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20
422화
“자. 이리로 들어오시지요.”
제이드의 안내로 한 응접실에 들어선 범석이 실내 중앙에 있는 탁자 옆 의자에 앉았다.
“제이드 씨도 어서 앉으시죠.”
“네. 그럼.”
제이드가 건너편에 앉자, 범석이 지그시 노려봤다.
“그런데 제이드 씨. 제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이번 사태로 사과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후후. 그건 파파라치들이 근처에 진을 치고 있어서 한 말이고요. 설마 모르시고 하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팔짱을 낀 제이드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아무래도 따지러 오신 모양이겠군요. 작금의 상황이 저희로 말미암아 벌어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역시나 그쪽에서 벌인 일이군요.”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너무도 솔직한 답변에 의아해했지만, 범석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확실히 이번 일이 에이션트 워리어즈로 말미암아 저질러진 일이라면 친다면 허술한 면이 있었다.
다를 것 다 젖혀두고라도 자신들 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들을 통해 이슈화시켰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정말 갓즈나이츠를 곤란하게 하려면 에이션트 워리어즈와 무관한 3자 언론인을 통해 이번 일을 부각했어야 했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군. 이거 조심해야 하겠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범석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대화하다 보면 상대의 의중은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에이션트 워리어즈가 노린 바를 알 수 있는 여러 정황이 필요할 뿐이었다.
“재미있군요. 이리 솔직하게 실토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요.”
“하하하. 숨길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번 사건을 벌인 이유가 바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목적을 이루었으니, 수단은 폐기해야 하겠죠.”
“무슨 목적이건 간에, 왜 이런 저급한 수를 쓰신 겁니까?”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오늘 일과 비슷한 경우를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범석 씨와 할 얘기가 있는데, 찾아가자니 기자의 눈이 꺼림칙했습니다. 사실 최근의 이적 시장은 언론에서 상당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 제가 갓즈나이츠에 찾아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범석도 대충 감이 왔다. 만약 그가 갓즈나이츠에 들리는 사진이나 영상이 공개된다면, 프리시카의 영입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지금 그녀를 구입할 만한 팀은 갓즈나이츠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사태를 통해 범석이 에이션트 워리어즈에 들린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갓즈나이츠는 팀 운영방식 상, 그런 언론 기사를 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상대 팀에게 큰 피해가 오게 되었다. 당연지사 정중히 사과를 청하러 가야만 했다.
“훗. 제법 머리를 쓰셨군요. 하지만 너무 심했습니다. 제가 제이드 씨가 벌인 일로 얼마나 곤욕스러웠는지 아십니까?”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그를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휴~ 좋습니다. 그럼 이번 일은 넘어가는 것으로 하고요. 왜 저를 이 자리로 부르신 겁니까?”
“후후. 빤한 얘기가 아닙니까? 프리시카에 대한 영입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죠.”
역시나 한 범석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긴 에이션트 워리어즈에서 자신에게 할 말은 그녀에 대한 것밖에 없었다. 프리시카를 이른 시간 내에 처리해야지만, 다른 S급 검투사를 영입할 자금이 생겨났다.
“프리시카라……. 아주 훌륭한 검투사죠.”
“네. 물론입니다. 영입만 하신다면 갓즈나이츠에 필시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거 어찌합니까? 저희는 그녀를 영입할 만한 자금이 없는데요.”
“후후. 왜 이러십니까? 부채도 없는 갓즈나이츠가 자금이 없다니, 말이 안 되죠. 지금 범석 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인정하면, 전 세계 모든 은행은 다 망합니다. 후후후.”
범석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역시나 허버트의 실수가 이번 사건에 발단이 된 듯싶었다. 갓즈나이츠에서 자금 여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에이션트 워리어즈가 이리 작정을 하고 덤벼들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 일은 앞으로 벌어질 협상에서 큰 난관으로 작용할 듯싶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자신은 아직 프리시카를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매의욕이 없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공급자는 그만한 메리트를 제공해야 하는데, 가장 적당한 방법이 바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야 그렇지만, 프리시카는 확실히 부담됩니다.”
“아니 왜요?”
“몸값이 장난이 아닐 테니까요.”
“하하하. 그 점은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넘길 테니 말입니다.”
원하는 답변이었기에, 범석이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렇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겠지요. 가격이 싸면, 뭔들 못 사겠습니까?”
“네. 그렇죠. 후후후.”
“자. 그럼 가격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도대체 프리시카를 얼마에 제게 파실 겁니까?”
