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19
421화
아침 무렵. 관람차 밖은 밤새 내린 눈으로 설원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천천히 움직이는 안쪽 관람차들이 이내 지면 쪽에 이르더니, 밤샘한 놀이공원 손님들을 하나씩 밖으로 내보냈다.
그때 일제히 터져 나오는 플래시 세례.
처음으로 나온 사람들은 레즈비언 커플로, 눈 오는 전경 위에서 사랑을 나눴던 그녀들은 아침 녘 느닷없는 봉변에 얼굴을 가리고 부리나케 회전관람 차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어찌 된 영문인지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촬영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쳇. 아니잖아. 다시 촬영준비 해!”
이 기자들이 모인 이유는 어제 한 팬이 인터넷상에 올려놓은 메시지 덕분이었다. 바로 범석과 카렌의 밀회에 관한 것이었는데, 회전 관람 차를 타러 갔던 그들이 밤새도록 내려오지 않는다며, 혹시 1박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이 게시글과 어제의 사건소식을 접한 기자들은 범석과 카렌이 아침 녘 나오는 장면을 촬영하기 새벽부터 나와 추위에 떨며 사진기를 붙드는 중이었다. 세계 최강의 검투사라고 알려진 범석과 유명 연예인인 카렌의 뜨거운 하룻밤. 춥고 졸리다고 이런 대서특필 감을 놓친다면 기자 딱지를 버려야 했다.
그들은 1박을 하고 내려오는 관람차의 문이 열릴 때마다 계속 셔터를 눌러대며, 특종을 잡기 위한 열기를 사방으로 뿜어댔다. 그리고 잠시 후 한 관람차서 남녀 커플이 나오자 환호성을 질러대고는 앞으로 내달렸다. 바로 범석과 카렌이 서로 엉겨붙은 채 진한 키스를 나누며 나오고 있었던 탓이다.
“오 범석 검투사와 카렌이 나온다!”
“야! 진짜였어! 오범석 검투사와 카렌이 함께 밤을 지새웠어!”
문밖으로 나와 기자들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카렌이 생끗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한 성질 급한 푸른색 머리칼의 기자 하나가 튀어와 카렌의 입에 마이크를 가져다 대었다.
“카, 카렌 양! 정말 오 범석 검투사와 함께 밤을 보낸 겁니까!”
모든 기자의 시선을 집중된 채, 얼굴을 붉힌 카렌이 범석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네. 저희는 사랑하는 사이에요.”
“정, 정말입니까?”
“네. 맞아요.”
거듭된 질문에도 긍정을 보인 카렌으로 기자들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지금 촬영한 영상 정보와 기사를 들고가면 헤드라인은 맡아놓은 당상이었다. 기자들은 더욱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앞다투어 범석과 카렌에게 달려들었다.
“오 범석 씨. 평소에도 카렌을 만나러 자주 세노사이드에 옵니까?”
“네. 물론입니다. 특히나 근래에는 휴가 시즌이라 자주 들립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제 기사에 범석 씨가 얼마 전에 프리시카를 영입하기 위해 세노사이드에 들렸다고 하는데, 이번 일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던 범석이 비릿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 오늘 사건 못지않게 쟁점이 된 기사라,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어제 터진 기사는 그저 오해였을 뿐입니다.”
“오해라고 하시면?”
“아마도 제가 카렌을 만나러 온 사실이, 프리시카를 영입하려는 시도로 오인 받은 듯 보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정말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자리를 빌려 피해를 본 에이션트 워리어즈 팀에게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카렌과의 관계를 숨기는 바람에, 애꿎은 프리시카 영입설이 터져왔으니 말입니다.”
“그럼 프리시카를 영입할 마음이 전혀 없으셨다는 겁니까?”
범석이 호쾌하게 웃으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하하. 어느 팀인들 프리시카에 관심이 없겠습니까? 문제는 몸값이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낸다는 것이겠죠.”
“아. 그 말은 즉 현재 갓즈나이츠가 프리시카를 영입할 마음이 없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 갓즈나이츠는 그녀를 영입할 자금이 없거든요. 뭐. 기자님께서 자금을 지원을 해주신다면 혹시 모르겠습니다.”
농담으로 인식한 기자가 크게 웃었다. 그가 평생 동안 월급을 모아도 프리시카의 신발끈도 장만하지 못했다.
“하하하. 농담도……. 하여간 참으로 아쉬운 일이군요. 프리시카가 갓즈나이츠에 가면 강력한 우승후보가 될 텐데요.”
“후후. 저로서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갓즈나이츠는 가난한 팀인데요.”
