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52
354화
레인보우 호텔에 도착한 범석이 연회실을 빌어 팀원들에게 만찬을 제공했다. 예약 없이 왔던 터라 거하게 차려주지는 못했지만, 뷔페식 식단이었기에 검투사들은 실컷 마시고 즐길 수가 있었다.
“자자. 다들 건배!”
범석이 맥주가 든 잔을 높이 들고 흥겨운 투로 건배를 제의했다. 패배한 직후 너무 기분을 내는 듯 보였지만, 팀 사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초여름에 열릴 승격 토너먼트를 위해서는 오늘의 패배를 깨끗이 잊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패전의 기억은 적극성을 저하하게 하고, 이는 플레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다행히 모든 팀원이 기운을 차렸는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일어나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건배!”
맥주를 단번에 들이켠 범석이 자리에 앉아서는 다이아나가 집어준 과일 안주를 먹었다. 순간 멈칫거린 범석이 이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내민 음식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번뜩 들었지만, 먹어보니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탓이다. 근래 그녀의 재주 스텟은 30 즈음에 이르고 있어 옛날과 같이 맹독성 포션은 만들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는 호텔 요리사들이 직접 조리하기에, 별 상관이 없었다.
“다이아나 어때? 다들 기분이 좋아진 것 같지?”
“네. 정말 다행이에요. 이 기분을 가지고 리그와 곧 있을 승격토너먼트에 들어가면 여간 큰일이 아니거든요.”
“하긴 그렇겠지.”
“문제는 다음 경기에요. 오늘 시합이 끝나자마자 이런 파티를 열었으니, 아무래도 다음 경기를 치르는 데 문제가 많을 테니까요.”
범석이 피식 웃었다. 걱정도 팔자지, 다음 시합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름 아닌 상대가 리그 꼴찌를 달리는 드래곤 나이츠인데다가, 홈경기였던 탓이다. 지금의 갓즈나이츠 전력으로서는 패할 이유가 없었다.
“됐어. 드래곤 나이츠인데 뭘. 걱정하지 마.”
“하지만 그래서 더 문제에요. 오늘 경기에 패한데다가, 다시금 약팀을 상대로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간다면 팀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고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잖아.”
“네. 맞아요. 하지만 저희는 무척 지친 반면, 드래곤 나이츠는 한 주를 쉬어 완벽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어요. 게다가 강등권 탈출을 모색해야 하기에, 어떻게든 승리하려고 들 거예요.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하고 운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저희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검투사의 플레이는 나름의 보이지 않는 사이클이 있었다. 또 체력도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컸고,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런 요소들이 좋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면 갓즈나이츠도 약팀을 상대로 고전할 수 있었다.
막상 누군가 경기 중 한둘만 실수를 해서 상대 검투사에게 당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라운드는 어렵게 풀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지. 그럼 아예 그 가능성을 없애 버리지.”
“어떻게요?”
“2군을 내보내. 어차피 승격토너먼트를 대비를 체력을 비축해야 하잖아.”
다이아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갓즈나이츠 2군을 차지하는 검투사들은 모두 세미프로급의 별 볼 일 없는 실력자였다. 분명 갓즈나이츠는 철저한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종종 사용했지만, 센트럴 리그에서는 달랐다. 입장료와 품격 자체가 틀렸던 탓이다.
“그럼 문제가 커져요. 비싼 돈 들여 들어왔는데, 드래곤나이츠를 상대로 그런 경기를 보여준다면 팬들이 크게 반발할 거예요. 그리고 아마 다른 강등 경쟁팀에서도 난리를 칠 거예요. 저희는 과거부터 드래곤 나이츠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의심스러운 눈길을 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일부러 져주는 것이 아니냐며 협회에 제소할 가능성이 아주 커요.”
“그런가? 그럼 후보를 내보내고 모자란 자원만 2군으로 채워.”
그렇다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간 범석의 노력으로 갓즈나이츠의 후보들은 상당한 실력자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에 주인님과 니키타, 세이야, 베르티아도 포함하시죠. 그럼 얼추 체면치레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범석이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다이아나가 언급한 검투사들은 갓즈나이츠의 최상의 전력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지만, 자신을 제외하고는 오늘 후미를 소화해 그다지 스테미너 손실이 없었다. 연이은 경기를 치러도 체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도록 해.”
그때 범석의 품 안으로 짧고 작은 호출음이 들려왔다. 메시지가 왔다는 뜻으로, 그가 전자수첩을 꺼내 그 내용을 살폈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더니, 똥 마른 강아지처럼 전전긍긍 댔다. 리자가 리마종합병원으로 실려갔다는 급전이었던 탓이다.
