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61
363화
“마가렛! 나 왔다! 아직 괜찮지!”
고함을 내지며 달려나간 범석이 마가렛의 플라잉카로 다가갔다. 그의 눈에 비친 창가 너머의 광경은 생각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마땅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마가렛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추락 사고치고는 차체가 멀쩡한 것도 이상해 보였다.
반들반들한 차문을 손으로 터치한 범석의 뒤로 몇몇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오랜만이군.”
많이 들어본 목소리에 범석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바로 루카스회장이었는데, 그 뒤로 검은 양복의 사내가 레이저건을 겨눈 채 서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범석이 급히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라지만 총보다는 빠를 수 없는 데다가, 한 사내가 마가렛을 붙잡은 채로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버, 범석님. 미안해요. 흑흑.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불러냈었어요. 흑흑.”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마가렛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충분히 이해한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저리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하니, 겁이 날만도 했다.
그가 루카스를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다봤다.
“루카스 회장님. 이거 너무 바닥까지 추락하신 것 아닙니까? 워낙 치졸한 짓이라 이거 상상도 못했습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네만, 워낙 뚜껑이 열려서 말일세. 자세히 조사해 봤더니, 자네가 이 년과 짜고 우리 흑사회에 아주 심하게 엿먹였더군.”
범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가렛이 워낙 출중한 해킹실력을 갖추고 있어 발각되지 않을 줄 알았더니, 이거 오산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해킹을 통해 정보입수 자체를 하지 않고 있어, 흑사회에서 알아챌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는 일단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으음. 그렇습니까? 저희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전 영문을 알 수 없군요.”
“발뺌하지 말게. 이미 여기 있는 마가렛 양이 다 실토했네. 총을 들이댔더니, 아주 술술 읊더군.”
범석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거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연약한 여인에게 그런 협박을 하시다니요. 회장님답지 않은데요.”
“그럼 나다운 것이 뭔가?”
범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뭐랄까? 신사적이고 점잖은……. 뭐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네가 단단히 착각한 것이네. 내가 이 자리에 올라서까지 무슨 짓을 한 줄 안다면 절대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걸세.”
“아. 하긴 그렇겠군요. 평범하고 선량한 기업 회장이 이런 인질극을 벌일 리가 만무하겠죠.”
“후후후. 평범하고 선량한 기업 회장이 있으려나 모르겠군. 대게는 다 나와 비슷하다네.”
“쩝 뭐. 그렇기는 하겠네요. 그런데 왜 이런 일에 직접 회장님께서 나서십니까? 조용히 아랫것들을 시키면 되는데 말이죠.”
루카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워낙 중요하고 민감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네. 또 자칫 아랫것들만 보냈다가 자네의 꼬임에 빠지면 큰일이고 말일세. 범석군 자네도 나름 부호가 아닌가?”
범석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정말 그만 없었으면, 뒤에서 총구를 겨누는 사내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다. 대략 두당 수천만 크랑씩만 준다고 해도 다들 넘어왔을지 몰랐다.
“참나 벼룩의 간을 달고 사시나. 회장이라는 분이 그리 겁이 많아서야…….”
“후후. 확실히 하자면 어쩔 수 없지.”
“뭐. 좋습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왔다면 볼 장 다 본 것으로 보이는데, 저와 마가렛을 이제 어쩌실 요량이십니까? 설마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제거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루카스가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글쎄. 특별히 반항만 하지 않는다면 당장에 죽이지는 않을 걸세. 지금은 자네들을 데리고 어딘가 갈 곳이 있어서 말일세.”
“오호? 그럼 특정 조건 하에서는 풀어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으음. 전혀. 이번 위기를 피하려고 자네가 거짓을 늘어놓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절대로 못 풀어주지.”
그 말에 범석이 살짝 마른침을 삼켰다. 평생 자신을 가둬놓은 수는 없으니, 결국 죽이겠다는 뜻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루카스는 자신을 죽일 최적의 장소로 끌고 가려는 듯 보였다. 교통관재국에 서버에 자신의 플라잉 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죽였다가는 대번 타살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총기 사용은 언제나 흔적이 남던 까닭이다.
‘이거 암만 봐도 제대로 걸렸는데……. 이거 빠져나가기 쉽지 않겠어.’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살폈다. 지금 총기를 든 사내는 총 8명. 여기에 마가렛까지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암만 봐도 이곳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듯 보였다. 지금 최선의 방법은 루카스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척하며 기회를 엿보아 탈출하는 일이었다.
“뭐. 그래도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낫겠군요.”
“그렇지. 역시 자네는 머리가 잘 돌아가서 마음에 들어. 우리와 적대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꽤 친해졌을 터인데 말이야. 정말 안타까워. 쯧쯧쯧.”
