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395
397화
“범석아. 그리고 아멜리에. 프리시카. 다들 이리 와봐.”
“무슨 일입니까?”
자키드가 다가오는 범석을 향해 말했다.
“아무리 우리가 승부를 펼치고 있지만, 명색이 세계최강의 검투사들이다. 안 그래?”
“네. 물론입니다. 그런데요?”
“그게 말이다. 하지만 사실 아무리 우리라도 아마추어 검투사 100명이라면, 이길 공산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 아니냐?”
범석과 아멜리에, 프리시카가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대로 자신들이 100여 명의 아마추어 검투사를 동시에 상대해 승리를 얻을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게다가 자신들은 승부를 위해 서로 견제해야 하지만, 저들을 힘을 모아 공격하리라 생각되었다. 보나 마나 참담한 패배가 예상되었다.
“그렇죠.”
“그래 그게 문제라는 거야. 우리가 서로 연합해서 싸워도 이길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데, 굳이 견제하며 싸울 이유가 없잖아. 물론 개인으로서는 오늘 승부에서 이기면 좋지. 하지만 우리는 프로검투사들의 대표야. 그만한 활약상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네.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만큼은 개인 성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 우리가 연합하면 저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거다. 어때? 한 번 힘을 합쳐볼래?”
나름의 설득력 있는 말이었기에, 범석이 마음속 깊이 수긍을 표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만큼은 힘을 합칠 당위성이 있었다. 스코어 상 꼴찌를 달리고 있는 자키드가 저리 말하는데, 자신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힘을 합치죠.”
범석이 눈치를 주자, 아멜리에와 프리시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들도 자키드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네. 저희도 따를게요.”
“좋다. 그럼 내가 명령을 내릴 테니, 그대로 따라주기 바란다. 먼저 아멜리에. 너는 이번에 쌍편술을 들고 나와라. 대인전에서는 불리할 테지만, 우리가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니 걱정 붙들어 매고.”
“네. 알았어요.”
자키드의 말에 순순히 호응하는 아멜리에였다. 누군가 상대의 돌발적인 침투공격을 막아준다면, 이번 싸움에서 쌍편술은 큰 위력을 발휘했다. 채찍으로 형성한 막이 진격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거리 공격을 통해 상대의 수를 점차 줄여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범석과 프리시카는 아멜리에의 채찍에 벗어나 돌진해 들어오는 아이들을 막아라.”
당연한 수순이었기에, 범석이 흔쾌히 대답했다. 아멜리에를 당한다면 100여 명에 가까운 아마추어 검투사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했다. 당연히 그녀의 보호는 필수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자키드 씨는 뭘 하실 겁니까?”
“당연히 후방을 막아야지. 일부 프리롤들이 우회해 뒤를 치면 골치 아프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간단한 전략회의 마친 이들이 슈트와 각자의 무기로 무장하고 운동장 한가운데에 섰다. 이미 아마추어 검투사들은 건너편에서 추행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잔뜩 긴장 어린 표정을 지은 범석이 창을 꽉 움켜진 채, 중앙에 서 있는 카렌이 바라봤다. 이제 그녀가 신호를 보내고 물러서게 되면 아마추어 검투사들의 파상공세가 시작하게 되었다.
“자. 양 팀 검투사들 모두 준비되었나요!”
“넷!”
활기찬 아마추어 검투사들의 대답을 들은 카렌이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가 서 있는 자리는 전투의 한가운데. 만약 시합이 시작된 후에도 여기에 머물고 있으면, 휩쓸려 큰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이윽고 멀찌감치 떨어진 카렌이 손을 크게 휘저어 경기를 시작시켰다.
“자. 그럼 경기 시작하세요!”
와아아아!
동시에 아마추어 검투사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정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몇몇 아마추어 팀에서 갹출해왔기에 조직력은 없었지만, 100명이 내뿜는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이내 아멜리에가 양손에 든 채찍을 허공에 띄우더니, 그들의 앞 땅바닥에 진한 상처 자국을 새겼다.
희뿌연 먼지 속에 휩싸인 아마추어 검투사들이 순간 움찔거리더니, 돌진을 멈췄다. 강력한 채찍공격에 기가 눌린 것이다. 이때 무리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겁먹지 마! 우리는 100명이야! 절대 질 리가 없어!”
그 말에 자신감을 얻은 아마추어 검투사들이 기세를 가다듬고 다시금 내달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아무리 세계 최강의 검투사들이지만, 100명이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지는 채찍의 향연. 사방을 수놓으며 강력한 휘감기 공격에 당한 한 갈색 슈트의 엘프가 허공에 띄어지더니 바로 바닥에 처박혔다.
“아멜리에. 잘했다.”
