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17
419화
놀이공원 중앙길을 걷는 동안 범석과 카렌은 수많은 팬에게 둘러싸여야 했다. 어차피 스캔들을 일으키려고 작정을 했으니, 아예 썬글라스와 모자까지 벗어버리고 민얼굴로 다닌 탓이다.
덕분에 약간 귀찮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재미난 상황도 많이 벌어졌다. 쫓아다니는 팬들과 놀이기구를 함께 타는가 하면, 모두를 끌고 식당에 들어가 함께 식사도 즐긴 것이다.
특히나 팬들의 농담과 장난은 간혹 범석에게 크나큰 선물을 주기도 했다.
“어머. 카렌 씨! 정말 오 범석 씨와 사귀어요?”
“네. 맞아요. 저희는 자주 이렇게 만나서 데이트를 즐기고는 했어요. 여러분도 많이 응원해 주세요.”
꺄르륵 웃은 여성 팬 하나가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
“그럼 증거로 둘이 한 번 키스해봐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렌이 옆에 있던 범석에게 안기고는 지그시 눈을 감고 턱을 들어 올렸다. 키스해 달라는 의지표명이었다.
과감한 연기인지 실제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범석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팬들 앞에서 키스해야 한다는 사실이 낯 뜨거웠던 것이다. 하지만 곧 고개를 내밀어 살짝 입맞춤했다.
여성인 카렌도 적극 나서는데, 남자인 자신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오기 탓이었다.
곧 장내는 여성 팬들의 비명으로 가득해졌고, 범석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여댔다. 그가 카렌의 옆구리를 찌르며 조용히 말했다.
“카렌. 너 너무 용감한 것 아니냐?”
“헤헤. 뭘요. 연기하다 보면 늘 있는 일인데요. 그리고 최근에는 멜로물 영화를 찍고 있어서, 아주 익숙해요.”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이런 일에 능숙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휴~ 무슨 영화인데?”
“천상의 풍경이라고요. 남녀 간의 사랑 얘기를 다룰 영화인데, 세상의 인식으로 남녀 주인공이 갈등하고 번민하는 그런 스토리에요.”
“그래? 남자 관객들은 전혀 들지 않겠다.”
“뭐. 그렇죠. 여성 관객에 초점을 맞췄으니까요.”
곧 범석이 시계를 봤다. 현재 시각은 저녁 10시. 아무래도 조만간 들어가 봐야 할 듯싶었다.
“카렌. 시간이 거의 다되어가네. 이제 슬슬 가야 하지 않을까?”
아쉽지만 카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무 늦으면 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몰려 있는 팬들이 문제였다. 계속 데리고 다녔더니, 전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팬 때문에요. 계속 쫓아올 듯 보이는데요.”
“으음. 하긴 그러네.”
카렌이 물끄러미 밤하늘을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에 닿아 있는 곳에 있는 놀이기구는 거대한 높이의 회전 관람 차라는 놀이기구였다. 직경이 자그마치 440미터나 됐는데, 한 번 타면 족히 1시간을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아마 그 시간이면 팬들이 대다수 떨어져 나갈 듯싶었다.
“오빠. 우리 저거 타면 어때요? 그럼 그 사이 팬들이 다 돌아갈 것 같은데요.”
범석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회전 관람차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법 오래 탈 수 있을 듯 보였고, 가늘게 내렸던 눈이 점점 굵어지는 것으로 보아 팬들을 다 보낼 수 있을 듯 보였다.
“으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좋아 가자.”
그는 곧 칼렌과 함께 회전 관람차를 향해 걸어갔다. 팬들이 계속 쫓아오며 조잘대기는 했지만, 마지막인지라 친절하게 대답해주며 유종의 미를 장식했다. 잠시 후 회전 관람차 앞에 도착한 카렌이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여러분. 저희는 잠시 회전 관람차를 탈게요. 연인들의 놀이공원 필수 코스잖아요.”
“저희도 같이 타요!”
팬들의 투정에 카렌이 능숙하게 손을 흔들어댔다. 이곳 관람차는 제법 넓기는 하지만, 팬들과 함께 타서는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잠시만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해줘요.”
이쯤 되자 팬들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남녀 간의 데이트자리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네. 알았어요.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팬들의 양해를 얻은 범석과 카렌이 관람차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줄을 서서는 탑승을 배정해주는 엘프 관리인 앞으로 나아갔다. 관리인도 범석과 카렌을 알아본 듯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혹시 오범석 님과 카렌 님 아니세요?”
“어. 그래.”
“지금 회전 관람차를 타시게요?”
“응.”
“1박으로 하실 건가요? 아님 1주행으로 하실 건가요? 1박이면 자유이용권이 있더라도 3,000크랑을 따로 지불하셔야 해요.”
범석이 눈가에 순간 고민의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1박이라는 말이 그리 크게 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카렌이 그의 팔뚝을 살짝 꼬집으며 관리인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냥 1주행으로 해죠.”
