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08
310화
“야앗!”
리자가 크게 보법을 밟으며 그에게 접근했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담겼는지 검격 하나하나에 강한 힘과 격렬한 변화가 담겨 있었다. 그는 좌우로 스치는 검을 허리를 젖혀 어렵사리 피하며 반격할 기회를 노렸다.
‘우후. 이거 무서운걸. 잘못하면 한 방에 가겠어.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검술을 익혔지.’
그녀는 검술 솜씨는 무척 뛰어났다. 피곤한 와중에도 이런 위력 있는 공격을 펼칠 정도면 비슷한 또래인 젤소미나보다 크게 앞선다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신체능력이 덜 발달 되고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다소 고생을 했을 터였다.
‘하긴 아버지와 평생, 이 산중에서 살아왔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보아하니 리자는 죽은 단테스와 함께 이곳에서 계속 살아왔던 것 같았다. 당연지사 다른 취미나 놀이에 신경 쓸 틈이 없었으니, 검술에 매진하는 농도도 짙었을 터였다.
범석은 뜻하지 않은 월척에 만연한 미소를 지었다. 리자는 지금 능력으로도 충분히 월드리그 수준급에 드는 실력자였다.
영입만 한다면 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몇 번 검격을 받아보니 한 가지 문제점이 드러남을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공격에 비해 막아내기가 훨씬 수월했던 것이다. 바로 특정 부위 주변으로 그녀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실전 검술이군. 잔뜩 기교가 들어가 있지만, 결국에는 집요할 만큼 급소를 노리고 있어. 그렇다면 피하기가 훨씬 쉽지. 공격할 방향이 너무 빤하니까.’
범석이 바닥을 박차고 리자에게 달려들었다. 접근전을 시도할 참이었다. 맨손으로 무기를 다루는 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검이 날아올 부위가 대충 예상되기에, 접근에는 큰 부담감이 없었다.
“리자. 이번에는 내가 공격한다!”
그가 다가가기도 전에 살벌한 검격이 머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이에 범석이 이동방향을 급격히 꺾어 검을 든 그녀의 양손을 꽉 부여잡고는 가차 없이 엎어치기를 시도해 바닥에 내팽개쳐버렸다.
갑작스러운 이 공격에 리자는 텀블링을 하며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았다.
‘이자 체술도 보통이 아니다.’
‘호오. 이거 날다람쥐처럼 민첩한데.’
두 사람의 눈가에서 이채가 서렸다. 상대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이번 공방에 판가름난 것이다. 한 번 스치면 끝이 나는 검격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공세를 펼쳐 성공하는 모습이나, 강력한 엎어치기를 당하면서도 손쉽게 균형을 잡는 모습 모두 보통의 검사에게서 나올 만한 몸놀림이 아니었다.
범석이 리자의 주위를 휘휘 돌며, 자조적인 말투를 흘려댔다.
“내가 암만 봐도 너를 단단히 무시한 모양인데. 이거 장난이 아니야.”
리자가 왼쪽 허리에 착용 된 예비용 카타나를 거의 수직으로 꺾으며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체술로 제 몸에 손을 댈 자가 있을 줄은 꿈도 꿔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게 끝이에요. 이제 제게 근접하는 순간, 당신은 패하게 돼요.”
“후후. 과연 그럴까? 난 아닌 듯 보이는데.”
상체를 비틀어 예비용 검을 감춘 리자가 슬며시 칼자루 부위를 손가락 한 마디만큼 뽑았다.
“그럼 한 번 와보시죠.”
“후후. 그 건방진 입을 다물게 해줘야 하니, 당연히 가야지. 자. 기대하라고.”
가볍게 제자리를 뛴 범석이 혼란스럽게 스텝을 밟았다. 전형적인 복싱의 풋워크였다. 그는 현란한 동작으로 리자의 주변을 돌며 공격할 타이밍을 쟀다.
이를 유심히 살펴본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을 상단에 세웠다. 이 자세서는 몸이 완전히 열리기에 방어가 힘들지만, 검을 뒤로 젖히는 동작이 없어 반 템포 빠르게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리자의 목적은 상단 자세에서 비롯되는 공격이 아니었다.
‘오는 순간 허리를 베어주겠어!’
그녀의 묘한 자신감을 감지한 범석이 불안한지 접근을 늦추고 있었다. 게다가 리자는 역 대각선으로 선 자세로 항시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검을 내리치기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오른팔에 시야가 다소 가려 있어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서 쓰일 뿐, 일반적인 결투에서는 극구 피하는 자세였다.
‘초보자도 하지 않는 자세로 나를 공격하겠다고? 도발 아니면,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군.’
범석은 리자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그런데 그녀는 계속해서 범석을 향해 어정쩡한 대각선 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반대쪽 부위를 노출하기 싫다는 의지표명처럼 말이다.