그간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석은 다른 스포츠 거부와 달리, 갓즈나이츠 단일팀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수많은 하위리그 팀을 거느리며, 때마다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여 검투사를 영입하는 다른 월드리그 팀과 비교하면 영입 자금이 풍부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개인회사 성격의 운영방식을 선택해 상당 부분 지출을 줄여 이만큼 하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월드리그 진출 자체가 환상에 가까웠을 터였다.
“그렇군요. 하긴 갓즈나이츠가 돈이 많은 팀은 아니죠.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질문을 마친 그 기자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아니 다른 기자들의 몸싸움에서 밀려났다는 표현이 옳을 터였다. 아무리 중요한 질문이라지만, 다른 기자들도 물어볼 말이 많았다.
“오 범석 씨! 카렌 양의 어떤 모습이 좋아 사귀게 되었습니까?”
“밝고 활달한 성격이 아주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카렌 양과는 언제부터 사귀었습니까?”
범석이 은근슬쩍 카렌을 쳐다봤다. 어제부터 사귀었다고 말한다면, 지금까지 벌인 공이 다 허사가 되었다. 이에 그녀가 마이크에 대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1년쯤 됐어요.”
그러자 한 은발의 기자 하나가 걸어가는 이들의 앞을 막으며, 또 다른 질문을 퍼부었다.
“그런데 오 범석 씨. 지금 카렌 양과 함께 어디를 그리 바삐 가십니까? 혹시 조용한 데이트 장소라도 찾아가시는 것 아닙니까?”
“휴~ 그랬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오늘 카렌이 촬영이 있어, 배웅을 해주러 가는 길입니다. 연예인이라 좀 바쁜 것 같더라고요.”
“이런. 무척 아쉽겠군요.”
“후후. 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녀의 일을 제가 이해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럼 오 범석 씨의 그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범석이 골똘히 고민하는 척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암만 봐도 에이션트 워리어즈에 들려야 할 듯싶습니다.”
“아니 거기는 왜요? 방금 프리시카를 영입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저희 밀회로 애꿎은 에이션트 워리어즈 팀이 피해를 보았으니, 직접 찾아가서 사과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가뜩이나 근래에 프리시카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번 사태까지 겹쳤으니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납득이 가는지 은발의 기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속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그로서는 범석의 말에 깜빡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 그렇기도 하겠군요.”
피식 웃은 범석이 카렌을 꽉 끌어안고 기자들 사이를 헤치고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할 이야기도 모두 마쳤고, 카렌의 촬영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자. 그럼 저희는 이만 바빠서 가보겠습니다. 가야할 곳이 있어서요.”
“범석 씨! 잠시만요.”
여전히 그와 카렌을 붙드는 기자들. 하지만 범석은 막무가내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걸음을 걸으면서도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는 노릇이었고, 평생 기자들과 노닥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따라오는 기자들의 연속적인 물음에 간단한 답변을 하며 아론이 있는 외부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지체 없이 내부에 탑승하고는 하늘 높이 사라져갔다.
‘자. 그럼 제이드. 그 작자 면상을 보러 가볼까?’
그날 오후 무렵. 범석은 세노사이드 외곽에 있는 에이션트 워리어즈 훈련 캠프 정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카렌을 촬영장에 바래다주고 바로 오려 했지만, 영화감독이 간곡히 카메오 출연을 부탁해서 잠시 촬영을 하느라 지금 이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보통은 그냥 물리칠 수 있는 제의였지만, 카렌을 위해 또 스캔들 기사가 퍼지는 시간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그가 정문 앞을 지키는 엘프 경비원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이봐. 제이드 씨를 만나러 왔는데, 지금 괜찮겠어?”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던 엘프 경비원이 화들짝 놀라 문을 열어젖혔다. 범석임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 혹시 범석 님이세요?”
“그래. 맞다. 그런데 지금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냐?”
“혹시 약속은 잡고 오셨나요?”
“아니. 갑작스럽게 와서 약속은 못 잡았는데.”
엘프 경비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범석이 유명인인 것은 알고 있지만, 약속도 잡지 않은 외부인을 함부로 안으로 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어렵겠는데요.”
“아니 쉬울 거야. 제이드 씨에게 연락만 취하면 바로 출입을 허락할 테니까.”
“제이드 님이요?”
“엉. 아마 긴요하게 나와 할 말이 있을 것이거든. 하여간 지금 연락해봐. 들여보내라고 할 거다.”
