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34
336화
차. 차창. 쾅. 콰쾅.
거친 격음이 귓가를 울리는 가운데, 선봉인 라피네와 샤일라가 쌍검과 거검을 휘두르며 돌진해 들어갔다. 이에 지금껏 공격으로 일관하던 스노우 걸즈 검투사들이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승리를 위해 공세를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패배를 면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했다. 익숙지 못한 검방을 들고 방진을 구성하고 있는 지금 상태에서 진형이 무너지게 된다면 갓즈나이츠의 강력한 공격력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게 될 공산이 컸다.
“모두 갓즈나이츠의 돌발적인 기습 돌파를 조심해! 뚫리면 끝장이야!”
1번을 단 대장 검투사의 명령에 스노우 걸즈팀 검투사들이 진형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러나 밀집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뒤따르게 되었다. 바로 이동속도의 둔화였다. 덕분에 갓즈 나이츠는 손쉽게 간격을 벌리며, 공세의 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진형을 가다듬은 갓즈나이츠들이 상대 팀의 공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후로 스노우 걸즈 팀의 공격은 없었다. 팬 서비스 차원으로 몇 번의 충돌만 빚었을 뿐, 그다지 위협적인 공격을 가해오지 않았다. 아마도 1라운드 승부를 무승부로 가닥을 잡은 듯 보였다.
얼마 후. 경기는 흐지부지 끝을 맺었고, 팬들의 원성이 콜로세움 안을 퍼져 나갔다.
“치사하다! 갓즈나이츠! 너희 여기에 놀러 왔냐!”
“그래! 공격진형을 갖추었으면 공격을 해야지! 그게 뭐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꼬리를 말고 너희 리마 시티로 돌아가라!”
일방적인 야유 속에서도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은 의기양양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원정에서는 의례 이런 소란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은 몇몇 개조인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인 있는 엘프들이었다. 그녀들은 주인을 위해서 경기를 뛸 뿐이지, 팬들의 관심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자자. 다들 수고했다.”
범석의 마중을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검투사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들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음에도, 긴장의 끈을 풀지 못했다. 1라운드가 느슨하게 이어졌기에, 갓즈나이츠와 스노우 걸즈 주력 모두가 체력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었던 탓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2라운드에도 주력이 출전하게 될 것임이 자명해 보였다.
이어지는 다이아나의 호명. 그녀는 2라운드 출전자에 오스칼, 라피네, 샤일라, 카젤라, 렌카, 레베카, 제르미아, 이피스, 헤르세, 세이야, 캐시. 그리고 범석을 지목했다. 선봉의 소양이 있는 검투사만 자그마치 7명. 최강 공격진인 봉시진을 운영하겠다는 의도가 언뜻 비쳤다.
캐시가 손을 들며 말했다.
“감독님. 이번에는 공격인가요?”
“그래.”
“어떤 전략으로 나갈 생각이신데요?”
“호네트 전법을 채용할 거야.”
호네트 전법은 최근에 갓즈나이츠에서 개발한 봉시진의 일종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쉽게 상대의 방진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자칫 돌격해 들어간 선봉이 전멸하는 어이없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무척 위험한 전법이기는 하지만, 캐시가 별 걱정하는 기색 없이 수긍했다. 호네트 전법은 새로이 창을 든 범석이 중추가 되기 때문이다.
주인이기에 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캐시는 그의 실력을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다이아나가 출전할 검투사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다른 질문 사항은 없어?”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근래에 들어와 누누이 연습하던 전법이라, 별 궁금한 점이 없었다. 이미 뼛속 깊이 전략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없어요.”
“좋아. 그럼 모두 2라운드에 출전할 준비를 해.”
“넷!”
잠시 부산을 떤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시간이 되자 다시 입장터널로 나아갔다. 그리고 출전을 종용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경기장 안으로 입장했다.
– 이제 2라운드 경기를 위해 양 팀 검투사들이 입장…….
실황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의 입장장면을 확인하더니, 말을 잊은 듯 입을 다물었다. 이제껏 검 이외의 다른 무구를 잡아본 역사가 없었던 범석이 어깨에 긴 창을 걸치고 보무도 당당하게 경기장 중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해괴한 검술을 선보이며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느닷없이 창이었다.
그가 옆에 앉아 있는 해설자를 바라보며 질문을 늘어놓았다.
–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오범석 검투사가 창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죠?
해설자가 별것 아니라는 양, 고개를 흔들었다.
–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오범석 검투사는 검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 팀플레이에서 미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이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 창을 연마한 듯 보입니다. 창은 찌르기 동작이 주를 이루기에, 배우기가 용이하거든요.
