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83
385화
호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간 범석일행과 줄리앙이 연회실 입구에 섰다. 화려하고 넓은 실내를 넌지시 바라본 범석이 작게 읊조렸다.
제법 인파가 들기는 했지만, 생각과 달리 북적거리지는 않았다. 전에 연방 프로 검투협회 연례 만찬회에 참석했을 때에는 넓은 연회실에도 불과하고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내빈객들이 많았다.
“꽤 한산하네. 우리가 너무 빨리 왔나?”
줄리앙 가벼운 말투로 대꾸했다.
“아니 올 사람은 다 온 듯 보이는데. 기껏해야 월드리그팀 관계자 두 명씩과 주요 검투협회 임직원만이 참석하는데, 내빈이 많을 리가 없잖아.”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팀당 참석 인원은 2명이니, 월드리그 팀 관계자는 기껏해야 40명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연방 검투 협회의 임직원이 많다고는 하지만, 주요 인원만 추린다면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확실히 줄리앙이 말이 맞아 보였다.
“그렇겠네. 그런데 연회실을 너무 넓게 잡은 것 아니야? 여기 반 만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뭐. 부자들의 돈 지랄이지. 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우리는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 먹는 게 남는 거다.”
줄리앙이 먼저 안으로 들어서더니, 근처에 있던 빈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지나가는 웨이터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메뉴에 있는 모든 음식을 골고루 다 시켰다.
한 사람이 먹기에는 무척 많은 양이었지만, 웨이터는 친절하게 응대하며 모두 받아적었다. 괜한 충고로 손님을 불쾌하게 만들 이유도 없을뿐더러, 모든 음식값은 연방 검투 협회에서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네. 그럼 곧 요리가 나올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웨이터가 돌아가자, 곁에서 그 장면을 똑똑히 목도한 범석이 창피했는지 줄리앙에게 짜증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야! 뭔 음식을 그렇게 시키냐! 설마 그 음식들을 다 네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그걸 어떻게 다 먹냐.”
“그럼 정도껏만 시켜야지. 있는 대로 다 주문하면 어떻게 해?”
줄리앙이 가지고 온 가방을 선보이며,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 보였다. 바로 봉투들이었다.
“걱정하지 마. 남는 건 다 싸갈 거니까.”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만든 범석이 크게 소리쳤다. 옆에 있자니 쪽팔린 것이다. 물론 그도 식당에 들렀다가 음식이 남으면 종종 싸가기는 하지만, 여기는 고급 호텔 연회식당이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내로라하는 스포츠부호들이 잔뜩 자리하고 있었다. 걸렸다가는 그만한 개망신도 없었다.
“너. 지금 장난하냐? 여기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모를 리가 없잖아!”
“당연히 알지. 그런데 몸이 편하려면 어쩔 수 없다.”
“뭐가 어쩔 수 없어!”
“아. 달마 줘야 하거든. 호텔 식당 안에 들어갔다가, 음식 안 싸오면 삐친다. 너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데, 걔 삐치면 정말 무섭다.”
“아니. 그럼 안 데려오면 됐잖아! 왜 데려와서 사서 고생하는데!”
줄리앙이 넌지시 그를 쳐다봤다.
“내가 데려오고 싶어서 데려 왔겠냐. 지가 눈치 까고 알아서 따라붙은 거지. 저놈 내가 어디 밥 먹으러 갈 일 있으면 귀신같이 안다. 오늘은 아예 플라잉 카 안에서 대기하고 있더라…….”
“참나. 그럼 쫓아버리면 되잖아!”
“훗. 쫓아버려? 그럼 우리 다크하이나즈 팀 그날로 연패다. 달마 그 놈의 꼬장이 어느 정도인지 네가 몰라서 그래. 달마가 행패를 부리면 다들 밤에 한숨도 못 잔다.”
“그럼 버릇을 들여 놔야 할 것 아니야!”
“버릇? 세계에서 유명한 개 조련사를 몇몇 초청했지만, 개박살이 나서 돌아갔다. 그 자키드도 달마의 버릇을 고치려다가 단단히 혼이 났는지, 지금은 슬슬 눈 깔고 피해 다니더라. 저놈은 야생 그 자체야. 죽기 전에는 절대 버릇 못 고쳐.”
범석이 허탈한 표정으로 헛바람을 내뱉었다. 저리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휴~ 너도 참 힘들게 산다.”
“뭐. 그렇지는 않아. 이런 것만 확실히 챙겨주면 말썽을 피지는 않으니까. 다만…….”
“다만 뭐?”
“희한하게 달마 저놈이 이 근처 호텔에만 오면 꼬장을 핀단 말이야.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나 봐. 하긴 뭐 나야 상관없지. 조금 전 분명히 경고했으니, 달마가 사고 치면 호텔 측의 관리 소홀이 되니까.”
하긴 줄리앙이 달마가 이곳에만 오면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놈이 이 근처 호텔에서 사고를 치는 이유는 문 앞에 음식 쓰레기가 없어서였다.
