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53
355화
초조한 분위기가 분만실 밖 복도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범석은 계속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지만, 분만실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조마조마한지 긴장 어린 얼굴로 주변을 왔다갔다 이동했다.
“왜. 이렇게 안 나오지? 뭔가 이상이 있나?”
슬며시 시계를 본 젤소미나가 짜증이 담긴 언사로 말했다.
“어떻게 벌써 나와요. 저희가 도착한 지 아직 1시간밖에 안 지났다고요.”
사실 보통 산모들은 통증이 있던 직후 병원에 오게 된다면, 출산이 임박한 시점까지 상당시간 기다리게 되었다. 이에 그녀의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리자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개조인간의 아기 낳는 방식은 모두가 제왕절개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에게 자연분만을 유도했다가는 그 힘으로 아기가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그야 보통 여자들 얘기고. 너 리자가 병원에 온 직후 바로 분만실로 향한 것 보면 몰라? 개조인간은 백 퍼센트 제왕절개 수술을 하기에 기다릴 필요가 없어.”
“그래요?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그야 자주 봤으니까 그렇지.”
젤소미나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에게 던지며 말했다.
“자주요?”
실수했다고 판단한 범석이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고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아, 아니 아주 간혹 봤어.”
“확실해요?”
“그렇다니까.”
“그럼 방금 자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뭐에요?”
범석이 슬며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 그야. 인터넷으로 많이 봤다는 얘기지. 내 자식이 태어나는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확인해봐야지.”
“으음.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대충 위기를 모면한 범석이 대화의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리며 읊조렸다.
“아. 왜 이렇게 안 나오냐. 미치겠네.”
“그럼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지 그래요.”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일반 분만 때도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는데,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데 그를 들여보낼 리가 없었다.
“알면서 왜 그래? 수술 중에 어떻게 들어가냐?”
“그럼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요.”
그때 주책없이 범석의 호주머니에서 긴 호출음이 연달아 울렸다. 아마도 소식을 접한 팀원들이라고 생각에 그가 전자수첩을 황급히 꺼내 허공 위로 통신화면을 띄웠다.
“누구야!”
– 흐흠. 날세.
화면 속에 나타낸 사내의 정체를 확인한 범석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바로 루카스 회장인 탓이다.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 참으로 오랜만이군. 잘 있었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석은 흑사회와 달리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정말 앞으로의 인생이 지금 시기처럼만 풀리면 원이 없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회장님과 얘기하고 있을 시간이 없거든요. 제법 바빠서 말입니다.”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핀 루카스가 생뚱맞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석의 지금은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무균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 자네 어디 다쳤나?
“왜요? 다쳤으면 병문안이라도 오게요?”
– 우리 사이에 못 갈 이유도 없겠지. 우리 전에는 제법 친근하게 지내지 않았나?
왠지 루카스 회장의 목소리에는 친밀감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대충 연유를 알고 있던 범석이 혀를 내둘렀다.
사정이 좋지 않다고 과거의 앙심을 지우고 이리 친근하게 말을 붙여오다니,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지금 흑사회는 경제인단체와 일심회, 루이스 부회장의 친목회 회원에 둘러싸여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병문안 온 것뿐이니까요.”
– 그런가 그것참 다행이군.
“그럼 용무가 없으시다면 이만 끊겠습니다.”
그러자 루카스 회장이 화급히 화면을 끄려던 그를 불러세웠다.
– 잠깐! 잠시 할 말이 있네.
“무슨 말씀이요? 시간이 없으니 짧고 간결하게 말씀하십시오.”
– 다름이 아니라 자네 내일쯤에 시간 있나?
“없습니다. 용건이 있으시면 그냥 지금 얘기하십시오.”
루카스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전화로 할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저리 완강하게 나오니 어쩔 수 없었다.
– 자네. 혹시 우리와 다시 손잡을 생각이 없는지를 묻고 싶어서 하는 말일세.
범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흑사회와 다시 손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그와 흑사회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관계였다.
“장난하십니까? 제가 왜 댁들과 다시 손을 잡습니까? 농담이라면 너무 지나치십니다.”
– 농담 아닐세. 대우는 심심치 않게 해줄 테니, 한번 잘 생각해 보게. 아마 자네에게 큰 이득이 돌아갈 걸세.
어떤 대우를 말할지 나름 궁금했지만, 범석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저들은 이제 침몰해가는 배. 괜히 손을 잡으며 함께 심해 깊은 곳으로 사라질 필요는 없었다. 지금 흑사회는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상태였다.
