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93
395화
“자. 범석님 가요!”
만연한 미소를 지은 아멜리에가 2번째 서브를 시도했다. 곧 그녀의 발에 튕긴 공은 허공에서 작은 곡선을 그리더니, 이내 코트 너머의 바닥을 튕기고는 범석에게로 날아왔다.
다행히 어려운 서브는 아니었기에 그가 가볍게 차 자키드의 앞에 떨어뜨렸다. 정확히 머리 부위에 타점을 두게 한 아주 알맞은 패스였다.
족구 초심자는 다리보다는 머리가 볼을 컨트롤하기 쉬었다.
“자키드 씨! 잘 부탁합니다.”
“오케이! 나만 믿어라!”
이윽고 육중한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공을 펑 차는 자키드. 아주 강한 정타였다. 다만 힘이 들어갔는지 족구공이 코드는 물론이거니와 운동장 너머로 사라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를 본 범석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로 톡 만 가져다 대어도 땅에 떨어지며 패스가 될 볼을 저리 발로 힘껏 차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저 육중한 다리가 저기까지 찢어졌다는 점이 참 신기해 보였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한 범석이 검지로 머리를 찍어대며 소리쳤다.
“아니! 자키드씨! 거기서 발로 차면 어떻게 합니까? 머리를 써야죠!”
뜬금없다는 눈을 깜빡거린 자키드가 범석을 향해 말했다.
“머리를 써도 되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어깨서부터 손까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고요! 그래서 제가 머리 부위에 볼을 정확히 가져다준 것 아닙니까?”
“그렇군. 어쩐지 볼을 너무 힘들게 주더라……. 알았다. 다음에는 확실히 머리를 쓰마.”
범석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키드가 결코,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를 써도 조금 전처럼 공을 코트 밖으로 넘기면 소용이 없습니다. 알겠죠?”
“그래. 알았다. 요번에는 아주 톡 쳐서 네가 공격할 수 있게끔 해줄게.”
“확실히 그래야 합니다. 지금 저희는 벌써 3점을 빼앗겼다고요. 자키드 씨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족구 승부는 저희가 진다고요. 저 아멜리에게 지고 싶으세요?”
자키드가 슬며시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건 아멜리에를 바라보더니,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자신을 조롱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검술이 아니지만, 저 아이에게 질 수는 없지. 좋아 반드시 이겨서 콧대를 납작하게 해준다.’
굳은 표정을 한 자키드가 범석을 주시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해볼 요량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룰을 몰라 잦은 실수를 했다. 범석의 설명으로 어느 정도 감이 잡히니, 앞으로는 다를 터였다.
“걱정하지 마라. 이제 대충 족구가 뭔지 알았으니, 확실히 하마.”
“좋습니다. 그럼 믿고 다시 한 번 갑니다.”
그 말을 한 범석이 수비자리로 돌아가자, 또다시 아멜리아가 볼을 차 넘겼다. 그는 공이 튕기는 진로에 따라 우측으로 이동하고는 가볍게 자키드에게 패스했다.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며 머리 위로 날아온 족구공. 자키드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가져 대더니, 정확히 바로 앞, 바닥에 떨어뜨렸다.
“오케이! 잘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패스가 정확한 타격지점에 떨어지자 범석이 흥에 겨운 듯 달려가 힘껏 안축차기로 후려갈겼다. 안정된 자세에서 비롯된 강력한 킥이었기에, 이내 공은 빠르게 코트 넘어, 선 안쪽에 정확히 맞고는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이에 족구의 경험이 없던 아멜리에는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몸을 움찔 피했다. 워낙 빨라 받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3대 1!”
카렌의 스코어 선언에 자키드가 기뻐 깡충깡충 날뛰며 범석을 얼싸 끌어안았다. 비록 1점을 따라붙은 데 불과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방금 범석이 쏜 공은 초심자가 받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좋아! 이런 식으로 나가자! 너 아주 죽이는데! 솜씨가 예사 아니야!”
“하하하!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학교 점심시간에 이 짓만 했는데요. 그러니 지금처럼 자키드 씨가 제게 볼만 잘 배급해 주면 거뜬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이들이 환희를 표출하는 사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아멜리에가 프리시카에게 다가갔다. 범상치 않은 범석의 공격에 앞으로의 승부가 걱정된 것이다. 반드시 대책을 세워야지만, 지금의 우세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프리시카. 방금 공격 막을 수 있겠어?”
“글쎄요. 저도 힘들 것 같은데요. 너무 빨라 눈으로 좇기도 어려웠어요.”
“그래도 네가 나보다 낫지 않을까? 너는 엘프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잖아.”
프리시카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의 나이는 현재 28세. 엘프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반 오십 년이 지났다. 그래도 확실히 아멜리에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몇 배나 오래전에 엘프학교를 졸업했고, 자신은 종종 훈련캠프에서 팀원들과 함께 공 차기를 하며 놀았다.
