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57
359화
“사형. 미안해요. 필립을 보고 전의를 다지려고 했을 뿐이에요. 그 애를 보면 힘이 절로 날 것 같아서요.”
그건 상관없었다. 리자는 오늘 경기가 처음이니 긴장할 수가 있었다. 필립을 보며 떨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됐다.
범석이 그녀의 옆에 앉고는 차분한 투로 말했다.
“으음.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래. 원래 운동선수들은 시합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어. 필립을 보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면 좋은 거지.”
리자가 슬그머니 다시 화면을 키웠다.
“아. 그래요? 그럼 필립을 계속 지켜봐도 되나요?”
“그래. 시합에 방해가 안 되는 수준이라면 괜찮아.”
“네. 고마워요.”
“좋아. 그럼 출전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 오늘 넌 주력이니까.”
리자가 손에 쥔 검을 꽉 쥐었다. 다이아나가 오늘 그녀를 주력으로 출전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리자는 오늘 경기에서 활약할 공산이 컸다. 출중한 검술 실력에 지닌 데 비해, 상대팀에 전혀 데이터가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습적인 발도술과 비도술까지 있어, 이른 시간 내에 손쉽게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프리롤로 뛴다면 경기 초반 상대에게 큰 타격을 안겨다 줄 수 있을지 몰랐다.
“알고 있어요.”
“그래. 오늘 기대하마.”
범석이 제자리로 돌아가 출전준비를 했다. 그도 오늘 주력으로 나서기는 마찬가지였다.
– 양 팀 검투사! 경기장 중앙으로 모여주십시오.
마침내 월드리그로 향하는 토너먼트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범석은 팀원들과 함께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가며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플라잉 오우거즈팀 검투사들을 쏘아봤다. 경기 전 기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호오. 쉽게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얘기인가?’
플라잉 오우거즈 검투사들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대응해왔다. 최고의 리그인 월드리거 검투사가 되느냐 마느냐는 갈림길에 선 그녀들로서는 쉽게 오늘 경기를 내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은 범석이 창을 뒷짐에 수평으로 세우고는 돌격 준비를 했다. 리마시티 콜로세움은 중간에 넓은 시내가 지나고 있기에, 안전을 위해서는 철교를 지나는 편이 좋았다.
문제는 상대가 어떻게든 비기기 위해 이 철교를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몸싸움이 되니, 경기가 시작되면 빨리 철교로 진입해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편이 나았다.
그가 뒤에 서 있는 리자를 향해 말했다.
“리자. 너는 오늘 프리롤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우리가 철교 쪽으로 가면, 진형을 빠져나와 도강하는 것 알지?”
그녀가 허리에 찬 검과 비도를 매만지며 말했다.
“네. 알고 있어요.”
“좋아. 그럼 잘하리라고 믿는다.”
고개를 끄덕인 범석이 전광판 시계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카운트를 세워나가더니, 0이 되는 순간 힘차게 뛰어나갔다.
“모두 철교로 진입해!”
대장 검투사인 1번 검투사의 외침에 모든 플라잉 오우거즈팀 검투사들이 일제히 철교 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리자가 프리롤을 뛰려는 듯 외부로 빠져나갔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신출내기 검투사에게 마크맨을 보내는 것보다는 갓즈나이츠의 본진을 막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더는 못 온다!”
먼저 철교 중앙에 도착한 범석이 다리 난간에 발을 디디며 점프하고는 다가오는 플라잉 오우거즈팀 검투사들의 선두를 향해 힘차게 창을 휘둘렀다. 거친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스치는 창끝에 이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철교 가운데를 넘어 공격을 시작했다.
“범석 씨. 잘했어!”
샤일라가 범석의 활약에 경의를 표하고는 오스칼과 라피네와 함께 상대 진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중앙을 차지하는 바람에 위치상 우위에 섰던 그녀들을 크게 검을 휘둘러 압박하고는 뒤따라온 중견과 함께 몸싸움을 펼쳤다.
이를 뒤에서 바라본 1번 검투사가 플라잉 오우거즈 검투사들을 향해 외쳤다.
“상관없어! 계속 전진해! 숫자상으로 우리가 앞서니, 절대 밀리지 않아!”
하지만 그녀와 생각과 달리 플라잉 오우거즈 검투사들이 천천히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적인 우위에 있지만,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의 신체능력은 이들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원체 다들 힘과 체력이 좋은데다가 다이아나와 베르티아의 특성 탓에, 모두가 올능 +5가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웠던 7번 검투사가 대장을 향해 소리쳤다.
“대장 안 되겠어! 이대로라면 철교 전부를 갓즈나이츠에 내어주어야 해!”
1번 검투사가 이를 잘근 깨물었다.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갓즈나이츠. 생각한 이상의 강팀이야. 이대로라면 우리가 당해.’
