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91
393화
섭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리그 경기 일정 탓에 반대를 표할 줄 알았던 감독이 적극 협조하거나 방관했던 탓이다.
에이션트 워리어즈 감독은 정신 문제를 겪고 있는 프리시카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어 허락했고, 다크 하이에나즈의 감독인 렘란트는 제자인 자키드가 최강의 자리에 올라서기를 바랐기에 흔쾌히 보냈다.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는 빈센트는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게 되었다.
세계 최강 검투사가 모이는 자리에, 아멜리에만 빠진다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오빠! 여기에요!”
MKKN방송국 본사 주차장으로 범석이 탄 플라이 카가 내려서자, 카렌이 반갑게 양팔을 흔들어 댔다. 이에 그가 차 문을 열고 나와 카렌에게 걸어갔다.
“카렌. 뭘 여기까지 나와 있어.”
“에이. 아니에요. 오빠가 그리 애써주셨는데, 이 정도 서비스는 해 드려야죠. 제게 무척 도움이 됐거든요. 그리고 제법 발이 넓다고 제작진들에게도 많은 칭찬을 받았어요. 헤헤.”
하긴 그로 말미암아 카렌은 프로그램 조기 종결이라는 난관을 극복했다. 세계 최강의 검투사들이 한데 모인다는 선전이 방송을 타자, 많은 검투팬들이 게시판에 찾아와 호응을 보내고 있었던 탓이다.
이번에 대충 시청률만 나와도 그녀가 공동 진행하는 ‘스포츠 스타를 만나보자.’는 내년 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럼 겨울 휴가 시즌에 많은 거물급 스포츠 스타를 방송에 출연시켜, 계속 인지도를 쌓아갈 수 있었다.
“그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카렌이 범석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 그럼 빨리 가요. 촬영장으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버스?”
“네. 촬영을 야외에서 하거든요.”
“야외 어디?”
“근방에 있는 사노사이드 시민 체육공원이요.”
범석이 난감한 듯 그녀를 바라봤다. 시민 체육공원에는 으레 민간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자칫 몰려드는 팬들로 곤욕을 치를 수 있었다. 그만큼 세게 3대 검투사와 프리시카의 인지도는 대단했다.
“괜찮겠냐? 팬들이 몰려들 텐데?”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통제인력도 배치해 놓았고, 촬영 중이라고 한다면 팬들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니까요.”
수긍한 범석이 카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극성팬이라면 촬영도 무시하겠지만, 통제인력이 있다니 안심이 되었다.
“뭐.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그런데 오늘 대본은 왜 안 보내주냐? 보통은 그런 것 다 있잖아?”
“하긴 그렇지만, 저희 프로그램은 아니에요. 사실 오빠네는 유명 스포츠 검투사이기는 하지만, 연예인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대본이 있으면 그 내용 그대로를 읽어 내려가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하고 딱딱해지죠. 차라리 그럴 바에야 대본 없이 편안히 가는 편이 나아요.”
“으음. 그러다 우리가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뭐. 그도 상관없죠. 재미있는 장면은 다 실수에서 나오니까요. 또 오빠네가 전문 연예인도 아니니 팬들이 이해하고 넘어가요. 그리고 정말 크다 싶으면 편집하는 되는 일이고요.”
“이해는 가지만, 그러다가 방송 분량 안 나올 수도 있잖아? 촬영이 오늘 하루뿐인데 말이야.”
카렌이 한쪽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렸다.
“저희는 프로에요. 그런 것 다 예상하고, 방송 계획을 짰으니 안심하세요. 오빠네는 그저 저희 질문에 솔직 담백하게 얘기해주고, 하라는 대로 하면 되면 돼요.”
범석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리 그가 연예인이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서 던진 질문에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범석은 매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의 인터뷰요청에 둘러싸일 정도로 언론에 익숙했다.
“뭐. 그쯤이면 어렵지 않지. 그런데 촬영이 뭐냐? 야외촬영이라면,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많을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럴 거예요. 오빠네들이 최강을 가리는 승부를 벌일 거거든요.”
범석이 뜬금없다는 눈으로 카렌을 쳐다봤다. 오늘 모일 검투사는 세계 최강급의 검투사이기에 언젠가는 승부를 가려야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그가 자키드와 아멜리에를 팬들이 둘러싸인 콜로세움 경기장 안에서 쓰러뜨리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승부를 가려버리면 이어질 그들과의 경기에서 수입이 떨어질 수 있었다. 이미 승패가 갈려버렸기에, 흥미를 잃은 몇몇 팬들이 콜로세움을 찾아오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야. 그건 좀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오늘 모일 검투사들 간의 승부는 올해 월드리그 경기의 큰 이벤트라고. 흥미 위주의 쇼프로그램에서 보일 만한 것들이 아니야.”