– 하지만 오범석 검투사가 창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너무 아까운 일이 아닙니까? 다른 검투사들도 할 수 있는 일을 그가 맡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 그렇기는 하지만, 굳이 못 할 것도 없지요. 지금 보시면 오범석의 허리에 검이 하나 착용 되어 있지 않습니까? 창으로 팀 공격을 지원하다가 기회가 포착되면 그대로 검을 뽑아 돌진해 들어가겠죠.
그 말을 들은 아나운서가 다시 범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그는 허리에 검을 하나 패용하고 있었다.
–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으음.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저 창에 다른 용도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예상되는데요……. 사실 오범석 검투사가 투척도 아주 잘하지 않습니까?
– 으음. 투창치고는 길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오범석 검투사는 의외의 순간에 카타나를 투척해 많은 킬 포인트를 올렸으니까요.
– 하하하. 그럼 이거 정말 기대되는데요. 과연 오범석 검투사가 어떤 투척 기술을 보여줄지 오늘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중계석의 설명을 들으며 경기장 중앙에 선 범석이 피식 웃었다. 이거 아무래도 단단히 실망을 줄 듯싶었던 탓이다. 그는 이번 라운드에서 절대 손에서 창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볼 만은 할 거다. 입이 떡 벌어지게 해 줄 테니까.’
그는 봉시진 촉 부분 중앙에 서고는 뒷짐을 쥔 자세로 서서 창을 허리 뒤쪽에 수평으로 위치시켰다. 아직 경기 시작 신호가 터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호네트 전법은 경기 초반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었다. 만약 전략의 핵심인 범석이 그 순간 엉뚱한 짓을 벌였다가는, 선봉은 전멸하고 종래에는 팀이 패배하게 되었다.
“자. 모두 집중해! 경기가 시작되면 스노우 걸즈를 일거에 몰아쳐 버려야 한다!”
“넷!”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손에 든 무구를 단단히 쥐고, 방진을 구성한 스노우 걸즈 검투사들을 노려보았다.
그녀들도 이번에 주력이 나왔다. 모두가 월드리거급 검투사이니, 추호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 삐이익! 경기 시작입니다!
구내방송이 터져 나오기가 무섭게 봉시진을 형성한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일제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상대 팀 방진에 다다를 무렵이 되자, 선봉에 서 있던 샤일라, 오스칼, 라피네, 레베카가 진을 흩트려 둥근 반원을 그린 다음 손에든 검을 높이 치켜세웠다. 독침을 쏘기 위해 배를 들이미는 것이다.
“모두 돌격해!”
범석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선봉들이 일제히 힘껏 점프했다. 이를 본 스노우걸즈의 선두에 선 검방들이 웬 떡이냐며 득의양양 미소를 지었다. 공중에서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기에 방패로 이어지는 공격을 막은 다음 검을 찔러넣으면 쉽게 상대를 쓰러뜨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엄연한 착각이었다. 벌의 배에는 치명적인 독침이 숨겨져 있듯이, 갓즈나이츠 선봉 뒤에는 범석이 있었다. 달려오는 관성력으로 바닥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미끄러진 그가, 상체를 숙인 다음 선두에 서 있던 스노우 걸즈 검투사들의 종아리 부위를 향해 힘차게 창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차창. 창.
“아악! 도대체 뭐야!”
순간 스노우 걸즈 검투사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허물어져 내렸다. 점프 공격을 해오는 갓즈나이츠의 선봉을 막기 위해 방패를 올렸다가 그대로 범석의 창 베기 공격에 종아리를 허락했던 것이다.
그녀들은 겨우겨우 방패로 갓즈나이츠 선봉의 검격을 뿌리쳤지만, 행동불능이 되어버린 다리로 말미암아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모두 선두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
1번 검투사의 다급한 명령에 후위에 서 있던 8명의 스노우 걸즈 검투사가 일제히 뒷걸음질을 쳤다. 선두들이 바닥에 쓰러져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그녀들을 챙기려고 했다가는 그대로 전멸이었다.
지금은 갓즈 나이츠 검투사들이 부분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동료들을 해치우는 사이, 방진을 재구축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번 2라운드는 필패였다.
“어디를 도망가!”
힘껏 도약한 범석이 거친 외침과 동시에 스노우 걸즈의 방진 중앙을 창으로 내리쳤다. 상대의 결집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미 기세는 기울어졌지만, 저들이 방진을 재구성하면 2라운드를 쉽게 따낼 기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창을 당기며 방월날 부위로 7번 검투사의 어깨 부위를 긁어버리고는 흐트러짐을 보이는 13번 검투사의 방패를 힘껏 후려갈겼다.
“끼아악!”
방패로 막았지만 13범 검투사가 커다란 충격에 받고는 진형에서 멀찌감치 튕겨져나갔다. 아무리 그녀가 월드리거 급의 강인한 신체를 지녔다고는 하지만, 창의 원심력에 가미된 관성력을 극복할 수 없었다.