플라잉 오우거즈는 1차전에서 갓즈나이츠를 만나, 모든 전략 요원을 가동해 데이터를 수집했다. 한 번도 격돌한 적이 없지만, 자신들보다 훨씬 강하는 점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갓즈나이츠를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한 분석으로 약점을 파악한 후, 이를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 갓즈나이츠의 데이터를 구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버릇이나 무술의 유형 같은 것은 경기 장면을 보며 파악할 수 있었지만, 능력치 데이터는 어떤 팀에 문의해도 얻어낼 수가 없었다.
모두 유망주들이라 나날이 신체능력이 발전하는데다가, 결정적으로는 소속 검투사를 절대 외부로 판매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속팀이 해당 검투사를 판매할 때에는 구매를 신청하는 타 팀에게 신체테스트로 얻은 능력치 정보를 제공하게 되어있는데, 갓즈나이츠는 외부에 판매할 일도 없으니, 검투사 능력치 자료를 다른 팀에 제공할 필요가 없었다.
즉 능력치 면은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버텨야 해! 평지로 나가면 우리는 끝장이야!”
1번 검투사는 철교를 지키는 전략을 계속 유지해 나갔다. 갓즈나이츠의 최대 약점은 방어에 유리한 홈그라운드였다. 이 철교만 지키면 상대 팀은 위험한 점프 도강을 시도해야 하기에 공격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잊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신출내기라며 도강을 하도록 내버려둔 리자였다.
“뭐야? 나는 아주 무시해 버리네.”
리자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마크맨이 올 줄 알고 단단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영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필립이 지금쯤 보모 엘프와 함께 자신의 경기장면을 보고 있을 텐데, 이런 무력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훗날 필립이 자라났을 때, 자랑할 만한 활약을 해야 했다.
그녀가 허리춤 뒤에 꽂아놓은 두 개의 비도를 꺼내 양손에 몰래 하나씩 움켜쥐었다. 오지 않으면 오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자. 그럼 가볼까.’
리자가 서서히 플라잉 오우거즈 본진 쪽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 후미인 4번 검투사가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막으러 다가오면 활약할 기회가 생기니 그도 좋은 일이었다.
자리에 멈춰 선 리자가 선봉으로 있는 12번 검투사의 뒤통수를 보고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정신없이 라피네를 막느라 전혀 뒤를 돌아보지 않을뿐더러, 자신을 종종 감시하는 4번 검투사와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4번 검투사가 다시 본진의 전투에 시선을 돌리자, 바로 오른쪽 손목을 강하게 튕겼다.
휘이익!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12번 검투사가 어이가 없다는 양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후방 공격에 자신이 당했으니, 팀 킬로 착각한 한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12번 검투사의 헬멧 뒤를 비도가 강타하고 튕겨 나가는 모습을 똑똑히 본, 1번 검투사가 황급히 리자를 향해 돌아섰다.
지금 자신들을 뒤에서 공격할 만한 자는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2개의 비도로 저글링을 하며 노는 리자를 바라보고는 12번 검투사에게 소리쳤다.
“가서 마크해! 저 개조인간. 비도를 다룰 줄 알아!”
그녀도 비도가 튕기는 장면을 보았기에 바로 방패를 전면에 세우고는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검투 경기에서는 투척 무기를 다루거나, 궁을 쓰는 프리롤을 가장 위험한 검투사로 분류하고 있었다.
가만히 놔두다가는 끊임없이 원거리 공격을 날리며 후방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루키라도 이 먼 거리에서 단번에 급소를 맞출 수 있는 능력자라면 반드시 마크해야 했다.
‘후후. 오는군.’
리자가 비도 하나를 떠 뽑은 후, 허리에 찬 검을 살짝 뽑아냈다. 경기장 안에 쏟아지는 햇살로 예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4번 검투사는 보지 못했다. 코등이에 드러난 검면이 가려져 있던 탓이다.
그녀는 비도를 만지작거리더니 4번 검투사가 지척에 이르자 양팔을 휘저어 날렸다.
깡. 쾅. 끼이익.
순식간에 벌어진 둘의 일전. 리자가 어느새 뽑아든 검을 하늘에 번쩍 들어올린 체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4번 검투사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경악한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신체를 허물어뜨렸다.
그녀는 리자가 던진 두 개의 단검이 머리와 하체 쪽을 향함을 보고 방패와 한손검을 이용해 막았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오는 발도술에는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범석이 최근에 들고 나온 기술이 리자의 손에서 펼쳐지리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고, 완성도와 스피드 또한 그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던 탓이다.
4번 검투사는 리자를 신출내기라고 무시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몸을 경직시켜나갔다.
