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71
373화
“응. 지금 혼자야. 일행이 한 명 있었는데, 볼 일 때문에 먼저 돌려보냈어.”
“그래요? 그럼 저희와 함께 가실래요. 마침 식사하러 가는데요.”
레자리스의 질문에 범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보를 모두 확인한 이상, 함께 식사할 필요는 없었다. 언론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녀와의 만남을 최대한 줄이는 편이 좋았다.
“글쎄. 나는 인제 그만 돌아가야 하는데. 늦게 오면 다들 걱정이잖아.”
“좀 늦는다고 연락을 주시면 되잖아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세요.”
범석이 은근슬쩍 레자리스의 매니저들을 바라봤다. 그녀의 돌발 행동을 막아달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소속팀 트레이드 담당자로부터 식당에서 범석과 레자리스가 만날 것임을 언질 받은 그들로서는 동조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말고 함께 가시죠. 잠시 식사하러 가는 것뿐인데, 설마 별다른 일이야 있겠습니까.”
이쯤 되자 범석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함께 가자고 하는데, 매정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식사하는 것뿐이니, 그다지 큰 문제는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결국, 이날 범석은 레자리스와 함께 짧은 식사를 나누고 밤늦게 리마시티로 돌아가야 했다.
“주인님! 저희 왔어요!”
6월의 말의 어느 날. 범석은 손수 주차장까지 나가 대표팀에서 돌아오는 팀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3주간 벌어진 월드컵 최종예선의 대장정 동안 그녀들은 4승 1무 1패의 성적을 얻어 본선 진출을 확정시켰던 것이다.
이에 이번에 최종예선에 참여했던 소속 검투사들은 얼마 후 리마시티 도심지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게 예정되었고, 오늘 팀 해산식과 함께 훈련캠프로 돌아왔다.
팀 내 제일 연장자인 니키타가 대표로 나와 그에게 말했다.
“주인님 말씀하신 대로 에이번드 대표팀을 본선에 진출시켰어요.”
“그래 나도 봐서 알고 있다. 다들 수고가 많았다.”
“아니 뭘요. 대부분 약팀이라 쉽게 이겼는데요.”
“후후. 그래? 하여간 자 다들 숙소로 가자.”
범석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근처에 세워놓은 무인전동차로 걸어갔다. 월드컵 최종 예선전 경기를 소화하느라 모두 피곤할 테니, 편안한 휴식을 줄 필요가 있었다.
전동차에 올라타려는 그에게 레베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요. 범석 씨. 잠시 할 말이 있는데요.”
차에 탑승한 그가 레베카를 돌아다봤다.
“으음. 무슨 일인데?”
“혹시 오늘 저녁에 바쁜 일 있으세요?”
범석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아무래도 데이트 신청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략을 완료해 호감도를 극으로 올린 터라, 간혹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는 했다.
“으음. 글쎄. 따로 할 일은 없는데. 그런데 왜 그러는데?”
“조금 전 아버지께서 연락을 주셨는데요. 오늘 범석 씨와 저녁 식사를 꼭 같이 하자고 하시는데요.”
“아버지라면 채플린 스포츠 사장님이시잖아?”
“네. 어떻게 오늘 시간 되세요?”
범석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아버지라면 예비 장인어르신. 사위감을 만나자고 하는데,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채플린 그룹은 갓즈나이츠의 장비 스폰서이자 메인 스폰서였다. 사업상으로 대화할 내용도 있을 테니, 긴요한 만남이 될 터였다.
“네 아버님이 보자고 하는데, 만사를 젖혀놓고 가야지. 그래 몇 시까지 어디를 가면 되는데?”
“레인보우호텔 양식레스토랑으로 오후 6시까지 오시면 돼요.”
“좋아. 그때 가서 뵌다고 그래. 그럼 얘기는 다 된 거지?”
“네. 그럼 전 준비할 것이 많아서 이만 가볼게요. 이따 호텔에서 봬요.”
“그래 이따 보자.”
레베카는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가벼웠다.
그날 저녁 범석은 고급 정장을 껴입고 레인보우 호텔로 향했다. 그는 보통 캐쥬얼 복장을 즐기지만, 장인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이니 격식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호텔 로비로 들어선 그에게 한 여성 호텔리어가 다가왔다. 손수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레인보우그룹의 은인이자 회장인 글로리아의 연인이라, 레인보우 호텔에 오면 항시 VIP대접을 받았다.
“범석님. 무슨 일로 저희 호텔에 방문하셨습니까?”
“으음.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오늘 채플린 스포츠 사장님과 만나기로 했거든.”
“아. 그러세요. 실례하지만 어디서 뵙기로 하셨나요?”
“양식레스토랑에서 뵙기로 했는데.”
“그렇군요. 자 그럼 안내해 드릴 테니 저를 따라오세요.”