범석은 칭찬을 남발할 시간도 없이 허리 찬, 비도 하나를 꺼내 상대 진형을 향해 날려댔다. 아멜리에가 형성시킨 채찍 막을 뚫고 침입해 들어오는 한 은색 슈트의 검투사를 본 것이다. 이내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 비도는 상대의 가슴을 정확히 타격하고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젠장 할. 미치겠네!’
벌써 2명의 검투사를 해치웠지만, 범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부 아마추어 검투사들이 활을 꺼내며 진형에서 분리되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화살세례를 받았다가는 치명적인 사태가 올 수도 있는 일. 모두가 프리시카에게 모여들었다. 그녀는 장검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같은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큰 방패도 착용하고 나왔다.
“프리시카! 아멜리에를 철저히 보호해!”
곧이어 날아오는 20개의 화살을 본 범석이 앞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아무리 방패가 크다지만 자신까지 커버해 줄 수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일단 타격점을 피하는 편이 좋았다.
뒤로 화살이 튕기는 소리를 들은 그가 아마추어 검투사들의 선봉 돌격대를 향해 창을 크게 휘둘렀다.
“오범석 검투사다! 모두 함께 쓰러뜨려!”
범석이 질끈 입술을 깨물고는 측면 쪽으로 빠져나갔다. 족히 십여 명이 함께 달려드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실질적인 그의 목표는 이들이 아니었다. 본진의 안정을 위해 궁사들을 해치울 필요가 있었다. 긴 꼬리를 늘어뜨린 그는 여전히 아멜리에를 향해 화살을 쏘는 궁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여기까지다! 더는 화살을 못 쏜다!”
범석의 저돌적인 돌진을 본 궁사들이 화급히 활을 내려놓고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뒤에 같은 편이 무수히 따라붙었기에, 화살로서는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석의 빠른 발은 그녀들이 검을 꺼내 들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바로 인근까지 근접하고는 점프하며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휘이익. 퍼퍼퍽!
크게 휘갈겨지는 창끝에 걸린 몇몇 아마추어 검투사들이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상당수의 궁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범석이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발을 멈추는 순간, 엄청난 수의 검투사들에게 포위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휴~ 역시 개떼 전략 무섭네.’
계속 내달리는 범석이 혀를 내둘렀다. 100여 명의 검투사 앞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위세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탓이다. 다행히 빠른 주력을 지니고 있어서 이렇듯 도망이라도 치지, 아니었다면 진작에 당했어도 벌써 당했을 터였다.
기어이 운동장 끝 부분에 도착한 그가 급격하게 방향을 선회하며 본진 쪽을 향해 달려갔다. 전투 지역이 이 운동장만으로 한정되었기에, 나가는 순간 바로 반칙이었다.
“막아라! 범석 님을 잡아야 해!”
범석을 저지하기 위해 검방을 착용한 검투사들이 앞을 막아섰다. 이제 앞뒤로 적에 둘러싸이게 된 그는 다시금 측면으로 방향을 꺾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위되면 끝장이었다.
‘젠장 할! 이러다가 다 당하는 것 아니야!’
자키드가 지휘하는 본진 쪽을 바라본 범석이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그들도 더는 버틸 수 없는지, 계속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멜리에가 채찍으로 상대의 진입을 막고 있지만, 이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곧이어 그들도 전투를 포기하고 범석처럼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호호호. 이거 오늘 초대 손님들이 최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척 고전하고 있군요. 이러다가 경기가 금세 끝나겠는데요.”
때마침 카렌의 앞을 스치며 이 멘트를 들은 범석이 버럭 소리쳤다. 최강이 아니라, 최강의 할아버지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신이라고 불리는 여포가 여기에 등장해도 꼬리를 말기에 바쁠 터였다.
“카렌! 그걸 말이라고 해! 100명은 너무 많아!”
“호호호. 미안해요! 워낙 참가 신청자가 많아, 어쩔 수 없었어요!”
인상을 찡그린 범석이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두 명의 아마추어 검투사들을 보고는 그대로 창끝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휘어지는 창대의 탄력을 이용해 그녀들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2명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만, 그랬다가는 지금 추격해오는 20여 명의 검투사에게 뒤를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다시 진로를 변경하며 본진 쪽으로 향했다. 그들도 자신의 몇 배 되는 수의 검투사들에게 쫓기고 있지만, 그래도 혼자인 것보다는 나았다. 지금 범석은 의지할 동료가 없어서인지, 은근히 외로웠다.
‘자키드 씨나 아멜리에가 옆에 있으면 든든할 거야. 조금 전과 같이 두 명 정도가 막는다면 회피할 필요없이 바로 쓰러뜨려 수를 줄여나갈 수 있으니까. 그럼 운만 좋다면 이번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는 범석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아마추어 검투사라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수년 혹은 수십 년간 검투 경기를 해왔으니, 상대와 어떻게 싸우면 적절할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들은 지금 열 명씩 짝을 이루며 운동장 전체에 흩어지고 있었다.
