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63
365화
방 안에 물이 모두 빠져나가자, 마가렛을 안고 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범석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여전히 환기구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지만, 파괴한 입구를 통해 계속 밖으로 흘러나가기에 신발 밑창만 겨우 적실 뿐이었다. 그는 마가렛을 뒤로 세우고는 복도 쪽에 고개를 내밀어 적이 있는지 살폈다.
“하여간 다 쓸어갔군.”
꽤 넓은 방안을 가득 메운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으니,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몇 명이 되었든지 간에 지금쯤 골로 갔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범석이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었다.
‘이상한데, 이쯤 소란스러웠으면 몰려왔어도 진작 왔어야 하는데.’
계단까지 도착해 아래를 내려다본 범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9명 모두가 문앞을 감시하지는 않았을 터, 최소한 몇몇은 자신과 마가렛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러 올라왔어야 옳았다. 그러나 지금 건물은 너무도 조용했다.
그가 마가렛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마가렛. 잘 따라와야 한다.”
범석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놈들이 올라오면 기습해 일거에 해치우려 했지만,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 이대로 평생 여기에 머물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니, 일단 내려는 가봐야 했다.
그리고 2층에 도착할 무렵. 범석은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마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물살에 휩쓸릴 때 어딘가 크게 부딪힌 것으로 보였다.
그는 마킨의 목에 손을 댔다.
‘죽었군.’
동맥부위에 맥박이 느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망으로 예상되었다. 그 강한 수압을 정면에서 받았으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범석은 고개를 흔들고는 놈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참나. 멀쩡한 게 없네.’
마킨의 품 안에서 나온 전자기기들은 모두 고장이 난 상태였다. 안타까운 사실은 전자수첩과 레이저 건도 못 쓰는 상태라는 것이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물품은 외부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통신기구와 적과 싸울 수 있는 무기였다.
“뭐. 어쩔 수 없지. 마가렛. 그만 가자.”
“네.”
자리에 일어선 범석이 다시금 계단을 내려갔다. 얻을 물품도 상황에서 이곳에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1층에 도착할 무렵. 그와 마가렛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자신들 차량에 건물 밖 마당에 고스란히 주차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전자수첩이 없어 어찌 되나 걱정되었는데, 이로써 만사 해결이었다. 차에 탑승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고, 플라잉 카에는 네트워크 기기가 내장되어 있어 외부와의 통신이 가능했다.
로비에서 밖을 살핀 범석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당에도 아무도 없었던 탓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밖을 내다본 마가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아무도 안 보여요.”
“그런데 다들 어디 간 거지?”
“글쎄요. 혹시 도심으로 물건을 사러 간 것 아닐까요?”
범석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지만, 오늘 같은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오늘 놈들은 자신들을 완벽하게 죽이기 위해, 작업까지 했다. 여유롭게 쇼핑이나 하러 다닐 때가 아니었다.
“아닐 듯 보이는데……. 지금은 쇼핑할 분위기가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겠네요. 그럼 다들 어디 간 거죠?”
“글쎄. 나도 그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때 하늘 저 멀리에서 십여 대의 승합용 플라잉 카가 날아오고 있었다. 현재 남아있을 적의 수는 루카스회장을 비롯한 8명. 한 사람이 한 대씩의 차량을 타고 온다고 해도 2대가 많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리가 아니라면 지원군임이 확실했다.
범석이 다급히 마가렛의 손목을 잡고 자신들 차량으로 달려갔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지금 아니면 탈출할 시간이 없었다.
“꼼짝 마!”
차량을 향해 달리던 범석이 멈칫 서고는 마가렛의 등 뒤에 세웠다. 차 뒤에서 갑자기 루카스가 튀어나오더니 레이저 건을 겨누고 있었던 탓이다. 그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플라잉 카 무리를 힐끔 바라보고는 말했다.
“루카스회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보아하니 총 한번 다뤄보지 못한 샌님 같은데요.”
루카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내 취미가 사냥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명사수로 통하고 있지.”
“하하하. 그렇습니까? 저와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군요. 저도 사냥을 무척 즐깁니다. 다만 사냥물과 무기는 다르지만요…….”
“자네. 아직도 여유인가? 지금 내 손에 들린 총이 보이지 않나?”
범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총은 위협적이지만, 정작 루카스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명사수라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뜸을 들이는 것으로 보아, 그는 직접 자신을 죽일만한 배포가 없는 듯 보였다. 마음이 약하든 아니면 아직도 완전범죄를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범석이 슬그머니 바닥에 보이는 돌을 발밑으로 가져왔다.