– 대단합니다. 리자 검투사. 경기 초반 비도술과 발도술로 두 명의 플라잉 오우거즈 검투사를 쓰러뜨렸습니다. 정말 갓 프로검투계에 진출한 루키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 그렇습니다. 이로써 이번 라운드는 끝이 났다고 할 수 있겠군요. 저 갓즈나이츠를 상대로 2명이 빈 상태에서 어떻게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중계진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플라잉 오우거즈의 진형이 철저히 무너져내렸다. 리자를 막기 위해 한 명의 마크맨이 더 투입되자마자 힘에서 현격히 밀린 플라잉 오우거즈의 검투사들이 범석을 필두로 한 갓즈나이츠 본진에 철교를 완전히 내어준 탓이다. 그렇다면 이제 광활한 평지. 수적인 면과 전력에서 우위에 있던 갓즈나이츠는 물을 만난 고기 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 여기서 경기를 끝내자!”
등번호 10번 검투사를 단번에 제압한 범석이 후미 2번 검투사가 지키는 1번 검투사를 향해 내달렸다. 비도술이 뛰어난 리자가 있어서 안심되지만, 뜀새 전략을 취하면 좀 귀찮아졌다. 승격 토너먼트가 1차전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될 수 있으면 빨리 경기를 끝내 체력을 보존해야 했다.
“막아!”
범석은 1번 검투사의 명령에 자신을 가로막는 2번 검투사를 향해 힘껏 창으로 내리쳤다. 워낙 강맹한 힘이 들어가 방패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튕겼지만, 그녀는 대장을 지키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앞길을 막아섰다. 지금 1번 검투사를 지킬 검투사는 그녀뿐이었다.
이때 라피네와 함께 6번 검투사를 쓰러뜨린 샤일라가 범석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2번 검투사를 공격했다. 거검과 긴 창이 허공을 수놓으며 휘둘러지는 모습이 가히 볼만했지만, 2번 검투사로서는 몸이 떨릴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갓즈나이츠의 핵심급 검투사 둘을 홀로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젖히고는 대장을 향해 외쳤다.
“대장. 도망가요!”
같은 생각이었던 1번 검투사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지만, 결코 도망갈 수가 없었다. 리자가 바로 뒤에서 그녀의 퇴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는 수없이 1번 검투사는 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비도를 잘 다루기에 함부로 등을 보일 수는 없었다.
뒤로 돌아서는 즉시 비도가 날아올 것이 빤했던 탓이다. 뜀새의 역할은 바로 리자를 쓰러뜨린 이후여야 했다.
“비켜욧!”
“너 같으며 비키겠어!”
검을 맞부딪친 리자가 몸을 밀착시키며 1번 검투사를 압박했다. 하지만 결코 무리하게 그녀를 쓰러뜨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사방에서 동료들이 플라잉 오우거즈 검투사를 해치우는 상황에서, 굳이 모험을 걸 이유가 없었다.
이대로 1번 검투사를 붙잡아둔 후에, 앞으로 합류할 동료와 함께 쓰러뜨리는 편이 더욱 효과적이었다.
“리자! 잘했어!”
2번 검투사를 거꾸러트린 범석이 큰 소리로 리자를 칭찬했다. 그녀가 1번 검투사에게 패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안전하게 마크만 하는 편이 옳았다. 그는 곧 샤일라와 함께 1번 검투사에게 다가가 연합 공격을 시작했다.
“이얏!”
번뜩이는 창날과 거검이 1번 검투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3명의 적에게 둘러싸인 그녀는 사력을 다해 막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바로 리자의 검에 목 부분이 베이고는 그대로 차디찬 바닥에 쓰러졌다.
우와아아!
동시에 터져 나오는 관중의 함성. 1라운드를 속 시원하게 승리하자 열광에 휩싸인 것이다. 아무리 갓즈나이츠가 강팀이라고는 하지만, 승부의 향방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실수해 경기 초반 상대에게 당하는 날이면 어렵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려스럽게도 이번 경기에는 리자라는 루키가 주력으로 참가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콜로세움을 찾은 홈팬들은 걱정이 여간 아니었다.
그녀로 말미암아 1라운드에서 갓즈나이츠게 크게 고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얘기가 달랐다. 신출내기라고 무시했던 리자가 출중한 비도술과 검술로 킬포인트 3점을 올리는 쾌거를 올리며 갓즈나이츠의 승리에 크게 일조한 것이다.
이미 팬들의 뇌리에는 리자라는 이름이 선명히 각인되고 있었다.
“리자! 아주 잘했다! 1라운드는 네가 MVP다!”
“멋지다 리자! 다음에도 지금처럼만 뛰어라!”
팬들의 환호를 들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리자가 범석을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데뷔전을 훌륭히 치렀으니, 그와 필립 앞에 떳떳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에고 술먹고 늦게 들어왔더니, 정신이 없네요. 글도 잘 안써지고요. ㅠㅠ. 몸도 약간 괜찮은 보여 과음을 했더니……… ㅠㅠ 덕분에 좀 늦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