당연히 달마로서는 버릇을 고쳐야만 하는 당위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 호텔과 달마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납관계는 줄리앙과 만나기 전의 이야기였다.
범석이 입맛을 다시더니 말했다.
“뭐. 호텔에서 알아서 잘 관리하겠지. 솔직히 개끈을 기둥에 묶어두면 다 해결될 일이잖아.”
“후후. 과연 그럴까?”
그때 이들에게로 한 흑발의 여성이 조용히 다가왔다. 꽤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범석에게 살짝 눈인사를 던지더니 줄리앙에게 다가갔다.
“어머. 줄리앙 왔어?”
얼굴도 보지 않았음에도 줄리앙의 안면이 급격히 우거지상이 되었다.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여인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데레사냐?”
“뭐야. 친구가 찾아왔는데, 쳐다보지도 않는 거야?”
줄리앙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됐지. 그럼 가봐라.”
“매정하게 왜 그래. 우리가 하루 이틀 알고 있던 사이도 아니잖아.”
줄리앙은 청년기업연합회의 회원으로 지내며 데레사는 오랫동안 겪어왔다. 그렇기에 그녀의 사특하고 모진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년기업연합회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 사실을 절절히 몸으로 경험했다. 당시 줄리앙은 그녀의 회비 독촉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일부러 찾아가 인사 나눌 정도의 사이는 아니잖아. 네가 그 점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호호호. 뭐. 그런 일로 삐치고 그러니. 총무로서 회비를 내라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하기야 그렇겠지.”
하며 줄리앙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지폐 몇 장을 짚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주 큰 돈이라 손이 떨릴 만큼 아깝지만, 데레사를 쫓아 보낼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돈을 받아든 그녀가 의아한 시선으로 줄리앙을 바라봤다.
“이 돈은 뭐니?”
“뭐긴. 전에 내지 못한 회비다. 그러니 이제 볼 일 없으니까 가봐라.”
“왜 볼 일이 없어? 우리는 같은 청년기업연합회 회원이잖아. 그동안 네가 모임에 나오지 않아서 전해줄 얘기가 아주 많아.”
줄리앙이 뜬금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몇 년간 안 나갔으면 어련히 탈퇴했다고 알아들어야지.”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청년기업연합회는 경제인단체의 후계자 예비모임이라고. 하이에나그룹도 경제인 단체의 일원이니, 너도 언젠가 기업을 이어받으면 들어올 것 아니야. 그때 가서는 어쩌려고 그래?”
줄리앙이 범석과 어깨동무를 하더니, 한쪽 입가를 슬며시 올렸다.
“나는 일심회에 들어갈 거거든. 그러니 상관없어.”
범석이 느닷없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그런 얘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일심회에 왜 들어와.”
“치사하게 이러기야? 내가 일심회에 조달한 자금이 얼마인데, 발뺌이야. 자그마치 12억이라고 12억. 그리고 지금은 60억 대로 늘었고.”
범석이 데레사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귓속말을 건넸다. 화이트 엔젤 펀드에 대한 사항은 대외비인데다가, 그녀는 흑사회의 스파이였다.
“야. 이 자식아. 그 얘기를 여기서 꺼내면 어떻게 해.”
“괜찮아. 데레사는 흑사회의 적인 청년기업연합회 회원이잖아. 그리고 우리 화이트 엔젤 펀드는 잘해봐야 1,300억 크랑이 겨우 넘을 뿐이야. 그리고 그 돈의 정체는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다고.”
그 말에 범석이 눈을 깜빡거렸다. 화이트 엔젤 펀드의 자금은 현재 2,300억 크랑이 넘어섰고, 그 사실을 지분참여자인 줄리앙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략 분위기를 눈치챈 범석이 헛기침을 연발했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줄리앙은 거짓 정보를 늘어놓고 있었다.
“하긴 그렇지만, 일부러 말할 이유는 없잖아.”
“그렇다고 숨길 이유도 없지. 앞으로 일심회는 경제인단체와 연합해 흑사회 기업을 흡수해야 하잖아. 그러니 미리 우리의 자금력을 알릴 필요가 있어.”
데레사의 시선은 무관심 그 자체였다. 흑사회도 이미 일심회가 자신들을 치기 위해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던 탓이다. 아직까지 규모를 알 수 없어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1,300억 인근이라면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 자금은 버밀리언 사에 잠식되어 있었던 탓이다.
“범석 씨. 너무 숨기지 않아도 돼요. 이미 그 자금은 버밀리언 사태 때 드러난 자금이니, 흑사회도 충분히 알고 있을 거예요.”
“아. 그렇겠군요. 저희 렉스터 경감님께서 직접 버밀리언사 임시총회에 참여하셔서 지분에 대한 의결을 행사하셨으니까요.”
데레사가 다시 줄리앙을 바라봤다. 별일이 아니었으니 이제는 일심회와 줄리앙의 관계를 끊어놓으려는 것이다.
‘저 원수 놈을 반드시 내 손으로 없애버릴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하이에나 그룹이 일심회에 가는 일을 결단코 막아야 해.’
