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79
381화
콜로세움 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슈트를 단단히 껴입은 범석과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은 경기장으로 나아가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다리를 찢은 자세에서 허리를 숙여 스트레칭을 하던 그가 멀리 반대편으로 보이는 검투사 무리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바로 스트레칭을 나온 에이션트 워리어즈의 검투사들이었다.
범석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프리시카. 오늘 다이아나가 들고 나온 전략으로 볼 때 그녀와 맞붙을 가능성이 아주 컸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후후. 프리시카도 나를 꽤 신경 쓰는 모양이군.’
프리시카의 시선도 항시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은 리그 개막전이라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의미 있는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석은 그동안 센트럴리그에서 뛰었기에, 검투사 순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실적을 올릴 만한 상대가 고만고만했으니, 평가인들 제대로 받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검투계의 인지도 높은 전문가들은 그를 세계 3대 검투사 중 하나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범석이 월드리그에 첫 출전을 했다. 이제 상대할 이들이 고득점이 가능한 월드리그 검투사들이기에, 그의 검투사 순위는 쭉쭉 치고 올라갈 터였다. 그리고 현재는 검투사 순위 3위에 랭크 된 프리시카가 그와 맞서게 되었다.
그녀가 오늘 범석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올해 검투사 순위경쟁에서 4위 밑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뭐. 프로의 세계란 냉정한 법이니까.”
범석은 그녀가 월드 워커옥션마켓에 30대 이전에 나가기 위해 최강의 자리를 노린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검투계에 널리 퍼진 상식이었기에,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처지를 생각해서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프로는 냉정한 법이었고, 사실 코가 석자인 자는 바로 그였다. 팀 전력의 차이로 오늘 경기에서 승리는 커녕 무승부를 따내기로 어려웠다.
게다가 프리시카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근래에 자키드와 아멜리에에게 밀려 3위로 추락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과거 다른 검투사들이 범접하지 못할 만큼의 큰 차이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범석도 여유를 부리며 상대할 경쟁자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희미하게 미소 지은 범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오늘은 제법 땀 좀 흘리리라 생각되니, 체력을 비축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준비운동이라도 장시간 수행하면 스테미너에 무리가 생겼다.
잠시 후 벤치에 편히 앉아 있던 범석의 귓가로 구내방송 멘트가 들려왔다.
– 양 팀 1라운드 출전 검투사는 입장 터널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심호흡을 한 범석이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긴장을 풀었다. 대망의 월드리그 첫 경기라서인지, 약간 떨리는 모양이었다.
곧 헬멧과 무구를 집어들고 입장 터널 입구로 향하는 범석에게 다이아나가 다가왔다.
“주인님. 오늘 주인님이 하셔야 할 일 잘 아시죠?”
범석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며 OK표시를 그렸다. 전략 회의를 통해 꾸준히 주입받았기에, 머릿속에 철저히 각인하고 있었다. 긴장했다고 잊을 리가 없었다.
“잘 알고 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주인님께서 실패하시면 오늘 경기가 무척 어려워져요.”
“염려하지 마라. 매번 해오던 전략에서 약간 변경한 것인데, 실패할 리가 있겠냐? 나만 믿어라.”
“네. 그럼 주인님만 믿을게요.”
다이아나가 손짓으로 인사하며 입장 터널로 나아가는 범석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오늘 그의 역할은 프리롤로 프리시카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만약 범석이 1라운드 초반에 그녀를 쓰러뜨린다면, 전력의 차를 수적 우세로 대응하며 무승부나 승리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리시카를 비롯한 다른 1명의 에이션트 워리어즈 검투사와 맞붙을 때는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본진은 수적 우위를 얻어낼 수 있으니, 범석이 잘만 버텨 준다면 충분히 무승부 게임을 따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문제는 그가 실패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아무리 갓즈나이츠의 주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범석 없이는 저 사기 같은 에이션트 워리어즈 본진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곧 근심스러운 기색을 얼굴에서 지우고, 감독석으로 돌아갔다. 주인인 범석을 믿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 다시 보지 못할 괴물 같은 검투사였다. 아무리 프리시카가 강하다지만, 당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자자! 모두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라! 이번 라운드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넷!”
범석의 외침을 들은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반대편 쪽 입장 터널을 노려봤다. 거리도 멀고 음영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에이션트 워리즈 검투사들의 형체쯤은 구별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검은색의 슈트로 온몸을 치장한 상태였다.
