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62
364화
방안에 들어선 범석이 묘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넓었는데, 콘크리트 바닥과 벽면, 그리고 겨우 고양이 한 마리가 드나 들을 수 있는 환기구와 천장의 LED등 이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방이었다.
‘쳇. 좀생이 같으니라고. 최소한 의자 하나 정도는 넣어놔야 할 것 아니야. 어차피 나중에 죽일 놈이라 이거지.’
인상을 찌푸린 범석이 정면에 벽면으로 걸어가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 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마가렛에게 말했다.
“마가렛. 이쪽으로 와라.”
여전히 송구스러운지 그녀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했다.
“미, 미안해요. 저들이 총으로 위협…….”
“알아. 다 이해하니까. 여기 와서 앉아.”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나를 부른 일로 뭐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의 눈치를 가만히 살핀 마가렛이 천천히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이어지는 약간의 정적. 그녀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범, 범석님.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뭐. 죽겠지.”
얼굴을 새하얗게 만든 그녀가 몸을 파르르 떨어댔다. 그 어떤 인간이든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는 없었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범석님까지 이런 일을 당하게 되어서요.”
“됐다. 그만해라. 또 미안하다. 죄송하다. 한 마디만 더하면 입을 꿰매버린다.”
“죄, 죄송해요…….”
범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야! 그딴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 미, 미안해요…….”
“진짜. 하지 말랬지!”
마가렛이 입을 꾹 다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그의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슬그머니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잡힌 거냐?”
“그, 그게. 평상시대로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웬 괴한들이 나타나 저를 강제로 납치했어요. 그리고 그 산자락으로 데려가 범석님을 불러내라고 협박했고요.”
“그 괴한이 조금 전 그 자식들이냐?”
“네.”
“혹시 그들 외에는 다른 놈들은 없었어?”
“잘 모르겠지만, 제가 본 자들은 그들이 전부였어요.”
그건 범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문을 나선 후, 루카스회장을 포함한 9명을 해치우면 된다는 뜻이었다. 모두 총기를 들어 극히 위험하지만, 여기서 더 적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도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보지 못했다 싶을 뿐이지, 적은 더 많을 수가 있었다.
“으음. 그래?”
“왜요? 혹시 탈출할 방도를 아시나요?”
범석이 그녀의 입을 막은 후, 주변을 다시 훑어보았다. 혹시 도청기구가 방 안에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방금 살펴보기는 했지만, 재차 확인한다고 문젯거리가 될 것은 없었다. 그는 벽면은 물론 환기구 안까지 세심하게 살핀 후 조용히 목소리로 말했다.
“응. 한 가지 있다.”
“어떻게요?”
“이 방안에는 우리를 감시하기 위한 CCTV카메라나 도청장치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만약 놈들이 식사를 가져오거나, 우리를 살피기 위해서 들어온다면 단번에 제압해 탈출한다.”
“안 들어오면요?”
“그럼 들어오게 해야지. 문을 계속 시끄럽게 두드리면, 밖에서 감시하고 있는 놈들이 살피기 위해서 들어올 거다.”
“과연 그럴까요?”
“후후. 사람들은 총기를 들면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하거든. 특히나 시끄러워서 신경이 예민해지면 더욱 그렇고.”
“하지만 저들은 총을 가지고 있잖아요. 쉽게 제압할 수 있겠어요?”
“으음. 물론 어렵지. 하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낫다.”
마가렛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범석님. 혹여 저들이 우리를 안 죽일 수도 있잖아요. 차라리 기다리며 상황을 살피는 편이 어떨까요?”
“아니 저들은 우리를 반드시 죽이려 할 거다. 이런 상황에서 머뭇거리며 정말 뭣도 못해보고 죽게 된다.”
“하지만 저희를 죽인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요.”
“알아. 그래서 더 무서운 거야. 전문가들은 죽이려 할 때는 그냥 죽이지, 그런 말 따위는 안 해. 죽인다고 말할 때는 오로지 협박할 때뿐이야.”
그 말에 마가렛이 고개를 저어댔다.
“그렇지만, 정말 죽이려고 했다면 벌써 죽였겠죠. 괜히 저희를 이 안에 가둬놓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완전 범죄를 노리기 위해서일 거다. 우리가 행방불명되거나 타살을 당하면, 제일 의심받는 작자들이 흑사회니 어떻게든 사고사로 꾸미고 싶을 거다.”