현재 경제인단체는 흑사회의 주력 기업 30곳 전부의 4.9% 지분의 매입해 놓은 상태였다. 범석의 WBS방송국 주식 매입 전략에 힌트를 얻어 흑사회의 돈을 뽑음과 동시에, 기업 인수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이제 흑사회가 선택할 상황은 단 하나, 바로 끝없는 방어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경제인 단체기 가만히 두고 보고 있다가 방어에 들어가 주가가 오른 회사의 주식을 팔고, 그렇지 못한 기업 쪽에 총력을 기울여 M&A를 성사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인수된 기업은 또다시 자금줄이 되어 흑사회를 공격하게 되었다.
물론 이 전략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모되기에 경제인 단체가 흑사회의 반격에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협조로 염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바로 LHN금융지주, 윌킨스 금융지주, 유니크 은행이 경제인 단체의 기업들의 주식 보유 비중을 크게 늘이며 은연중에 협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흑사회는 차츰차츰 회사를 빼앗기다가 결국에는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후후. 됐습니다. 천만금을 준대도 싫으니, 작작 좀 사정하십시오.”
– 이보게.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잘 생각해보게. 자네 갓즈나이츠 팀에 있는 엠마를 생각해서라도 말일세. 그 아이도 사실 우리 흑사회 회원이 아닌가?
범석이 피식 비릿한 웃음을 흘려댔다. 이미 엠마는 언제든 흑사회를 빠져나올 준비가 되어있었다. 호감도도 극에 오른데다가, 계속 갓즈나이츠에 머물고 있던 그녀를 조직에서 지금까지 소외시키고 있었던 탓이다. 당연히 그녀에 대한 핑계로 협조를 바라봤자 범석은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엠마는 갓즈나이츠의 일원으로서 앞으로 잘 지낼 겁니다.”
–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설마 엠마가 우리 흑사회을 떠난다는 말인가?
“글쎄요. 그건 두고 보시면 아시겠죠.”
– 자네! 정말 이러면…….
루카스회장의 말이 끝마치기도 전에 범석이 통신을 확 끊고 분만실 문을 바라봤다. 안에서 간호사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그에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틈 사이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루카스와 대화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태어났어?”
“네. 축하해요. 씩씩한 아들이에요.”
그 말에 범석이 얼굴이 살짝 경직됐다. 예쁜 딸을 기대했는데, 시커먼 아들이라니 실망이 여간 아니었다. 하지만 곧 부양식 침대차에 실려 나오는 리자를 보고는 바로 표정을 수습했다. 수고한 그녀를 앞에 두고 실망을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하하. 리자 수고 많았다.”
침대에 누워있던 리자의 초췌한 얼굴에 밝은 미소가 그려졌다. 애 아빠 되는 사람이 이처럼 반갑게 마중 나오다니, 여성으로서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었다.
“고마워요. 사형.”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그래. 많이 힘들었지?”
“아니에요. 처음에는 좀 겁을 먹었는데, 마취 때문에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그래도 수고 많았다.”
젤소미나가 리자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부럽네. 우리 리자. 이 언니보다 먼저 아기를 갖고 말이야.”
“호호호. 부러우시면 언니도 빨리 낳으세요.”
곧이어 인큐베이터에 실린 아기가 분만실에서 나왔다. 이에 젤소미나가 황급히 다가가 신기한 듯 안을 들여다보았다. 쭈글쭈글하고 시뻘건 피부가 약간 징그럽기는 하지만,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그리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젤소미나가 환한 표정으로 범석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선배님. 이 아기의 이름이 뭐에요?”
범석이 다가와 함께 아기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글쎄.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그럼 제가 정해도 돼요?”
그가 바로 고개를 저어댔다. 아기의 이름을 짓는 일은 어머니인 리자가 할 일이었다.
“그건 안 되지. 애 이름은 엄마인 리자가 지어야 하니까.”
“쳇. 치사하게.”
“후후후.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아기를 낳으면 되잖아. 괜히 심통 부리지 말고, 나중을 기약해라.”
그 말을 하고 난 범석이 꿍한 표정의 젤소미나를 뒤로하고 다시 리자에게 갔다.
“리자. 혹시 아기 이름 생각한 둔 것 있어?”
힐끔 젤소미나의 눈치를 살핀 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어요.”
“뭔데 말해봐?”
“필립요.”
필립이면 나쁘지 않지만, 좀 흔해 빠진 이름이었다. 범석은 자신의 아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그거 너무 흔한 이름 아니야?”
