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80
382화
“자스민. 너는 빠져 있어!”
프리시카의 요청에 자스민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그녀는 주인 있는 엘프였기에, 자신의 명예를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백발 백목의 그녀가 주인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많은 연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봉의 많고 적음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 감독이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다면 수당을 받을 수 없으니, 수입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괜히 그녀의 말마따나 뒤로 빠져서 감독에게 밉보일 이유가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저는 프로에요. 승리를 위해서는 2대 1의 승부라도 마다치 않아요.”
“정말 내 말 안 듣겠다는 거야!”
자스민이 살짝 움찔거렸다. 에이션트 워리어즈 팀의 주장은 프리시카였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앞으로의 팀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 에이션트 워리어즈의 검투사로 팀 전략에 따라야 해요. 뭐 그래도 정 범석 님과 1대1로 싸우고 싶으시다면, 감독님께 얘기하세요. 지금 통신으로 저희 대화를 듣고 있을 테니까요.”
프리시카가 이를 악물었다. 똥고집 감독이 자신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아까도 잠시 승강이를 벌였지만, 부상자 명단에 올리겠다는 협박에 하는 수없이 물러났다. 부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곧 오늘 경기에서 빼겠다는 얘기였다.
프리시카가 검을 꽉 움켜쥐고 범석에게 다가섰다. 일단 1라운드에서 승리할 참이었다. 감독도 그녀의 고집을 완전히 꺾지 못했는지 승리가 확실해지면 1대1 승부를 허락해 준다고 약속했었다.
‘이번 라운드를 반드시 이겨야 해. 그럼 3라운드에서 범석 님과의 승부가 가능해.’
이번 1라운드에서 에이션트 워리어즈가 승리를 가져가면, 오늘 경기에서 이길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갓즈나이츠의 2진은 너무 약해,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와 다시 만나는 3라운드에서는 먼저 2승을 따고 있을 터, 충분히 감독에게 일대일 승부를 요구할 수 있었다.
프리시카가 옆으로 다가오는 자스민을 보더니,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단시간 내로 이번 승부를 결정지을 테니, 잘 보좌해. 만약에 허둥지둥거리며 나를 방해했다가는 앞으로 팀 생활이 힘들어 줄이나 알아. 알겠지?”
자스민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하고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기술적인 면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W0급에 머무르고 있지만, 오랜 시간 검술을 연마하면 언젠가는 프리시카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훗. 염려 마세요. 이래 봬도 전 W0급 검투사라고요. 언니만큼은 싸우지 못하겠지만, 충분히 보좌할 정도는 돼요.”
“좋아. 그럼 믿겠어. 잘 따라와.”
헬멧 사이로 시퍼런 눈빛을 흘리며, 프리시카가 범석을 향해 검을 뻗어 갔다. 과거의 최강 검투사답게 그녀의 검세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는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검끝을 창대로 후려치고는 뒤로 급히 빠졌다. 자스민이 거리를 급격히 좁히며 공격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범석은 쪼개듯 세로로 내리쳐지는 검을 간신히 피하고는 창을 길게 휘저었다.
‘쳇. 역시 프리시카와 W0급 검투사의 연합 공격은 어려운가?’
범석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검투사 둘을 동시에 상대하려니,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나 월드리그라고나 할까? 센트럴리그에서 상대하던 하위급 월드리그 검투사들과는 힘과 기술에서 차원을 달리했다.
그는 계속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리는 데에 집중해나갔다. 버겁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공세보다는 방어로 일관하며 기회를 엿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라운드에서 어떻게든 무승부 이상을 얻어내야만, 오늘 경기를 5라운드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창. 캉. 까깡.
가공할 타격음이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창과 검의 맞대결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사방으로 금속 불똥을 뿌려댔다.
최강의 신체를 지닌 월드리거끼리의 맞대결로 말미암아, 최신의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무구들이 버텨내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안 가 범석의 창은 무수한 기스 자국이 새겨지며 그 특유의 광채가 사라져갔다.
“오 범석 잘해라! 2대 1이라고 쫄 필요는 없어! 너라면 충분히 저 두 명을 해치울 수 있다!”
“그래. 네가 프리시카와 자스민을 해치우면 우리가 승리한다! 반드시 꺾어라!”
스텐드 내의 모든 관중의 시선이 범석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본진 간은 전투는 철교에서 밀고 밀리는 몸싸움만 이어지고 있는 터라, 별로 볼만한 구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검투는 치열한 격전을 통해 승리를 쟁취해야지만 재미있었다.