“보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꼼작도 안 하고 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후후. 그렇겠군. 자 그럼 이제 손도 드시게. 그럼 당분간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걸세.”
“글쎄요. 과연 그럴지 모르겠네요.”
범석이 두 팔을 올리는 척하며 힘껏 돌을 찼다. 그리고 그것은 지면을 바짝 낮게 날며 플라잉카 밑을 지나더니, 루카스회장의 발목을 그대로 강타했다.
“끄아아악!”
발목을 잡으며 바닥에 넘어진 루카스가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이에 범석이 빠르게 달려가 플라잉카 천장을 부여잡고 번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총을 든 루카스의 어깨를 발로 힘껏 밟아 잔인하게 으스러뜨렸다.
“젠장!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손실을 본 줄 알아!”
범석이 루카스가 떨어뜨린 레이저건을 집어들고는 다시 한번 그의 옆구리를 힘껏 가격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데다가 30억 크랑의 손실을 보게 한 장본인이라, 그의 손 속은 매정하기 그지없었다.
“크아악!”
공포에 질린 루카스가 신음을 내며 바닥을 기었다. 범석은 아예 끝장을 내고자 총구를 겨누었지만, 이성을 찾고 다시금 내렸다. 등 뒤에서 총을 쐈다가는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을뿐더러, 지금 근처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승합차들이 속속히 도착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가 마가렛을 향해 소리쳤다.
“마가렛. 도망쳐!”
그렇지 않아도 마가렛은 근처까지 뛰어온 상태였다. 그녀는 차문을 급히 열고 범석을 보챘다.
“범석님 타세요!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가장 먼저 허공에 도착한 승합 플라잉 카에서 총을 든 사내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던 탓이다.
“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저희 왔습니다!”
이를 으득 간 범석이 가까운 허공을 날고 있던 승합차를 향해 총을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회장님을 호명하는 것으로 보아, 흑사회 요원이 분명해 보였던 탓이다.
길게 하늘을 나는 긴 빛의 궤적. 여지없이 빗나가 버린 것이다. 범석은 투척을 제외하고는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데에는 젬병이었다.
“아래에서 총을 쏜다. 사격해!”
곧이어 수없이 빗발치는 레이저 주차된 플라잉카와 바닥에 수많은 상처 자국 남겼다. 엄패물에 숨어있던 범석이 간간이 총을 쏴댔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십여 대의 승합차가 공중에 떠있었지만, 한 대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근처에 있던 마가렛에게 총을 넘기며 말했다.
“네가 쏴라. 난 죽어도 안 맞는다.”
하지만 그녀라고 총을 쏴봤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일. 총구만 밖으로 내민 채 무턱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피슝하는 격발음과 함께 그녀가 쏜 레이저가 한 승합차의 전면 유리창을 꿰뚫었다.
“씨팔! 한 명 당했다! 뭐해 저놈들 당장에 날려버려!”
놈들의 외침을 들은 범석이 멍한 시선으로 마가렛을 바라봤다. 왠지 자신이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고 정확히 상대를 맞추는데, 자신이 쏘면 영락없이 허공을 갈랐다. 창피했는지 범석은 다시는 총을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한 차량 천장 문으로 한 사내가 상체를 내밀었다. 구경이 큰 대포 같은 무기가 어깨에 메어져 있었는데, 이를 본 그로서는 아찔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플라잉 카를 엄패물 삼아 버텼지만, 저 무기에는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범석이 마가렛을 번쩍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이곳은 산지 근처라, 조금만 달리면 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가렛 꽉 붙들어!”
“네, 넷.”
마가렛이 범석의 목줄기를 꽉 안았다. 이에 그가 전력을 다해 내달렸다. 동시에, 놈의 대포에서 강렬한 빛줄기가 뿜어졌다. 그리고 플라잉 카 전면에 강타 되더니,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젠장 할!”
강렬한 후폭풍에 휘말린 범석이 허공을 날았다. 다행히 어렵사리 착지해 계속 달릴 수는 있었지만, 등 뒤에 몇 개의 작은 금속 파편이 꽂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었다. 발목과 어깨가 부러진 루카스회장은 지금쯤 통구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온몸에 불이 붙어 날뛰는 루카스를 뒤로 한, 범석이 산기슭을 향해 힘껏 뛰어갔다.
“그래도 이만 하기가 천만다행이군.”