창의 길이는 사정거리라는 전략적 우위뿐만 아니라, 파괴력의 증가라는 장점도 있었다. 그 비결은 무게와 원심력에 있었다. 긴 창은 무거울 뿐만 아니라, 끝 부분의 이동 속도가 일반 단 병기의 몇 배나 빨랐다. 이는 운동량과 파워의 증가로 이어졌고, 상대에게 상당한 물리력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범석이 13번 검투사와 스노우 걸즈의 본진을 가로막고는 힘껏 창끝을 뻗었다.
“후후. 네 상대는 나다.”
범석이 스노우 걸즈의 방진 구성 방해를 그만두고 13번 검투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일격으로 벌어진 방진의 틈을 샤일라를 비롯한 선봉들이 파고들며 발기발기 찢어버렸고 그 사이를 다시 중견들이 진입하며 난전을 이끌어내고 있었던 탓이다.
이제 갓즈나이츠는 흩어진 양 떼를 사냥하면 그뿐이었으니, 그가 더는 관여할 필요가 없었다.
차. 쾅. 차창.
정신없이 검과 방패를 휘둘러대던 13번 검투사가 범석의 강력한 일격에 또다시 튕겨져나갔다. 범석은 곧바로 그녀의 다리 밑에 창끝을 들이밀고는 그대로 힘껏 위로 젖혔다.
바닥에 넘어진 13번 검투사가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오른쪽 다리의 경직으로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조금 전 일격에 허벅지가 긁혀버린 것이다. 그녀는 두려운 시선으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교묘한 회전을 보이는 창끝을 방패로 막다가, 결국에는 미간을 내어주고는 완전한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었다.
“자. 그럼 나머지도 사냥을 나가볼까.”
또 다른 사냥감을 찾기 위해 뒤로 돌아선 범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스노우 걸즈 검투사들이 동료 검투사들에게 둘러싸여 지리멸렬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다운 저항을 하는 이는 기껏해야 대장인 1번 검투사를 포함한 서넛뿐인데, 여기에 서넛의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달라붙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화려한 창술을 선보이려고 했는데, 이거 영 기회를 안 주네. 뭐 어쩔 수 없지.”
범석이 창끝을 슬며시 내렸다. 지금 전투에 참여해 킬 포인트를 노려볼 수도 있었지만, 괜히 팀 원들의 먹잇감을 빼앗는 듯 보여 꺼려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끼어들 틈도 없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는 슬그머니 세이야가 있는 곳으로 가 호위를 섰다.
할 일이 없으니, 수호검투사의 역할이라도 담당해볼 요량인 것이다. 이번 2라운드의 대장은 바로 그녀였다.
잠시 후 2라운드 경기는 갓즈나이츠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고, 양 팀의 주력 검투사들은 장시간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경기가 끝난 터라, 3라운드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아직 26분이나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중계진들의 입은 너무나 바빠졌다. 그 긴 휴식시간을 자신들의 이빨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 오, 오 범석 검투사 대단합니다. 단지 킬 포인터 하나를 올렸을 뿐이지만, 이 경기를 지배한 자는 다름 아닌 그였습니다.
– 네. 맞습니다. 이거 오범석 검투사의 창술이 여간 아닌데요. 저 대단한 스노우 걸즈 팀을 순식간에 녹여버렸습니다. 경기 초반 상대의 선두를 쓸어버리는 장면을 볼 때는 정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해설자의 감탄 어린 설명에 아나운서가 바로 반응했다.
– 하하하. 네. 확실히 초반 오범석 검투사의 활약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쯤 스노우 걸즈의 벤치가 고민에 쌓였겠는데요. 2라운드가 이렇듯 빨리 끝났으니, 다음 3라운드에서 갓즈나이츠의 주력이 나올 공산이 크지 않습니까?
– 물론입니다. 이 때문에 스노우 걸즈도 3라운드에 주력을 내보낼 공산이 큽니다. 여기서 2진을 내보냈다가 패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1무 2패가 되니, 부담이 아주 커지니까요. 게다가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방진을 꺼내 들지 못할 겁니다.
– 아니 그건 왜요?
–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방진을 꺼내 들었다가 모두 실패를 맛보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지금 1패를 안았습니다. 감독이 바보가 아닌 이상, 방진은 채택하지 않을 겁니다.
– 아. 그렇겠군요. 그럼 다음 경기가 흥미진진해지겠는데요. 화끈한 공격전이 펼쳐질 테니까 말입니다.
– 네. 그래서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아. 근래에 선작수가 이상할 정도로 많이 붙나 했더니, 말리브해적님이 제 글을 추천해 주셨네요. 하하하. 저도 도시의 지배자s와 MLB-메이져리그 재미있게 보고 있는 터라,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분 필력이 장난 아니시거든요. 좋은 작가분님께 추천 받았다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해집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