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81
383화
쉐에엑.
프리시카의 검이 맹렬하게 내리꽂혔다. 세계 정상급 검투사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기세는 실로 엄청났다.
범석은 스텝을 밟으며 그녀의 공격을 회피하려고 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오른 팔을 부상당한데다가 창까지 잃어버렸으니, 프리시카의 공격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물론 허리에 예비로 들고 나온 카타나가 하나 있지만, 뽑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공격이 위협적이었다.
‘쳇. 환장하겠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스텐드를 바라볼 수 없었지만, 팬들의 표정이 어떨지 지레짐작이 갔다. 지금 홀로그램 전광판 화면에서는 프리시카가 자스민을 미끼로 자신의 오른팔을 가져가는 모습이 느린 동작으로 디스플레이 되고 있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버드 카메라들이 그의 시야의 사각에서 벌어진 그 장면을 영상에 담은 것이다.
“야! 같은 편을 제물로 삼다니 너무한 것 아니야!”
범석을 향해 긴 궤적의 검격을 휘두른 프리시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저 아이도 원한 일일 거예요. 아시다시피 프로라면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 자스민의 지론이거든요. 아마 저 아이가 좋아하는 우리 감독님은 무척 기뻐할 거예요. W0급 검투사 하나에 범석 님의 오른팔이면 남는 장사니까요.”
그가 지그시 프리시카를 측은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여유롭게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초조함에 휩싸여 있었다. 이유는 범석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주인을 얻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프리시카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최강의 검투사가 되어 30살에 월드 워커 옥션 마켓이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월드 옥션 마켓에 나오는 엘프들은 세계적인 스포츠 검투사들. 이들을 노리는 부호수집광들의 파상공세로 거래가가 크게 상승하였고, 최고의 엘프는 현재 몸값 이상의 가격에 판매되었다. 그래서 해당 소속 팀은 배려차원에서, 또 이득의 극대화 차원에서 최강 검투사가 30세에 이르는 시점에 판매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아멜리에와 자키드의 등장으로 그녀는 검투사 순위 3위로 떨어졌다. 여기에 범석에게까지 밀린다면 4위로 떨어지는바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네 번째의 자리에 있는 자에게는 최강자란 가치관을 부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저것이 주인을 얻고 싶어서 맛이 갔군.’
범석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프리시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그녀의 야망을 이루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못마땅한 것이다. 엄연히 그도 최강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발판은 검투사 랭킹 3위였다.
범석이 날아오는 검을 힘겹게 오른쪽 팔뚝으로 막아내고는 몸통 박치기로 프리시카와 충돌을 빚었다. 거리를 확보해 시간을 벌려는 의도였다. 그는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나는 그녀를 보고는 황급히 왼손으로 카타나를 뽑았다.
“훗. 내 팔 하나와 W0급 검투사와 맞바꾸면 남는 장사라고? 과연 그 말이 맞는지 보자.”
자세를 수습한 프리시카가 비웃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여전히 자신감은 충만하시군요. 한쪽 팔 그것도 오른손잡이가 오른팔을 잃었는데, 과연 제게 버티실 수 있을까요? 그만 포기하시고, 3라운드에서 저와 싸우시죠. 그때는 실력으로 범석 님을 쓰러뜨려 제가 최고임을 증명해 보일 테니까요.”
“웃기지 마. 그런 일은 없어. 너희 팀 감독이 바보가 아닌 이상 너와 나를 일대일로 싸우게 하지 않을 테니까.”
프리시카가 지그시 그를 노려봤다.
“어째서요? 설마 제가 범석 님을 이기지 못한다는 건가요?”
“물론이지. 외팔인 나에게도 이기지 못하는데, 정식으로 싸워서 이길 리가 없잖아!”
그 말과 함께 범석이 빠르게 내달리며 검에 기이한 궤적을 그려 넣었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워낙 변화가 심한 검격이라 프리시카는 간신히 쳐내고는 뒤이은 공격에 대비했다.
반격을 취할 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튕겨져나갔어야 할 그의 카타나는 이미 빠르게 허리를 갈라오고 있었다.
간신히 검을 꺾어 막아낸 그녀가 경악한 얼굴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마, 말도 안 돼!”
스텝을 밟으며 검을 쭉 뻗는 범석이 소리쳤다.
“말도 안 되긴! 네 실력이 고작 그거라는 거다!”