“사고사요? 그게 쉬울까요?”
자리에서 일어난 범석이 문으로 다가가 그 구조를 살피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튼튼한 강철재질에 거의 완전한 밀폐형식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놈들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호수 근처지?”
“네. 그렇죠.”
“아마 여기서 우리를 익사시키려 할 거다. 그런 다음 호수에 빠뜨리면 경찰들도 감쪽같이 넘어갈 것이거든.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폐에 물이 차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까.”
“저희를 익사시키다니요? 어떻게요?”
범석이 손가락으로 환기구를 가리켰다.
“가령 저곳에서 물을 쏟아져나오는 경우지. 그럼 우리는 꼼짝없이 익사 당한다.”
말하기가 무섭게 환기구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어보니 확실히 물소리였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급히 마가렛에 다가가 말했다.
“젠장 할! 암만 봐도 바로 시작하는 모양이다.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
이윽고 환기구에서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마가렛이 범석의 품에 꼭 안겼다. 이제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꺄아아악! 어떻게 해요! 저기 물줄기가!”
“진정해.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야!”
마가렛을 떼어 놓은 범석이 흥건히 젖은 바닥을 뛰어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문을 부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전력을 다한 어깨박치기에도 문은 전혀 요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개조인간임을 감안해 아주 튼튼하게 철재 문을 제작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젠장! 미치겠네!’
범석은 안되는 줄 빤히 알면서 계속해서 문을 향해 몸 박치기를 했다. 놈들의 의도대로 순순히 죽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몸에 멍을 들게 한다면 최소한 타살 의혹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버, 범석님. 왜요? 안 열려요?”
“그래. 안된다.”
마가렛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그, 그럼 저희는 이대로 익사해 죽는 건가요?”
짜증이 난다는 듯 범석이 머리를 마구 긁적거렸다.
“걱정하지 마라. 최소한 익사는 아닐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자살하자는 얘기인가요?”
“자살도 아니야! 이 방에서는 절대 안 죽어!”
“정말요? 그럼 누가 이 방문을 열어준다는 뜻인가요? 범석님 혼자 오신 것 아니었어요?”
범석이 고개를 흔들어댔다. 마가렛에게 미안한 얘기였지만, 도움을 줄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약간 미심쩍기는 했는데, 누군가를 데려올 생각은 하지 못했다. 중요한 자료가 있다고 해서 경찰에도 연락을 취하지 못했고, 팀원들은 내일 있을 승격토너먼트 3차전 때문에 훈련에 매진하게 했다. 그리고 마가렛을 신뢰했기에, 설마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 나 혼자다.”
“그럼 누가 문을 열어준다는 뜻인가요?”
“그건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돼. 그런데 너 수영칠 수 있어?”
지금 와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지만, 마가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운동 삼아 잠시 배운 적이 있었던 것이다.
“네. 약간요. 하지만 잘하지는 못해요.”
“상관없어. 벽 잡고 물에 뜰 정도면 되니까.”
“그 정도면 가능해요.”
“그럼 됐다.”
범석이 물이 쏟아져 내리는 환기구와 철재 문을 바라보며 갖은 오만상을 다 썼다.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 막대한 재산을 허공에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기원의 응답’이라는 특성을 발동하고 있었다. 그 기간은 대략 2년 정도. 조금만 있으면 월드복권에 당첨되어 30억 크랑이라는 거금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이득을 저 문 하나 여는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돈이 목숨보다 중할 수는 없지만, 그로서는 너무 억울 수밖에 없었다.
‘젠장! 확실히 목숨이라도 보장받는다면 그래도 덜 억울할 것 아니야!’
‘기원의 응답’은 사기적인 특성답게, 수많은 페널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월드복권 몇 회 1등 당첨’처럼 소원이 아주 구체적이야 하고, 또 하나가 통상적인 물리적 법칙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살려주세요.’ 라든지 ‘어디 어디로 공간이동을 시켜달라는 것’과 같은 소원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그는 30억의 복권 당첨금을 저 문을 여는 것과 맞바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죽는 것도다 나으니까. 하여간 루카스 회장. 이 빚은 나중에 단단히 갚아주마!’
