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69
371화
기나긴 여정을 통해 월드리그에 입성한 갓즈나이츠는 리마시티 주민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다. 지역 사회를 빛냈다는 이유로 지역정부 단체에서 카퍼레이드 제의도 받았고, 수많은 모임에 불려 나가 얼굴마담 노릇도 해야 했다.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범석은 모두 응했다. 며칠만 고생하면 푹 쉴 수 있는데, 괜한 일로 지역 정부 관계자와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곧 월드컵 최종 예선이기에, 범석을 제외한 나머지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은 대표팀에 차출되게 되었다.
화창한 초여름 날씨의 어느 날이었다. 월드컵 최종 예선전이 벌어지는 이 시기, 범석은 에르피나와 함께 세계의 중심도시인 세노사이드시티를 찾았다. 오늘 이곳에서 켈로트 대표팀 대 젤라딘 대표팀의 월드컵 최종 예선 1차전 경기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세노사이드 콜로세움 서쪽 주차장에 도착한 범석이 플라잉 카에서 내리며 모자와 선글라스를 집어들어 착용했다.
“에르피나. 티켓 확실히 챙겼지?”
에르피나가 따라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켓은 전자수첩에 잘 저장되어 있었다.
“네. 확실히 챙겼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그럼 어디로 가면 되지?”
“서쪽 입구로 가서 WA001~WA002좌석을 찾으면 돼요.”
“그래? 그런데 그 좌석이 입장터널 바로 위 맞지?”
“네. 몇 번이나 좌석표를 보고 확인했으니, 확실히 맞을 거예요.”
모자를 푹 눌러쓴 범석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그가 휘하 검투사들이 참가하는 에이번드 대표팀 경기관람을 포기한 채 세노사이드 콜로세움을 찾은 이유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벌어지는 경기에 참여할 한 검투사의 정보창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보창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는 페널티가 있었다. 이에 검투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입장 터널 옆이 가장 효과적인 좌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아니더라도 검투사 입장 즈음에 입장 터널 쪽 근처로 가면 되지만, 같은 값이면 옆 좌석에 앉는 편이 좋았다. 괜히 움직이다가 팬들에게 걸린다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졌다.
‘으음. 레자리스라……. 괜찮은 아이여야 할 텐데…….’
레자리스는 세노사이드시티를 연고로 한 에이션트 워리어즈의 핵심급 검투사였다. 바로 프리시카가 소속된 팀으로 올해 월드리그에서 우승한 팀이었다.
이런 팀의 핵심급 검투사를 영입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레자리스는 가능했다. 올해 29살로 전성기가 지나 소속 팀에서 판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30살이 넘어가고 35살이 지날 때쯤이면 노화로 효용가치가 크게 떨어지니, 지금 비싼 값에 파는 편이 에이션트 워리어즈로서는 이득이었다.
그런데 범석이 이런 그녀에게 왜 관심을 두느냐? 바로 갓즈나이츠에 반드시 필요한 검투사였기 때문이다. 오랜 월드리그 경기 경험과 연륜. 창방과 검방을 동시에 다루는 수호 검투사. 그리고 출중한 실력까지……. 이 모든 요건이 갓 월드리그에 진출하는 갓즈나이츠에 꼭 가미되어야 할 요소였다.
그가 시간을 확인한 후 콜로세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르피나. 시간이 거의 다되었으니, 들어가자.”
“네.”
입구 계단을 올라 스텐드로 들어선 범석이 팬들의 열기에 깜짝 놀랐다. 역시 세계 중심도시답다고나 할까? 14만 석의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성은 그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범석은 연신 자신들 대표팀 검투사를 연호하는 팬들 사이를 지나 자신의 좌석을 찾아갔다.
“주인님 여기에요. 자 앉으세요.”
에르피나가 가리킨 좌석은 확실히 범석이 원하는 장소에 있었다. 바로 옆이 켈로트 대표팀의 입장 터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몸만 일으키면 레자리스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호오. 우리 에르피나 능력 좋은데, 이런 자리도 척척 얻고 말이야. 덕분에 편해졌어.”
“아니에요. 저희 팀 이름을 대고, 에이션트 워리어즈 트레이드 담당자에게 얘기하니까 군말 없이 구해 주던걸요.”
그 말에 범석이 착잡한 미소를 지었다. 엘프는 주인 앞에서 너무 겸손해서 탈이었다. 칭찬을 해주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너무 겸손을 떨었다.
“후후. 그래. 뭐. 그렇기도 하겠네.”
자리에 착석한 범석이 멀리 허공에 떠있는 홀로그램 전광판을 바라봤다. 경기장 내에는 식전 행사로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고 있지만, 오늘 그가 여기 세노사이드 콜로세움을 찾은 이유는 레자리스의 영입 건 때문이었다.
