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87
389화
– 양 팀 검투사. 경기장 중앙으로 입장해 주십시오.
입장 터널 입구에 서 있던 티엘라가 입장 신호에 발맞추어 1라운드에 출전하는 팀 동료와 함께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숲 입구에 다다른 그녀는 복날 솥단지에 들어가는 누렁이처럼 얼굴을 파리하게 만들었다. 들어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보나 마나 손도 못 써보고, 당하게 되었다.
‘휴~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입구에 남아있을 수는 없으니까.’
티엘라가 뒤를 따라오는 미라즈를 바라봤다. 바로 그녀가 대장인 까닭이다.
지금 미라즈의 곁에는 2명의 수호 검투사가 지키고 있지만, 아무래도 불안했다. 범석이 제일 맛깔스러워할 먹잇감이 바로 대장인 탓이다.
초반에 몰래 그녀만 쓰러뜨린다면 1라운드는 어이없이 끝나게 되었다. 숲을 헤치며 중앙을 향해 걸어가던 티엘라가 잠시 멈춰 서고는 미라즈를 기다렸다가 함께 동행했다.
“미라즈 언니. 같이 가요. 제가 보호해 드릴게요.”
“네가 나를 보호해? 넌 선봉이잖아?”
“하지만 오늘은 수호검투사 역할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미라즈가 곤란한 듯 그녀를 쳐다봤다. 조금 전 더그아웃에서 감독인 오펜과 그녀의 충돌을 지켜봤던 것이다. 만약 티엘라가 팀 작전을 무시하고 수호 임무를 수행한다면,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 있을 감독이 크게 화를 낼 터였다.
“괜찮겠어? 선봉의 임무를 게을리했다고 감독님이 뭐라고 하실 텐데?”
“상관없어요. 오늘은 선봉의 의미가 없거든요. 오늘 저희는 갓즈나이츠 본진을 단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할지 몰라요.”
안면 앞을 가리고 있던 나뭇가지를 젖힌 미라즈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 정도로 범석 님이 대단해?”
“네. 상당히요.”
“하긴 범석님은 세계 3대 검투사로 여겨질 정도니까.”
그 말에 티엘라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세계 3대 검투사로는 숲에서의 그의 전투력을 표현해낼 수가 없었다. 이미 그 중 둘인 자키드와 아멜리에도 이곳에서 어이없을 쉽게 쓰러져갔다.
“그 정도면 제가 걱정을 하지 않죠. 그분은 숲에 있는 이상, 악마 그 자체에요. 검은 악마요. 아마 오늘 저희는 범석 님의 코빼기도 보지 못할 거예요.”
미라즈가 피식 웃어댔다. 티엘라의 과장이 너무 심했던 것이다.
“호호호. 네가 그러니까 나도 무섭다. 얘.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난 우리 팀원들의 실력을 잘 아니까.”
“후후. 저도 우리 팀원들의 실력을 잘 알아요. 그리고 홈 경기장에서는 저를 따라올 애들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요. 저와 다른 아이들은 훈련의 질이 완전히 틀리거든요. 하지만 전 범석 님의 일검도 받아낼 자신이 없어요. 한 번은 전혀 가까이 다가갈 엄두도 못 냈고, 또 한 번은 여기 이 장소에서 두 눈 멀쩡히 뜨고 목을 내어줬죠.”
미라즈가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워버렸다. 그녀도 티엘라의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홈 경기장을 찾아와 홀로 훈련을 하고 있어, 홈 콜로세움의 적응력이 팀 내 최고였다. 티엘라가 손도 못 써볼 상대라면, 팀원 중 그 누구도 범석을 상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평지와 달리 숲은 기습전과 일대일 전투가 주를 이루었기에, 혼자서도 모두를 상대할 수 있었다.
“좋아. 알았다. 그럼 더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을게. 대신 감독님이 뭐라고 해도 난 모르는 일이다.”
“네. 그렇게 하세요.”
양 팀 검투사들이 중앙에 이르렀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이들은 우거진 수풀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이어지던 정적의 시간이 긴 호각 소리와 함께 깨어졌다.
– 삐이익! 경기 시작!
“모두 돌진해서 뒤떨어지는 애들을 확실히 제거해!”
리프리스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보통은 대장인 미라즈가 해야 옳았지만, 초반 기습전만큼은 그녀가 주도했다.
초반 상대가 급히 입구 터널 근처 평지까지 돌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몇몇 정도가 뒤처지는 경우가 있었다. 빽빽한 나무에 막혀 길을 잃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주 훌륭한 먹잇감으로, 이들을 어떻게 잘 요리하느냐에 따라, 그 라운드의 크게 승률이 좌우되었다. 덕분에 선봉의 초반 강습전이 필요했고, 이를 리프리스가 지휘했다.
그녀를 따르던 로렐라이가 주변을 살피더니 이내 소리쳤다.
“리프리스 언니! 티엘라가 안보여요!”