울창한 숲에 진입한 범석이 인근의 한 바위틈에 숨어서 등에 꽂혀 있던 파편을 뽑아냈다. 깊게 박히지는 않아 크게 다치지는 않지만, 앞으로가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산지가 제법 넓어 빠져나기가 여간 막막하지가 않은 것이다. 지금 그에게는 돈도 전자수첩도 없는 상태였다.
마가렛이 하얗게 질린 시선으로 범석을 쳐다봤다. 등 뒤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오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버, 범석님. 괜찮으세요?”
“괜찮다. 그다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저, 정말에요? 지금 피가 계속 흘러나오는데요?”
“조만간 멈출 거다. 그리고 나중에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아무 이상 없이 완쾌될 것이고.”
마가렛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말 다행이었다. 그녀는 범석이 잘못되었으면, 평생 큰 짐을 얹고 살아야 했을 터였다. 그가 위기에 빠진 이유가 자신이 루카스의 협박에 못 이겨 불러냈기 때문이다.
마가렛이 다가와서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 다행이에요. 범석님이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 몰라요.”
“훗. 걱정은 나 쉽게 안 죽는다. 날 건드릴 놈은 모르지만…….”
그녀의 등을 토닥인 범석이 흑사회 놈들이 서성거리는 건물 쪽을 바라보았다. 추적이 시작되면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놈들은 온몸에 화상을 입은 루카스회장을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함께 그 장면을 목도한 마가렛이 눈가를 닫고는 입술을 잘근 물었다.
“그 루카스 회장이라는 작자가 죽었을까요?”
“글쎄다. 병원까지 살아있으면 죽지는 않겠지. 워낙 돈이 많은 양반이니까.”
마가렛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범석이 신체개조시술을 지칭함을 모를 리가 없었다. 기억을 관장하는 일부의 뇌만 무사하면, 루카스는 새로운 신체로 재탄생될 터였다.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하죠.”
“으음. 일단 분위기를 보다가, 놈들이 계속 미적거리면 그대로 인근 인가에 가서 경찰에 신고한다. 이번 기회에 흑사회를 매장 시켜 버려야 하니까.”
“뒤쫓아오면요?”
“몇 놈 골로 보내 뒤를 쫓지 못하게 한다.”
마가렛이 다급히 그의 팔뚝을 잡았다.
“범석님. 놈들은 총을 가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여기는 숲이다. 그럼 총을 들어도 내게 못 이겨.”
과거 채플린 별장 사건을 떠올리더니 그녀가 금세 수긍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마가렛은 경제인 단체의 위성을 해킹하면서, 범석이 쟁쟁한 상대 검투사들을 숲으로 유인해 거의 유린하다시피하는 해치운 장면을 똑똑히 목도했다. 그렇지만, 오늘의 상대는 총을 든 자들이었다.
잘못하면 죽을 수 있으니, 걱정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그냥 가죠. 괜히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잖아요.”
범석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오늘 죽은 뻔한데다가 30억 크랑의 재산을 허공에 날렸다. 이대로 물러났다가는 분해 밤에 제대로 잠도 못 잘 터였다. 최소한 장애인수당을 받는 인간들을 몇 놈 늘려야 이 쭈글쭈글한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아니. 그냥 피했다가, 놈들에게 뒤를 따라 잡히면 우리가 당한다.”
“그렇지만, 범석님은 개조인간이잖아요? 보통 인간인 저들에게 잡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하지만 너도 일반 인간이잖아. 설마 네가 저 건장한 사내들보다 빠르게 산을 탈 수 있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기는 하겠죠. 하지만 범석님이 저를 업고 가시면 되잖아요.”
잠시 말문이 막힌 범석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자신이 그녀를 업고 간다면, 흑사회의 요원들보다 빠르게 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짜증 나는 이 기분을 풀 길이 없었다.
그가 바로 등에 난 작은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등에 큰 부상을 당했는데, 널 어떻게 업냐?”
“그럼. 안으시면 되잖아요.”
“너. 안는 게 얼마나 힘들 줄이나 알아? 게다가 난 부상당한 상태야. 언제 과다 출혈로 사경을 헤맬지 모른단 말이야!”
마가렛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범석을 바라봤다. 건물 쪽에서 서성대는 흑사회 요원들을 보며 비릿한 시선을 날리는 모습을 본 탓이다. 아무리 그녀가 젊다고 하더라도, 범석의 내심이 뭔지를 모를 리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흑사회도 이제 슬슬 종말을 고합니다. 아무리 봐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듯 보이는 군요. 에고 빨리 다음 편 준비해야 할 텐데, 요사이 미드에 빠져서요. ㅠㅠ.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