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67
369화
“햐앗!”
범석에게서 길게 뻗어나온 창끝이 17번 검투사의 안면을 향해 쏘여졌다. 워낙 빠른 공격에 그녀는 방패도 올릴 세도 검을 가져다 대어 막아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바로 몸을 날려 실드 차지로 밀어낸 후 연속적으로 공격을 날렸다.
“이잇!”
이를 악문 17번 검투사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부상 탓인지 창끝에는 힘이 없지만, 스피드는 지금껏 그녀가 보지 못했을 만큼 빨랐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너무 강하잖아!’
허공을 가르는 창끝에 그녀의 슈트 이곳저곳에 기스 자국이 아로새겨졌다. 방패와 검을 가져대 튕겨내고는 있지만, 반 템포 느린 행동으로 그의 공세를 적절히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덧 경직되듯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범석도 그리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마취제로 투여 통증은 없지만, 무리한 움직임으로 등이 뻐근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빨리 끝내야겠군.’
순간 범석이 몸을 바짝 낮춘 자세로 달려들더니 17번 검투사의 허리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검과 방패를 내렸지만, 부딪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방패 모서리였다. 범석의 오른손에 쥐어진 창은 역으로 들려있는 채 등 뒤에서 뾰족한 각을 세우고 있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턱을 강타당한 17번 검투사가 뒤로 넘어가며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이 그다지 뛰어난 검투사가 아니라지만, 이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쓰러질 줄은 몰랐다.
– 대단합니다! 오범석 검투사. 17번 검투사를 교묘한 동작으로 속여 쓰러뜨리다니, 그의 센스가 어디까지인지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 네. 그렇습니다. 역으로 쥔 창끝을 등 뒤에 숨긴 후, 상대를 가격하는 동작을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먼저 몸으로 치고 들어가 17번 검투사의 시선을 유도했다고는 하지만, 알아챘다면 자칫하면 자신이 당할 수도 일이거든요. 하여간 오범석 검투사의 배포는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입니다.
중계진이 멘트가 경기장 안으로 터져 나오는 가운데, 범석이 본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남들의 칭찬에 기분이 들떠 할 때가 아니었다. 이번 라운드에서 승리를 따낸다면, 승격의 팔 부 능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지금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2라운드를 갓즈나이츠가 가져가게 해야 했다.
‘후후. 리자가 아주 잘해주고 있군.’
범석이 카오스 힐즈 진형 근처에서 있는 리자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녀는 지금 비도를 오른손에 쥔 채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뿐이지만, 이로써 카오스 힐즈가 받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불시에 날아들 비도를 걱정하느라, 본진 간의 격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크맨을 보내자니, 내가 걸리겠지. 후후후.’
보통의 경기라면 리자를 잡기 위해 마크맨을 보내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17번 검투사가 어떻게 당한 줄 아는 자들이 쉬이 마크맨 전략카드를 꺼내 들 리는 없었다.
범석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리자에게 다가갔다. 가져갈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석은 그녀의 옆을 스치면서 허리춤에 꽂혀 있던 비도 두 개를 남몰래 뽑아낸 후 방패 속에 잘 갈무리했다. 비도술은 그녀만의 특기가 아니었다.
“리자 그럼 수고해라.”
얼떨결에 그를 바라본 리자가 황급히 소리쳤다.
“사형. 어디 가세요!”
“아. 반대편에서 프리롤을 뛰게.”
“저기 함께 뛰는 편이 낫지 않나요?”
“아니. 지금은 따로 떨어져서 행동하는 것이 좋아. 그러니 넌 그렇게 계속 거기에 서 있어. 정 위험하면 도망가고 말이야.”
그를 따르려던 리자가 멈춰 서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함께 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프리롤을 뛸 때의 명령주체가 범석이었으니 따라야 했다.
그녀는 다시금 카오스 힐즈의 본진을 노려보며 비도를 만지작거렸다. 가지고 나온 수량이 다섯뿐이 안 되니 최대한 아껴야 했다. 하지만 이내 두 개가 비어있음을 확인하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다섯 개였었다.
차. 차창. 쾅. 콰쾅.
철교에서 이루어지는 양 진영 간의 치열한 접전을 뒤에서 관전하던 1번 검투사가 잔뜩 긴장 어린 시선으로 리자와 범석을 번갈아 주시했다. 마크 맨을 보내지 않았기에, 한시라도 저들의 움직임을 놓치는 날이면 크게 당하는 수가 있었다.
‘상황이 너무 나빠. 다들 후방을 주시하느라 갓즈나이츠 본진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해. 이러다가는 철교를 내줄지 몰라.’
점점 뒤로 밀리는 카오스 힐즈의 본진.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범석이 접근하지 않고 자신들 우측 멀리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가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별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그가 접근할 때쯤이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었다.