‘아차. 리자의 산달이었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범석이 다이아나에게 살짝 귓속말을 건넸다.
“다이아나. 나 지금 병원에 급히 가봐야 하니까, 네가 여기 뒷마무리 잘해.”
“병원은 왜요?”
“오늘이 리자 출산일인가 보다. 한 번 가봐야지.”
그 말의 다이아나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주인의 자식이 태어난다는 데에 싫어할 엘프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리자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훈련 캠프 내에서 자라게 되었다. 즉 자신들의 품 안에서 자라날 아이라는 뜻이었다.
“저기. 저도 갈게요.”
“안돼. 지금 한창 분위기 좋은데, 감독인 너까지 오면 어떻게 해. 너는 여기에 있어.”
귀를 축 늘어뜨린 다이아나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네. 알았어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뒷일을 잘 부탁한다.”
자리를 떠나려던 범석이 급히 돌아서서 다시금 말했다.
“그런데 다이아나, 혹시 차 좀 없어?”
“당장은 아론밖에 없는데요. 모두 아론을 타고 왔잖아요.”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아론을 타고 가면 이 많은 인원을 싣고 팀 내로 돌아갈 차량이 없었다. 차라리 콜택시를 부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때 곁을 지나던 젤소미나가 그를 향해 말했다.
“선배님. 차는 왜요?”
“으음. 지금 급히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병원요? 선배님 어디 다치셨어요?”
그 질문에 범석이 대답을 뜸들였다. 리자의 출산은 젤소미나의 호감도 하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작년 여름쯤 리자와 자신과의 관계가 알려져 거의 극을 달하던 호감도가 급격히 추락했는데, 여기에 오늘일까지 더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니고 급히 병문안 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어디인데요?”
“아. 리마종합병원.”
“아. 그래요? 잘됐네요. 저랑 같이 가요. 훈련 캠프로 가려면 그곳을 지나야 하니까요.”
뜨끔한 범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아. 그게 급히 가야 해서, 팀 차량을 부를 수가 없어. 근처 콜택시를 부를게.”
“급히 가야 한다면 정말 저랑 가야죠. 이미 이 앞에 제 플라잉 카가 대기하고 있거든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오늘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보려고, 차를 호출했어요.”
그때 다이아나가 벌떡 일어나 범석의 등을 밀었다.
“주인님. 아주 잘 됐어요. 소주인님이 태어나는 자리인데, 빨리 가봐야죠.”
그 말은 들은 젤소미나가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소주인님’이라는 말에 리자의 산달이 지금임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녀가 냉랭한 목소리로 범석을 향해 말했다.
“뭐 그렇다면 빨리 가봐야겠네요. 자 따라오세요.”
다이아나를 힐끔 쏘아본 범석이 간사한 미소로 젤소미나를 응대했다.
“그,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뭐. 그리 급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 하하하”
“그래서 저랑은 같이 가기 싫은 건가요?”
“하, 하하하. 그건 아니고…….”
“그럼 빨리 따라오세요. 지금 차가 호텔 로비 앞에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해요.”
범석이 어쩔 수 없이 젤소미나를 따라나섰다. 리자의 출산 사실이 이미 알려진 상태에서, 그녀의 호의를 무시했다가는 또 다른 호감도 하락이 예상되었다.
그는 곧 젤소미나의 플라잉 카를 얻어 타고, 리마종합병원으로 향했다.
“자. 그럼 나는 병실로 가볼 테니까. 너는 훈련캠프에 들어가 있어. 그럼 잘 가라.”
검은 색 플라잉 카에서 내린 범석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젤소미나는 하직 인사는커녕 차를 빠져나와 그의 옆에 섰다.
“아무래도 저도 리자에게 가봐야겠어요.”
“무, 무슨 소리야? 그냥 편히 쉬고 있어. 병실을 지키는 것은 나 혼자라도 가능해.”
젤소미나가 바로 고개를 저어댔다. 리자는 팀 내에 있는 유일한 동생. 피곤하기는 하지만, 언니로서 이대로 모른 척 가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리자는 자신과 같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었다. 둘 다 부모가 없다는 점 말이다. 그래도 자신은 다행히 남동생이라도 있지만, 그녀는 혈육 하나 없는 천애 고아였다.
“어떻게 그냥 가요. 리자가 병원에 있다는데요. 한 번 얼굴이라도 봐야죠.”
“얼굴 못 봐. 벌써 분만실에 들어가 있을 텐데.”
“그럼 기다리면 되죠.”
하며 그녀가 먼저 병원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하는 수 없었던 범석이 주차장으로 향하는 플라잉카를 뒤로 하고 뒤를 따랐다. 솔직히 쫓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호감도 관리 때문에 불가능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알 수 없는 사소한 일에 쉽게 삐치고는 했다.