“네. 그러시면 다음 차에 타세요. 제가 1주행으로 프로그래밍 해 드릴게요. 하지만 혹시 중간에 1박을 하고 싶으시면 홈네트워크에 들어가세요. 고객님께서도 언제든 변경 가능하니까요.”
“알았어.”
하며 카렌이 아쉬운 빛을 역력히 드러내는 범석의 손목을 이끌고 관람차 안으로 들어섰다.
세계 최고 놀이공원의 회전 관람차답게 내부는 아주 넓었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며, 편안히 세노사이드 도심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푹신한 침대겸 소파. 여기에 커다란 냉장고도 하나 있었고, 작으나마 화장실과 욕실도 달려있었다. 거의 모텔 수준의 내부시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전히 1박이라는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지, 범석이 옷걸이에 자신과 카렌의 외투를 걸며 작게 중얼거리듯 질문을 던졌다.
“여기 회전식 관람차는 1박도 가능해?”
“네. 1주행 칸은 외부로 도는데, 1박용 칸은 꼭대기쯤에 이르면 안쪽 라인으로 빠지며 내일 아침까지 멈춰요.”
“그래? 신기하네.”
고개를 주억거린 범석이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목이 타서 음료수라도 먹어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뭔가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지 아무리 힘을 줘도 열리지 않았다.
이에 창가로 가 눈 오는 외부 풍경을 바라보던 카렌이 말했다.
“그거 유료에요. 전자수첩을 가져대야 열려요.”
그 말에 범석이 전자수첩을 꺼내 냉장고에 가져다 대자, 냉장고 내부에서 털컥거리는 기계 소리가 났다. 잠금장치가 풀렸다고 생각한 그가 문을 열고는 내부의 내용을 살폈다. 안에는 포도주를 비롯한 주류와 음료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포도주를 꺼내 든 범석이 가볍게 웃으며 읊조렸다.
“카렌. 전에 한번 여기 와 봤어? 내부를 잘 아네.”
“네. 영화 촬영차 몇 번 들려봤어요. 이 놀이공원이 주 무대거든요. 특히나 여기 회전 관람차에서 촬영이 많아요.”
“아. 천상의 풍경이라는 영화 말이지?”
“네.”
범석이 식기 보관대에서 유리컵 2잔을 꺼내 들고는 카렌에게 다가갔다.
“그래? 영화 촬영은 재미있어?”
“재미있기는 한데요. 촬영이 너무 힘들어요.”
“왜?”
“영화 촬영을 처음 해봐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좀 드라마 때보다 높은 수준의 연기를 주문하는 듯 보여요. 이쯤 됐다고 싶어도 엔지를 내고 다시 촬영하기 일 수라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점점 바닥과 멀어지는 외부풍경을 바라보던 범석이 그녀의 말에 동조를 표했다.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깊이 있는 연기력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뭐. 영화촬영이니, 어쩔 수 없겠지.”
“그렇기는 한데요. 좀 짜증이 나요. 저는 노래라면 자신이 있는데, 연기는 아무래도 재능이 없는 듯 보여요.”
당연한 얘기였다. 그녀는 가수로서 쉽게 성공할 수 있는 특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연기는 아니었다.
물론 인지도 탓에 대중 앞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연기 관련 특성이 있는 다른 연기자들보다는 좋은 연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에게 재능이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특성이 없다지만 스텟치가 워낙 좋아 중간 이상의 연기자는 될 듯 보였고, 또 그녀의 앞에서 매몰차게 재능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결국, 범석은 원론적인 말로 얼버무리기로 했다.
“뭐. 경험이 없어서겠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카렌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네. 감독님도 그리 말씀하시더라고요. 빈곤 연기는 아주 잘하는데, 애정 연기는 영 못쓰겠데요.”
범석이 피식 웃었다. 정말 그 감독 돗자리 깔아도 성공하겠다고 생각한 탓이다. 카렌은 과거 거의 노숙자처럼 살아왔기에 가난이 뭔지 잘 알고 있지만, 애정 경험은 없었다.
“크크크. 그 감독 대단한데. 사람을 그리 잘 꿰뚫어 보고 말이야.”
“네. 그래서 저도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어요.”
“후후후. 그래도 잘됐네. 그런 감독님 밑에서 배우면, 좋은 연기자로 성장하겠지.”
카렌이 옆 소파에 앉아 포도주를 따라주는 범석을 슬며시 쳐다봤다. 그는 자신에게 모자란 연애 경험이 아주 풍부했다. 조언을 들으면 작으나마 도움이 될 듯싶었다.
“오빠는 연애 경험 많죠?”
“그야 많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아니. 그냥 조언을 얻고 싶어서요. 혹시 연애할 때 기분이 어떠세요?”
포도주를 한 모금 들이킨 범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수많은 연애경험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지만, 딱히 말로는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애정 관점은 판이하게 달랐다.