그는 결국 리자가 노리는 바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연유를 알 수 없을 때는 치고 빠지기로 위험을 회피하며, 사태를 파악하는 편이 좋았다. 범석은 갈지자로 전진하며 리자와의 거리를 급격하게 줄였다.
“이얏!”
순간 리자가 역 대각선으로 검을 내리쳤다. 불편한 자세였기에 손쉽게 피할 수도 있었지만, 범석은 그대로 전진했다. 웃기지도 않게 타이밍이 다소 빨랐던 탓이다. 이 상태면 코끝도 베지 못하고 허공을 스칠 터였다.
‘뭐야! 이런 어이없는 검격을 날리다니……. 이거 허당 아니야!’
하지만 범석은 이내 기겁하며 허리를 꺾어야 했다. 이번 공격은 베기가 목적이 아니라, 던지기였던 탓이다. 그는 앞가슴 근처를 스치며 뒤쪽으로 날아가는 검을 부릅뜬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번 것이 끝이 아니었다. 리자는 던지기 동작을 반동 삼아 예비용 검을 잡고는 빠르게 발도하고 있었다.
“젠장! 발도술이닷!”
살벌한 소음을 내며 허리를 가르는 일격에 범석이 급히 몸을 띄운 다음 급격한 회전을 넣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안면을 지나는 검면에 모골이 송연한 느낌을 받았는지 피부를 창백히 만들었다. 이거 치기 빠질 요량으로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승부는 여기서 결판났을 것임이 너무도 자명했다.
그만큼 리자의 이번 발도술 공격은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위기를 모두 모면한 것은 아니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그녀가 자세를 무너뜨린 범석을 향해 검끝을 마구 뿌려대고 있었던 것이다.
휘이익. 휘이익. 턱.
기세에서 밀린 그가 결국 급히 뒤로 점프해 간격을 벌렸다. 어차피 이번 돌진은 치고 빠지기로 하고 들어갔으니, 물러선다고 문제 생길 일은 없었다.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범석이 리자를 지그시 노려봤다. 이런 발칙한 잔수를 숨기고 있었다니, 제법 대견해 보였다. 멋모르는 상태에서 이 기술에 맞상대했다가는 그 누구도 치명적인 일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휴~ 이런 잔수가 있었을 줄이야.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네.”
리자가 잘근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필살기가 실패로 돌아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어, 어떻게 피한 거죠?”
그건 그녀가 이상행동을 보이는데다가 암술까지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객의 기술 중에는 방심하는 암살대상자를 빠른 발도술로 베어버리는 수법도 있었다. 범석은 그녀가 예비용 검에 손을 대는 순간, 이미 발도술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몸을 피했다.
“발도술은 암술의 기본이라고. 당연히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하지만 전 발도술을 철저히 숨겼다고요.”
“그게 숨긴 거냐? 꼼수가 있다고 대놓고 상대에게 가르쳐주는 거지. 너 솔직히 말해. 방금 그 기술 스승님에게 배운 것 아니지?”
리자가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쓴 자신의 필살기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발도술을 변경한 것에 불과했다.
“네, 네. 맞아요. 아버지께 배운 기술은 따로 있어요.”
“원래 기술이 뭐야?”
“그냥 예비용 검을 살짝 빼놓는 거예요.”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을 것 아니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상대가 뽑힌 예비용 검을 보고 눈치챌 수 있잖아요.”
멍한 눈을 한 범석이 그녀를 대뜸 걸어가 강하게 꿀밤을 먹였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리자의 이상행동으로 뭔가 술수가 있다고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무슨 숨기는 거냐! 대놓고 꼼수가 있다고 알리는 거지! 그런 어색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누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겠냐! 그럴 바에야 차라리 살짝 예비용 검을 빼놓는 것이 낫지. 그럼 상대가 검집이 헐거워 검이 삐죽 튀어나왔다고 생각하거나, 설사 눈치채도 언제 어디서 발도술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행동이 움츠러들 것 아니야!”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발도 하기 전 그런 어색한 행동을 취하는 것보다는 훨씬 잘 먹혀. 그리고 네가 개발한 그 기술은 잘해야 딱 한 번 성공할 뿐이야. 죽고 죽이는 실전에서는 통용될지 모르지만, 검투 경기에서는 절대 안 통해. 아무리 멍청한 검투사도 다음에도 속을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각 프로 검투팀에는 전력분석요원들이 있어. 그들은 경쟁팀의 경기 비디오를 판독하며 상대 검투사의 특성을 파악하기에, 네 기술은 쓰자마자 다른 검투팀에까지 소문이 쫙 퍼져! 즉 한 번 쓰면 끝이라는 거야!”
리자가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은 프로검투사가 되어 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했는데, 믿고 있던 필살기가 검투경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니 당혹스러웠다.
“그럼 어떻게 하죠?”
“뭐가 어떻게 해! 내게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원래 기술을 보여줘야지. 그래야 내가 알 것 아니야?”
