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32
434화
화창한 어느 날의 정오였다. 훈련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하던 범석이 가방 안에서 울리는 호출음에 전자수첩을 꺼내 들고 화면을 켰다.
– 이거 오랜만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대표팀 감독인 클라크였다. 뜬금없는 그의 연락에 고개를 갸웃거린 범석이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 너. 모래 시간 있냐?
“모래요? 왜요?”
– 나와 함께 세노사이드에 가줘야겠다.
범석이 난감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한창 시즌 중에 장기간의 이동은 극구 피해야 할 일이었다. 시차로 말미암아 피로가 많이 쌓이던 탓이다.
“감독님. 지금 시즌 중임을 모르십니까?”
– 그야 당연히 알지. 하지만 이번 일은 에이번드 대표팀의 아주 큰 행사다.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표팀의 큰 행사라면 참가하는 편이 좋았다. 만약 언론에서 이 사실을 알고 부정적인 기사에 내면 여간 골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대체 무슨 일입니까?”
– 일주일 후 세노사이드에서 월드컵 본선 개최지 선정 최종 설명회와 선정 작업이 시작된다. 여기에 네가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현실과 달리 이곳의 월드컵 본선 개최지는 아주 늦게 결정되었다.
바로 최종 32강에 오른 팀 중 한 곳에 개최권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지역정부가 충분히 해당 스포츠 대회를 열 만한 시설을 보유한 이유가 아주 컸다.
덕분에 선정된 지역은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아도 세계적인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고, 막대한 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 에이번드가 개최권을 가져올 가능성이 무척 크지 않습니까? 개최지 선정 관례 중 하나가 바로 월드컵을 가장 적게 개최한 지역이니까요.”
– 하긴 그렇지. 지금까지 검투계의 변방에 있던 에이번드는 지금껏 한 번도 월드컵을 개최한 적이 없으니까. 아니 아예 월드컵 본선 진출이 처음이고 말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 우리와 같은 지역이 세 곳이나 더 있다.
“그래요? 좀 많네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볼 때 강한 전력을 가진 지역이 선정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잖습니까? 저희 에이번드 팀은 엄연히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팀 중 하나입니다.”
–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가 바로 아르칸 지역정부라는 점이 문제다. 그쪽도 월드컵 본선 대회를 개최한 적이 없다.
범석이 멋쩍은 듯 입맛을 다셨다. 아르칸 지역 정부 대표팀의 구성원은 대다수 채플린 위스퍼에 소속된 검투사들이었다. 당연히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주 구성원인 에이번드 대표팀보다 전력상 우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쩝. 그럼 선정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겠네요.”
– 아무래도 그렇겠지. 저쪽에서도 아멜리에를 동원하며 로비를 펼칠 모양이니까.
“그럼 월드컵 개최는 4년 뒤로 미루시죠. 그때가 되면 저희 갓즈나이츠가 무척 강해질 테니, 선정될 가능성이 아주 커질 겁니다. 여기에 홈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우승할 확률도 크게 높일 수 있고요. 어떻습니까?”
클라크가 차분히 고개를 흔들어댔다. 자신도 그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바로 지역정부의 내각이 4년이라는 것과 내년도에 총선거가 열리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히 지금 에이번드 정부의 의회와 지역 총리를 장악하고 있는 사민당으로서는 시민들에게 어필할 무언가 건수를 만들어내고 싶었고, 이 중 하나가 바로 세계적인 메이저대회를 지역 내에 개최하는 일이었다.
– 나도 그러고 싶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가미되어서 힘들다. 지금 지역 정부가 적극 나서서 전방위로 로비를 펼치는데, 우리 에어번드 프로 검투 협회가 뒷짐만 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사실 급히 너를 초청하자고 우긴 자도 지역정부 고위 관계자다.
“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네요. 이거 참석을 하지 않으면 뒤통수가 가려울 테니까요.”
– 후후.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참석해주는 거냐?
“네. 그래야죠. 어디로 가면 됩니까?”
– 모레 오후 6시까지 에어번드 프로 검투 협회 사무실로 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통신을 끊은 범석이 뒤에 서 있는 다이아나를 바라봤다. 이틀이나 남았지만, 아무래도 최소한 한 경기 정도는 빠질 듯싶으니 미리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는 식사하러 걸어가는 동안 다이아나에게 전후 사정을 소상히 얘기하고는, 이에 대한 대비를 요청했다.
“범석아! 이쪽이다!”