“그건 저희도 알아요. 염려하는 부분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확실해?”
“네. 약속해요. 다만 좀 피를 말리는 승부가 될 거예요. 이 점은 각오해 주세요.”
그 점은 범석도 꺼리지 않았다. 오늘 출연료로 받은 돈은 250만 크랑. 그 정도 값어치를 할 만큼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뭐. 상관없지.”
범석과 카렌은 곧 촬영장으로 향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먼저 와있던 아멜리에와 프리시카와 인사하고 자키드를 기다렸다. 얼마 후 근처 주차장으로 한 고급 플라잉 카가 안착하며 거대한 체구를 한 사내가 범석을 향해 뛰어왔다. 왠지 열이 받았는지 그의 표정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범석! 너! 그랬다. 이거지!”
콧김을 씩씩거리며 자신에게 비치는 햇볕을 가리는 자키드를 넌지시 바라본 범석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자신에게 화를 낼 만한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제가 뭘요?”
“너! 이 자식! 날 뭘로 보는 거야! 왜 나만 안 찾아왔느냐고!”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지 범석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번 촬영 섭외할 때 모두 통신으로 연락을 취하거나, 레베카나 젤소미나등의 지인들에게 부탁했을 뿐, 특별히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섭외를 위해 설령 찾아갔다고 해도, 그가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왜 자키드 씨만 찾아가지 않았다는 겁니까? 전 다 안 찾아갔는데요.”
“뻥 치지 마라. 우리가 지난 8차전 경기에서, 채플린 위스퍼와 맞붙은 것 알지?”
“네. 알죠. 그래서 다크 하이에나가 1무 3패로 패하지 않았습니까?”
“잘도 알고 있군. 그런데 아멜리에가 그때 내게 얘기해주더라, 범석 네가 따로 만난 자리에서 자신에게 도전장을 보냈다고 말이야. 그리고 너 전에 세노사이드 콜로세움에 찾아가 프리시카에게도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보냈지?”
범석이 골똘히 기억을 더듬더니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본의 아니게 아멜리에와 프리시카를 만나 도전의사를 표시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프리시카는 지금은 자신의 엘프가 된 레자리스를 살피러 갔다가 정체가 드러나 어쩔 수 없이 그리 떠벌렸고, 아멜리에는 레베카 아버지인 프리츠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감정이 격양되어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 튀어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이 있었네요.”
“그런데 왜! 나에게만 안 보내는 건데? 내가 그리 만만하게 보이냐!”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범석이 순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웃음으로 이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보내려고 했습니다. 다만 아직 경기가 좀 남았으니,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자키드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정말이냐?”
“네. 그렇죠. 곧 채플린 위스퍼와의 경기가 있으니, 그때 아멜리에에게 이기고, 그 기세를 몰아 도전장을 보내려고 했죠. 사실 도전장을 보내는 일도 때와 장소를 가릴 필요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자키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인즉슨 범석이 자신을 가장 중요한 라이벌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설명에는 아멜리에를 쓰러뜨려야지만, 비로써 그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가미되어 있었다.
하지만 옆에 서 있던 아멜리에로써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엄연히 세계 검투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검투사는 그녀였다.
“범석 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꼭 저를 이길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당황한 범석이 마구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왠지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솔직 담백했다.
“물,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그 말뜻은 그게 아니다.”
“뭐라고욧! 좋아요. 당장 여기서 승부를 내요! 한 번 누가 강한지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자고요!”
이 사태가 흥미로운지 몇몇 카메라맨들이 열심히 렌즈를 들이대고 있었다. 세계 최강급의 검투사들이 모인 자리였으니, 진작부터 이런 사태가 벌어질지 예상하고 있었던 탓이다.
이에 카렌이 슬며시 다가와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서 결투가 벌어진다면, 앞으로의 촬영 진행이 어려워졌다. 어느 프로든 클라이막스를 도입 부분에 넣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으로도 충분히 초반 분위기가 올랐으니, 나머지는 촬영장에서 드러내도록 연출해도 늦지 않았다.
“호호호. 벌써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어떻게 해요. 아멜리에. 촬영장에 대결의 장이 준비되어 있으니, 거기서 범석님을 이기면 되잖아. 그리고 범석 님은 너무 상대를 도발하지 마세요. 저희는 친목 위주의 방송 프로그램이에요.”
