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03
405화
“자. 그럼 다녀와라.”
“네. 그럼 범석님도 훈련 열심히 하세요.”
가벼운 하직인사를 나눈 후 마가렛이 탄 플라잉카가 상승을 하더니 하늘 높이 사라져갔다. 범석 떠나가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고는 훈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곧 다시 뒤돌아서고는 먼 하늘을 바라봤다. 플라잉 카 한 대가 지금 그가 서 있는 주차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탓이다.
‘뭐지? 마가렛이 뭘 두고 갔나?’
하지만 마가렛이 타고 간 플라잉 카는 순백색인 반면, 지금 안착을 시도하는 차량은 검은색이었다. 즉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누구지? 이런 아침에? 특별히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당당히 주차장에 내려서는 것으로 보아, 손님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멀뚱히 서서, 차량에서 사람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곧 차문이 열리며 훤칠한 키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에이번드 대표팀 감독인 클라크였다. 그는 대뜸 범석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훗. 너 근래에 돗자리 깔고 다니냐? 내가 올 줄은 어떻게 알았지?”
범석이 입을 대빨 내밀며 말했다.
“알면 왔겠습니까? 잠시 외출이라도 했겠죠.”
“아. 그런가? 뭐 그래도 이렇게 봤으니 상관없지. 사실 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었거든.”
“아니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하시지. 왜 연락도 없이 찾아왔습니까? 혹시 예의란 것 모르십니까?”
“아. 급히 너하고 협의하고 결정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범석이 슬며시 클라크를 바라봤다.
“중요한 일입니까?”
“으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범석이 입맛을 다셨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작자가 중요하다고 말하니,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불만스럽지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어디로 가서 대화하실까요?”
“추우니 안으로 들어가서 하는 것이 좋겠군.”
“네. 좋습니다. 그럼 제 집무실로 가시죠.”
“그러지.”
범석이 클라크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무인전동차를 타고는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사무실 건물로 향했다. 한산한 자동계단을 타고 3층에 오른 그가 클라크를 이사장실로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주변을 둘러본 클라크가 가볍게 한마디 했다.
“꽤 아담하군.”
범석이 피식 웃었다. 누구나 이사장실에 들리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시 기능성을 중요시하기에 쓸데없이 돈을 처발라 실내를 장식하거나, 공간을 넓게 잡지 않았다. 모든 서류와 책이 전자화되어 있는 상황이니, 응접 소파와 업무용 책상 하나만 있으면 업무를 보는 데 지장이 없었다.
“초라하다는 말을 돌려 말할 줄도 알고. 이거 단단히 부탁하실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부탁이라? 부탁이라면 부탁이라고도 할 수 있지.”
그를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본 범석이 소파에 철썩 엉덩이를 붙였다.
“그럼 그 부탁이라는 것을 말씀해 보십시오.”
그의 건너편에 앉은 클라크가 전혀 지체함도 없이 품 안에서 전자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는 쓸데없이 서론을 길게 얘기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언변도 그리 좋지 못한데다가, 미적거리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클라크가 어느 콜로세움의 전경으로 보이는 전자도면을 홀로그램 화면으로 띄우며 말했다.
“이거 뭔지 알겠지?”
상체를 약간 숙여 유심히 바라본 범석이 고개를 기울였다. 중앙에 시내가 있는 모습이나, 한쪽에 철교가 있는 모습이 마치 리마 시티 콜로세움으로 보였지만, 경기장 구조물 형태가 다소 달랐다.
중앙을 흐르는 시내 양편으로 무성한 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시내를 빼고도 대략 양편 각각 15m 정도의 넓이로, 경기장의 3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혹시 리마 시티 콜로세움입니까?”
“금세 알아보니, 바보는 아닌 모양이군.”
또다시 시작된 독설에 범석이 클라크를 살며시 노려봤다. 여기는 대표팀이 아닌 갓즈나이츠 훈련캠프였다.
“부탁하러 오신 겁니까? 시비 걸러 오신 겁니까?”
“뭐. 굳이 말하자면 협상하러 온 거지. 바보인 네가 대표팀에서 조금이라도 더 활약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길게 한숨을 내쉰 범석이 팔짱을 끼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독설은 그의 천성이니, 탓해봐야 하등 고쳐지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이 속 편했다.
“협상이라뇨? 말씀해 보십시오.”
“리마시티 콜로세움 경기장 지형 변경에 관한 내용이다.”
“시내 양편에 숲 지대를 넣는 것 말입니까?”
“그렇다. 어때 관심이 가냐?”
관심은 갔다. 범석은 숲 지대에서 어느 검투사들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비록 일부분이지만, 숲이 있다면 갓즈나이츠 전력향상에 무척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상대가 이쪽의 도강을 눈치챌 수 없기에, 기습전을 펼치는데 아주 유리했다.
