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38
440화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당신은 저희 어머니와…….”
그 점이 좀 문제였지만, 범석으로서는 상관할 바가 없었다. 독이 든 먹이를 먹을 만큼 그는 한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시간을 끌고 데레사를 정신없게 만들면 만족이었다.
“하지만 헤어질 것이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만, 도덕적으로…….”
“법률적으로는 문제없습니다.”
“그,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어요. 전 범석 씨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 말을 하고 난 데레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도 당혹스러워 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범석이 그녀를 놓아줄 리가 만무했던 탓이다.
“데레사 양. 잠시만요. 좀 더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전 할 말이 없어요. 이만 가보겠어요.”
그때 범석의 품 안에서 작은 호출음이 들려왔다. 그는 잠시 꺼내 살펴보더니, 작게 미소 지었다. 바로 마가렛에게서 온 메시지였는데, 다름이 아니라 렉스터 경감이 안젤라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바닥이 꺼질세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제가 그렇게 싫습니까?”
“네. 물론이에요.”
“정말 싫습니까?”
“네.”
연이은 거절에도 범석은 꿋꿋했다. 데레사의 자신에 대한 호감도는 거의 제로. 좋아할 리 없다는 사실을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범석이 그녀와 정을 통하는 방법은 강제적인 행동뿐이었다. 그런데 이는 그가 바라지 않는 행동이었다. 정나미도 떨어졌고, 능욕씬은 범석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범석이 지금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퍼붓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따로 있어서였다.
그가 억세게 데레사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래서 데레사 양이 좋습니다. 이런 도도한 모습이 제 마음을 끓어오르게 합니다.”
“저리 비키지 못해요!”
“절대로 못합니다.”
반항하는 데레사로 범석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와창창 튕겨져나가 쓰러지는 의자를 보면, 그 충격이 매우 클 것임이 확실했다. 그렇지만 그는 아픔을 호소하기 보기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리던 바를 이루었던 탓이다. 지금 데레사의 품속에 있던 전자수첩이 넘어짐과 동시에 범석의 손에 완전히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녀가 옷을 추스르고 일어서더니, 범석의 볼을 향해 힘껏 따귀를 날렸다.
“뭐! 이런 작자가 다 있어! 당신 미쳤어요!”
얼어붙은 모습을 연기하던 그가 근처 의자에 풀썩 주저 않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랑에 멀어 잠시 미쳤나 봅니다.”
“맞아요! 당신은 미쳤어요. 앞으로는 절대 제게 가까이 오지 마세욧!”
이를 꽉 깨문 데레사가 문고리를 잡으며 증오어린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가타부타 말없이 문을 빠져나가더니, 횅하니 이 카페를 떠나갔다.
이제야 살며시 고개를 든 범석이 비릿하게 웃으며 작게 읊조렸다.
“크크크. 어떻게 알았냐? 이제 넌 절대 나를 보지 못할 거다.”
소리에 놀라서 들어온 종업원에게 상당한 금액의 팁을 건넨 범석이 천천히 카페 문을 나서더니,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앞으로의 통신 내용이 데레사의 귀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기에 최대한 비밀이 보장되는 장소로 갈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플라잉 카를 타고는 전자수첩을 품에서 꺼냈다.
“여보세요. 렉스터 경감님?”
– 그래 나다.
화면 속에 나타난 렉스터 경감은 어느 플라잉 버스 안에 탑승하고 있었다. 내부가 익숙한 것으로 보아 아론이 분명해 보였다.
“정말 안젤라 여사님을 찾았습니까?”
– 그래. 한 10분 전에 모습을 확인했다.
“살아 계십니까?”
– 후후. 다행히도 무사하시다.
‘데레사. 고것이 마지막 양심은 있었나 보군. 어머니라고 죽이지 않은 모양이니 말이야.’
범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만 있다면 되었다. 구출만 하면 다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휴~ 천만다행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십니까?”
– 라포니 중앙 정부 내에 있는 칼리 시티 외곽의 한 공사장이다. 원래 카지노 건물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공사가 부도나 지금은 공사가 중지된 건물이다. 이곳 지하에 안젤라 여사님이 갇혀 계시다.
범석이 바로 자신의 플라잉 카를 출발시켰다. 칼리 시티는 이곳 세노사이드와 다른 중앙 정부 내에 있지만, 위치상으로는 아주 가까웠다. 자신의 고속 플라잉 카로 간다면 20분이면 도착했다.
“그렇습니까?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 아주 양호한 편이다. 몇몇이 안젤라 여사님을 지키고는 있지만, 당장은 해칠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그래요? 그럼 이쪽의 준비는 어떻습니까?”
– 지금 중무장 특수 기동대를 인근에 대기시키고, 타이밍을 재는 중이다.
“중무장 특수 기동대라면 총기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 그래. 살펴본 결과 상대가 총을 들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다.
범석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럼 구출 도중에 안젤라 여사가 크게 다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또 위기감을 느낀 납치범들이 그녀를 인질로 삼아 대치하면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큰일이군요.”
– 그래서 약간 사전 작업을 펼치는 중이다.
“어떻게요?”
– 지금 기동대 몇몇을 공사 인부로 위장시킨 후, 건축 자재를 앞마당에 쌓고 있다. 공사가 재개되는 것처럼 보이려고 말이다.
“아니 왜요?”