그녀가 조르르 뛰어가 멀리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주워들고는 다시금 돌아왔다.
“알았어요. 보여 드릴게요.”
“그래. 빨리 시작해!”
리자가 예비용 검을 다시 칼집에 꽂고는 손가락 한 마디쯤 빼놓았다. 그리고 손을 들고 있던 검은 상단에 세웠다.
“자. 그럼 이제 가요.”
“잔말 말고 빨리 와!”
그녀가 곧바로 검을 내질렀다. 정자세에서 비롯되는 검격이었기에, 아까보다 빠르고 날카로웠다. 그래도 범석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는 검을 여유롭게 피했다.
이런 던지기 기술에 당할 그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뒤로 이어지는 발도술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회피동작으로 균형이 무너진 자세에서, 빠른 날아오는 발도를 피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는 간신히 리자의 손목을 부여잡고 바로 엎어 쳐버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을 구른 그녀가 불신의 눈빛으로 범석을 노려봤다.
“봐요. 아까보다 더 잘 피하시잖아요.”
“당연하지! 발도술이 시전될 줄 빤히 아는데, 누가 당하냐! 내가 바보냐!”
하긴 범석 정도의 검사가 무슨 공격이 올 줄 알면서 피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수긍한 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어땠어요?”
“그전보다는 훨씬 나아. 손에 쥔 검을 날릴 때도 제법 위력적이었고, 균형된 자세에서 발도되니 두 번째 공격도 꽤 날카로웠다.”
“그럼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하면 되나요?”
범석이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이 자세대로 해도 검투경기에서 통용되니 어려운 면이 있었다. 상단만 취하면 상대가 발도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약간 더 보완해야 해.”
“어떻게요?”
“한 참 격전 중일 때 쓰는 거야. 그럼 데이터가 알려져도 그다지 문제가 안 생겨. 아니 더 효율적이지. 언제 발도가 날아올 줄 모르니 상대는 항상 정신의 일부를 네 예비 검 쪽에 팔아야 하니까.”
“그게 가능해요?”
“물론 가능하지. 상단을 취하는 이유는 반템포 빠른 동작을 가져가기 위해서야. 바로 팔을 뒤로 굽히는 동작을 생략하려는 의도지. 그런데 공격을 하려면 일단 팔을 굽혀야 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이해한 듯 리자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팔을 굽히는 동작이 있다면, 던지기 공격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발도술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당장에는 능숙하게 펼칠 수 없지만, 연습만 한다면 충분히 결전 중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좋아요. 알았어요. 그럼 다시 대결을 시작해요. 빨리 사저와 사형을 결정해야죠.”
범석이 미간을 구기더니, 그녀의 귓불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건방진 것도 정도가 있지. 이딴 실력으로 자신의 사저가 되겠다는 저 당치 않은 포부가 어이없었다.
“뭐! 사저! 너 죽을래? 넌 사저가 아니라 제자가 돼야 한다! 오늘부터 지옥 훈련이 있을 테니! 단단히 각오하도록 해!”
“하, 하지만, 대결로 정하기로 했잖아요!”
“대결? 너 지금 그딴 실력으로 나한테 이길 것 같아! 사매 취급해주는 것만 해도 다행인 줄이나 알아!”
리자가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히 그녀는 범석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첫 번째 승부에서는 손쉽게 이기고 자신의 필살기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막아냈는데, 다른 잔기술이 통용될 리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범석에게 이끌려 수련실로 향해야 했다.
끼익. 퉁. 끼익. 퉁.
역기에 잔뜩 바벨을 끼워 넣는 범석을 보며 리자가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거의 1톤에 가까운 무게로 특수 합금 처리된 봉대가 비명을 지르며 휘어지고 있었다.
“호, 혹시 저걸 제가 들어야 하나요?”
“당연하지.”
“하지만 검술을 가르쳐주시려는 것 아니셨나요?”
바벨을 다 끼워 넣은 범석이 그녀를 쳐다봤다.
“나도 네 미진한 검술을 보완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모든 검술의 시작은 신체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잔말 말고 벤치에 누워.”
“하지만 전 충분히 신체훈련을 했는데요.”
범석이 거하게 콧방귀를 끼었다. 정보창을 통해 그녀의 능력치를 봤기에, 아직 미진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딜 사형을 속이려고 해! 내가 그딴 말에 속을 것 같아! 잔말 말고 까라면 까!”
울상을 한 리자가 벤치에 누워 봉대를 잡았다. 일단 사형으로 모시기로 했으니,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몇 번 하면 돼요?”
“천 번만 해.”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말며 말했다.
“천 번씩이나요!”
“왜 싫어?”
범석의 살벌한 시선을 받은 리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말을 거역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네이버 투베에 나온 ‘1루수가 누구야’를 보고 오늘 배꼽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구닥다리 만담식 코메디인데, 이거 장난아니네요. 하하하.
그럼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