“으음. 약간 흥미롭군요. 그런데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네가. 포레스트 엘프즈와 붙은 이후로. 그날 너 아주 예술이었지. 어때 변경해 보지 않을래?”
비릿한 미소를 짓는 클라크를 본 범석이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홈 콜로세움에 이런 숲 지대를 넣기 위해서는 여러 추가될 장비가 많았다.
숲 내부의 전투를 관람객에게 보이기 위해 상당수의 버드 카메라를 준비해야 했고, 홀로그램 영사기도 다소 새로 설치해야 했다. 또 값비싼 나무를 뿌리째로 옮겨와 심어야 함은 물론, 365일 나뭇잎을 무성하기 만들기 위해 특별한 온도조절 장치가 첨가돼야 했다. 여기에 숲을 가꿀 정원사를 다수 고용해야 했고, 자동으로 물과 비료를 주는 장치 또한 필요했다.
문제는 그 비용 대다수를 시청이 아닌 자신들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청은 그저 콜로세움만 빌려줄 뿐, 내부 지형지물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촬영과 추가되는 홀로그램 영상 송출장치는 사용자가 지불해야 했다.
물론 이제 갓즈나이츠는 월드리그에 올라왔기에 충분히 그 자금을 감당할 수 있지만, 굳이 지갑을 열 필요는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자신이 튕기면 에이번드 프로검투협회에서 대부분의 자금을 댈 것임을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에이번드 프로검투협회는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한껏 고무된 상태였다. 여기에 8강 이상의 상위권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만방으로 노력하고 있기에, 언제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클라크감독은 에이번드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꿈으로 가질 만큼 애향심이 좋았다.
분명 좋을 성적을 위해서는 숲지대가 필요하다며 에이번드 프로검투 협회의 옆구리를 계속 찔러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돈 문제는 예민한 법. 쉽게 꺼내기란 어려웠다.
“글쎄요.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왜지?”
“솔직히 저희만의 생각으로 경기장을 변경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렉스터님이 단장으로 있는 블루버드 팀도 리마시티 콜로세움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고, 기타 여러 아마추어 검투팀도 사용하고 있고요. 전에 철교 하나 딸랑 넣는 거야 억지로 저희끼리 할 수 있지만, 이런 넓이의 숲 지대를 넣으려면 그들과의 협의가 반드시 필요할 것 아닙니까?”
클라크가 난처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아마추어 팀들이야 리마시티 콜로세움을 빌리는 일만 해도 감지덕지하기에 별 상관없지만, 블루버드 팀은 달랐다.
갓즈나이츠가 월드리그에 올라오는 바람에 묻혔지만, 그들도 작년에 센트럴리그로 승격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명성도 그렇고 이곳 팀에서도 대표 검투사들 상당수 차출하니, 협의가 필요할 듯 보였다.
“뭐. 그렇기야 하겠지. 하지만 협상을 통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나?”
“그야 그렇겠죠. 렉스터 경감님이 그리 꽉 막힌 분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뭐가 문제지?”
“뭐긴요. 귀찮으니까 하는 말이죠. 저 할 일 많은 사람입니다. 이대로 해도 별문제가 없는데, 굳이 홈 콜레세움 변경하자고 뻔질나게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 그럼 모든 협상 업무를 내가 맡는다면 허락할래?”
범석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의 목적은 엄연히 돈이었다. 클라크 혼자 협상을 맡겠다는 조건으로, 허락할 리가 없었다.
“뭐. 그렇다면 저야 편해지지만, 괜히 헛짓거리하는 것 같아서 꺼림칙합니다.”
“헛짓거리라니?”
“아니. 지형 변경은 저희끼리 합의를 봤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히 연방 프로검투협회에 허가를 받아야죠. 그런데 이런 숲 지대에 관한 내용에서는 그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쯤은 아시죠? 파피란 콜로세움 때문에 말입니다.”
파피란 콜로세움은 포레스트 엘프즈의 홈 콜로세움이었다. 그곳은 입장 터널 입구 주변을 제외한 모든 지형이 숲 지대로 되어 있기에, 원정팀의 지옥으로 불릴 만큼 홈 팀에 유리했다.
범석으로 깨어지는 했지만, 포레스트 엘프즈는 그전까지 홈에서 29연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니 다른 월드리그 팀으로서는 계속 불만을 계속 재기할 수밖에 없었고, 연방 프로검투 협회는 다소 곤란한 처지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잘 유야무야되고 있었다.
그 팀 이사장이 연방 프로검투협회 현 회장인 이브라힘 계파의 일원인 데다가, 경기장 지형지물에 대해서는 절벽과 같이 투사가 크게 다칠 만한 장소만 없다면 자유롭게 해준다는 규정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팀의 불만도 있는데, 쉽게 숲 지대 지형을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 번 지형 변경을 허락해준다면 규정상 추후에 협회 측에서 절대 재변경을 요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클라크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범석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도 맞는 얘기지만, 네가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겠지?”