그 소리를 들은 리프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은 사고를 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초반 강승전에서 티엘라의 역할이 중요했기에, 빠지면 전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을 듯도 보였다. 앞에 갓즈나이츠의 리자가 돌을 든 채 얼쩡거리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녀도 출중한 기량의 소유자였지만, 자신과 로렐라이의 합격이라면 아주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녀가 곁을 따르던 로렐라이를 바라봤다.
“티엘라는 포기하…….”
리프리스가 하던 말을 멈추고 등 뒤쪽을 경악한 눈으로 바라봤다. 방금까지 멀쩡히 말하던 로렐라이가 근처 나뭇가지에 몸만 내놓은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던 그녀는 초반 강습전을 포기하고 로렐라이에게로 뛰어갔다.
“로렐라이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그녀는 몸을 경직시킬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그때 뒤를 따르던 중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악!”
목소리로 보아하니, 모이아였다. 리프리스는 급히 수풀을 헤치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갔다. 이미 모이아도 당해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도대체 누구얏!”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주변을 무수히 날아다니는 버드카메라의 날갯짓 소리뿐이었다.
파피란시티 콜로세움은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관중은 실제 경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경기장에 고성능 버드 카메라 수백 대를 날렸고, 이를 통해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중계했다.
리프리스가 뒤늦게 도착한 제리스를 포함한 중견들과 합류하고는 계속 주변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녹음으로 가득 찬 나뭇가지뿐이었다.
‘너무 상대를 만만히 봤어. 아까 티엘라가 한 소리가 허튼 얘기가 아니었어. 아무리 봐도 범석 님을 먼저 잡고 나서 갓즈나이츠 본진을 쳐야겠어.’
2명이나 당했지만, 리프리스는 아직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강습전에 신경을 쓰느라, 범석의 기습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수적 열세도 그만 잡는다면 충분히 역전하리라고 생각했다.
전에도 몇 번 강습전이 실패해 몇몇을 잃기는 했지만, 이후 숲을 기반으로 치고빠지는 전략을 취해 여유롭게 승리했다.
그녀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뒤늦게 본진에 합류한 티엘라 때문이었다.
“티엘라! 지금 오면 어떻게 해!”
티엘라가 모인 동료의 수를 확인하더니, 리프리스를 향해 넌지시 시선을 던졌다.
“모이아와 로렐라이는 어디 갔죠?”
“둘 다 너 때문에 당했다! 도대체 선봉이라는 애가 후미와 같이 오면 어떻게 해! 너만 옆에서 지원해줬어도, 걔들이 당할 이유가 없잖아!”
“제가 있어도 당했어요. 아니 제가 제일 먼저 당했겠죠. 범석 님은 이곳 지리가 가장 익숙한 저를 제일 먼저 제거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그래! 너 잘났다! 하지만 이제는 내 명령에 따라! 또 후미에서 알짱거린다면, 혼쭐이 날 줄 알아!”
“그럼 대장인 미라즈 언니가 당해요. 수호검투사 둘로는 범석님을 못 막아요.”
“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해!”
리프리스가 흥분하자, 미라즈가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리프리스의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티엘라의 의견에 더 신뢰가 갔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는 하나, 한 명에게 순식간에 둘이 당했다면 확실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리프리스. 대장인 나야. 강습전이 실패로 돌아간 이상, 이후의 경기는 내 명령에 따라야 해.”
“어떻게 하시려고요?”
“돌아가서 방어전에 들어간다. 티엘라의 말처럼 확실히 뭔가 이상해.”
“미라즈 언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여기는 저희 홈이에요! 작년에 무패의 신화를 쌓았던 그 장소라고요. 그런데 단지 두 명이 당했다고 꼬리를 말고 방어전에 들어가요? 게다가 저희는 방패도 없어요. 만약 범석 님이 숲에서 비도를 던지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미라즈도 그 점이 걱정이었다. 범석이 숲에 몸을 숨기고 기습적으로 비도를 날리면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터였다. 그래도 못도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비도는 빠르게 날아오지만, 최소한 보이기라도 했다. 주의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때 그녀의 귓가에 오펜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감독이 나선 것이다.
– 미라즈 뭐해! 빨리 오 범석 그 자식을 잡아야 할 것 아니야!
“하지만 둘이 순식간에 당했어요. 왠지 불안해요.”
– 너도 티엘라에게 전염 됐냐! 빨리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미라즈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펜은 유능한 감독이기는 하지는 소갈머리가 뱁새보다 더 작은 것이 문제였다.
괜히 말을 안 들었다가, 찍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말년이 힘들어졌다. 가뜩이나 몇 년 후면 은퇴인데, 괜히 찍혀서 훗날 다른 하위팀으로 팔려가면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월드리거인 그녀는 아무리 노화를 진행되더라도 하위리그라면 충분히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월드 워커 옥션 마켓으로 직행하기 위해서는 감독님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니까.’