“그럼 제가 수비를 볼까요?”
“그래.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나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 보여.”
“네. 알겠어요. 그럼 제가 뒤에 설게요.”
프리시카가 뒤에 서서 준비 자세를 취했다. 이제야 흥분을 가라앉힌 범석이 서브를 넣을 장소를 살폈다. 목표는 우측 모서리. 프리시카가 자리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녀는 현재 중앙보다 약간 좌측에 이동해 있는 상태였다. 그는 공을 몇 번 바닥에 튕기고는 절제된 동작으로 볼을 찼다.
“저궤도 스핀킥!”
거창한 이름 붙였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낮은 궤도의 스핀킥이었다. 받기 상당히 까다로운 볼이지만, 못 받을 것도 없었다. 이내 프리시카가 상체를 굽혀 머리로 튕겨내 아멜리에게 패스했다.
“자. 가요!”
곧 아멜리에가 힘껏 발을 휘두르며 볼을 찼다. 범석이 방금 했던 안축차기를 모방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모방은 모방. 곧 공은 그녀의 발끝에 맞고 허공으로 높이 떠올랐다.
‘쳇. 운이 좋군.’
범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내달렸다. 신의 은총이 내렸는지, 하늘 높이 솟은 볼이 코트 바로 앞을 넘으며 반격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잔뜩 스핀이 붙었는지 땅을 튀기며 진로를 바꾸는 공을 안전하게 머리로 쳐내 자키드에게 보냈다.
“자. 다시 간다.”
이내 머리로 공을 내리찍는 자키드. 하지만 볼 스피드가 빨라는지. 이마를 타고 넘어간 공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무척 좋지 않은 패스였기는 하지만, 범석이 발을 높이 들어 발바닥 차기로 공을 코트 반대편 너머로 찼다.
퉁 하는 소리와 급격하게 날아는 족구공이 곧 프리시카의 이마를 맞고 밖으로 라인 밖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땅에만 닿으면 또다시 1점을 따라붙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아멜리에가 몸을 날려 오른쪽 발 안쪽으로 차, 공을 허공에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리시카의 공격. 그녀는 교묘하게 머리로 똑 쳐 자키드 정면을 향해 볼을 보냈다. 구멍임을 알고 먼저 받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패스에 성공한 원인은 범석이 쉽게 공을 받을 수 있도록 공을 찔러넣어 줬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녀의 의도는 통한 듯 자키드가 엉겁결에 손으로 볼을 터치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젠장 할! 졌다.’
범석의 표정은 절망으로 가득해졌다. 스코어도 4대1로 벌어진 데다가, 프리시카가 승리의 지름길을 깨달았을 안 것이다. 제일 처음 공격 시 구멍에게 공을 안겨줄 능력만 있다면, 족구의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범석아. 이거 미안하다.”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개발이 한순간에 자기 몫을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지금은 상대가 공격할 때 잘 볼을 받아쳐, 차근차근 따라잡는 수밖에 없었다. 프리시카나 아멜리에는 제법 공을 만져본 듯 보이지만, 여하튼 족구의 초심자였다. 언제 실수가 나와 의외의 점수를 낼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휴~ 어쩔 수 없죠. 하여간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강한 공이 오면 무조건 피하십시오. 그리고 이번과 같이 직접 몸을 향해 날아올 수 있으니, 너무 코트 앞에 서지 마시고요.”
“알았다. 네 말대로 하지.”
풀이 죽은 범석이 수비 지역으로 가자, 곧 프리시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후 이어지는 수없는 공방전. 양 팀이 점수를 점차 쌓아갈수록 스텝진들의 얼굴에는 만연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범석의 멋지고 위력적인 공격과 자키드의 엉뚱한 실수. 그리고 평범하지만, 조직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끌고 가는 프리시카와 아멜리에.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좋은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텝진들은 누가 이기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다.
“15대 11! 아멜리에, 프리시카 팀! 승리!”
승패가 결정된 직후 카렌이 다가와 범석를 위로했다. 족구가 너무 그들에게 불리한 경기임을 알았던 탓이다. 다행히 범석이 실력이 뛰어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프로그램 자체를 망칠 뻔했다.
“수고 많으셨어요. 승패는 병가지상사. 다음 게임에 이기면 되죠.”
불만이 많은지 범석이 투덜대며 카렌에게 다가갔다. 생각 같아서는 강하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옆에 있어서 조용히 말했다.
“카렌 씨.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족구는 볼을 다룬 경험자와 비경험자의 차이가 정말 큰 경기입니다. 이런 건 먼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본 후, 결정해야죠. 분명 프리시카와 아멜리에는 볼을 찬 경험이 있었습니다.”
“으음. 그렇게 보이네요. 호호호. 하지만 범석 씨께서 잘해 주셔서 흥미진진한 경기 내용이 펼쳐졌잖아요. 시청자 여러분들도 범석 씨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 거예요.”