1번 검투사는 이내 그에게 신경을 끄고 리자에 집중했다. 사실 범석보다 더 껄끄러운 상대라고 한다면 바로 그녀였다. 워낙 비도를 잘 던져 약간의 틈만 보여도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때 뜻하지 않은 우측에서 비도 하나가 날아와 14번 검투사의 헬멧 옆을 그대로 강타하고는 튕겨져나갔다.
“도대체 누구야!”
14번 검투사가 몸을 허물어뜨리자 1번 검투사가 급히 범석을 쏘아봤다. 비도가 튕겨 나간 형태로 보아, 진원지는 바로 그였다. 그녀는 한손검을 바닥에 꽂아넣은 채 비도를 만지작거리는 범석을 보고는 모두에게 소리쳤다.
“우측에서 비도가 날아온다! 모두 조심해!”
하지만 이는 명백한 실수였다. 외침과 동시에 전방에서 접전을 벌이는 몇몇을 제외한 모든 동료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는 리자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뒤이어 리자의 손에서 벗어난 비도 하나가 후미인 4번 검투사의 목 언저리를 그대로 강타했다.
“꺄아아악!”
순식간에 2명의 검투사를 잃은 카오스 힐즈의 본진이 뒤로 급격하게 밀려났다. 양쪽에서 날아드는 비도에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본진 간에 힘 대결에서 패한 것이다.
이에 세이야가 모두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이 기세를 살려 승리를 따내려는 것이다. 카오스 힐즈의 방어진이 이처럼 흔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다 쓸어버려!”
오스칼의 거검이 횡으로 크게 휘둘러지자 12번과 19번 검투사가 뒤로 튕겨져나갔다. 다행히 후방 동료가 뒤를 바쳐줘 넘어지는 사태는 막았지만, 진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 간다!”
오스칼의 뒤를 따르던 마틸다가 손에든 양손 검을 다시금 중심을 잡으려는 12번 검투사를 향해 힘껏 그었다. 뒤이어 비올렛과 헤스티아를 선두로 갓즈나이츠 중견이 안으로 파고들더니, 카오스 힐즈 진형을 중앙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들은 상대진형을 갈가리 찢어버리고는 난전을 펼쳐나갔다.
그 순간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인 관람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무리 관중에 불과하지만, 지금 갓즈나이츠가 승리의 기세를 탔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갓즈나이츠! 그대로 모두 쓰러뜨려 버려!”
“그래! 잘한다! 반드시 이번 라운드를 따내라! 그럼 우리가 월드 리그에 진출한다!”
소란한 외침에 둘러싸인 1번 검투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떻게든 동료들을 수습해 새롭게 진형을 짜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은 것이다. 지금 대다수 카오스 힐즈 검투사들은 갓즈나이츠 검투사와 격전을 벌이느라, 몸을 뺄 여력이 없었다.
1번 검투사가 니키타의 창끝에 안면을 얻어맞고 쓰러지는 15번 검투사를 보고는 얼굴을 창백히 만들었다.
‘이러다가는 다 당해! 빨리 동료를 모아야 해!’
하지만 그녀는 명령을 내릴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급히 다가온 리자가 손에든 카타나를 종횡무진 휘두르며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번 검투사는 그녀와 맞서 싸우다가 등 뒤에서 날아온 비도에 맞고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열화와 같은 응원을 온몸으로 받으며 들어서는 범석에게로 팬들의 갈채가 이어졌다. 부상을 무릎서고 출전해 팀을 승리로 이끈 그가 너무도 고마웠던 것이다. 팬들은 연신 범석의 이름을 부르며 지금의 승리를 만끽했다. 이제 월드리그로 가는 길은 반쯤 열렸다고 볼 수 있었다.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범석에게로 다이아나 뛰듯이 다가왔다.
“주인님. 너무 잘하셨어요. 덕분에 오늘 승리할 가능성이 무척 커졌어요.”
“후후. 뭘. 내가 있는데, 설마 지겠어?”
밝게 웃은 다이아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지만, 범석은 정말 믿음직스러운 검투사였다. 그만 있다면 괴물들이 사는 동네라고 알려진 월드리그에서도 아주 훌륭한 성적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네. 맞아요. 정말이지 주인님이 있는 팀은 무적일 수밖에 없어요.”
“크크크. 당연한 소리지.”
범석은 그녀의 칭찬에 멋쩍어하기는커녕, 대놓고 즐기고 있었다. 그는 아부에 무척 약한 남자였다. 특히나 상대가 여자라면 더욱 그러했다.
다이아나가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런데 주인님. 등은 좀 어떠세요?”
“글쎄? 별 이상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 별로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았잖아.”