이틀 후, 에이번트 프로 검투 협회 건물로 찾아간 범석은 문 앞까지 마중 나와 있는 클라크감독을 볼 수 있었다. 왠지 얼굴에 사근사근한 기색이 담겨 있기에, 범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 양반 평소의 모습은 저렇지 않았다. 마치 40줄 넘는 노처녀마냥 땍땍거리기 일수인 작자였다.
게다가 지금 그는 한국 사람답게 코리아 타임을 적용한 터라, 약속 시각보다 약간 늦게 도착했다. 당연히 범석으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뭐. 여기까지 나와 계십니까. 그냥 안에서 기다리면 되죠.”
“부탁하는 처지에 그럴 수는 없지. 하여간 자 들어가자.”
“뭐. 그러죠.”
범석이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클라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서 만나뵐 분이 있는데,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
“누군데요?”
“그건 보면 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일단의 무리들이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게는 안면이 있는 자들이기에, 범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섰다. 이때 클라크가 근처에 있던 금발의 한 사내를 손짓해 부르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럼 수고해라. 난 일이 좀 있어서 가봐야한다.”
“네. 그러십시오.”
클라크가 떠나가자 호출당한 금발의 사내가 황급히 뛰어나와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 범석 씨. 그간 잘 계셨습니까?”
범석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전혀 모르는 작자가 저리 친근하게 인사해오니 요상한 느낌을 받은 탓이다. 하지만 평소에도 팬들이 자주 이런 식으로 다가오기에 차분히 응대했다.
“아 네. 그렇죠. 그런데 누구시죠?”
“아. 로스입니다.”
이름은 여하튼 들어본 듯했는지 범석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이내 정체를 떠올리고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면하며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브라힘 계파의 에이번드 지부원 중 한 명으로, 그는 소싯적 갓즈나이츠가 갓 프로로 진출할 때 승격 평가 작업에서 수작을 부려 떨어뜨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이거 미치겠군.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
참 세상 아이러니했다. 과거의 적이 이리 친근하게 대면해야 하니, 범석으로는 어찌 상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현재는 이브라힘계파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로스가 이리 머리를 깊숙이 숙이고 들어오니, 타박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가 표정을 풀고 악수했다.
“아. 로스 씨군요. 하여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범석이 적의를 표하지 않고 인사해 오자, 로스의 표정이 크게 밝아졌다. 과거의 일로 앙심을 품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안심이었다.
범석은 월드리그 상위팀인 갓즈나이츠의 이사장인 데다가, 일심회를 통해 80여 개인회사 성격의 검투 팀을 거느리고 있었다. 여기에 경제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쳐 언론인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최근 거대 경제인 조직인 흑사회를 풍비박산 나도록 뒤에서 조종했다고 했다. 또 프로 검투계 3대 세력 중 하나인 루이스 계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군소 계파의 수장인 안젤라와도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이브라힘 회장도 각별히 신경 쓰며, 주의를 당부한 상태였다. 만약 그가 자신에 대해 못마땅해했다면, 이브라힘 계파에서 로스를 가지치기할지 몰랐다.
그럼 최소한 고향이자 터전인 에이번드를 꼼짝없이 떠나가야 했다.
“아이고 네. 자 이리로 오십시오. 제가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범석이 따라가자 로스는 로비의 모인 인물들을 해치고,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중후한 회갈색 양복을 착용한 40대 정도의 남성 하나가 있었고, 보좌관으로 보이는 몇몇 인사들과 협회 관계자들이 호위하듯 서 있었다.
먼저 반응을 보인 자는 현재 에이번드 프로 검투 협회 회장직을 맡은 어빈이었다. 그도 이브라힘 계파원이었는데, 로스와 범석이 다가서자 얼른 회갈색 양복의 사내에게 말했다.
“저기. 오 범석 검투사가 옵니다.”
“그렇군요.”
안내를 받아 이들의 앞에 선 범석이 회갈색 양복의 사내를 보더니, 냉큼 인사했다. 그를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바로 에이번드 문화체육부 지역장관으로 있는 시몬이라는 자였다. 급수로 볼 때 아마도 그가 이번 일행의 총 책임자인 듯싶었다.
“안녕하십니까. 시몬 장관님.”
“범석군이군.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네.”
인사를 나눈 이들은 잠시 여러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서로 TV를 통해 안면을 익히고 있지만, 이렇듯 대면하는 일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범석이 유명 검투 팀의 이사장이기는 하지만,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어 일절 정치 관련 행사에 참여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합법적 정치자금만 제공하고, 정치계와 담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체육부 지역장관인 시몬으로서는 범석이 무척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에이번드 체육계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정업무 수행이 크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메이져 스포츠의 월드리그 팀 보유는 해당 지역사회로서는 행복한 일이었다. 이번에 월드컵 본선 개최지로 에이번드가 유력한 후보가 된 이유가 바로 갓즈나이츠의 존재 탓이었다.