“내가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카렌 씨 한 번 저길 보세요.”
범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카렌이 몸을 움찔거렸다. 자키드가 매니저와 함께 가방을 싸고 있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족구를 통해 개망신을 당한 터라, 더는 촬영할 기분이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검사로서 상당히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쓸데없는 게임으로 패배를 경험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특히나 상대에 경쟁자인 아멜리에가 끼어있었으니 더욱더 그랬다.
카렌이 급히 자키드에게 걸어갔다.
“자키드 님. 가시면 안 돼요.”
“내가 안 가게 됐어! 검사인 내가 왜 이딴 공놀이를 해야 하는데! 출연료는 나중에 돌려줄 테니, 잘 있어라!”
단단히 삐쳤음을 안 카렌이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자키드가 떠난다면 방송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다음 게임은 자키드 님에게 유리한 경기인데요. 정말 가실 건가요? 이번 패배를 만회해야죠.”
자키드가 은근슬쩍 카렌을 바라봤다. 왠지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이대로 떠나간다면 패배한 개꼴을 벗어날 길이 없으니, 유리한 경기를 통해 승리해 체면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슨 경기인데?”
“2대2 줄다리기요.”
“정말?”
원래는 다른 게임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카렌이었다. 밧줄은 소품 차에 실려 있는 물건이니, 언제든 준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키드는 세계 최강의 근력을 자랑하는 검투사였다. 힘을 위주로 하는 줄다리기에 관심에 보일 것이 틀림없었다.
“네. 맞아요. 해보실래요?”
자키드가 넌지시 범석을 바라봤다. 그는 이 중에서 가장 신체능력이 떨어졌다. 같은 편을 먹으면 자신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배신의 악마가 강림한 그가 슬그머니 카렌의 귓가에 대고 얘기했다.
“대신 편을 바꿔 줘. 프리시카로 말이야.”
카렌이 잠시 고민하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은 검술이 아닌 다른 스포츠로 최강 검투사를 가리는 것이었다. 계속 같은 편끼리 했다가는 승자 2명에 한에서는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좋아요. 그럼 하시는 거죠?”
“후후후. 물론이지.”
확답을 들은 카렌이 카메라 앞으로 돌아와 계속 멘트를 진행해나갔다. 하루의 해가 짧으니, 일정을 빨리 소화해야 했다. 이번 게임 말고도 다른 게임도 많았다.
“이번에는 2대2 줄다리를 하겠어요. 각기 개개인의 승부를 가리는 자리이니 부득이하게 편을 다시 가르겠는데, 오범석 씨와 에밀리에. 자키드 씨와 프리시카가 같은 편을 먹고 시합을 하겠어요. 자 그럼 각자의 편과 함께 서세요.”
돌아온 자키드가 아쉬운 표정으로 범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범석아.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같은 편이 아니네. 하지만 어쩌겠냐? 프로그램 진행이 이러니, 우리가 다 이해해야지.”
범석이 입맛을 다셨다. 줄다리기는 자키드와 편을 먹으면 유리하다는 점을 모를 리가 없었다. 순수 힘을 겨루는 경기였기에, 근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쩝. 어쩔 수 없죠. 자 그럼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십시오.”
“후후. 물론이지. 반드시 이겨 주마.”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멜리에의 옆에 섰다. 정말 이번 경기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휴~ 아멜리에. 우리 잘해보자.”
“네.”
스텝진들이 밧줄을 가지러 가는 사이, 범석이 스코어보드 표를 바라봤다. 현재 아멜리에와 프리시카가 각각 3점. 자신과 자키드는 0점이었다. 이제 이번 경기를 치르고 나면 자신은 여전히 0점이 될 테고, 프리시카는 6점으로 단독 선두. 아멜리에와 자키드는 각각 3점으로 공동 2위에 랭크될 터였다.
그럼 우승을 위해서는 남들보다 최소 7점 이상을 더 따야 하는 불리함을 안아야 했다.
“자. 밧줄이 준비되었으니, 다들 모이세요.”
카렌의 부름에 범석과 아멜리에가 우측에 섰다. 위치에 상관없으니,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때 앞자리엔 선 그의 어깨를 아멜리에가 두드렸다.
“범석 님. 제가 앞으로 가면 안 될까요?”
“그건 왜?”
“그편이 밧줄을 제어하기 편해서요.”
그 말을 들은 범석이 두 눈이 데구르르 옆으로 굴렀다. 줄다리기는 힘 대결이 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아멜리에는 채찍의 달인이었다. 잘만 한다면 이길 수도 있어 보였다.
============================ 작품 후기 ============================
생각해봤는데요. 판이 벌어졌으니, 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다만 비축분을 쌓아야 하니, 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10편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기한이 다다음 주 주말 인근이라면 한 번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