– 리자님은 5층에 있는 제2 분만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분만실 대기실은 혼잡을 피하고자 가족 친지 세 사람까지만 허락되고 있으니, 이 점 유념해 주십시오.
안내 인포메이션 기기를 조작하며 리자가 머무는 병실을 알아낸 범석이 곧바로 5층으로 향했다.
분만실 앞에는 거의 밤 9시가 다 되어 감에도 상당수의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젊은 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여성들과 달리 남자들은 자연분만이 아닌 배양 캠슐에서 아이를 탄생하게 하기에, 이곳 분만실에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범석이 제 2분만실을 찾으려고 주변을 살피는 사이, 웅성거리는 군중 가운데 한 아리따운 젊은 여성이 나와 그에게 다가왔다.
“저기. 혹시 오 범석 검투사 아니세요?”
“아. 네. 맞습니다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성 방문객으로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뜻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범석 같은 유명인을 만나게 되니, 반갑고 신기했던 탓이다. 그는 유명 검투사인데다가 젊고 잘생기고 돈까지 많았다. 게다가 여성들에게 호의적인 언사를 언론에다 자주 흘리고 다녔기에, 유독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와아. 범석 님. 저기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그런데 범석 님. 여기는 웬일이세요? 혹시 애인이 오늘 출산일인가요?”
“저 오늘 밤에 한가한데 어떠세요? 당신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
이쯤 되자 병원에서는 특단의 조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경비원을 파견해 여성 군중들을 막고는 그와 젤소미나를 분만실 안으로 들이게 했던 것이다.
간신히 분만실 내부로 들어온 젤소미나가 피식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세상 살다 보니 별일 다 있네요. 분만실에도 다 와보고 말이에요.”
이 시대에는 내원객들이 절대 분만실로 들어올 수 없었다. 과거에는 정서적인 문제로 감염의 위험을 각오하고 남편과 가족 일인에 한해서는 출입을 허용했지만, 이 시대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민의식 탓에, 굳이 친인 누군가가 병실에 들어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혼자 병원에 와서 아이를 낳고 돌아가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범석은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여간 선배님은 좋겠어요. 아이 아빠를 부탁하는 여자들이 많아서요.”
범석이 난감한 듯 그녀에게서 시선을 회피했다. 아까 팬 중에 누군가가 아기를 갖게 해달라는 요청을 들은 기억이 났던 것이다. 가뜩이나 심통을 부리고 있는데, 그 소리까지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가 거칠게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냐. 그냥 농담 삼아 한 말이었을 거야.”
“농담은요. 뉴스에서 보니까 선배님의 아이가 전 세계적으로 쫙 깔렸다고 하는데요.”
“그, 그건 오보야.”
젤소미나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오보라고 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이고 사례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게다가 종종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여성들에게 범석이 주기적으로 생활비를 보낸다는 내용에서는 나름 믿은 만한 사례가 있었다. 에스더에게 여기에 대한 질문을 하자마자 얼버무리며 대답을 회피했던 것이다.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야. 내 말이 맞대도. 자. 쓸데없는 소리를 그만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리자가 기다리고 있겠다.”
범석이 시급히 걸음으로 옮겨 좀 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려있는 제2 분만실 앞에서 노크했다. 이윽고 안에서 마스크와 수술복을 차려입은 한 엘프 간호사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누구세요?”
“저기 리자 보호자 되는 사람이다. 오 범석이라고.”
엘프 간호사가 환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워낙 유명인이라 그를 몰라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분요! 이거 정말 반가워요. 나중에 제게 사인 좀 해주세요.”
“뭐. 그러지 뭐. 그런데 지금 안에 들어가도 되나?”
엘프 간호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내부 복도까지 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분만실 안은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관계자 외 절대 출입금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무균 복장을 착용하고 있다지만, 원칙은 원칙이었다.
“그건 병원 원칙상 안돼요.”
범석이 아쉽지만 뒤로 물러섰다. 지금껏 여러 번 분만실을 찾아다녔기에, 이런 원칙을 잘 알고 있었다.
“대신 리자에게 내가 밖에 있다는 말은 해줘. 알았지?”
“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세요.”
간호사가 문을 닫고 들어가자, 범석이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대기실이 아니었기에, 의자가 없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밖은 더 불편했다.
============================ 작품 후기 ============================
헐 오늘 MLB메이져리그가 당일 조회 6000타 찍었네요. 대단하시네요. 제가 노블 초창기 부터 활동했는데, 이런 일은 처음으로 봅니다.
아. 하여간 부럽습니다. 하하하.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