범석은 자신의 아버지인 루카스회장을 몰락시킨 원수였다. 지금 루카스는 그에 대한 살인 미수죄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흑사회에서 손을 쓰고는 있지만, 워낙 세계적으로 이슈화된 사건이고 증거가 명백해 아버지가 풀려나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 틈에 경제인 단체가 주가 폭락사태를 맞이한 윈드 하우스 사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해 얼마 전에 먹어갔다.
그 회사는 훗날 그녀가 물려받기로 약속한 그룹. 덕분에 지금껏 꿈꿔온 세계적인 여성 기업가이라는 희망도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고, 질투 덩어리인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는 괴로운 인생을 감내해야 할 터였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범석. 이제 데레사의 복수의 칼은 그에게로 향해졌다.
훗날 복수를 위해서는 범석이 힘을 키우게 놔둬서는 안 됐다.
“하지만 줄리앙 넌 실수하는 거야. 일심회와 경제인 단체가 비교되니? 우리는 거대 이권 단체라고. 다른 기업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와. 그런데 이런 특권을 버리고, 저 작은 일심회에 들어가는 것이 말이 돼?”
범석의 이마의 힘줄이 단단하게 경직되었다. 일심회를 모욕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어이 데레사 양. 말이 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일심회는 당당히 경제인 단체와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호호호. 과연 그럴까요? 일단 서로 돕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동등한 관계라고 얘기하신다면 저로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네요. 저희 경제인단체와 일심회 급이 아예 다르거든요.”
그가 치솟아 올라오는 화기를 간신히 가라앉혔다. 평상시라면 바로 사고를 쳤겠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이 지게 되었다. 데레사의 목적이 일심회와 경제인단체의 이간질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후후. 뭐 그렇다고 치죠. 흑사회 그 개자식들을 치는데 동등한 관계건 아니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일단 놈들의 제거가 최우선이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순간 눈매를 날카롭게 만든 데레사가 조롱하듯 말했다.
“맞는 말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범석 씨 배알도 없네요. 저 같으면 무척 화를 냈을 텐데요.”
“글쎄요. 그건 저와 그쪽이 입장이 달라서일 수도 있겠네요.”
“뭐가 다르다는 거죠?”
“데레사 양이 혹시 흑사회를 치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지를 은근히 묻는 겁니다. 보통의 경제인단체 회원과 청년기업연합회 회원들은 제게 그런 말을 하지 않거든요. 흑사회를 치기 위해서는 저희 일심회와 손을 잡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매서운 그의 시선을 받은 데레사가 입을 꽉 다물었다. 루카스가 몰락한 사건으로 화가 났다지만, 자신이 너무 막 나간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범석은 최초로 청년기업연합회 회원과 그 측근 중에 누군가 흑사회의 스파이가 있다고 밝혀낸 자. 굳이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그렇군요. 정말 죄송해요. 제 친구인 줄리앙이 청년기업연합회를 떠난다고 하니 잠시 흥분을 했어요.”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죠. 다 이해합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그 말에 줄리앙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흥. 네 입에서 감사라는 말이 튀어나오다니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입술을 잘근 깨문 데레사가 그를 쳐다봤다.
“줄리앙 너는 조용히 있어. 다 너를 위해서 나섰다가 실수한 거니까.”
“훗. 네가 나를 위해 나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뭔 또 수작을 피려는 거겠지.”
“그런 것 아니니. 너 조용히 있어라.”
“설마 네가 나를 위해 나섰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무슨 이유로 여기서 설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에 대해서 너무 잘 아니까 절대 안 속아 넘어가. 그러니 헛물켜지 말고 돌아가는 편이 좋을 거다.”
얼굴을 붉힌 데레사가 자리를 벌떡 일어섰다. 저런 줄리앙에게 자신의 말이 씨알도 먹혀들 리가 없었다. 괜히 더 말해봐야 자신의 입만 아팠다.
“줄리앙. 너 나중에 두고 보자.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니까 단단히 각오해.”
“마음대로 해. 하지만 너도 각오해 두는 편이 좋을 거다. 전에 네가 내게 준 수모는 절대 잊지 않고 있으니까. 너도 잘 알지? 내가 과거에 어떤 놈인지 말이야.”
이를 바득 간 데레사가 줄리앙과 범석을 한 번 흘기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짝짜꿍이 되어 놀아나는 저들과 대화해봐야 성질만 버릴 뿐이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줄리앙의 이름을 범석의 바로 아래에 넣고 복수를 다짐했다.
============================ 작품 후기 ============================
에고에고. 오랜만에 머리를 깎으니 시원하네요. 거의 스포츠로 깎았거든요. 하하하. ㅠㅠ. 매정한 미장원 아줌마. 아무리 짧게 깎아달라고 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 짧게 만들다니요. ㅠㅠ. 역시 단골집이 최고입니다. 제가 원래 가는 미용실은 짧게 깎아달라는 말을 해도 대충 알아듣고 적당히 짤라 주거든요. ㅠㅠ.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