“하하하. 저도 루카스 회장님의 이런 야비한 성격이 아주 마음이 듭니다. 정말 레인보우 사태 때의 일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조심하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
“후후. 그런가? 하지만 지난 간 일은 어쩔 수 없는게지.”
“물론입니다. 바닥에 엎어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루카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은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쓸데없는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지. 해 지기 전에 제법 할 일이 많거든.”
“전 별로 없는데요.”
“후후. 하긴 자네로서는 할 일이 별로 없겠지.”
이 말을 하고 난 루카스가 수하들을 시켜 범석의 품을 뒤져 전자수첩을 거둬들인 후 마가렛과 함께 타고 온 플라잉 카에 탑승하게 했다. 그리고 바로 출발시켜 어디론 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총 다섯이라…….’
차 안에서 주변을 둘러본 범석이 난감한 기색을 얼굴에 새겼다. 현재 그의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은 총 여섯. 그 자신과 총을 겨누고 있는 넷. 그리고 플라잉 카 컨트럴 박스를 조작하고는 있는 정체불명의 시스템 엔지니어 하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을 포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탈출할 확률이 훨씬 높음에도 불과하고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얘기는 우연한 사고로 꾸며 자신을 죽이겠다는 의지표명이었다. 포박을 하면 몸에 상처 자국이 남기에 타살의 근거가 되었다.
‘쳇. 일이 단단히 꼬였군. 잘못하면 여기서 인생 끝이겠는데.’
마음 같아서는 이들 모두를 제압하고 싶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네 개의 총구를 동시에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먼저 출발한 앞차에는 마가렛이 있었다. 일단은 두고 보면서 다른 방도를 찾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그가 전면에 있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어이. 거기 이름이 뭐지?”
그 사내가 총구를 치들며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해라. 여차하면 바로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줄 테니까.”
“아니 뭘 그리 정색해. 어차피 너희는 총을 들고 있고, 나는 맨손인데. 난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동료와 시선을 마주한 그가 다시 범석을 바라봤다.
“내 이름을 알아서 뭣하게?”
“그냥 통성명하고 얘기나 해보자는 거지. 왜 나에게 이름을 대기는 껄끄러운가 보지?”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껄끄럽긴 난 마킨이라고 한다. 이제 됐나?”
“후후. 아직은 아니지. 아직 긴요한 대화가 남아있으니까.”
“그건 들어보나 마나 아닐까? 너를 풀어주면 막대한 돈을 지급하겠다는 얘기가 빤하겠지. 안 그래?”
“오. 잘 아네. 혹시 관심 없어?”
“없다. 어차피 이번 일만 끝나면 평생을 펑펑 쓰고도 남을 돈이 우리 손에 쥐어진다. 즉 네깟 놈의 돈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범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 돈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 세배로 주지. 어때?”
“3배씩이나? 그럼 1억 크랑을 준다는 말인가?”
범석의 표정에 살짝 곤란한 기운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범석이라도 1억 크랑이라면 무척 큰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차량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다섯이니 최소한 5억 크랑이나 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목숨보다는 절대 귀하지 않은 돈이었다.
“후후. 물론이지. 그리 나를 도와 마가렛을 구해내 준다면 여기에 5,000만 크랑씩을 더 얹어주지.”
“오. 그래? 이거 관심이 가는걸. 하지만 어쩌지?”
“뭐가?”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내 목숨보다는 귀하지 않거든. 우리가 만약 너를 탈출시켜준다면 평생을 흑사회 애들에게 쫓겨 다니게 된다. 즉 네가 준다는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골로 간다는 얘기지. 그런데 계획대로 나간다면 우리는 모두 마음 편히 한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주머니도 나름 풍족할 테고 말이야.”
범석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좀 멍청한 놈들이었으면 대번에 설득할 수도 있었는데, 이거 제법 조심성도 있고 머리를 굴릴 줄도 알았다. 하지만 덕분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 성과가 있었다. ‘혹사회 애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외부인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으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너희 흑사회 요원들 아니지?”
“그래. 아니다. 그건 왜 묻지?”
“혹시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루카스회장이 이런 비밀 작업을 수행하는 너희를 살려둘까? 막말로 흑사회 요원들을 쓰면 더욱 안전하게 일을 마칠 수 있는데, 굳이 외부인인 너희를 고용할 이유가 없잖아?”
“후후.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루카스 회장은 우리를 절대 건드리지 못한다. 만약 허튼수작을 펼쳤다가는 지금 녹화하고는 있는 영상이 바로 경찰로 넘어갈 테니까.”