괜한 일에 신경 쓰다가 출전 시 그녀의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었다. 범석은 정체가 탄로 나서는 안 되기에 레자리스의 정보를 확인하는 즉시 이곳을 뜰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광판에는 출전자 명단이 뜨지 않고 있었다. 1라운드 출전자 명단은 5분 전에 뜨기는 하지만, 19명 전체 출전자 명단은 중계 멘트가 시작되기 전에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참 중계진이 떠드는 데에도 불과하고 전광판에는 아무런 신호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뭐지? 전광판이 고장 났나?”
범석의 의문에 에르피나가 동조를 표했다. 그녀도 오랫동안 프로검투사 생활을 해왔기에, 지금 상황이 의례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때 전광판이 커지며 경기장 영상과 중계진들의 모습이 영사됐다. 이에 범석이 출전자 명단이 나열된 공란에 시선을 집중하며 레자리스의 이름이 뜨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명단이 뜨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 출전하는 켈로트 대표팀의 19명에는 레자리스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범석이 급히 에르피나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에르피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레자리스의 이름이 없잖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실수로 주인인 범석을 헛걸음시키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요. 오늘 레자리스가 출전한다는 얘기를 에이션트 워리어즈 관계자에게 분명히 들었어요.”
“확실해?”
“네. 몇 번이나 확인한 내용이거든요.”
하긴 그녀의 말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됐다. 레자리스는 나이는 다소 들었지만, 월드리그 우승팀인 에이션트 워리어즈의 핵심급 수호 검투사였다. 무슨 문제가 없는 이상 오늘같이 중요한 경기에서 빠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금세 풀어졌다. 중계진들이 사건 개요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출전이 확실히 되었던 레자리스가 방금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네. 그렇습니다. 많은 팬이 오늘 경기에서 그녀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을 텐데. 무척 아쉽습니다.
– 그런데 무슨 부상이라고 합니까?
– 네. 다행히도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단순한 근육 경련이기에, 며칠 쉬고 나면 또다시 경기장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듯 보입니다.
– 그래요? 그것참 다행이…….
순간 아나운서가 말을 멈추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레자리스의 부상으로 켈로트 대표팀 더그아웃 분위기를 살피던 도중에 묘한 장면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오늘 붙는 양팀이 워낙 전력 차가 크기에, 그녀가 빠졌다고 해도 켈로트 대표팀 검투사들은 전혀 동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그다지 문제는 없었지만, 그 위 스텐드는 달랐다.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앉아있었던 것이다.
– 호, 혹시 저 사람은?
– 네? 누구 말입니까?
– 저기 켈로트 대표팀 더그아웃 위 스텐드에 앉아있는 관람객 말입니다. 꼭 오범석 검투사 같지 않습니까?
순간 그를 향해 날아드는 한 대의 버드 카메라. 깜짝 놀란 범석이 모자를 푹 눌러 쓰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중계진들은 그가 범석임을 대번 알아챘다. 우연히 경기장을 찾은 유명인들은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면 꼭 저런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 역시 오범석 검투사가 맞는군요!
–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오범석 검투사가 확실한 듯 보입니다.
이쯤 되니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카메라와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니, 어떻게 정체를 숨길 방도가 없었다. 범석은 주변을 요란스럽게 날아다니는 버드 카메라 렌즈를 향해 슬며시 손을 흔들며 본인이 맞음을 알렸다.
– 야. 굉장한데요. 오늘 이 자리에 오범석 검투사가 찾아오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찾아왔을까요?
– 글쎄요. 그건 곧 알게 되겠죠. 지금 현장 캐스터가 달려가고 있으니, 곧 인터뷰 장면을 보내올 겁니다.
인상을 푹 구긴 범석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졸지에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됐으니,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자칫 자신이 레자리스를 영입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번 트레이드 건은 시작도 못 해보고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곧 어여쁘게 생긴 금발의 여성 캐스터가 카메라맨과 현장에 도착했다.
“오 범석 검투사님. 안녕하세요.”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은 범석이 입에 마이크를 가져다 대는 캐스터를 응시했다.
“네.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오 범석 검투사님. 어떻게 이 자리를 찾아오셨나요. 저희가 알기에는 에이번드 대표팀도 오늘 경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물론이었다. 월드컵 최종 예선전은 첫 번째 경기는 시차로 다소 차이가 나지만, 한 날에 동시에 열렸다.
그가 자신의 등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얼마 전에 부상을 당해. 이번 대표팀 호출에서 제외되었거든요.”
금발의 여성 캐스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범석이 전에 마가렛과 함게 납치되었던 사건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부상 소식도 널리 알려졌다.
