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06
408화
리마시티 콜로세움은 차가운 공기를 뜨겁게 달굴 만큼 팬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더그아웃 안에 앉아 있던 범석이 아크릴 투명 벽 너머로 내리는 경기장을 바라봤다. 천장의 돔 스크린이 닫히지 않았는지, 밖에는 하얀 눈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후 천장이 닫히며, 차례로 조명등이 켜지고 있었다. 눈발이 강해지기에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경기장 아래 열선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녹아내리기는 하지만, 함박눈을 넘어 폭설이 쏟아진다면 그대로 쌓이게 되었다. 그럼 경기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니 돔 천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범석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창을 매만졌다. 오늘 있을 자키드와의 결전에 대비해 정신을 집중시키려는 것이다. 그때 다이아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오늘 경기에서 정말 프리롤을 뛰실 건가요?”
“새삼스럽게 그건 또 왜 묻냐? 어제 최종 전략 회의 시간에 완전히 결정을 본 내용이잖아.”
“그, 그렇기야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다이아나가 인근 슬쩍 범석에게 눈길을 주었다.
전략 회의에서 범석이 프리롤을 뛰기로 결정 내린 이유는 순전히 그가 자키드와 일대일 대결을 펼치려는 마음에 고집을 부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범석이 본진에 가세해 다크 하이에나즈와 맞붙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에, 다소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갓즈나이츠와 다크 하이에나즈의 전력은 거의 동률. 이 상황에서 범석을 프리롤로 돌리며 상황이 역전되게 되었다.
이를 범석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자키드는 검술적인 측면이 뛰어나지만, 단체전에서 약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범석과는 달리 평생을 일대일 승부만이 벌어지는 검도계에서 지내왔던 탓이다. 물론 근래에 들어와 검투사로 거듭나기는 했지만, 수많은 세월 동안 파티와 레이드를 뛰어온 범석의 단체전 경험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확실히 네 말이 틀리지는 않다. 본진 간의 격전을 통해 오늘 승부를 본다면, 어렵지 않게 승리를 따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최강의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대일 승부를 통해 자키스 씨를 쓰러뜨려야 한다.
단체전을 수행한다면 다른 동료 검투사들의 실력도 가미되기 때문에, 그와 나중 누가 강한지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야 하지만…….”
“그리고 내가 자키드를 쓰러뜨린다면, 승부는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나와 자키드 씨가 있고 없고에 따라 양 팀의 전력 차는 확연히 벌어지니까. 물론 네 걱정은 익히 알고 있지만, 내가 이기면 만사 해결될 일이다. 그러니 오늘 승부를 내게 맡겨라.”
범석의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막말로 똥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여간 다이아나는 그의 휘하 엘프. 아무리 감독이라도 주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만, 정말 자신 있으신가요?”
그 말에 범석이 바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자키드와의 승부는 그 자신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석도 사람이기에 자신의 승리 가능성을 크게 점치고는 있지만, 이번 승부는 사소한 실수 하나에 결판이 나게 되었다. 그만큼 둘의 실력은 우위를 알 수 없을 만큼 미세했다.
“글쎄다. 누가 이길지도 나도 모르겠다.”
다이아나가 긴 한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긴 자키드 님도 상당한 실력가이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이런 실낱같은 승부도 오늘 한 번뿐이다.”
“네? 그건 말씀이세요?”
“내년 시즌부터 자키드 씨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오늘 승부는 내가 자키드 씨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지 다이아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아니. 왜요?”
“간단하지. 내가 좀 더 신체적으로 완벽해질 것이고, 이번 겨울 휴가 시즌 이후에는 우리 리마시티 콜로세움에는 숲 지대가 생긴다.”
“아. 그렇군요. 주인님은 숲에서의 전투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반면 자키드 씨는 넓은 도장이나 평원에서의 전투만 익숙하니, 주인님의 상대가 될 수 없겠네요.”
범석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키드의 검술은 도장에서 만들어졌다. 기타 지형지물을 사용하는 법을 알지 못하니, 숲으로 끌어들인다면 자신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이는 티엘라와의 격전에서 이미 판명된 일로, 그녀와의 싸움에서 자키드는 손도 못 써보고 당한 전적이 있었다.
“그렇지.”
“그나저나 아쉬운데요. 만약 클라크 감독님이 제의가 좀 더 빨라, 지난여름에 홈 콜로세움 공사가 진행 완료되었다면 오늘 백이면 백 주인님이 이기잖아요.”
범석이 뜬금없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솔직한 얘기로 오늘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키드 쯤은 손쉽게 요리할 수 있었다.
