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43
345화
에이번드와 메르잔 대표팀이 맞붙은 월드컵 예선 3차전 세 번째 경기에서는 양 팀이 서로 라운드를 주거니 받기니 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여나갔다. 1, 3 라운드는 메르잔이 2, 4라운드는 범석이 출전한 에이번드가 먹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날의 승패는 5라운드에서 비겨 무승부를 기록했다.
메르잔 주전들이 굳건한 방진을 구성하고 버티는 통해 범석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에이번드 대표팀은 승점 7점으로 또다시 메르잔과 함께 공동 1위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호텔리어가 윤이 번쩍번쩍 나는 검정색 대형 리무진의 뒷문을 열자, 잘 차려입은 범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에는 어째서인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팀 훈련 캠프에서 소일거리 삼아 책을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호텔직원이 들이닥치더니 미리 준비해 온 정장을 갈아입히고는 이곳 호텔까지 연행하듯 끌고 온 것이다. 처음에는 일거에 제압해 내쫓아버리려고 했지만, 의뢰인이 레베카임을 알고 참았다.
뭔가 기대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그 깐깐한 클라크 감독을 구워삶았지?’
대표팀 훈련 캠프에 외부인이 들어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훈련 장면이 촬영되어 전략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일을 막고, 고가의 프로검투사를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철저히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텔리어가 훈련캠프 안까지 쳐들어왔다. 감독의 허락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 상관없는 일이지…….”
투덜거리며 나오는 범석이 어두움 속에서 유난히 빛을 발하는 호텔의 전경을 바라봤다. 80여 층에 가까운 거대 호텔이었는데, 외벽을 은은한 색의 조명이 비치고 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그는 물줄기를 뿌려대는 화려한 분수를 지나 호텔 입구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그는 마중을 나온 또 다른 엘프호텔직원의 안내로 어딘가로 모셔져 갔다. 아마도 레베카가 있을 장소가 확실한 듯싶었다. 둥그스름하게 휘어져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도착한 곳은 검은색 원목 식탁이 늘어져 있는 어느 고급식당이었다.
‘꽤 사람이 많네.’
실내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오늘이 바로 연말이기 때문이다. 이제 7시를 가리키는 저 시침이 12시를 가리키면 56년도의 새해가 밝아오게 되었다. 게다가 곧 눈이 온다는 기상 예보가 있어, 낭만을 찾아온 연인도 꽤 되었다. 물론 남성과 엘프 파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가 안내하는 호텔직원에게 물음을 던졌다.
“여긴가?”
“아니에요. 좀 더 들어가셔야 해요.”
안내를 따라 쭉 늘어서있는 고급 식당가를 스쳐 지나간 범석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3층 한편에 마련된 작은 룸이었다. 레이스 달린 흰 천이 덮여있는 식탁 하나 놓여있는데, 연인들 간에 다정스럽게 식사를 나눌 수 있도록 2개의 좌석만 배치되어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아직 레베카가 도착해 있지 않아, 썰렁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엘프 호텔 종업원이 범석을 좌석에 앉히고는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혹시 필요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목을 꽉 매는 넥타이를 살짝 푼 범석이 말했다.
“물이나 한 잔 줘.”
엘프호텔리어가 바로 식탁 중앙에 놓인 도자기 주전자를 들어 그의 앞에 놓인 유리잔을 뒤집고는 그 안에 물을 따랐다.
“더 필요하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물을 들이켠 범석이 다시금 말했다.
“그런데 레베카는 언제 도착해? 혼자 있으려니까 좀 그러네.”
“레베카 님은 손님께서 집을 떠나실 때, 출발하셨다고 하니까 곧 도착하실 겁니다.”
“으음. 그래? 알았다. 그럼 가봐.”
“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호텔직원이 나간 후, 범석은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잠시 후. 룸의 문이 열리며 검은색 모피 코트를 입은 금발의 미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레베카였다.
“범석님. 많이 기다리셨죠?”
“별로. 나도 방금 왔어.”
살며시 미소를 지은 그녀가 코트를 벗어 문앞 옷걸이 걸어놓았다. 순간 범석의 침 넘어가는 소리. 레베카가 장난 아닌 옷을 입고 것이다.
정열적인 붉은색의 원피스였는데, 허벅지와 푹 파인 가슴골이 그대로 드러나 보일 정도로 짧은 기장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가슴과 가슴 사이에서 이어지는 지퍼 라인은 그의 음심을 크게 자극하고 있었다.
지퍼만 내린다면 레베카는 그대로 나신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살짝 돌려 눈웃음을 친 그녀가 샌들형 하이힐로 바닥을 도각도각 밟으며 범석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맨살이 그대로 노출된 다리를 꼬며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초대해서 놀랬죠?”
“으음. 조금. 그런데 무슨 일이냐?”
“그냥. 식사 초대에요. 얼마 전에 식사 대접을 받아서, 보답해 드리려고요. 그리고 겸사겸사 할 이야기도 있고요.”