속으로 뜨끔했지만, 범석이 바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호오. 이거 영상까지 있어? 그럼 흑사회에서는 너희를 더더욱 죽여야 하잖아. 너희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들은 밑을 못 닦으면 화장실에서 안 나와. 휴지통을 뒤져 재활용을 하든 변기물로 헹구든 어쨌든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오려고 하지.”
마킨이 총구 위에 있는 카메라와 안쪽 포켓에 있는 전자수첩을 가리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지금 이 영상은 흑사회 놈들도 알 수 없는 장소로 전송되는데, 내가 일정 시간 동안 접속하지 않는다면 바로 경찰로 넘어가게 된다. 게다가 루카스 회장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지. 절대 흑사회는 허튼수작 못 부린다.”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며 좌석에 등을 기댔다.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 설득이 안 된다면 더는 가능성이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이들이 탑승한 플라잉 카가 리마 시티 외곽의 큰 호수에 안착했다. 쿠론 댐을 건설하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인데, 주변이 산지로 뒤덮여 있어 무척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범석과 마가렛은 곧 루카스와 총기를 든 사내들에게 이끌려 한 허름한 건물로 향했다.
“자. 들어가시지.”
마킨의 협박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선 범석이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혹시나 은폐할 장소가 있나 살피기 위해서였다. 일단 총구만 피할 수 있다면 기회를 봐 놈들을 제거하거나, 탈출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냥 문을 열고 안으로 숨어들어 가?’
범석이 지나는 어두운 복도에는 무수히 많은 문이 나열되어 있었다. 한 번 노려볼 만하지만, 문마다 전자도어록이 달려있었기에, 제대로 열릴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모두가 철재로 되어 있어,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여기다. 안으로 들어가라.”
마킨이 한 철재 문을 열더니, 범석과 마가렛을 보챘다. 마지막까지 탈출의 기회를 잡지 못한 그는 표정이 가히 볼만할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암만 봐도 지금 이문에 들어서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든 탓이다. 하지만 8개의 총구가 앞뒤에서 겨누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곧 긴 한숨을 쉬고는 그녀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섰다.
범석이 들어간 모습을 본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루카스를 바라보며 한껏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저희가 할 일은 다 끝냈습니다. 약속한 돈은 언제 주실 겁니까?”
“그건 염려하지 말게. 이미 준비해놨으니까.”
“그래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오른쪽 방에 현금으로 준비해놨네. 좀 들고가기 무겁겠지만, 그편이 우리나 자네들로서는 더 좋겠지.”
피식 웃은 마킨이 총구를 루카스회장에게 겨눈 채로 동료에게 손짓했다. 한 번 들어가서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곧 몇몇이 방에 들어가더니 잔뜩 현금이 담겨있는 여행용 가방을 몇 개를 꺼내 들고 나왔다.
“확실해. 이 정도면 충분히 약속한 금액은 되고도 남아.”
희미하게 미소 지은 루카스가 말했다.
“아마 그럴걸세. 혹여 실수로 지폐 몇 장 덜 들어갈까 봐 내가 100만 크랑씩 더 넣었으니까.”
마킨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 그렇습니까? 이거 너무 감사한대요.”
“감사하면 오늘 일을 평생 잊고 살게.”
“물론입니다. 저희는 프로. 고객에 대한 정보는 입 밖으로 절대 발설하지 않습니다.”
“그것참 고맙군. 그럼 빨리 가보게. 자네들은 할 일이 모두 끝났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마킨이 루카스에게 총구를 겨눈 채로, 천천히 뒷걸음질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건물 앞에 세워놓고 있었던 자신들의 승합차량에 현금을 싣고 동료들을 태웠다.
먼저 들어간 동료 중 한 푸른색 머리칼의 사내가 여전히 밖에 있는 마킨에게 소리쳤다.
“야. 빨리 타! 돌아가서 한잔해야지.”
그가 품 안에서 전자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기다려. 잠시 전화할 곳이 있어서.”
“아니 그건 가면서 하면 되지…….”
푸른색 머리칼의 사내가 말하다 말고 차창에 걸쳐놓은 팔뚝을 황급히 뺐다. 자신이 조작하지도 않았는데, 절로 유리창이 닫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래에는 저절로 차량이 하늘로 치솟더니, 마킨을 두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전자수첩을 열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루카스회장님. 모두 처리했습니다. 말씀드린 장소에 승합차가 추락사고를 일으킬 테니, 동료 요원들을 급히 출동시키시기 바랍니다. 혹여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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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늦었습니다. 부모님 생신이라 조카들이 와서 저녁때까지 죽치는 바람에요. 휴~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