“아. 그러셨군요. 하지만 소속 대표팀 경기를 젖혀두고, 이곳 세이사이드시티 콜로세움을 찾으시다니, 지역민이 꽤 원망하겠는데요. 자칫 오범석 검투사님이 대표팀 경기에 무심하다고 잘못 인식될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저희 콜로세움을 찾은 말 못한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으신가요?”
느닷없는 예민한 질문에 범석이 여성 캐스터를 날카롭게 쏘아봤다.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인데, 꼭 답변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는 오늘 세노사이드시티 콜로세움을 찾은 이유를 적절히 대답하지 못한다면, 지역 팬들에게 미심쩍은 시선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부상 탓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지만, 에이번드 대표팀 경기가 아닌 켈로트 대표팀 경기를 관람하러 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자칫 현지 팬들에게 그가 에이번드가 월드컵본선에 진출하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오인 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칭 입범석이었다. 둘러댈 말이 없을 리가 없었다.
“네.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요? 대체 뭔가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켈로트 대표팀의 경기 장면을 직접 목도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죠.”
“아. 그렇겠네요. 으음. 그런데 오범석 검투사님께서 오늘 경기를 보고 얻고자 하는 것이 뭔가요?”
“많지만 굳이 한가지로 축약하자면, 월드컵 본선에서 저희 에이번드 대표팀의 강력한 우승 경쟁자 중 하나가 바로 켈로트 대표팀이라는 겁니다. 과거 월드리그 최강의 검투사였던 프리시카가 소속되어 있는데다가, 출중한 검투사들이 다소 포진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여유가 있는 지금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죠.”
그러자 스텐드가 마구 떠들썩해졌다. 그의 발언이 이전 월드컵 대회의 우승자인 켈로트 대표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한 번도 월드리그 본선에 출전해 본 적이 없는 에이번드 대표팀 검투사가 떠벌리기에는 좀 건방진 언사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범석이었고 휘하에 이번에 월드리그 본선에 오른 갓즈나이츠 검투팀을 거느리고 있었다. 결코,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요. 아주 대단한 패기시군요. 그런데 에이번드대표팀은 겨우 최종예선 첫 번째 경기를 치르고 있을 뿐이지 않나요? 그 말을 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후후. 그건 아니죠. 저희 에이번드 대표팀은 제가 없음에도 충분히 최종예선을 통과할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 본선까지는 1년이 남았습니다.
그동안 계속 자금을 투자해 출중한 검투사를 갓즈나이츠로 영입할 방침이니, 전력은 크게 상승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에이번드 대표팀에는 제가 있습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범석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주는 압박감이 상당했던 것이다. 그는 세계 최강 세 명 중 하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기적인 검투사였다.
그러나 곧 스텐드는 환호로 가득해졌다. 범석의 발언 탓인지, 켈로트 대표팀 더그아웃에서 쉬고 있던 프리시카가 경기장 내로 걸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멜리에, 자키드, 범석으로 언급되는 최강 삼인방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현역검투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경기장의 강풍에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을 정리한 프리시카가 범석이 앉아 있는 스텐드를 노려보며 크게 소리쳤다.
“재미있는 얘기군요. 에이번드 대표팀이 저희를 과연 이길 수 있겠어요? 켈로트 대표팀은 세계 최강의 월드컵 대표팀이에요.”
희미한 미소를 지은 범석이 좌석에서 일어서더니, 스텐드 난간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난 세계 최강의 검투사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양 팀 간의 전력차이를 메우리라고 본다.”
“후후.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하지만 절 잊으신 것 아닌가요?”
“물론 잊지는 않았다. 그러나 넌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이미 너의 시대는 갔어.”
프리시카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최강의 자리에서 호령하던 자신이 오늘날 이런 무시를 당할 줄은 전혀 몰랐다.
“좋아요. 그 말 반드시 명심하죠. 하지만 범석님도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어요. 곧 저희는 월드리그에서 만난다는 사실 말이에요.”
“물론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다음 시즌을 무척 기대하는 중이지. 나는 그때 너를 쓰러뜨린 후 세계 최강임을 증명할 거다.”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그건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알겠어요. 저도 간절히 고대하고 있죠. 그럼 그때 다시 뵙겠어요.”
분한지 프리시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만큼 범석의 언사는 무척 건방졌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자신의 벤치에 앉은 그녀가 허리에 착용한 검을 불끈 쥐며 전의를 다졌다. 오늘 경기를 통해 범석에게 자신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최종장에 들어섰습니다. 결말로 치닫는 부분에 진입했다는 얘기죠. 일 년간의 대장정이 몇 개월이면 곧 끝나겠네요. 마지막까지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