하긴 그가 2라운드에서 한 일이라고는 17번 검투사를 쓰러뜨린 후, 비도 2개를 날린 것뿐이었다. 다이아나로서도 크게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조심한다고 문제 될 일은 없는 법. 바로 그의 슈트 상의를 벗긴 후 팀닥터를 불러 확인시켰다. 그리고 별 이상이 없음을 알고는 그에게 긴 휴식시간을 주었다.
이어지는 3라운드. 2라운드 패배 탓인지 카오스 힐즈가 처음부터 공세를 취하며 갓즈나이츠를 압박해나갔다. 라운드 하나를 빼앗긴 이상,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월드리그 꿈은 사라졌다. 하지만 곧 조직력에 문제를 보이며 검투사 두 명을 잃었고, 1, 2라운드와 마찬가지로 방진을 짜며 버텨나갔다.
이에 무리할 필요가 없던 갓즈나이츠가 무승부를 기꺼이 받아들여, 3라운드 종료 현재 1승의 우위를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
“이, 이제 필요한 건 1승이에요.”
휴식 시간. 범석의 옆에 앉은 다이아나가 잔뜩 경직된 얼굴로 작게 읊조리고 있었다. 지금 라운드 승수는 1승 2무. 이제 월드리그 진출하는 데 필요한 라운드 승수는 고작 하나였다.
범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피씩 웃었다.
“후후. 4, 5라운드 연달아 2무 해도 우리가 올라간다.”
“그, 그렇겠네요.”
그가 앉은 자세에서 어깨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4라운드에서 1승을 올려 깨끗하게 올라가는 편이 낫겠지.”
“네. 확실히요…….”
“그럼 어떤 전략으로 나가야 할까?”
“주력 출전이에요. 좀 무리는 가겠지만, 확실히 승리를 따내기 위해서는 그편이 좋아요. 그리고 벼랑 끝까지 밀린 카오스 힐즈에서 이번에도 주력을 내보낼 공산이 커요.”
당연한 소리였기에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하긴 이 상황에서 2진을 내보낼 수는 없겠지. 2무나 1패면 바로 탈락이니까. 좋아! 이번에는 내가 출전한다.”
화들짝 놀란 다이아나가 그를 쳐다봤다. 휘하 엘프로서 범석의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것은 월드리그 진출이 아닌 그의 안위였다.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다. 그리고 이번 경기가 끝나면 두 달간 푹 쉬니, 문제없다.”
“그, 그래도…….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게 뭐? 자칫 잘못해도 찢어진 상처를 다시 꿰매는 것뿐이다.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다.”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이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범석의 부상은 그다지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휴~ 알겠어요. 주인님 말씀대로 할게요. 대신 조심하셔야 해요.”
“염려하지 마라. 내 몸인데 내가 어련히 잘 챙길까.”
그 말을 들은 다이아나가 감독 석에 가더니 명단에 범석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더불어 리자의 이름도 끼워 넣었다.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왠지 범석과 그녀는 상성이 좋아 경기에 나간다면 서로 전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저번 2라운드에서도 리자가 착용한 비도를 그가 몰래 사용해 결국에는 승리를 따냈다.
– 자. 양 팀 모두 경기장 중앙으로 나와 주십시오.
방송과 함께 범석이 휘하 검투사들을 이끌고 중앙의 시내로 나아갔다. 그는 이번에는 장창을 들고 있었다. 상처를 위해서는 움직임이 적은 창방이 좋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익숙한 장창이 나았던 것이다. 범석은 이번에 기필코 이길 생각이었다.
중앙에 선 그가 건너편에 위치한 카오스 힐즈 검투사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쏘아봤다. 역시나 다이아나의 예상대로 그들은 이번에 주력을 출전시키고 있었다.
‘좋아. 이번에 나 오범석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각인시켜주마.’
범석은 이번 라운드를 온 힘을 다해 뛸 생각이었다. 이번 경기는 갓즈나이츠가 월드리그로 올라가기 위한 최종의 장. 지금쯤 많은 월드리그 분석관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범석은 그들에게 자신이란 존재를 공포란 두 단어로 각인시킬 참이었다.
– 삐이익!
경기 시작 신호와 함께 범석이 바로 달려나가 중앙 시내를 힘껏 뛰어넘었다. 그를 뒤따라 넘어온 리자가 옆에 서더니 카오스 힐즈 진형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마크맨이 나오지 않을까요?”
범석이 손에 든 장창을 크게 한 번 휘두르더니, 비릿한 웃음을 흘려댔다.
“후후후.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지, 2라운드에 어떻게 당한 줄 빤히 알 테니까.”
“하긴 그렇겠네요. 마크맨이 없이는 사형을 막을 수 없으니까요.”
리자의 말투는 2라운드와 달리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3차전의 패배로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범석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갓즈나이츠에 있는 이상, 자신들은 천하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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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입니다. 모두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