제이드가 한껏 미소를 지으면 왼손 검지 하나와 오른손 손가락 2개를 동시에 폈다.
그러자 범석이 지금까지의 좋은 분위기를 산산이 깨뜨리듯, 잔뜩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프리시카를 1억 2,000만 크랑이나 12억 크랑에 판매할 리가 만무하니, 그가 제시한 손가락의 의미는 뻔했던 것이다.
“참나. 지금 120억 크랑을 달라시는 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녀는 충분히 그 가치를 하니까요.”
으득 이빨을 간 범석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욕심이 과하신 듯 보이는데요. 전에 에이션트 워리어즈가 프리시카를 영입한 금액은 겨우 74억 크랑이었을 텐데요.”
“후후. 그때야 프리시카가 S3급의 유망주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검투사입니다. 당연히 가격이 다를 수밖에요.”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녀는 올해 28살. 해가 바뀌면 바로 29살이 되지 않습니까? 단지 5~6년을 활용하자고 그 돈을 주고 프리시카를 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범석 씨께서 모르고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저희가 제시하는 매물은 다름 아닌 S2급에 올라있는 프리시카입니다.
현역 검투사 중 유일하게 범석 씨와 자키드 씨, 아멜리에와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존재란 말입니다. 이걸 따지자면 나이가 문제가 아니지요. 그녀를 영입하는 즉시 갓즈나이츠는 우승권에 오르니까요. 그럼 앞으로 들어올 수입이 장난이 아닐 텐데요.”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갓즈나이츠는 현재 성적은 공동 5위임에도 팬들의 가파른 증가로 입장 수입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의 영입으로 우승권 전력이 된다면, 입장권 수입과 팀 엠블럼 제품 판매 증가로 매해 수억의 추가 수입이 예상되었다. 여기에 우승권 팀답게 언론에 많은 노출이 예상되니 스폰서 금액이 크게 증가할 터였고, 기타 TV방송료, CF등등의 기타 부수입도 크게 늘 터였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합쳐봐야 120억 크랑의 발끝에도 미치지 않았다. 게다가 프리시카는 범석이 구매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월드 워커 옥션 마켓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럼 120억 크랑은커녕, 60억 크랑도 겨우 받을까 말까였다.
“제이드씨. 그래도 100억 크랑의 손실분이 해결되지 않는 것쯤은 잘 아실 텐데요? 우승권에 올라봐야 매해 증가하는 수입은 10억 크랑도 되지 않습니다.”
“그건 아니죠. 만약 리그에서 우승이라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 GA컵과 리그 컵까지 들어 올린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질 걸요.”
그 얘기 또한 맞았다. 리그 우승컵을 들면 협회에서 상금 6억 크랑을 제공하였다.
게다가 GA컵 우승 상금은 5억 크랑이었고, 리그컵 우승 상금은 3억 5,000만 크랑이었다. 이들 모든 컵을 들게 된다면 해당 팀은 한 해 14억 5,000만 크랑이 자금이 생기게 되었다.
5년을 계산해보면 총 72억 5,000만 크랑. 이 자금을 추가시킨다면 충분히 프리시카의 몸값이 나온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지금까지 월드리그에서 주름을 잡던 에이션트 워리어즈도 한 해 동시에 3개의 컵을 든 적은 단 한 번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범석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만들며 제이드를 노려봤다.
“아니 제이드 씨! 3개의 컵을 동시에 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빤히 아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뭐. 그야 그렇지만, 전력만 된다면 노력 여하에 따라 한두 개쯤은 따내지 않을까요? 갓즈나이츠가 프리시카를 데려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보는데요.”
“지금 장난하십니까? 한두 개요? 우승컵을 들기가 그리 쉬우면, 왜 다들 고생합니까?”
골똘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 제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긴 그렇겠군요. 그럼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프리시카의 몸값을 3억 크랑 더 깎아 드리겠습니다. 117억 크랑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범석이 어이없다는 듯 헛바람을 내뱉었다. 이거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3억 크랑 깎아주고 온갖 생생은 다 내고 있었다. 그는 혹시 제이드가 이번 거래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제이드 씨. 혹시 저희와 거래하고 싶지 않은 겁니까?”
“그럴 리가요. 현재 프리시카를 사갈 만한 팀은 갓즈나이츠 밖에 없는데,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저는 그저 합리적인 가격으로 그녀를 팔고 싶을 뿐입니다.”