왠지 그 말에 기대되는 범석이었다. 혹시나 레베카가 자신에게 귀중한 선물을 줄지도 모른다고 예상된 탓이다.
“하하하. 그래? 식사야 그렇다 치고 겸사겸사 할 얘기가 뭔데?”
“사업 얘기에요.”
“무슨 사업?”
“뭐. 별일 있겠어요. 갓즈나이츠에 대한 스폰서 계약이죠.”
다소 실망한 범석이 턱을 가만히 괴며 그녀를 쳐다봤다. 연말연시 즐거운 밤을 보내나 했더니, 이거 아닐지도 모른 것이다.
“스폰서 계약? 장비 스폰서계약은 좀 기한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나?”
“아뇨. 메인스폰서 계약이요. 한 반년 가량 남았으니 이제부터 슬슬 진행하지 않겠어요?”
하긴 그도 그랬다. 현재 갓즈나이츠와 레인보우그룹 간에 맺은 메인 스폰서 계약은 다음 봄철 시즌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는다면 자칫 다음 시즌 민 가슴으로 경기에 참여하는 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긴 그렇군. 그래서 채플린 스포츠에서 우리 메인스폰서도 하게?”
“그건 아니고요. 저희 큰아버지가 하시는 채플린 전자가 메인 스폰서가 될 거예요.”
채플린 전자라면 업종별 순위 2위에 올라있는 거대 기업이었다. 이런 기업을 스폰서로 잡으려면 대략 유명 스포츠의 월드리그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들의 스포츠팀에 대한 스폰서 목적은 선전인데, 월드리그 이외의 리그에서는 원하는 만큼의 자사 브랜드 노출이 힘들었다.
범석이 살짝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이거 채플린 가문에서 우리를 배려해 주는 건가?”
“그렇지는 않아요. 사실 이번 스폰서 제의는 큰아버지께서 먼저 제게 부탁한 내용이에요.”
뜻밖에 대답에 그가 묘한 눈빛을 레베카에게 보냈다.
“으음. 어째서지?”
“얼마 전에 홍보 분석팀이 보고가 올라왔는데, 갓즈나이츠 팀과 스폰서계약을 맺는 것이 채플린 전자의 미래 성장 계획에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래? 무슨 이유로?”
“현재 채플린 전자는 업계 순위를 2위를 하고 있는데, 1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여성 고객층의 흡수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범석은 검투사를 포함한 그 어떤 프로선수들보다 많은 여성에게 호감을 받고 있고요. 게다가 가정일을 도맡아 하는 엘프들 사이에서는 인정받는 터라, 가전제품 판매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있고요.”
이해가 가는지 범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일반 여자에게도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을 펼치며 몸소 실천하는(?) 그는 많은 여성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팀 성격상 엘프들에게도 동조를 얻으니, 채플린 전자로서는 매력적인 스폰서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뿐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점 하나로 채플린 전자가 우리와 스폰서 계약을 맺자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유망주인 범석님이 벌써 세계 3대 검투사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고, 갓즈나이츠가 올해 월드리그 진출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한몫했죠. 그래서 미리 선점하는 하는 차원에서 제의하는 거예요.”
범석도 특별히 채플린 전자에 대해 거부감이 없기에, 그녀의 제의가 반가웠다. 다만 문제는 후원금의 규모였다.
“얼마로 할 거지?”
“일단 4년 계약에 15억 크랑요.”
참으로 애매한 수치였다. 센트럴 리그 팀의 후원비로는 적당했지만, 만약 갓즈나이츠가 내년에 월드리그에 진출한다면 손해를 입게 되었다.
이 금액으로 메인스폰서를 지정할 바에는 잠시 기다렸다가 월드리그 진출 여부를 확인해보고 다른 스폰서를 찾는 편이 나았다. 일반적인 월드리그 팀 메인스폰서 비용은 최소 4년 계약에 30억 크랑은 했다.
“으음. 그럼 곤란한데. 나는 우리 팀을 내년 혹은 내 후년에 반드시 월드리그 팀에 올려놓을 생각이거든. 그만큼 전력도 되고 말이야.”
“물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 약간의 옵션이 포함돼요.”
“무슨 옵션?”
“월드 리그 진출 시 10억 크랑 특별 보너스에, 월드리그 잔류 시 매해 5억 크랑이 추가로 지급돼요.”
범석이 이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계약기간 안에 최대 40억 크랑을 챙길 수 있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으음. 나쁘지 않은 조건이군.”
“여기에 7위 이상 상위권으로 리그를 끝마치면 1억 크랑, 3위 이상은 2억 크랑, 우승은 5억 크랑이 추가로 지급돼요. 또 GA컵과 리그컵을 들어 올리면 각각 2억과 1억 크랑이 제공되고요.”
그가 살며시 몸을 떨었다. 이거 옵션이 장난이 아닌 탓이다. 그럼 한해 최대로 벌어들일 수 스폰서비용은 13억 크랑이 되었다.
“큼큼. 이거 장난이 아니군.”