자신은 밤 행위에 대해 중심을 두는 반면, 여자는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전혀 엉뚱한 데에서 손톱을 세우고 달려드니,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글쎄. 아마도 난 네가 듣고 싶은 답변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사실 남자와 여자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하잖아. 그래서 서로 이해 못 해, 상대방에게 실망하는 것이고. 나도 사실 자주 바가지 많이 긁힌다. 여성들을 이해 못 해서 말이다.”
“휴~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어떻게요?”
범석이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
카렌이 순간 볼을 벌겋게 물들였다. 사실 범석은 처음 만난 날부터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범석과 만난 날은 6년 전 비 오는 가을날이었다. 당시 그녀는 작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근근이 생활비를 마련하던 시절이었는데, 오랜만에 할아버지께서 큰 건을 물고 와 기대에 차 있었다.
비록 엑스트라에 불과하지만, CF에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마침 촬영장으로 향하던 도중 차량이 고장이 나게 되었고, 거의 1시간 가까이 지각하게 되는 사태로 그만 내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지역 내 유명 검투사이자 주요 출연진인 범석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온 것이다.
그는 한낱 엑스트라인 자신을 위해 길길이 날뛰는 CF감독을 설득했고, 간신히 촬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 그때의 고마움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보통 다른 연기자들 같았으면 스스로 나서서 내쫓았을 텐데, 그는 자신도 피해를 보았음에도 대범하게 자신을 변호해 주었다.
여기에 얼마 후에는 할아버지 제기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해주었고, 자신이 유명 연예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명 TV쑈에 출연도 시켜줬다. 그리고 검투사 생활로 바쁨에도 항시 안부 전화를 주며 따뜻한 위로의 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간 카렌이 다른 남자 연예인들의 스캔들 제의를 거절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연애는 연예인들의 교양과도 같은 일이지만, 왠지 그때마다 범석의 얼굴이 아른거려 싫었다.
‘오빠는 정말 마음이 두근거릴 정도로 사랑스러운 남자인데…….’
카렌은 그에게 연모를 품고 있지만, 한 가지 커다란 단점이 있어 쉽게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여성에 대한 애정이 넘치다 못해 바람기로 승화시킨 것이다.
정말 다른 여성들과의 스캔들이 신문지상에 터져 나올 때마다 질투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덕분에 6년간 범석과 사귀어 오면서도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그야 바람둥이에, 난봉꾼이죠.”
거침없는 그녀의 발언에 범석이 짜증스러운 투로 조잘거렸다.
“그런 식으로 얘기해버리면, 다음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잖아.”
“다음 이야기라니요?”
“그러니까 나를 좋아한다면, 그런 감정을 마음에 새겨서 연기에 임하라고 말하려고 했지.”
“하, 하지만 저는 오빠를 남자로 보지 않는데요.”
범석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쏘아봤다. 호감도가 얼마인지 빤히 보이는데, 거짓을 말하니 괘씸한 것이다.
그가 남은 포도주를 들이마시고는 팔짱을 꼈다.
“그럼 다 끝났지. 좋아하는 남자도 없는데, 어떻게 애정을 아냐?”
그 모습에 카렌이 배시시 웃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제법 힌트가 된 탓이다. 범석을 상대하는 것처럼 상대 연기자를 대하면 그뿐이었다.
“뭐. 다른 남자를 찾으면 되죠. 사실 남자 연예인 중에 저 좋아하는 사람 많다고요.”
범석이 바로 혀를 찼다. 한 번 고정화된 관념이 쉽게 바뀔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남자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뿐이었다. 여자와 달리 남성 연예인은 이성애자라는 딱지를 붙이면 여러모로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되었다. 수많은 여성 팬이 그 남자 연예인에 대해 환상을 품기 때문이다.
“쳇. 퍽이나 그러겠다. 다 도둑놈들이지.”
“하지만 오빠도 도둑이잖아요. 그렇게 여자가 많으면서, 누구를 탓해요?”
“야. 그래도 나는 최소한 상대 여성을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애정의 상대로 보지. 어디다가 감히 그딴 놈들을 가져다 붙여!”
하긴 그랬다. 확실히 범석은 여성들에게 대한 애정이 있었다. 아니라면 몇 명이나 되는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솔직히 카렌도 진한 애정을 나눈다고 한다면 다른 남성 연기자들보다는, 그가 낫다고 생각했다. 연모하는 마음도 있을뿐더러, 그라면 자신을 여자로 대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후후후. 한국이 올림픽 대표팀이 4강전에 올랐습니다. 새벽녘에 시뻘건 눈을 하고 봤는데, 후회가 안되네요. 경기력도 우세에 가까웠고, 불리한 홈텃세와 판정을 딛고 올린 승리라 더욱 짜릿합니다.
아. 그런데 그 페너티킥 2개. 물론 심판의 재량으로 페널티 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웬만해서는 그때 안불거든요. 솔직히 그런 사소한 몸동작에 페널티 킥을 주는 심판이 어디 있습니까? 특히나 이런 토너먼트 경기에서요. 에고 홈팀 영국을 만난 죄라고 해야겠죠.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