이제야 주위의 카메라 시선을 확인했는지, 아멜리에가 잠자코 물러났다. 최강의 검투사답게 채신머리를 지킬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위기에서 모면한 범석이 카렌에게 윙크를 하고는 서둘러 버스에 탑승했다.
이윽고 이들을 태운 플라잉 버스가 인근에 있는 시민 체육공원으로 향했다.
“자. 따라오세요!”
카렌이 모두를 이끌고 공원 동쪽에 있는 트랙이 있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미 1차로 온 스텝진들이 만반의 준비를 했는지, 사방에는 촬영 장비로 가득했다.
그때 한 붉은 머리칼의 젊은 사내가 범석과 나머지 검투사들을 맞이했다. 공동 진행자 중 한 명인 브르스였다. 그도 카렌처럼 가수 겸 탤런트였는데,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로 많은 여성팬으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범석씨. 카렌과 공동 진행을 맡은 브르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악수를 청하는 범석을 뒤로하고 브르스가 곧바로 프리시카에게 향했다. 멋쩍었던 범석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프리시카를 맞이했다.
“프리시카. 하하하. 정말 반갑다. 근래에 왜 시합에 나오지를 않았어? 내가 네 광팬인데, 무척 걱정했다.”
“아. 네 브르스님. 제가 근래에 몸이 아파서요.”
“그래? 지금은 괜찮고?”
“네. 많이 나아졌어요.”
범석의 일그러진 표정을 본 카렌이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왔다.
“저기 브르스 씨는 프리시카의 열렬한 팬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악수를 청하는데, 저리 무시하고 가냐?”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어려서부터 스타반열에 올라 주변에서 오냐오냐해주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죠. 그러니 오빠가 이해해 주세요.”
“이해고 자시고 간에, 프로그램 진행자라면 진행자답게 행동해야지. 찾아온 손님에게 저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긴 한숨을 내쉰 카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범석의 말은 하등 틀리지가 않았다. 그녀도 브르스 때문에 여간 곤란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남자 연예인은 여성 팬들의 인기로 먹고사는데, 가장 쉽게 인지도를 쌓는 방식이 바로 이성애자가 되는 일이었다. 여성들의 기대심리를 크게 자극시키기 때문이다.
덕분에 연예계에서는 여성 탤런트나 가수들은 꾸준히 주변 남성 동료로 대시를 받는데, 브르스의 목표된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유명 여자 연예인인 카렌과 스캔들을 일으켜 이성애자로 공인받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의 정성을 봐서 받아줄 수도 있는 얘기지만, 가식적인 사랑이기에 카렌은 별로 탐탁지 않았다. 본래 브르스는 여성들을 경멸할 정도로 극단적인 엘프 애호론자였다.
특히나 자신의 고향팀인 에이션트 워리어즈의 에이스인 프리시카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이번에 그녀의 출연에 난감함을 보이던 제작진을 협박하듯 설득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원래 사람이 저런데요. 이해하고 넘어가야죠.”
“아니 이해의 차원을 넘어섰으니 문제지. 그냥 저걸 콱!”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나서지 않는 범석이었다. 여기서 사고를 쳤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리가 없었다. ‘오범석 검투사. 유명 연예인 B씨를 구타하다.’ 내일 신문에, 이런 문구의 기사가 올라온다면 정말 끔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여간 참으로 그동안 상당한 인격적 도약을 이룩한 범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키드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청하는 인사를 브르스가 귀찮은 듯 물리치자 바로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
“너 뭐야!”
이윽고 달려드는 스텝진들. 이를 본 범석이 급히 호쾌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하하하. 자키드 씨가 웃어보자고 한 일에 죽자고 달려들면 어떻게 합니까? 원래 이분이 친근하게 인사를 나눌 때 이럽니다. 저도 몇 번 당했죠. 하하하.”
하며 그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자키드가 슬그머니 브르스를 내려놓았다. 오늘 일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스승인 렘란트에게 심한 질책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분이 안 풀렸는지 그가 브르스의 등짝을 힘껏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
“하하하. 아 이 자식 참 재미있는 놈이네. 아주 흥미로워.”
등을 매만진 브르스가 슬며시 뒤로 물러서며 그를 쏘아봤다. 감정이 담겼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개조인간이 아니었다면, 그 손바닥 질에 큰 부상을 당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엽기적인 힘에 주눅이 들었는지 대들지는 못했다.
============================ 작품 후기 ============================
방 안에 송장 메뚜기가 침투했습니다. 더워서 문을 열어놨더니, 비집고 들어왔네요. 잘 잡아서 밖에다 놓아줬는데, 무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법 비가 많이 와서요. ^^;;;;;;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