10분쯤 흘렀을까? 방 안의 물이 턱까지 차올랐다. 키가 작은 마가렛은 벌써 한계에 도달했는지, 벽면을 잡은 채로 물장구를 쳐댔다. 하지만 범석은 아직도 ‘기원의 응답’을 발동하지 않고 있었다. 좀 더 물이 차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문밖에는 감시하는 놈들이 있을 거야. 이놈들을 확실히 해치우기 위해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기다려야 해.’
한 편 문밖에서 보초를 서던 마킨이 문틈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물줄기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10분 전부터 위쪽 틈에서도 어느 정도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곧 한계에 다다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잠시 기다리다가 물을 빼고는, 안에 있는 시신을 끌고 나와 호숫가에 빠뜨리면 오늘 작업은 끝이었다.
“후후후. 이거 너무 쉬운걸. 이런 간단한 일로, 흑사회 지원 조직의 간부로 올라서게 된다니, 정말 운이 좋았어.”
흑사회는 거대한 조직을 거느리고 있지만, 실상 조직원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협력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마킨도 그 중 하나였다. 물론 일반 회원들보다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는 있지만, 부수적인 이득도 많았고 간부급에 오르면 흑사회의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나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기에 다들 조직에 충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마킨에게 최근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흑사회의 주요 요인 중 한 명인 루카스회장이 긴밀한 제의를 해왔던 것이다. 외부인으로 구성된 납치 조에 끼어 범석과 마가렛을 잡은 후 그들을 포함한 관련자 모두를 제거하는 일이었는데, 좀 양심에 걸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였다.
쉽게 상위급 간부가 될 수 있을뿐더러, 막대한 공작금을 받게 되니 그로서는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잘한 일이야. 내 일생에 이런 기회는 흔치 찾아오지 않아. 흐흐흐.’
상념에 젖어 있던 마킨이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곧바로 허리를 푹 숙였다. 루카스 회장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작업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있지만, 실상 기밀이 새어나가서 안 되는 이곳에는 자신과 회장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루카스가 지척까지 이르자 큰 소리로 인사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물에 젖은 밑창을 살핀 루카스가 조용히 그를 향해 말했다.
“일은 어떻게 되어가나?”
“아주 잘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제 한 20분만 기다리고 있다가 시신을 꺼내 호수에 버리면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금 전 놈들이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댔습니다. 아무래도 약간의 멍 자국은 남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점은 염려하지 말게.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 자네는 내가 시키는 일만 완벽히 처리하면 돼.”
“네. 그렇다면 모든 일이 끝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건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나는 이만 가볼 테니, 모든 일을 처리하면 내게 찾아오게.”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그럼 잘 부탁하겠네.”
발걸음을 돌린 루카스가 다시 복도를 걸었다.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보아하니 일도 잘 처리되고 있는 것 같았고, 빨리 돌아가 알리바이를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던 그의 표정은 곧이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과 함께 깨끗이 지워졌다. 범석과 마가렛을 가둔 문이 터짐과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격렬한 물기둥이 복도를 타고 자신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루카스가 급히 뛰었지만, 바로 격류에 휩쓸리고는 하염없이 계단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악!”
소리를 내지른 루카스가 유수 속 지면 아래까지 가라앉아, 바닥을 굴렀다. 계단 난간을 힘껏 부여잡아봤지만, 엄청난 수압으로 이내 놓치고 계속해서 물길을 따라 흘러내려 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계단 쪽 창문을 꿰뚫고 건물 지면으로 추락했다. 다행히 높지 않아 그다지 충격은 받지 않았지만, 루카스의 몸 이곳저곳은 찢어져서 피를 흘려대고 있었다. 방금 뚫고 나온 창문 유리에 살결을 베인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잠시 그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건물을 바라봤다. 혹여 범석이 빠져나왔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가 알아주는 뛰어난 검투사였기에, 전투능력은 상당했다. 아무리 총기가 있다지만, 마킨과 자신만으로 막기란 상당히 어려운 면이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하루 종일 일만 했습니다. 여름 맞이 대공사 때문에요. 하하하. 작년에 비 땜시 천장이 좀 세서 옥상에다 방수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또 태풍에 대비해 옥상에 있는 창고 위 짐 정리와 겨울및 봄옷 정리도 했습니다. 에고에고 삭신이 쑤시네요.
그럼 즐거운 여름 맞이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