저리 말한다면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약속은 잡지 않았지만, 중요한 손님일지 모르니 일단 연락을 취해봐야 옳았다. 엘프 경비원이 곧 범석에게 양해를 구한 후 경비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화급히 뛰어나오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기.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들리시라고 하시는데요. 그럼 꼭 뵙겠다는데요.”
“아. 중요한 일이 있다고? 그럼 다시 가서 전해. 다 알고 찾아왔으니, 당장 안 나오면 후회할 거라고 말이야.”
“하, 하지만……. 저로서는…….”
“상관없어. 넌 그냥 가서 이렇게 다시 전하기만 하면 돼. 나 생각보다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으니 오늘 돌아가게 되면 다시는 협상할 기회는 없다고 말이야. 그리고 훗날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길 거라는 말도 필히 첨부해.”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몰라도 돼. 넌 그저 내 말 그대로를 제이드 씨에게 전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잠시 머뭇거리던 엘프 경비원이 이내 다시 경비실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범석이 크게 화나 있는 듯 보이니, 이를 알려야 할 듯 보였기 때문이다. 두 번 묻는다고 위에서 꾸중이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만약 여기서 그를 계속 거절하다가 훗날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다시금 나온 엘프 경비원이 그를 향해 말했다.
“저기.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합니다. 제이드 씨가 곧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 알았다.”
이렇듯 잠시 시간이 흐르자, 멀리서 요란한 모터음을 내며 한 대의 전동차가 달려왔다. 40대쯤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분명히 제이드로 보였다. 범석은 쇠창살로 된 정문 앞으로 걸어오는 그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날렸다.
“제이드 씨. 이거 정말 오랜만입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제이드가 손을 내밀며 가볍게 인사했다.
“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오 범석 씨 오늘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뭐. 겸사겸사 왔습니다. 어제 신문지상에서 터져 나온 프리시카 건도 사죄할 겸. 만나서 할 얘기도 있고요.”
“아. 그렇습니까? 자.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제가 인근에 좋은 카페를 알고 있습니다.”
범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앞으로 할 말은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한 점이 너무 많았다. 가뜩이나 정보를 듣고 인근에 파파라치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데,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눴다가는 대형 사고가 벌어질 수 있었다.
“그건 어렵겠습니다. 그냥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저희 대화 내용이 외부로 새어나가면 그다지 좋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안 그렇겠습니까?”
“조용한 곳이니, 그다지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주변에 잔뜩 파파라치가 잔뜩 몰려 있는데요?”
제이드가 주변을 훑어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정문 앞길 건너와 인근 버스 정류장 상당한 카메라를 든 인파가 잔뜩 몰려있었다.
“아니 어째서 파파라치가 저리……?”
“혹시 뉴스 못 보셨습니까?”
“무슨 뉴스 말입니까?”
범석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침나절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와 카렌의 스캔들은 여러 언론사를 통해 세노사이드 시내에 쫙 퍼진 상태였다.
그런데 제이드가 이를 모르고 있었다. 뭔가 중대한 일로 정신이 팔리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거. 엘프 경비원에게 중요한 일로 바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정말인 모양이군요. 사실 오늘 저에 대한 스캔들이 이곳 언론에 알려졌습니다. 바로 카렌과의 염문설로, 그것 때문에 지금 파파라치가 몰려 들은 겁니다.”
“카렌이라면 혹시 그?”
“네.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연예인이죠.”
뭔가 일이 단단히 꼬였는지, 제이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카렌은 세계적인 스타급 연예인으로, 언론의 관심이 많았다. 이런 그녀와 범석의 염문설이라면, 가히 조용히 지나가지는 않을 터였다.
‘쳇. 하필 그와 카렌과의 염문설이 오늘 터져 나오다니……. 그나저나 지금은 곤란한데.’
사실 오늘만큼은 범석은 절대 안으로 들여서는 안 됐다. 범석이 알아서는 안 될 중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아하니 밖으로 나가서 그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범석이 저리 단단히 화가 나서 왔다는 것은 자신이 최근 벌인 언론 플레이를 눈치챘다는 뜻이 되었다. 만약 그 사실이 파파라치를 통해 신문 지상에 알려진다면, 에이션트 워리어즈 큰 페널티를 받게 되었다.
자칫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갓즈나이츠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다고 오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범석을 안으로 들여야 했다. 조심만 한다면 걸릴 이유도 없고, 그리고 설령 협상 장면을 그에게 걸린다 해도 미연에 충분히 밑밥을 뿌려놓은 상태인 까닭에 문제 생길 이유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브라질과의 올림픽 대표팀 4강전. 한 번 기대해 봅니다. 그나저나 3시 30분이라……. ㅠㅠ. 오늘 또 날밤 까게 생겼군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