하지만 듣는 범석의 입은 대빨 나와 있었다. 이거 프리시카와 자스민의 연합공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다행히 잘 막고는 있지만, 자칫 실수로 하는 날이면 바로 행동불능이었다.
‘쳇. 속들 편한 소리를 한다. 얘들 장난이 아니라고.’
그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 중계진들이 객관적인 멘트를 흘려댔다. 전문가라면 프리시카와 자스민의 동시 공격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 호오. 오 범석 검투사 이거 대단합니다. 세계 순위 3위에 올라있는 프리시카와 28위인 자스민을 연합공격을 적절히 잘 막아나가고 있습니다. 역시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세계 3대 검투사라고 알려진 검투사답습니다.
– 하하하. 네. 그렇습니다. 프리시카라면 얼마 전까지 최강의 검투사 아니었습니까? 그런 그녀를 또 다른 세계 정상급 검투사와 함께 상대하면서 이렇듯 선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히 출중한 검투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네. 암만 봐도 오범석 검투사는 곧 프리시카를 젖히고, 최소한 세계 검투사 순위 3위에 오를 듯 보입니다. 2대 1 승부에서 저런 아슬아슬한 승부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개인적인 실력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 그렇죠. 실력 면에서는 이미 최강의 검투사 대열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오 범석 검투사에게 모자란 것은 실적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거 앞으로 아멜리에와 자키드의 대전이 기대되는 되요.
고개를 끄덕인 해설자가 턱을 쓰다듬더니 시선을 철교 쪽으로 향했다.
– 그나저나 갓즈나이츠의 검투사들도 대단합니다. 아무리 한 명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최강 스쿼드를 자랑하는 에이션트 워리어즈 검투사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아요. 아니 가장 유리한 지형인 철교 중앙을 굳건히 지키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힘에서는 크게 앞서는 듯 보입니다.
– 하하하. 당연한 것 아닙니까?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의 신체능력은 가히 환상적이니까요. 기술적인 면이 모자라서 그렇지. 갓즈나이츠는 예전부터 천하무적 완력 팀으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일단 철교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절대로 내어주지 않을 겁니다.
– 그렇죠. 게다가 근래에는 레자리스 등의 기술적으로 출중한 검투사를 다소 영입하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제 예상으로는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올해 월드리그에서 파란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 네. 저도 그 의견에 공감합니다. 갓즈나이츠는 현재의 전력으로도 충분히 중위권 이상은 노려볼 수 있으니까요. 정말 기대되는 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계진의 멘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프리시카의 공세가 거세어졌다. 중계진이 일방적으로 범석을 칭찬하고 자신을 무시하자 화가 난 것이다.
프로검투사로 활동하며 이런 경우가 많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엄밀히 말한다면 편파 중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대 1로 여태껏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니, 그녀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프리시카가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다가서려다가, 견제를 위해 뻗어나온 창끝을 보고는 멈칫거렸다. 가슴 쪽을 향하는 뾰족한 모가 그리 위협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는 일. 그녀가 바로 검날 부위로 창대를 내리치고는 그대로 달려나갔다.
“야앗!”
빠르게 가로로 그어지는 검세에, 돌연 범석이 뒤로 도약했다. 창대로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연이은 자스민의 공격에 당하게 되었다. 이미 그녀는 범석의 머리를 향해 힘껏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급하게 창대를 세워 막은 그가 뒤이어 빠르게 쏘여지는 날카로운 직선 공격에 옆으로 몸을 날렸다. 도저히 회피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스민! 이때야! 해치워!”
프리시카의 외침에 자스민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바닥을 구르는 그를 향해 접근했다. 넘어진 상대는 요리하기가 쉬웠으니, 이번에 말로 이 그를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접근은 실패로 끝이 났다.
느닷없이 그의 창끝이 교묘하게 휘어지며 안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있었던 탓이다. 범석은 바닥을 구르는 와중에도 창을 휘두르며 그녀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자스민이 힘겹게 검을 세워 창대를 막고는 뒤로 물러섰다. 이미 공격 타이밍은 지나갔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벌써 그는 몸을 일으키고는 창끝을 예리하게 세우고 있었다.
‘이런 당할 뻔했어.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자스민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지쳤다기보다는 긴장감에 흐르는 땀방울이었다. 그만큼 범석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잠시 방심했다고 여지없이 위기의 순간이 왔다. 만약 조금 전 자신이 좀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면 당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잔뜩 흥분하고 있는 프리시카의 옆에 섰다.