– 자. 양 팀 검투사 입장해 주십시오!
범석을 선두로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경기장 중앙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지, 범석이 중간에 멈춰 서서는 건너편 입장 터널 입구를 바라봤다. 에이션트 워리어즈 검투사들이 입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범석의 의문은 곧 풀렸다. 연유를 알아보러 날아간 버드 카메라를 통해 전광판에 내부 전경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프리시카와 에이션트 워리어즈 감독이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그녀가 일대일로 범석과 맞붙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팀 감독은 그가 프리롤을 뛸 때에 최소 2대 1 이상으로 상대하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호오. 이거 잘 만하면 이번 라운드에서 승리할 수도 있겠는데.’
갓즈나이츠에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뭐니뭐니해도 범석과 프리시카가 일대일로 붙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범석에게는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프리시카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일대일 승부가 이어진다면 그로서는 당연히 고마웠다.
– 에이션트 워리어즈. 시간을 지체하시면 1라운드를 기권 처리하겠습니다.
범석은 급히 걸음을 다시 옮겨 중앙 시내 쪽으로 나아갔다. 이거 잘만 한다면 1라운드를 거저먹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프리시카와 에이션트 워리어즈 감독이 계속 자존심 대결을 펼치기를 바라며, 다음번 구내방송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해갔다. 콧김을 씩씩 불어대는 프리시카가 헬멧을 착용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기권승을 바랄 수 없다고 생각한 범석이 휘하 검투사를 향해 외쳤다.
“다들 오늘 전략 잘 알지! 모두 방진을 구성해라.”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방진을 구성하자 범석이 급히 오른쪽 측면으로 빠져나왔다. 에이션트 워리어즈가 과연 어떤 진형을 들고 나올지 궁금했던 탓이다. 누가 몇 명이 빠져나오느냐 따라 오늘 경기의 전략이 크게 달라졌다.
‘쳇. 둘이군. 아무래도 감독과의 기세 싸움에서 프리시카가 밀린 듯 보이는군.’
지금 범석의 건너편 평지로 다가오는 검투사는 프리시카와 백발을 한 자스민이었다. 즉 2대 1로 그를 마크하겠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범석이라도 프리시카를 포함한 최상급 월드리거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란 어려운 일. 아무래도 1라운드 경기는 제법 힘들어질 듯 보였다.
“휴~ 뭐 어쩔 수 없겠지.”
긴 한숨을 내리 쉰 범석이 시내 건너편에서 계속 자신을 따라오는 프리시카와 자스민을 보며 경기장 우측 가장 끝으로 이동했다. 전략을 위해 이들을 유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프리시카와 자스민을 본진에서 멀찌감치 떨어지게 하지 않는다면, 본진의 초반 철교 점령이 힘겨워질 수 있었다.
– 삐이익! 경기 시작!
경기 시작 신호와 함께 추행진을 이루고 있던 에이션트 워리어즈 본진이 급속히 철교를 향해 달려나갔다. 양 팀의 전력차이를 볼 때 자신들이 먼저 철교를 차지해 버리면 경기를 쉬이 풀어나갈 수 있었다.
아무리 마크맨을 보내 하나가 모자라지만, 실력을 따지고 보면 다소 앞선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에이션트 워리어즈에는 S3급의 레비아가 남아 있었다.
“모두 빨리 철교를 점령해! 그럼 우리가 이긴다!”
하지만 철교를 차지하려는 에이션트 워리어즈와 달리 갓즈나이츠 팀 본진은 여유만만했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녀들이 철교를 점령하도록 놔두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에이션트 워리어즈의 대장인 테를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 팀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갓즈나이츠는 자신들 본진을 적절히 막기 위해서는 철교 점령이 필수불가결이었다.
방진의 중앙에 있는 세이야가 모두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모두. 기다려! 저들이 우리에게 접근할 때까지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세이야가 철교에 멀뚱멀뚱 서 있는 에이션트 워리어즈 검투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작전이 확실히 먹혀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됐어. 철교 점령은 확실해졌어.’
갓즈나이츠가 초반에 철교 점령에 가세하지 않은 이유는 전혀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양 팀 다 신체적인 조건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방진보다는 기동력이 좋은 추행진이 확실히 빠른바, 갓즈나이츠로서는 철교 점령이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지사 평지전으로 이어지니, 불리한 상황에서 에이션트 워리어즈 본진과 맞붙게 되었다. 하지만 저들이 철교를 점령한 이상, 별반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제 에이션트 워리어즈가 접근하기를 기다리기만 만사 해결이었다.