“뭐. 보통의 월드리그 팀들은 그 정도 옵션은 가져가니까요.”
“그런데 다른 특전은 없나?”
“범석님 결정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사소한 옵션 하나가 더 있어요.”
“뭔데?”
“기본 후원금 15억 크랑이 당장에 제공돼요. 그럼 그 돈으로 검투사 하나를 더 영입하면 되니, 월드리그 진출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겠죠?”
범석으로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제의가 아닐 수 없었다. 갓즈나이츠는 최근 일반 입장권 판매와 GA, 리그컵 경기로 많은 수입을 올렸지만, 여러 사업의 추진과 LHN에서 빌렸던 차입금 1억을 갚는 바람에 막대한 지출이 있었다. 그래서 현재 남은 팀 자금은 고작 3억 크랑. 이 돈으로는 월드리거급 검투사를 영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한 템포 쉬어가려고 했는데, 뜻밖에 자금이 영입 자금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이거 이래도 되나? 선지급 후원금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채플린전자는 갓즈나이츠가 좋은 검투사를 빨리 얻어 이른 시일 안에 월드리그 팀에 올라가기를 원하고 있어요. 그편이 홍보에 훨씬 이득이니까요.”
그 말을 들은 범석이 두말할 것도 없이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후원금액도 마음에 들었지만, 선지급금이 훨씬 매력적인 탓이다. 그 돈만 있다면 출중한 검투사 하나를 더 구매할 수 있으니, 내년 봄에 있을 승격 토너먼트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좋아 받아들이기로 하지.”
“훌륭하신 결정이세요. 절대 후회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종업원들이 들어와 식탁을 맛난 음식들로 채워나갔다. 그가 먼저 나온 빵을 반으로 쪼개고는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레베카 대표팀 생활은 어때?”
그 말에 레베카가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메르잔 대표팀과의 경기 때 전력에서 제외된 사실이 그리 마음에 걸릴 수가 없었다. 면전에서 추후 경기에 참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데, 그리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뒷말을 하는 꼴이 되니, 대충 원론적인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지낼 만은 해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제 실력이 떨어져서 팀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좀 미안해요.”
범석이 살며시 머리를 흔들었다. 몇몇 주력 검투사를 제외하고는 그녀만큼의 실력자도 별로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후보군의 최상위 수준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메르잔과의 경기 때문에 그런가 본데. 그건 아니야. 하긴 감독님이 너무 하셨지. 당시 너만 실수한 것이 아닌데…….”
레베카는 마음속 깊이 범석의 말에 동조했다. 메르잔 대표팀과 맞붙은 1라운드 경기에서 에이번드팀 패한 이유는 가장 먼저 비올렛이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녀를 맡던 7번 검투사까지 자신에게 붙었고, 등에 불의의 일격을 맞아 어쩔 수 없이 당했다. 감독님이 그리 심하게 책망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 그렇기는 하지만, 저도 실수했으니까요. 뒤를 조심했다면 쉽게 당하지 않았겠죠.”
“으음. 그런 면이 있지만, 감독이 당시 책망한 뜻은 그게 아니야.”
“그럼 뭔가요?”
“아마도 너를 생각해서 채찍질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었다면 솔직히 오늘 우리가 이처럼 식사를 같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가 살며시 입을 삐쭉 내밀었다. 오늘 그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한 이유는 오늘의 계약 건과 에이번드 대표팀에 대한 후원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는 에이번드 대표팀만 강해진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사람이었다.
“네.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요.”
“하하하. 정말 그렇다니까. 사실 감독님도 네가 모든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시다. 그래서 저번에 충격요법을 사용한 것이고…….”
레베카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으음. 그래. 클라크 감독도 보통 인물이 아니야. 네게 미비한 점이 있다는 사실쯤은 충분히 인지할 능력은 갖추고 계시다.”
“혹시 범석님이 말씀 주셨나요?”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긍정을 표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다.
“아니. 감독님이 먼저 눈치채고 혹시 네가 제힘을 사용하지 못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예스라고 했을 뿐이다.”
그녀가 눈가를 바르르 떨었다. 클라크는 깐깐하기로 유명했지만, 제법 명장으로 알려진 유망한 감독이었다.
몇몇 월드리그 팀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었고, 채플린 위스퍼 팀에서도 빈센트 감독과 함께 차기 감독 후보로 올렸던 사람이었다. 그런 감독과 범석이 동시에 인정했다면, 자신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이 사실일 확률이 더욱 커졌다.
“그, 그렇군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뭘. 자 그럼 열심히 하자는 취지에서 우리 건배나 하자.”
가볍게 술을 두드린 범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음흉한 시선을 날렸다. 얼마 후면 자신에 넘어오리라고 확신했던 탓이다. 레베카는 지금 고민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ㅠㅠ. 리그너스 님이 글을 안올려요. ㅠㅠ. 디아블로 3를 할까말까 고민하시더니, 결국에는 빠졌나 봅니다. ㅠㅠ. 제가 댓글로 그리 극구 만류했는데요. ㅠㅠ.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