멋쩍은 듯 범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레인보우 호텔은 자주 방문한 터라, 내부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굳이 그녀가 안내를 해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리따운 아가씨가 손수 안내해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곧 그는 여성 호텔리어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범석을 양식레스토랑까지 안내한 여성 호텔리어가 카운트 직원에게 채플린 스포츠 사장의 이름으로 예약된 방을 문의했다. 그리고 모두 확인을 마친 후 그를 향해 돌아섰다.
“자.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쭉 늘어서 있는 고급 식탁을 스쳐 지나간 범석이 고풍스러운 목재로 된 방문 앞에 도착했다.
“이 안인가?”
“네. 하지만 아직 채플린 스포츠 사장님은 도착하지 않으신 듯 보이니 잠시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이 될 자를 만나는 자리라 좀 일찍 오기는 했다.
“그래 고맙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여성 호텔리어가 돌아가자, 범석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실내를 잠시 감상하고는 작게 읊조렸다.
“으음. 괜찮군.”
안에는 레이스 달린 흰 천이 덮여있는 식탁이 하나 놓여있었고, 4개의 좌석이 비치되어 있었다. 벽에는 갖가지 장식물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주변풍경과 잘 어우러져 괜찮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다만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서 좀 썰렁한 느낌이 난다고는 할까? 그러나 곧 채플린 사장과 레베카가 도착할 테니, 별로 상관할 바가 못 됐다.
그는 가장 상석으로 보이는 자리 건너편에 앉고는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이 더운 날 급히 서둘러 오느라, 좀 목이 탄 모양이었다.
얼마 후. 방문이 열리며 레베카가 들어왔다. 그 뒤로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금발의 젊은 남성과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한 녹색 머리칼의 엘프가 따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범석이 긴장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프 여인이 바로 그의 경쟁자인 아멜리에였던 탓이다.
“오호. 이거 누구신가? 범석군이 아니신가? TV에서는 종종 보고 있네.”
금발의 젊은 사내의 인사에 범석의 상체가 90도로 꺾였다. 나이는 젊어 보이지만, 레베카의 아버지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채플린 스포츠 사장은 과거 프로검투사출신이었다. 당연지사 개조인간일 테니, 젊음을 유지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범석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난 레베카의 아비인 프리츠라고 하네.”
“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무슨 영광은……. 하여간 자 그럼 자리에 앉지.”
“네. 알겠습니다.”
범석이 앞으로 장인이 될지도 모르는 채플린을 모시고 다시 좌석에 앉았다. 하지만 시선은 항시 아멜리에에게 향하고 있었다.
프리츠의 옆 좌석에 다소곳이 앉은 그녀가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범석 님. 오랜만이군요. 2년 전 개막전에서 뵙고 이번이 처음이죠.”
“그렇지. 당시 내가 좀 굴욕을 많이 당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만큼 실력 차가 있었으니까요.”
범석이 천천히 식탁 위에 물컵을 들어 올리더니 작게 읊조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난 과거의 내가 아니니까.”
아멜리에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확실히 범석은 과거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그의 신체능력은 자신에 육박하고 있었고, 근래에는 새로운 창술과 화려한 검술을 갖추고 나왔다. 여러모로 발전을 거듭 했으니, 그를 상대하는데 꽤 애로사항이 있을 듯 보였다.
“그렇겠죠. 그래도 절 이길 수는 없을 거예요.”
“훗.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글쎄요. 비교할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아시는지 모르지만, 저희 채플린 위스퍼와 갓즈나이츠는 사이에는 넘지 못할 전력 차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범석이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채플린 위스퍼가 작년 월드리그에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강팀인 이유는 막대한 돈을 들여 검투사를 영입한 일도 있었지만, 아멜리에의 존재가치가 더욱 크게 작용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를 뺀 채플린 위스퍼의 전력은 겨우 리그 내 중상위권을 차지할 정도였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갓즈나이츠도 조만간 갖출 수 있었다.
팀 내의 유망주들이 성장하고 몇 년간 꾸준히 팀을 정비하면 될 뿐이니까 말이다.
“후후. 그런 차이도 한두 해까지만이다. 우리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이 유망주가 많아서 전력이 떨어질 뿐, 모두 성장만 한다면 현재 월드리그 우승팀인 에이션트 워리어즈 팀 못지않은 스쿼드가 갖춰진다. 그때도 조금 전 말이 나올지 두고 보지.”
그 말에 에밀리에가 얼굴을 경직시켰다. 전에 빈센트 감독과 대화하며 방금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이 당시 말하기를 채플린 위스퍼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 가장 손쉬운 시기는 올해와 내년뿐이라고 했다. 그 후로는 성장한 갓즈나이츠와 치열한 접전을 벌여야 하니, 우승이 그리 녹록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표정을 풀었다. 범석에게 약세를 보이기 싫어서였다.
“후후. 저도 그날을 고대하겠어요.”