그녀는 곧장 팀을 세 무리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각의 조에 세 명씩 배치하고 후미 부분은 티엘라를 포함한 네 명으로 그룹을 만들었다. 범석을 수월하게 찾기 위해서는 조를 더욱 세분해야 했지만, 불안감 탓에 꺼려졌다.
“자 모두 흩어져서 범석님을 찾아! 그리고 발견 즉시 모두에게 알려서, 포위망을 구축하도록 해!”
“넷.”
이렇듯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 포레스트 엘프즈 검투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멀찌감치에 이를 지켜보던 범석이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는 이동을 시작했다. 미끼인 리자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이제 저들이 흩어졌으니, 리자는 마지막 할 일만 하고 본진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무성한 수풀을 지난 범석이 멀뚱멀뚱 숲 속에 서 있는 리자에게 다가갔다.
“리자. 수고 많았다.”
그를 본 리자가 반가이 맞이했다. 다이아나로부터 그의 활약을 들은 것이다.
“사형. 벌써 둘이나 해치웠다면서요? 대단해요.”
“대단하긴 뭘. 아직 열 명이나 남았는데……. 그나저나 넌 이제 돌아가야겠다. 상대가 흩어졌으니, 이제부터 나는 그녀들을 쫓아가야 한다.”
“그래요? 그럼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저도 이런 지형에서의 전투에 자신 있어요.”
범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리자는 어려서부터 스덴 시티 외곽 산맥에 살았던 터라, 숲을 기반으로 한 전투에 강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검술 실력도 떨어질뿐더러, 이동 시 기척을 숨기는 데에 다소 미숙했다.
괜히 끌고 다니다가는 짐만 될 뿐이고, 따로 떨어져서 행동해도 다른 포레스트 엘프즈 검투사를 대적하기 어렵기에 여러모로 불안했다. 이번 라운드에 출전한 상대 팀 검투사들은 최소 W1급 이상인데 반해, 그녀는 겨우 W2급 실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계획대로 넌 이대로 본진으로 돌아간다. 여기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리자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포레스트 엘프즈 검투사들과 상대해보지 못한 그녀로서는 자신감에 차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도 잘할 수 있는데요…….”
“그건 나도 알지만, 넌 저들보다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못해서 쉽게 당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 일만 해주고 돌아가도록 해. 알았지?”
리자가 손에든 큼지막한 돌을 만지작거렸다. 아쉽지만, 범석이 저리 말하니 돌아가야 했다.
“알았어요. 그럼 사형 말대로 디스플레이 장치만 부수고 돌아갈게요.”
“그래. 그럼 잘 부탁한다.”
리자가 살짝 뒷걸음질을 치더니, 빽빽한 수목 사이에 공간을 지그시 노려봤다. 그녀가 이 자리에 서 있던 이유는 미끼 역할을 수행하고자 함도 있었지만, 여기가 디스플레이 장치를 맞출 수 있는 최적지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입장 터널 입구 쪽에 가면 다소 평지가 있어 보다 쉽게 맞출 수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공공기물 파괴로 자칫 퇴장을 당할 수도 있었다.
곧 팔을 한 번 휘저은 리자가, 범석이 주변으로 다가오는 버드 카메라를 렌즈를 몸으로 가리는 사이, 힘껏 돌팔매질했다.
쾅. 파지직!
공중에서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중앙 고목 위에 있던 큐브 홀로그램 화면이 꺼졌다.
갑작스러운 외부 사태에 심판진들이 잠시 경기가 중지됐지만, 이내 다시 재개시켰다.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되었고, 단지 화면 하나가 나갔다고 경기를 중단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기장 내에는 중앙의 큐브 말고도 수없이 많은 홀로그램 영상이 제공되었다.
‘자. 이제 슬슬 가볼까?’
리자가 돌아가자 범석이 나무를 타며, 이동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목표가 된 쪽은 동남쪽으로 이동한 리프리스가 이끄는 그룹이었다. 가장 강한 에이스가 포함된 무리였기에, 제거 시 상대가 느낄 두려움은 배가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발견된 그룹은 카렐리아가 이끄는 무리였다. 아무래도 조금 전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을 무렵, 위치가 바뀐 듯 보였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제거하면 셋이 줄어드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범석이 은밀히 그녀들을 뒤쫓았다. 근처에서 윙윙 날아다니는 몇 대의 버드 카메라가 신경 쓰이지만, 전혀 상관할 바가 없었다. 이 소리로 자신이 가지 사이를 이동하면서 내는 기척이 상당 부분 줄어들기 때문이다.
범석은 지척에 다다랐을 무렵 빠르게 측면 돌아 이동해, 카렐리아 무리 앞쪽 숲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정글 칼과 비도를 양손에 거머쥐고는 공격 타이밍을 포착해나갔다.
============================ 작품 후기 ============================
으음. 제작년 부터 흰머리가 나 걱정이었는데, 오늘 우연히 살펴봤는 대부분 사라졌네요. 회춘을 했나 봅니다. 하하하……. 하여간 기분은 좋네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