범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무리 그가 프리시카를 원한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더 이상의 협상은 무리였다. 차라리 다른 S급 검투사를 영입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그 돈이면 제2의 프리시카로 불리는 이롤리타를 충분히 구매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는 협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다급히 일어나 그의 앞길을 막는 제이드가 영업용 미소를 입가에 가득 머금었다.
“아니. 협상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십니까? 몸값이 마음에 안 든다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조율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120억 크랑에서 이견을 조율해봐야 얼마나 합니까? 됐으니까 다른 데나 알아보십시오.”
“범석 씨. 그럼 이렇게 합시다.”
“뭘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오늘은 돌아가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단장님과 상의해 프리시카의 몸값을 다시 설정하겠습니다.”
이제야 관심이 가는 듯 범석이 제이드를 넌지시 바라봤다. 윗선과 상의해 몸값을 다시 설정하겠다는 얘기는 판매가를 크게 낮추겠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그래요?”
“네. 실은 저도 프리시카의 몸값이 120억 크랑이나 된다는 사실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에 팀 내 효용가치가 전혀 없고, 구매하실 분은 범석 씨가 유일하니까요.”
“알면서 왜 그런 어처구니 없는 금액을 제시한 겁니까?”
“저희 단장님께서 프리시카가 그 정도의 가치는 한다고 우기고 있어서 그럽니다. 그래서 안 되는 줄도 알면서 혹시나 싶어 120억 크랑을 제시한 겁니다.”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범석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럼 언제까지 확답을 주시겠습니까?”
“글쎄요. 한 일주일 후면 되겠습니까?”
“아니. 겨울 이적 시장이 얼마나 된다고 일주일이나 기다리라는 겁니까?”
“그게 저희 단장님이 보통 고집이 아니라 설득하는데 시일이 걸려서 그럽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은 이적 시장 기간 초반이니, 일주일 정도는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는 노릇 아닙니까? 최대한 빨리 연락을 드릴 테니 조금만 양해해 주십시오.”
입맛을 다신 범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따지고 들면 시간이 급한 쪽은 에이션트 워리어즈였다. 이들이 다른 S급 검투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프리시카를 판매해야 했다.
“좋습니다. 그럼 일주일 후에는 반드시 확답을 주시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연락 드리겠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말을 하고 난 제이드가 손수 문을 열어주며 범석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복도를 따라 사무실 건물 앞길까지 나간 범석이 멀리서 무인 전동차가 다가오자, 제이드에게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으니, 들어가 보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문밖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꽤 바쁘신 듯 보이는데, 저 혼자 가보겠습니다. 어차피 무인 전동차를 타면 문 앞까지 가지 않겠습니까?”
손을 비빈 제이드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인 줄 알지만, 지금 그는 정말 바빴다. 만약 찾아온 손님이 범석만 아니었다면, 만남을 다음으로 미뤘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문 앞까지는 나가지 않겠습니다.”
무인 전동차가 앞에 서자, 범석이 탑승하며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네. 안녕히 가십시오.”
그를 떠나보낸 제이드가 황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모습이 범석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지만, 이내 신경을 끄고 몸을 편히 좌석에 기댔다.
타 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너무 관심을 보일 필요는 없던 탓이다. 그리고 범석은 어제오늘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지금은 빨리 돌아가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그의 시선으로 외부 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날벌레의 모습이 들어왔다. 좀 멀어서 구분은 안가지만, 범석은 그 정체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추운 겨울날 곤충이 날아다닐 리가 없으니, 범인은 단 하나였다.
“아론 이 자식 진짜 포맷을 당하고 싶어서 미쳤나! 시도 때도 없이 도촬을 하면 어떻게 해!”
범석은 아론의 짓임을 확신했다. 검투사 훈련 캠프에는 아름답고 건강한 매력이 넘치는 엘프들이 수두룩했으니, 놈의 도촬 본능에 충분히 자극을 줄 수 있었다. 놈이 범인이 아니라면 손에 장을 지졌다.
그는 에이션트 워리어즈 훈련 캠프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밖으로 튀어 나갔다. 주차장에 있는 아론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 작품 후기 ============================
날씨가 약간 풀린 듯 싶습니다. 지난 며칠 간 비축분을 계속 까먹고 있었는데, 오늘은 좀 쌓이는 것으로 봐서요. 이거 여름만 되면 죽어나가니 미치겠습니다. 제가 더위에 잼병이라요. ㅠㅠ. 아 그리고 10연 참은 잠시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이거 만만히 봤는데, 장난이 아니네요.
그럼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