“쟤들 지금 뭐하는 거야? 왜 전혀 안 움직이지? 설마 우리와 평지전을 벌이는 것은 아니겠지?”
잠시 철교에서 대기하고 있던 테를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갓즈나이츠 홈 콜로세움의 지리가 처음이라, 지금 세이야 벌일 전략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평지전을 벌이자는 의도와 다름없었다.
‘어떻게 하지? 뭔가 분명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해. 아니라면 애써 평지전을 유도할 리가 없어.’
하지만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비록 1라운드에서 비겨도 에이션트 워리어즈로는 불리할 것이 없지만, 자신들은 세계 최강팀이라는 자존심을 지켜야 했다. 갓 승격한 팀의 전략이 겁나 머뭇거린다면 수치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공격을 명할 수밖에 없었다.
“자. 모두 갓즈나이츠 본진을 향해 돌진한다! 혹시 모르니 철저히 진형을 유지하고!”
철교를 빠져나와 추행진을 구성한 에이션트 워리어즈 검투사들이 끝을 뾰족이 세우고는 갓즈나이츠 본진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를 본 세이야가 손을 들어 동료 검투사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 상대가 가까이 다가올 때쯤 목청껏 소리쳤다.
“모두 도강해!”
일제히 앞다투어 넘어가는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 전면에 방해물이 전혀 없기에 이들의 도강은 너무도 쉬었다. 이내 무리를 이끌고 건너편 기슭에 도착한 테를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못하다가는 자신들이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지금 갓즈나이츠가 강 건너에 있는 이상, 자신들은 쉽게 도강하지 못했다. 문제는 건너편 우측에서 프리시카와 자스민이 장창을 든 범석과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저들이 자신들의 도강을 견제하며 마크맨들을 공격하면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모, 모두 우측으로 급속 이동한다! 프리시카와 자스민이 위험해!”
이들이 우측으로 이동하는 사이 갓즈나이츠 본진은 빠르게 철교 쪽으로 달려가 중앙을 점령했다. 이제는 유리한 진형에서 1라운드를 경기를 치르게 된 세이야가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범석에게 통신을 날렸다.
– 주인님. 철교를 점령했어요. 이제 피신하세요.
프리시카와 자스민의 거센 공세를 받던 범석이 힘차게 점프하며 180도 회전과 함께 장창을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창끝을 피하고자 뒤로 물러선 그녀들을 보고는 한치의 지체도 없이 뒤를 향해 줄행랑을 쳤다. 에이션트 워리어즈의 본진이 도강해 자신에게 달려들 수도 있으니, 잠시 몸을 피하는 편이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테를리와 본진의 에이션트 워리어즈 검투사들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감히 도강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거 단단히 당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이 먼저 철교를 점령했음에도 갓즈나이츠의 술책에 빠져들어 그대로 내어주고 말았다.
‘으득. 완전히 당했어. 역시 처음 경험하는 지리라 적응이 힘들어. 아무래도 오늘 조심해야겠어.’
이를 악문 테를리가 모두를 이끌고 천천히 철교를 향해 이동했다. 상대가 지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 이쯤이면 됐겠지.”
줄행랑을 치던 범석이 멈춰 서자, 뒤쫓아 온 프리시카가 죽일 듯이 노려봤다. 자신은 이번 대결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을 우롱하듯 술책으로 이용했다.
“범석 님! 너무 한 것 아니에요!”
“뭐가 너무해? 이기기 위해서는 그럴 수도 일이지.”
“하지만 제가 이번 경기에 나선 목적은 범석 님과 승부를 가리기 위함이에요. 그러니 범석 님도 성의를 다해 주세요!”
범석이 슬그머니, 자스민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2대 1로 싸우는 진지한 승부 봤냐? 잔말 말고 덤비기나 해. 진지한 승부를 피한 건 바로 너니까.”
프리시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확실히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일은 범석에게 이겨 현재의 위상을 견고히 지키는 일이었다. 자스민과 연합해 공격해봐야 전혀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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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요번주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세계와 한국경제 상황을 살펴봤는데, 이거 심각하네요. 어쩐지 왜이렇게 금값 거품이 빠지지 않나 했습니다. 아마도 다음 정권에 들어서면, 제법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