금속 충돌음과 함께 프리시카의 안면 옆으로 긴 검날이 스쳐 지나갔다. 자칫 했으면 그대로 얼굴을 타격 당하고 행동불능에 빠져들었을지 모를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범석의 이런 뜻밖의 실력에 공포로 물들어갔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한쪽 팔을 잃었음에도 나를 압도하고 있어?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
그녀의 의문은 당연했다. 아무리 뛰어난 검투사도 부분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면 전투력이 크게 하락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오른팔을 잃어 더 치명적이었다. 주로 검을 다루는 손을 사용할 수 없으니, 검인들 제대로 휘두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수없는 세월 동안 필드에서 사냥을 해왔다. 그동안 많은 부상을 당해왔고, 살아남기 위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외팔 전투법이었고,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범석의 검술이 그 실체였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은 너무 위세에 치중한다는 점이었다. 상대를 주눅이 들게 해 위기를 탈출하고자 함인데, 무리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자칫 큰 실수가 나올 수도 있어, 도리어 크게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프리시카의 기세가 계속 상승하게 되었다. 그럼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다가, 끝내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으윽!”
범석의 검이 강풍에 도는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프리시카에 날아갔다. 공격 방향을 알 수 없던 그녀는 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의 검은 쭉 뻗어나오며 인중 근처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상체를 비틀어 회피했지만, 범석의 무릎 공격에 복부를 얻어맞고 뒷걸음질을 쳤다.
“너는 실수한 거다! 난 너 혼자서 상대할 만한 자가 아니다!”
프리시카는 연이어서 날아오는 범석의 검격을 정신없이 검을 가져다 대 막아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대적하려 했지만,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범석은 대호와 같은 강맹함과 표범처럼 빠른 기민함으로 그녀를 유린하고 있었다.
가히 인간 같지 않은 기세에, 서서히 그녀의 눈이 절망감으로 물들어갔다. 그가 자키드와 아멜리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넘볼 수 없는 상대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녀는 서글픈 마음에 정심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까지의 노고가 무너져 내렸음을 알았으니,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쪽 팔로 자신을 이리 몰아붙이는 상대를 제치고 지금까지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있던 삼인자의 자리를 지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뭐지? 전혀 딴 사람 같잖아?’
범석은 프리시카의 주눅이 든 움직임에 의문을 표시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는 했지만,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한 때는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호령하던 그녀가 마치 평범한 검투사로 생각될 정도로 플레이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지만, 그는 계속 몰아붙이기로 했다.
아까처럼 자신을 속이려는 수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석은 뒤로 계속 주춤거리는 프리시카의 무릎을 빠르게 걷어찼다. 견제 차원이었기에, 그다지 힘이 없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런 황당한 발차기에 다리를 타격 당한 그녀가 메마른 짚단처럼 옆으로 넘어갔다. 이 모습을 본 범석이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어이없이 말이다.
우와아아. 우와아아.
팬들이 함성이 경기장 안을 울려 퍼지는 가운데, 범석이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는 프리시카의 목에 검끝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눈빛이 마치 시체의 그것과 다름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야. 뭐하냐?”
“……….”
“안 들려?”
“……….”
하지만 프리시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30세에 주인을 얻고자 했던 꿈이 사라졌으니, 충격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범석이 그대로 그녀의 목에 검끝을 찔러넣었다. 승부는 항시 냉정한 법이었다.
전광판의 시계를 본 범석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잘만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경기 시간은 고작 10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충분히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호오. 그럼 본진에 가세해 볼까!’
범석이 냉큼 철교 쪽으로 달려갔다. 그가 자스민과 프리시카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보고 승리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세이야가 갓즈나이츠의 팀원들에게 총공세를 명령한 것이다. 곧 범석이 가세한 갓즈나이츠는 사기가 떨어진 에이션트 워리어즈 본진을 휩쓸었고, 1라운드를 승리로 장식했다.
“참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범석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승리한 탓에 기분은 좋지만, 프리시카의 조금 전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딴에는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저리 허무하리만큼 무너지니, 김이 빠졌다.
이런 그에게로 환한 미소를 지은 다이아나가 다가왔다.
“주인님. 정말 잘하셨어요. 덕분에 1라운드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어요. 이제 잘만 하면 오늘 경기에서 승리를 따낼 수도 있어요.”
범석이 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1라운드는 운이 좋아 승리했지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만큼 프리시카가 있는 에이션트 워리어즈 강한 팀이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튕겨 다이아나의 이마를 가볍게 때리고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뭐가. 승리야.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고. 오늘은 무승부만 해도 다행이라는 사실 너 몰라?”
다이아나가 슬며시 경기장 쪽을 바라봤다. 범석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동안, 프리시카는 경기장 한가운데 드러누운 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수십 년간 주인 없이 지내온 다이아나가 지금 그녀의 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가능해요. 프리시카가 긴 슬럼프에 빠져들 거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프리시카가 왜 슬럼프에 빠져?”
