 이제 끝이라고 판단한 범석이 경기장 안을 울려 퍼지는 중계진의 멘트를 들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오범석 검투사 선전에도 불과하고 자키드 검투사에게 밀려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역시나 연륜의 부족함과 덜 여문 신체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안타까운 음색의 아나운서 발언 뒤로 해설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아쉬운지 긴 한숨부터 내쉬게 되었다.
– 휴~ 네. 그렇습니다. 오범석 검투사 경험 부족인지 이번에 큰 실수를 했습니다. 자키드 검투사가 저리 공격으로 일관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었는데 말입니다. 방어만으로는 절대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검투격언을 잊지 말았어야지요.
– 하지만 그게 다 자키드 검투사가 대단해서 아니겠습니까? 거칠게 몰아붙이며 반격할 틈을 주지 않으니, 오범석 검투사라서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 네. 그도 맞는 얘기입니다. 하여간 혜성처럼 등장한 자키드 검투사 역시 무섭군요. 지금까지 일대일 대전으로 패한 적이 없던 오범석 검투사를 접전 끝에 기어이 쓰러뜨렸으니 말입니다. 이로써 아멜리에의 무승부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겠군요.
– 물론입니다. 앞선 2경기와 함께 오늘 경기에서까지 출중한 기량을 뽐냈으니, 어느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하여간 정말 앞으로 기대되는 검투사입니다. 빨리 월드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보고 싶군요.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던 중계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기장을 직시했다.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었어야 할 범석이 안면 실드의 먼지를 털어내고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내 버드 카메라가 보내온 영상 정보를 보고 황당한 기색을 얼굴에 새겼다. 자키드의 검이 꽂힌 곳이 바로 맨바닥이었던 탓이다.
중계진들은 할 말을 잊었는지 입을 꼭 다물었다. 검투계 역사상 이런 일이 벌어진 예는 그들 기억에 없었다.
바닥에 꽂힌 검을 잠시 바라본 범석이 고개를 들어 지그시 자키드를 노려봤다. 그가 실수했을 리가 만무하니, 고의가 확실했다.
“어째서 이런 작태를 벌이는 겁니까? 전 놀리고 싶은 겁니까?”
“아니. 그냥 네가 내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한 번 패배는 우연이나 단순한 실수로 돌리기 쉽잖아. 인간은 항시 자신에게는 관대한 법이니까. 안 그래?”
이를 바득바득 간 범석이 칼자루를 꽉 움켜잡았다. 이제 자신에게 무슨 약점이 있던지 상관없었다. 지금은 저 건방진 면상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좋습니다. 기회를 주시니, 다시 한번 해보죠. 하지만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자칫해서 저에게 패하는 날이면, 그만한 개망신도 없으니까요.”
그는 다시 검끝을 중단에 세웠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달려가 힘껏 휘둘렀다. 조금 패배가 수세로 일관한 자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방어로는 자키드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았으니, 공세를 펼쳐야 했다. 하지만 범석은 지금 분노로 평정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검사로서 가장 피해야 할 덕목이었지만, 굴욕스러운 패배와 자키드의 어이없는 여유가 그의 심기를 크게 흔들리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실력을 선보일 수가 없었다.
창. 차창. 휙. 깡.
계속되는 범석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막아내는 자키드가 힐끗 그를 쳐다봤다. 꽤 불안정인 자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쉽사리 약점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예상된 것이다. 바로 무리한 최종 일격 말이다.
자키드가 비릿한 미소를 짓고는 짧고 간결하게 검을 휘저었다. 일단 밑밥을 뿌려 범석을 덫으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원래 흥분한 야생동물은 우직한 공격밖에 모르지. 그래서 사냥꾼에게 쉽게 사냥당하지만……. 후후.’
서로 수십 합이 나누었을 무렵 자키드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이제 슬슬 기회를 찾아오고 있음이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 범석은 이성을 잃은 채 마구잡이로 공격해오고 있었다. 자키드는 몇 번 정도 더 예비동작으로 그와 맞선 후, 검을 든 두 팔을 힘껏 휘저었다.
우웅. 캉.
정확하게 막히는 자키드의 검격. 하지만 그의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이번 공격은 강력한 듯 보이지만, 실상 속임수였다. 즉 그는 다음으로 이어질 강력한 일격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 갑니다!”
기회를 포착했다고 믿은 범석이 그의 허리를 향해 세차게 검끝을 뻗었다. 이성을 잃은 그가 허상과도 같은 허점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하하하. 왔다.’
이 한 수를 천금같이 기다려온 자키드는 옳다구나 바로 검을 역으로 돌려막아 튕겨낸 후 어깨로 범석의 가슴을 밀었다. 그리고 그가 중심을 잃고 뒤로 휘청거릴 찰나에 바로 복부를 향해 검끝을 찔러넣었다.
퍽.
범석이 경악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이토록 어이없이 당하다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말이다. 그는 서서히 마비되어가는 팔을 간신히 뻗으며 자키드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범석의 질문에 발을 돌리던 그가 되돌아서서 차분히 대답했다.
“후후후. 아까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네게는 약점이 있다고.”
“대, 대체. 그게 뭡니까?”
“넌 전사로서 너무 완벽해. 하지만 검투사로서는 절대 아니야. 아무리 검투경기가 실전을 바탕으로 한다지만, 일반 대련과 서로 죽고 죽이는 격전이 같을 수는 없다. 충고하건대 좀 더 살기를 지우고, 효율적으로 상대를 타격하는 방법을 찾아. 그럼 지금보다 훌륭한 검투사가 될 수 있을 거다.”
하며 자키드가 주저앉아 움직임을 완전히 멈춘 범석의 어깨를 도닥거렸다. 약점을 이용해 쉽사리 이긴 점이 좀 미안했는지 위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실수였다. 검투 경기에서 그 어떤 경우든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상대 검투사를 고의적으로 접촉을 가하면 바로 퇴장이었다.
– 삐이익. 자키드! 퇴장!
구내방송에 자키드가 벌떡 일어나더니, 심판석을 향해 양손을 마구 휘저었다. 고의가 아니었음을 항의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한창 전투 중에 앉으면서까지 범석의 몸을 건드렸으니, 빼도 박도 못했다.
곧 경기는 중지되었고 그는 튀어나온 심판들에게 이끌려 경기장 밖으로 끌려나가야 했다. 사실 자키드도 검투 경기에 대한 경험을 제대로 쌓지 못한 상태였다.
이날 갓즈나이츠는 3전 전패를 기록하며 패배했다. 비록 다크 하이에나즈의 자키드가 퇴장당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전체적인 전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팀 내 에이스인 범석조차 ‘투지의 광전사’의 페널티와 처참한 패배의 악몽으로 심신이 나머지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으니, 그 정도는 더 심했다.
결국, 갓즈나이츠 팀원들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훈련 캠프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다소 짧은 리메이크가 있었습니다. 302편 11쪽 후반부 부터 내용이 달라졌으니, 필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