“무슨 소리야. 비록 한 번밖에 붙어보지 못했지만, 난 자키드 씨와 싸움에서 핸디캡을 가지고 싸웠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당장 이기려고 들면 오늘 가뿐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네? 주인님이 그동안 핸디캡을 주고 싸웠다고요? 정말이에요?”
그가 손가락으로 경기장 중앙에 흐르는 시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저기 경기장 중앙을 흐르는 시내로 자키드 씨를 유인해 싸우면 내가 가볍게 이겨. 전에 봤는데 자키드 씨는 수중전도 잼병이더라.”
“그, 그럼 진작에 그러시지 않고. 왜 어렵게 싸우시는 건가요?”
“뭐. 간단하지. 진정한 승리의 기쁨은 상대의 강점을 끌어낸 다음 꺾었을 때에만 얻어지니까. 물에 빠진 사자를 꺾었다고, 사자를 이긴 것이 아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다이아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댔다. 승리하면 그만인 검투경기에서 저리 정도를 따지다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 주인님. 상대는 어떻게든 우리를 이기려고 하는데, 주인님께서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프로는 결과를 가지고 얘기한다고요.”
“물론이지. 하지만 저 자키드 씨는 안 그래. 그러니 나도 양보를 하는 거야.”
“아니 자키드 씨가 어떤 면에서요?”
“아마 내가 시내에 들어가면 불리한 줄 알면서도 따라 들어올걸. 그만큼 검술에 관해서는 완고한 작자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계속 이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잖아요. 주인님도 프로인 이상 어떻게든 승리해 팬들을 즐겁게 할 사명이 있다고요.”
범석이 차분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그래서 오늘 자키드 씨를 쓰러뜨린 다음 끝낼 거야. 그럼 내가 평지 전에서도 그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니, 다른 지형에서의 전투를 꺼릴 이유가 없지. 어차피 다 이기기는 마찬가지니까.”
다이아나가 여전히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 입맛만을 다셨다. 그래도 오늘 승리한다면 본 실력으로 자키드를 상대한다고 하니, 나름의 위안이 되었다.
“좋아요. 그럼 오늘 꼭 이기셔야 해요.”
“당연하지. 나도 결코 질 마음이 없다.”
“네. 그럼 주인님만 믿겠어요. 오늘 꼭 저희 팀을 승리로 이끌어 주세요.”
“염려하지 마라. 반드시 이기게 해주마.”
둘이 대화를 하는 도중. 더그아웃 내 스피커에서 입장 대기를 알리는 멘트가 들려왔다. 그는 곧 다리 위에 기대어진 장창을 꽉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디어 복수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범석은 곧 입장 터널로 나아가 휘하 검투사들을 독려하고는, 줄 맨 앞에 섰다.
– 자. 양팀 검투사 경기장 안으로 입장해 주십시오.
심판진들의 입장 종용을 들은 범석이 보무도 당당히 경기장 안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건너편 입장 터널에서 나오는 점박이 무늬 슈트를 입은 검투사들 사이로 삐쭉 솟아나와 있는 사내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자키드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워낙 거구라 어디를 가든 튀게 되어 있었다.
“오범석 오늘은 반드시 자키드를 쓰러뜨려라! 넌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오범석. 넌 과거의 네가 아니다. 반드시 이길 수 있으니, 절대 긴장하지 마라. 평상시대로 하면 네가 이긴다.”
팬들의 열렬한 응원. 그들도 범석과 자키드의 승부를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이에 범석이 창을 든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몸짓으로 그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더더욱 커졌다. 범석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에, 팬들이 기대 어린 외침을 쏟아낸 탓이다.
“그래! 그런 자신감이 필요한 거다!”
“오범석. 오늘은 네가 이기는 줄 믿고 있겠다!”
어느새 중앙 시내 인근에 도착한 범석이 본진을 빠져나오며 건너편에 있는 자키드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일대일 대전을 벌이자는 것이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자키드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본진을 빠져나왔다. 그도 범석과 한 번 제대로 승부를 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자. 그럼 준비해 볼까?’
본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범석이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시내 인근에 너무 바짝 붙어있으면, 도강 시 기습을 취하려는 행동으로 오인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자키드가 상관할 자는 아니지만, 팬들 앞에 도량을 드러내 봐야 손해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그는 오늘만큼은 자키드와 정정당당하게 붙을 참이었다.
– 삐이익. 경기 시작!
1라운드 시작과 함께 자키드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힘껏 시내를 뛰어넘었다. 범석의 행동을 보니 비겁하게 도강을 방해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다.