“하하하. 자네 덕분에 내가 이력에 큰 도움이 되었네. 하여간 오늘 이리 만나 안면을 틔었으니, 조만간 만나 식사를 대접해야겠네.”
“하하하. 공짜면 먹으러 가겠습니다.”
그때 시계를 바라보던 어빈이 시몬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장관님. 이제 출발할 시간입니다.”
“아. 그런가? 알겠네.”
뒷짐을 쥐고 걸음을 옮기려던 시몬이 범석을 바라봤다.
“자네. 나와 함께 가겠는가?”
“뭐 나쁠 건 없죠.”
“그럼 따라오게. 가면서 이번 일에 관해 할 얘기가 있으니 말일세.”
“네. 그러시죠.”
곧 그는 시몬과 함께 밖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던 장관 전용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이 차가 하늘로 치솟음과 동시에, 이번 월드컵 본선 유치 운동 본부 단원들 차량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범석이 탄 차량이 안정된 궤도에 진입했을 무렵. 시몬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범석군. 이번 월드컵 유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글쎄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유치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제 클라크 감독의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렇군.”
범석이 시몬에게 은근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그런데 상황이 어떤데 그러십니까?”
“으음. 그리 좋지 않네. 여러모로 우리가 아르칸 지역정부에게 크게 밀리고 있어.”
하며 시몬이 작금에 상황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본선 개최지 선정은 이번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지역 협회의 32곳과 연방 프로검투 협회 주요인사 23인 등 총 55명의 투표로 결정이 났다. 현재 개최지로 가장 유력시 되는 지역은 아르칸과 에이번드, 테모리아, 브라크였다.
모두가 이번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하는 지역 대표팀으로, 이들의 개최지 유치 경쟁은 아주 치열했다.
그런데 여기서 단연 우위에 있는 팀이 바로 아르칸 지역정부였다. 채플린 그룹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해당 정부를 돕는 데다가, 이 지역 검투계를 자신의 세력하에 두려는 루이스 계파까지 발 벗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채플린 위스퍼가 이번 월드리그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1위를 달리고 있기에, 투표인단의 호응도 아주 좋았다.
물론 에이번드도 지역 장관인 시몬이 나설 정도로 적극 참여하고 있기에, 나름의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유력계파에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아르칸 지역정부를 이길 수는 없었다.
“루이스 부회장님의 계파가 아르칸 지역정부를 돕는다고요?”
“그렇다네. 루이스 부회장이 채플린 가문과 제법 친분이 있는 모양이더군.”
“하긴 채플린 그룹 회장님과 그분은 학교 동창인데다가, 아직도 만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으음. 나도 그런 얘기는 들었네.”
입맛을 다신 범석이 시몬을 쳐다봤다.
“그럼 저희도 한 계파를 잡죠. 저쪽도 잡았는데, 우리라고 못 잡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쉽지 않은 일이네. 월드컵 본선 개최지 선정은 지역 사회의 중차대한 일이라, 적극 관여하기를 꺼리고 있어. 자칫 경쟁 지역에서 자신들 계파의 권한이 줄어드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일세. 만약 에이번드, 테모리아, 브라크 지역이 이브라힘 계파와 쿠퍼 계파 세력의 지역이 아니었다면 루이스 계파도 쉬이 아르칸 지역 정부를 돕지는 못했을 걸세. 아마도 점조직은 끌어들일 수 있어도, 전체적인 도움을 받기란 어려울 걸세.”
하긴 테라모아는 현재 쿠퍼 계파의 수중에 있었고, 브라크는 이브라힘 계파의 세력 내에 있었다. 여기에 에이번드는 이들 양쪽의 접전지였기에, 루이스 계파가 적극 아르칸을 지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으음. 그래요? 그럼 지역 세력에 의할 수밖에 없네요. 혹시 저희를 지지하는 지역이 어디 어디입니까?”
“글쎄. 아직은 지지하는 지역을 특별히 꼽을 수 없네. 대략의 윤곽이 잡히려면 1차 투표가 끝나야 할 걸세.”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1차 투표의 대상자는 이번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32개 팀 모두였다. 아무리 가능성이 없다지만 자신 팀에 투표하지 않을 지역은 없었다. 당연히 1차 투표가 끝이 나야지만, 대충의 지지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요사이 제법 비가 내리네요. 기온이 떨어져 좋기는 하지만, 비 피해가 생길지 걱정입니다. 근래에 워낙 기후가 좋지 못해, 곡물 가격이 오를 거라는 전망도 있는데요. 쩝.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