“뭐가요?”
“내가 그 점도 고려해보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이겠냐? 봐서 알다시피 이번에 새롭게 추가되는 숲 지대는 일부분일 뿐이다. 이런 콜로세움을 가진 도시는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수두룩해. 지금 연방 프로검투협회가 걱정하는 부분은 반 이상의 지형이 숲으로 이루어진 콜로세움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작 3할가량이다.
”
맞는 얘기였기에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기는 하겠네요.”
“그럼 허락할 거지?”
“아뇨.”
“왜?”
“암만 생각해봐도 의미가 없는 것 같으니까요.”
“왜 없어. 네가 얼마나 숲 지대 전투에 능숙한지는 네가 더 잘 알 것 아니야.”
범석이 뻔뻔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전 평지 전도 능숙합니다. 또 수중전도 잘하고요. 그리고 저희 팀원들은 경험 없는 검투사가 상당수라, 이런 특이한 지형에 잘 적응할지도 의문입니다. 그러니 굳이 이런 큰돈 들어가는 공사에 목을 맬 필요가 없겠죠.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클라크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상대적으로 다른 검투사들이 정글전에 능숙하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숲에서의 범석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혼자서 현재 2위를 달리는 포레스트 엘프즈 검투사 모두를 쓰러뜨렸으니, 더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즉 다른 팀원들이 경험이 많고 없고를 따질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아무리 유망주들이라도, 항시 경기를 치르는 홈 지형은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럼 지금 범석이 뻗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돈이었다.
“너. 돈 때문에 이러는 거지?”
범석이 슬며시 한 쪽 입가를 올렸다. 이제 내심을 드러낼 시기가 온 것이다.
“아니라고 말 못하죠. 후후후.”
“좋아. 모든 시설과 장비, 관리인원 일체를 우리 에이번드 프로검투 협회에서 책임지지. 그럼 어때?”
그 말에 범석이 만족을 표시했다.
“뭐. 그렇다면야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하하.”
“휴~ 그래. 그럼 합의를 본 것으로 생각하겠다.”
“네. 물론입니다.”
협상을 마친 클라크가 홀로그램 영상을 껐다. 범석과 협의를 마쳤으니, 이제 블루버드 팀을 찾아가야 했다. 숲 조성 공사는 내년도 여름에 있을 월드컵 본선을 위해서였다. 당연히 이번 겨울 휴가 시즌에 내에 공사를 마칠 필요가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좋아. 그럼 나는 이만 바빠서 가보지.”
범석이 배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그럼 제가 주차장까지 모시겠습니다.”
거절을 표시하려던 클라크가 문뜩 떠오른 내용이 있는지, 그를 유심히 바라봤다.
“아참. 그런데 너 혹시 그거 아냐?”
“뭐 말입니까?”
“얼마 전에 빈센트 감독님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제법 재미난 얘기를 하더라.”
“무슨 내용인데요?”
“데빌 스프릿즈가 자금문제로 어쩌면 법정관리대상에 들어갈지 모른다는군.”
데빌 스프릿즈면 아멜리에의 친정팀이자, 전통 깊은 월드리그 팀이었다. 그리고 이번 리그에서는 7위에 오르며 갓즈나이츠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범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데빌 스프릿즈가요?”
“그래. 최근 몇 년간 우승을 위해 이적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일이 문제가 된 모양이더군.”
범석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 팀이 이적 시장에 쏟아부은 돈이 많았다. 특히 올해 19살로 S3급이자 세계 9위에 오른 이롤리타를 영입하는데 들어간 자금은 아주 천문학적이었다.
“하긴 그 팀은 언제고 문제가 생길 줄 알았습니다. 이롤리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영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돈이 장난 아니게 깨졌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너도 규정상 해당 프로팀이 소속 검투사들에게 연봉을 주지 못하거나, 법정 관리 대상에 들어가면 막대한 페널티를 얻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네. 그렇죠. 마이너스 승점은 기본이고, 일방적인 강등을 당할 수도 있는 얘기가 아닙니까? 서, 설마……?”
경악을 표시하는 범석의 눈을 직시한 클라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페널티를 받을 수 없으니, 데빌 스프릿즈의 선택지는 너무나도 빤했다.
============================ 작품 후기 ============================
에고에고 오늘도 그 형님 초상집에 갔습니다. 새벽 자는데, 전화를 해서 상여 좀 매줄 수 없냐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운구 좀 하다 왔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근래에 장지로 천안을 많이 선택하는 모양이네요. 저희 외할머니 큰고모 큰 고모부 전부 천안 쪽 장지로 가셨거든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