안전하게 시내를 건넌 자키드가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훗. 도강을 방해하지 않는다? 자신감의 표시라고 생각해도 되나?”
“네. 전 오늘 당당히 자키드를 쓰러뜨릴 거니까요.”
“용기는 가상하군. 그런데 가능할까?”
“가능이라……? 제가 보기에는 가능 차원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자키드 씨 오늘 저를 얕보다가는 크게 당합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버릇은 고치고 왔냐?”
“버릇이라뇨?”
자키드가 괘씸하다는 눈초리로 범석을 쏘아봤다. 지난 범 그가 자신에게 허망할 정도 패한 이유는 특유의 버릇 탓이었다.
이 점을 못 고쳤다면 이기기는커녕, 승부다운 승부도 펼치지 못하는데, 그는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자키드는 오늘 범석과의 승부를 대비해서, 고된 훈련을 아끼지 않았다.
“너. 장난 치냐? 젤소미나를 통해 내가 대충 얘기해 준 것이 있을 텐데? 설마 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범석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젤소미나에게 들은 적이 있었던 탓이다. 자존심상 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흘러가는 말투로 얘기하는 터라, 엉겁결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리자를 훈련시키는 도중에 대충 깨달았던 내용이었다.
“아. 그렇다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잘됐군. 그럼 오늘 고치고 왔겠지? 그렇다면 재미난 승부가 펼쳐질 듯 보이는데. 후후후.”
범석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버릇을 인지하고 있지만, 굳이 고칠 이유가 없었다.
“아뇨. 안 고쳤는데요.”
“너 지금 장난해! 오늘 나에게 지고 싶은 거야?”
“아뇨. 그 말씀 덕에 더 이길 자신감이 붙었는데요. 그건 버릇이 아니라, 전투 본능입니다. 본능과 버릇을 구분조차 못 하시다니 정말 실망인데요.”
자키드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만들어 빠르게 다가왔다. 자신을 무시하는 언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뭐야! 그딴 소리로 날 도발하려 들 생각하지 마라! 그깟 허튼 수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후후. 그런 것 아닌데요. 혹시 렘란트 님에게 설명 못 들었습니까? 그분이라면 내 버릇에 대해 알고 있으실 텐데요.”
걸음을 멈춘 자키드가 그와 더그아웃을 번갈아 바라봤다. 전혀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승님도 알고 있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글쎄요. 말씀 주시지 않았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 저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자키드 씨가 제 약점이라 것을 노리고 들어오신다면, 제게 당한다는 겁니다. 싱겁게 승부를 끝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십시오.”
자키드가 분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에든 장검을 꽉 움켜쥐었다. 어차피 경기가 시작되었으니, 계속 입으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테스트해보면 알 일이었다.
“좋다. 네 끝도 모를 자신감이 어디까지 인지. 내가 친히 드러내게 해주마.”
“얼마든지요. 그럼 오십시오.”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자키드가 맹렬한 기세로 그에게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마치 그 모습이 사나운 멧돼지를 연상케 하는 터라, 스텝을 밟아 회피하던 범석이 실실 웃어댔다. 하지만 결코 자키드를 경시하지는 않았다.
오른쪽 어깨부위를 스쳐 가는 그의 검에서 강한 예기가 발산되고 있었던 탓이다. 자키드는 유일하게 그와 격전을 벌일만한 검투사였다.
단 평지에서만큼은 말이다.
이윽고 수평으로 뉘어진 범석이 맹렬한 기세로 대기를 갈랐다.
창. 끼이익. 깡.
여러 번의 교전 후, 범석이 뒤로 점프하며 급격하게 거리를 벌렸다. 이 기회를 틈타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 자키드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공중에 떠서 제대로 회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리한 공격을 감행했는데, 여지없이 창이 허공 수놓으며 검끝을 튕겨 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에 멈추지 않고, 끌어당기는 동작을 이용해 반월날로 공격하기까지 했다.
힘겹게 피한 자키드가 멀어져가는 범석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자. 또 간다!”
“얼마든지 오십시오!”
또다시 충돌을 빚는 이들의 검과 창이 째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크게 휘어지고 있었다. 범석과 자키드의 완력에 못 이겨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힘의 열세였던 범석이 바로 힘 대결을 끝내고는 바로 창끝을 깊게 찔러 자키드를 몰아세웠다. 접근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검과 창의 대결은 거리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게 되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휴. 어제 오늘도 더워 죽겠는데. 내일은 더 더워진다네요. 아. 미치겄습니다. 글도 잘 안써지고, 만사가 귀찮아져서요. 누누히 말씀드렸지만, 제가 더위에 약하거든요. ㅠㅠ.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