“언니. 역시 저자 보통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쉽게 상대할 수는 없겠어요.”
그 점은 프리시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상 작금의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자키드와 아멜리에의 등장으로 검투사 순위 3위에 오른 일로 화가 나는데, 또다시 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알아! 하지만 반드시 쓰러 뜨러 야해! 그래야 우리 팀이 이긴단 말이야!”
넌지시 철교 쪽을 바라본 자스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격이 쉽지 않은지 지금 에이션트 워리어즈 본진은 철교 입구 밖까지 물러선 채,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저런 식의 플레이를 계속 이어 나간다면 희망은 없는바, 반드시 여기서 승리의 여세를 잡아야 했다. 범석을 잡고 자신들이 본진에 합류한다면 1라운드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었다.
문제는 범석을 어떻게 쓰러뜨리느냐였다. 그는 자신들의 파상공세를 여태껏 잘 막아내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무턱대고 공격해서는 안 돼요. 지금껏 저희의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음을 보면 아시잖아요.”
“상관없어. 계속 공세를 취하다 보면 기회는 와. 그러니 빨리 공격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자스민이 범석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대로 아무런 전략 없이 싸워나갔다가는 이번 승부는 끝없이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 그의 방어태세는 철벽과 비견될 정도로 탄탄했다.
이런 그녀를 뒤따라가는 프리시카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녀는 지금 자스민을 재물로 범석을 해치울 요량이었다.
‘좋아.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2대1 승부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진정한 승부는 3라운드에서 벌이면 돼.’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창대가 크게 울려댔다. 자스민의 검격에 담긴 힘이 보통이 아닌 탓이다. 그녀의 힘은 거의 프리시카에 육박하고 있었다.
범석은 뒤로 스텝을 밟으며 그녀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헉헉. 어지간히 와라. 너희는 지치지도 않냐!”
오랜 시간 동안 둘의 연합공격을 받은 범석은 크게 지쳐있었다. 혼자서 둘을 상대하려는 체력이 급격히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버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패한다면 갓즈나이츠는 오늘 3전 패로 개막전 경기를 내어주어야 했다.
“자스민 뭐해! 계속 달려들어! 잠시도 쉴 틈을 줘서는 안 돼!”
“네. 알았어요!”
자스민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크게 휘저었다. 그러나 범석은 이미 거리를 벌리며 그 궤적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아니 안전거리를 확보한 그는 치명적인 창끝을 연속으로 날려대며 그녀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차창. 창. 차창.
연이은 타격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프리시카가 자스민의 옆에 섰다. 경기 시간도 이제 중반으로 흐르고 있으니, 슬슬 승부를 마무리 지을 때가 되었다. 그녀는 자스민이 빈틈을 파고들며 앞으로 나아가자, 뒤따라 들어갔다.
‘온다!’
범석이 좌측 측면으로 이동하며 창끝을 질러댔다. 연합 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견제 동작이었다. 빠르기는 했지만 가벼운 공격이었기에, 쉬이 피한 프리시카가, 그 틈에 안으로 파고드는 자스민의 등을 교묘하게 떠밀었다. 미끼를 던진 것이다.
‘자. 범석님 드세요! 독이 들어 맛은 그다지 없겠지만요.’
이에 범석이 웬 떡이냐며 바로 창끝을 힘껏 질러댔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수로 충돌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스민은 얼마 전에 이적한 검투사였다. 팀플레이에 익숙지 않으니 당연히 이런 실수를 벌어질 가능성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을 타격하는 창대로 묵직함이 느껴지는 순간, 범석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프리시카는 낮은 자세로 파고들더니, 그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젠장 할! 속았다!”
하지만 피하기는 반 박자 느린 타이밍. 범석은 어쩔 수 없이 오른팔로 그녀의 검을 막아 낼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프리시카의 검이 그의 팔뚝을 깊게 스쳐 지나갔다.
서걱.
“후후. 이제 끝이에요! 각오하세요!”
범석은 서서히 경직되어가는 팔의 느낌을 확인할 틈도 없이 창을 버리고 급격히 뒤로 물러났다. 기회를 포착한 프리시카가 종횡무진 검을 휘두르며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리저리 상체를 비틀어가며 좌우로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검격을 피해 나갔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는 건가요? 그런데 작년처럼 여름 낸 계속 비가 문제입니다. 작년은 여름이 여름 같지 않았거든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