“싸울 이유가 사라졌으니까요. 주인님의 등장으로 이제 그녀는 꿈을 상실했어요.”
“아니 꿈을 왜 상실해?”
“이제 검투사 순위 4위로 떨어지게 되었으니까요. 자키드와 아멜리에의 등장으로 3위로 추락한 그녀지만, 지금까지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싸워나갈 수 있었어요. 검투사 순위 3위까지는 방송사들의 경쟁구도 설정으로 자주 언론에 노출되거든요. 그런데 3위 자리를 잃게 되었으니, 그런 효과는 누릴 수 없게 됐고, 이는 세노사이드에 열리는 월드 워커옥션마켓에서 부호들의 지갑을 닫게 하는 계기가 돼요. 그리 인지도가 없는 검투사를 구입하기 위해 프리시카 현재 몸값에 육박하는 큰돈을 낼 자는 없으니까요.”
범석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아직 내가 3위 자리에 올라선 것은 아니잖아? 세계 검투사 순위는 성적으로 결정된다고. 내가 3위 자리에 오르려면 대략 10경기 이상은 치러야 해.”
“후후. 오르고 안 오르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언론의 노출이 문제죠. 전문가들은 이미 범석님을 세계 3대 검투사에 올려놓은 상태이고, 오늘 주인님은 부분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프리시카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다가 결국 승리를 따냈어요. 그런데 언론에서 그녀를 세계 3대 검투사로 인정할까요?”
턱을 가만히 괸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검투사 순위 1, 2, 3위와 세계 3대 검투사 사이에는 약간의 괴리가 있었다. 전자는 성적으로 결정되고, 후자는 관념이 작용했다. 오늘 프리시카가 그에게 철저히 무너뜨린 이상, 언론의 집중은 범석에게 향하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프리시카가 꽤 실망이 크겠는데.”
“꽤가 아니라 억장이 무너지죠. 30살 은퇴가 완전히 사라졌으니까요. 그녀 정도의 실력이라면 최소 40까지는 현역에서 뛰어야 할 걸요.”
범석이 또다시 그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무리 사실이라도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었다. 특히나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입을 다물어야 했다.
“40까지라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음 작전이나 말해.”
이번에는 제법 셌는지 다이아나가 이마를 비비며 말했다.
“일단 2라운드까지는 그대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니까요. 지금으로서는 프리시카가 충격을 받은 듯 보이지만, 곧 회복될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리고 3라운드를 보는 거죠. 그때도 프리시카가 지금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나머지 라운드도 연달아 주전을 출전시켜 승리를 노리는 거예요.”
범석이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주전의 체력이 크게 고갈될 터, 다음 시합이 걱정되었다. 일주일 후에 벌어지는 원정경기에서 갓즈나이츠는 포레스트 엘프즈와 만나게 되었다. 이들 팀은 작년도 월드리그 3위 팀으로 만만치 않은 검투사 스쿼드를 구축하고 있었다.
“다음 상대가 포레스트 엘프즈라는 사실 잘 알지? 걔들 작년 시즌에 홈에서 전승 신화를 쌓았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주인님이 계시잖아요. 올해는 그 신화가 반드시 깨질 거예요.”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다이아나를 향해 범석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인다면 잘난 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녀의 말은 한 치의 틀린 점도 없었다.
자신이 있는 이상 다음 경기에 패할 수가 없었다. 포레스트 엘프즈는 그가 전에 채플린가 별장에서 맞붙은 적이 있는 티엘라가 소속된 팀으로, 홈 콜로세움이 빽빽한 나무숲으로 되어 있었다.
“쩝.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그 말을 하고 난 범석이 자신의 벤치로 돌아가 편히 앉았다. 보아하니 3라운드에서도 땀 꽤나 흘릴 듯 보이니, 체력을 비축하려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아무리 자기 살기 바쁘다지만, 참 세상 치사하네요. 독일이 적극적으로 그리스를 비롯한 재정한 위기를 겪는 유럽권 국가들을 돕는다며 핑크빛 전망을 내놓으면서, 맨 마지막에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할지 의문이라는 말을 끼어넣어 빠져나갈 구멍만 만들어놓네요. 실상은 그 구조적인 문제가 중요한데, 언론기사에 그에 대한 설명이 쏙 빠져 있습니다. 하긴 그걸 설명하면 깨진독에 물붓기라는 사실을 대중이 알테니, 설명할 리가 없겠죠. 이래서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다 죽는 겁니다.
휴~ 그럼 모두들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