“그렇기는 하지만, 전 그 이름이 좋아요. 제 할아버지 성함이거든요. 저 아이도 제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검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죽은 단테스님의 이름을 붙인다는 데에 범석이 어쩌겠나?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했다.
“스승님의 이름을 붙인다는 데에 내가 반대할 이유가 없지. 좋아 필립으로 하자.”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뭘. 자. 그럼 병실로 가자. 내가 특별히 이 병원에서 최고 좋은 특실을 마련해놨다.”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리자가 그를 쳐다봤다.
“그,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전 일반 병실이라도 상관 안 해요.”
“괜찮아. 너만을 위해서 특실을 잡은 건 아니니까. 일반 병실이면 내가 좀 곤란해. 그건 젤소미나도 잘 알걸.”
젤소미나가 계속 아기를 주시하며 말했다.
“맞아. 아까 대기실에서 팬들 때문에 난리 났었어. 아마 네가 일반 병실로 가면 팀원들은 절대 병문안 못 올걸.”
그 말에 리자가 군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전부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었다. 모두 이 지역 내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으니, 오자마자 팬들에게 둘러싸일 터였다. 그럼 문병 온 그녀들이나 병실에 머무는 자신이나 무척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네. 알았어요.”
“후후. 그래 알았다니 다행이다. 그럼 이제 병실로 가자.”
범석은 바로 앞으로 리자가 머물 특실이 있는 병원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하등 불편함이 없도록 산모도우미를 부르고, 외로울세라 함께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범석은 컨디션 회복을 위해 훈련 캠프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래면 또 리그 경기이니, 계속 병원에만 머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리자. 그럼 가볼게. 저녁때 또 올 테니까 잘 있어.”
리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가 계속 옆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범석은 갓즈나이츠의 핵심 검투사였고, 현재 리그경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올해는 갓즈나이츠가 월드리그로 올라서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중요한 해였다.
자신이 계속 그를 붙들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네. 그러세요.”
이런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젤소미나가 말했다.
“리자. 그럼 나도 가볼게.”
“네. 가세요. 언니.”
병실을 떠나가는 범석이 뒤따라오는 젤소미나를 요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제 그리 가라고 보챘는데도 계속해서 남아있더니, 결국은 이렇듯 자신과 함께 문을 나서고 있었다.
“젤소미나. 왜 너까지 남아있고 그러냐?”
젤소미나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아.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모래면 시합인데. 빨리 돌아가 체력을 비축해놓을 생각을 했어야지.”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는데, 별 상관없더라고요. 어제 밤에 다이아나감독에게 전화를 걸어봤는데, 다음 시합에 저를 출전시키지 않을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리자도 외로울 듯 보여서 함께 있었던 거예요.”
범석이 콧방귀를 푹 내쉬었다. 동생처럼 여기는 리자가 걱정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계속 머문 장소는 필립이 머물고 있던 인큐베이터 옆이었다.
아마 오늘 자신이 보채지 않았다면 계속 아기와 함께 놀고 있었을 터였다. 이에 그는 특실을 예약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
일반 병실에 입원했다면 필립은 신생아실 행이었고, 젤소미나는 일찌감치 돌아갔을 터였다.
엘리베이터 안에 탑승한 범석이 탓하듯 말했다.
“쳇.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얘기냐? 리자는 거의 다 나와 얘기했어. 너는 그저 옆에서 맞장구치며 필립만 보고 있었지.”
“뭐. 필립도 볼 겸. 겸사겸사 남아있기는 했었죠.”
1층 버튼을 누른 범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네 애도 아닌데, 뭘 그리 관심을 가지냐?”
“귀엽잖아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참나. 그렇다고 밤샐 이유는 없잖아. 이거 잘하면 양자 삼자고 하겠네.”
젤소미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정말 필립을 제가 데리고 가도 돼요?”
순간 범석의 손이 맨 허공 갈랐다. 눈치를 챘는지 젤소미나가 일찌감치 피한 것이다.
“너 지금 장난하냐? 리자가 퍽이나 양보하겠다.”
“뭐.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만큼 부럽다는 얘기죠.”
“부러우면 너도 낳으면 되잖아.”
그 말에 젤소미나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대략 1년가량 쉬어야 했고, 갓즈나이츠는 좀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에고에고 좀 많이 늦었습니다. 일단 12시까지 거의 다 써놨는데, 전면 재수정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자연분만을 배경으로 해서 글을 써나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이었거든요. 휴~ 이유는 본문을 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그럼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요. 저는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