바로 뜀새를 잡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코너에 몰려 결국에는 당하게 되었다.
그때 범석의 시선으로 이상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아멜리에의 뒤를 호위하듯 따르던 자키드가 슬며시 그녀의 등쪽으로 바짝 붙고 있는 것이다. 그러더니 바로 다리를 크게 벌리며 아멜리에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렸다.
“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구르는 아멜리에. 이때다 싶은 상대 검투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녀에게 검끝을 먹였다. 아무리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검투사라고는 하지만, 넘어진 상태에서 수십의 검투사를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안타깝게도 근접전에 취약한 채찍을 소지하고 있었다.
‘젠장 할! 자키드 씨에게 속았다!’
지금 자키드는 아멜리에를 구원하러 가는 척하며 그녀를 포위한 상대 검투사들의 등을 손쉽게 베고 있었다. 짧은 기습으로 기껏 서넛만을 쓰러뜨렸지만, 이로써 프리시카를 넘어 3위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었다.
자키드가 애초에 연합할 생각이 없었음을 안 범석이 크게 분노했다. 고의로 아멜리에를 넘어뜨리는 장면을 봤는데, 배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범석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투사를 보고는 또다시 장대 높이 뛰기로 상대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충분히 왼쪽으로 회피할 공간이 있었지만, 지금 그의 목적은 자키드에 대한 응징이었다. 함께 자폭하면 했지, 절대 자키드에게 1위 자리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배신자에게 피의 복수를! 자키드 씨 단단히 각오하십시오!”
범석의 외침을 들은 자키드가 놀라 소리쳤다.
“배, 배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못 봤을 줄 아십니까! 조금 전 아멜리에를 고의로 넘어뜨렸잖아요! 절대 용서 못 합니다!”
“그, 그건 오해야! 실수였다고!”
“제가 눈깔이 삔 바보인 줄 아십니까! 실수와 고의를 몰라보게요!”
자키드가 이를 악물었다. 이거 너무 빨리 자신의 의도가 드러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범석의 불같은 성정이라면 분명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 터. 이러다가는 함께 폭사할 가능성이 컸다. 그가 앞을 막는 사이, 아마추어 검투사들이 자신들을 포위하면 경기 끝이었다.
“범석아! 1등 양보할 테니까. 우리 함께 싸우자. 인간끼리 서로 도와야지.”
천만의 말씀이었다. 한 번 배신한 자는 결국에 가서는 뒤통수를 치는 법이었다. 차후에 당하는 것보다는 지금 함께 폭사하는 편이 나았다. 그는 달리는 탄성을 이용해 바로 자키드를 향해 창을 크게 휘둘렀다.
“배신의 삯은 응징뿐입니다! 서로 도와요? 웃기지 마십시오!”
검으로 창끝을 걷어내 자키드가 황급히 옆으로 빠지며 말했다.
“너 정말 이러기야!”
“먼저 시작한 쪽은 자키드 씨입니다!”
곧바로 따라붙은 범석이 그를 왼쪽으로 몰았다. 그쪽으로는 간다면 코너이니 꼼짝없이 포위되게 되었다. 그럼 자신도 당하게 되지만, 자키드도 끝이었다.
결국, 아마추어 검투사들에게 포위된 범석이, 또다시 자키드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범석 님과 자키드 님을 잡았다. 모두 이쪽을 와!”
이 소리를 들은 대다수의 아마추어 검투사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아직 프리시카가 남기는 했지만, 이들만 해치우면 이번 경기는 자신들이 이긴 것이나 진배없었다.
혼자서 100여 명 가까이 남아있는 자신들과 상대할 수 없는 법이었다. 곧 범석과 자키드는 서로 싸우느라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고, 얼마 안 가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쓰러졌다.
‘좋았어. 지금이 기회야. 잘만 하면 내가 1등을 할 수도 있어!’
범석과 자키드가 당하는 사이, 프리시카가 근처에 떨어져 있는 활과 화살을 주워들어 아마추어 검투사들에게 날려댔다. 몇몇이 자신을 쫓아는 오는 바람에 부리나케 달리며 화살을 쏴야 했지만, 수십 명이 등을 돌린 채 한데 모여 있으니, 맞추기가 너무도 쉬웠다.
결국, 그녀는 화살통을 모두 비웠고, 대략 10여 명의 아마추어 검투사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쫓는 아마추어 검투사 셋을 쓰러뜨린 후, 장렬하게 산화했다.
이로써 오늘 경기의 순위는 13점을 얻은 프리시카가 1등이었고, 2등은 11점을 얻은 아멜리에, 3위는 7점을 얻은 범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꼴찌는 겨우 4점은 얻은 자키드였다.
============================ 작품 후기 ============================
아. 쉬어가는 편이 여기서 끝이 나네요. 이제부터 또 본격적인 월드리그 경기가 펼쳐질듯 보입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