분위기가 냉랭하게 흘러가자 프리츠가 황급히 나섰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아멜리에와 범석을 충돌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레베카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괜히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어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하하하. 이거 식사하는 자리에서 둘 다 너무 열을 내는 것 아닌가? 경쟁은 훗날 콜로세움에서 하고, 여기서는 즐겁게 식사를 해야지.”
“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죄송해요.”
범석과 아멜리에가 동시에 사죄를 청했다. 장인 될 자와 주인 앞에서 너무 무거운 분위기를 풍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프리츠가 아멜리에의 어깨를 두드리며 범석을 쳐다봤다.
“뭐. 자네가 미안해할 필요까지야……. 하여간 나도 사과를 청하지. 사실 우리 아멜리에가 좀 드센 면이 좀 있네.”
“아. 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겉으로는 이리 얌전해 보여도 얼마나 포악한지 과거 내가 같은 팀에 있을 때 거의 죽다 살아났을 정도였네. 그래서 그때의 복수를 위해 은퇴를 하는 그녀를 거금을 주고 사 지금껏 부려 먹고 있지. 하하하.”
아멜리에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탓이다. 감독의 명령으로 신참을 강도 높게 교육했는데, 훗날 그 사람이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 만약 과거로만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일만큼은 극구 시정하고 싶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본 범석이 슬며시 프리츠를 쳐다봤다.
“아. 그러고 보니 프리츠 님도 프로검투사라고 하셨죠?”
“그렇지. 아멜리에 만큼은 아니지만, 월드리그에서 제법 명성을 날렸지. 그리고 그 경력을 아버님께 인정을 받아 오늘날 채플린 스포츠의 사장도 된 것이고.”
“아. 그렇군요.”
프리츠가 앞에 놓인 물을 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 정도는 아니었네. 으음. 내가 범석 군을 처음 본때가 7년 전쯤인가? 아마 오사하의 투기 대회로 기억하고 있네만…….”
“아. 저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가 레베카와 결승에서 맞붙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당시 우리 딸아이가 자네에 대한 문의를 해왔는데, 나와 아멜리에가 자료를 보고 아주 기겁을 해버렸네. 자네 나이에 그 정도의 검술 실력을 쌓을 수는 없는 법이거든. 그래서 지금껏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네.”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범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별것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으음. 그 정도 실력이면 노력차원을 떠났지. 뛰어난 스승과 재능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무술 실력은 어디서 갈고 닦았나?”
그가 당혹스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 그냥 집 근처의 작은 무술 도장에서 익혔습니다.”
프리츠가 어이없다는 시선을 범석에게 던졌다. 그의 실력은 도장에서 익힐만한 것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자네 같은 출중한 검투사가 어떻게 동네 무술 도장에서 나오는가!”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일은 기자들도 다 파악한 내용인데, 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프리츠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었다. 그렇다면 범석은 천하에 다시 없는 천재였다. 전문화된 시설과 능력 있는 코치에게 체계적인 교육은 받은 프로검투사들도 이루지 못한 경지를 동네 도장에서 이루었으니 말이다.
“그, 그런가. 하긴 금세 알려질 일을 꾸며서 말할 수는 없겠지.”
그때 연회실 안으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엘프호텔리어들이 요리가 가득 담긴 접시를 가져와 식탁 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코스 요리로 작은 유리컵 분량의 해물이 담긴 찜 요리였다.
수저로 요리를 한 입 떠먹은 범석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전의 대화는 너무 민감한 내용이니 이쯤 그만두는 편이 좋았다.
“아. 그나저나 오늘 저를 왜 보시자고 했습니까? 바쁘신 일과에도 오늘 저를 찾아오셨다면 분명 중요한 연유가 있을 듯 보이는데요.”
“으음. 내 딸아이가 자네 팀에 있기도 하고, 갓즈나이츠는 우리 채플린 스포츠의 소중한 고객이니, 한 번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네.”
납득한 듯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로서 딸을 걱정하는 마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현재 갓즈나이츠는 채플린 스포츠의 중요한 고객인 것도 맞았다. 현재 채플린 스포츠의 용품을 사용하는 월드리그 팀은 단 두 곳인데, 하나가 바로 채플린 위스퍼였고 또 한 곳이 바로 갓즈나이츠였다.
============================ 작품 후기 ============================
아호. 각시탈 재미있네요. 어렸을 때 허영만 화백의 쇠퉁소와 각시탈을 만화로 본 탓인지 대충 스토리가 익숙하지만, 은근히 끌립니다. 하여간 허영만 화백 대단합니다.
최근에 작품을 내는 족족히 대박을 터트리고, 수십년 전에 그린 만화도 지금 이시대에 통하니 말입니다. 으음. 과거에는 여러 쟁쟁한 작가분에 밀려 알아주지 않던 만화가였는데…….. 아마도 현대의 감각과 그분 작품이 잘 맞는 모양입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