– 그럼 놈들은 지금 머무는 장소가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테니, 야음을 틈타 자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럼 그때 기습해 친다.
역시 꼼수의 대가다운 같은 생각이었다. 진입로가 단조로운 지하 밀실을 기동대를 침투하였다가는, 자칫 상대의 저항에 막힐 수가 있었다. 그럼 안젤라 여사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놈들이 지하실에서 나오게 된다면 허허벌판이었다. 확실히 위치상 유리한 면이 있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때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 네가 왜?
“저도 안젤라 여사님을 구출하는데 한몫하고 싶으니까요.”
그의 의도는 아주 간단했다. 안젤라 여사를 자신이 직접 구출하게 된다면 호감도의 상승이 만만치 않았다. 글로리아도 그런 식으로 공략이 성공했고, 마가렛의 호감도도 크게 올린 상태였다. 범석으로서는 이번 기회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렉스터가 고개를 바로 흔들었다.
– 그건 안돼. 민간인을 이런 작전에 투입할 수는 없다.
“왜요? 전에 글로리아 여사를 라피네가 인질로 삼았을 때, 제가 구출하러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 당시에는 상대가 총기도 들고 있지 않았고, 범인이 인간을 절대 해치지 않는 엘프였으니까. 그리고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처했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우리 경찰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범인은 총을 든 납치범이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
“정말 안돼요?”
– 당연히 안 되지! 그리고 나는 초기 작전만 담당할 뿐, 구출 작전에는 손을 쓰지 못한다. 너를 끼워주고 싶어도 끼워주지 못해!
“아니 왜요?”
– 왜긴 상황이 그렇잖아! 납치범은 총기를 든 무장 괴인이지. 납치된 인사는 라포니 중앙 정부의 중요인사에다, 유명 월드리그 검투팀 이사장인 안젤라여사다. 당연히 홍보부서에 일하는 내가 이런 거대 사건의 작전 책임자로 있을 수는 없잖아. 지금 연방 경찰청에서 보내온 대테러 진압팀이 곧 도착할 예정이다.
그럼 나는 이번 구출 작전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못해.
범석이 납득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이런 사건에 렉스터 경감이 나선다는 자체가 이상했다. 확실히 전문 인력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편이 나았다.
“하기야 그렇겠네요. 그럼 작전 완료 후에 끼어드는 것은 괜찮을까요? 전 그냥 얼굴만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렉스터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도 무리한 부탁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선이라면 자신의 손으로 어찌해 볼 수도 있을 듯 보였다.
작전 완료 후 대테러 진압팀은 바로 자리를 뜨게 되고, 안젤라 여사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게 되었다. 이때 끼어들 여지가 있으니, 충분히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 흐음. 그럼 너 언제쯤 올 수 있는데?
“한 10분도 안 걸립니다.”
– 좋아. 그럼 오는 대로, 특수 기동대 복장을 줄 테니까 그거 입고 아론 안에 그냥 꼼짝 말고 앉아 있어. 작전 종료 후 상황을 봐서 내가 안젤라 여사와 만나게 해줄 테니까.
“후후. 네. 좋습니다.”
만족한 범석이 자신의 플라잉 카의 속도를 높였다.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호감도는 크게 올릴 수가 있었다.
얼마 후 칼리 시티 외곽에 도착한 범석이 차량을 안젤라가 납치된 공사장 건물 멀리 세워놓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사장 입구에 차량에 세워놓아 봐야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공사장 건너편 인적이 드문 공터에 있는 아론을 보고는 급히 방향을 꺾었다.
“렉스터 경감님. 상황이 어떻습니까?”
아론에 탑승한 범석이 차량 전면에 컨트롤 박스 앞에 앉아 있는 렉스터 경감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이에 경감이 미리 마련해 둔 특수 기동대 슈트와 헬멧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것은 잠시 후에 말해 줄테니까, 빨리 이걸로 갈아입어라. 지금 사정이 급하다.”
“아니 왜요? 안젤라 여사님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여사님은 괜찮다. 지금은 네가 문제다. 대테러 진압팀이 아론에 탑승할 예정이거든.”
“대테러 진압팀이 여기를 왜요? 아론은 제 차인데요?”
“그게 좀 일이 그렇게 됐다. 납치범들이 적재적소에 감시 카메라를 쫙 깔아놓고, 지하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는 진입하게 어렵게 교묘하게 엄폐물까지 설치했다.
이 사실을 대테러 진압팀에게 알리니, 놈들을 전문가로 판단한 모양이다. 그래서 대테러 진압팀 전문 차량을 그들이 알아볼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 아론을 작전기지로 삼기로 했다.”
범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아론은 여객차량이지, 경찰 작전 차량이 아니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아론은 저희 팀 버스입니다. 이런 작전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렉스터가 은근한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결코, 아니었던 탓이다.
“내가 보니까 아니던데. 얘 완전 장난이 아니야. 날벌레와 거의 흡사한 초소형 버드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고, 이동식 중계 장치도 있더라. 게다가 상대의 감시 눈길을 피해 버드 카메라를 날리는 기술은 얼마나 예술인지, 나나 정보를 받은 대테러 진압팀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네가 연락을 받고 여기까지 오는 20분 동안 아론이 납치범과 놈들이 설치한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모조리 다 파악해냈을 정도라니까.”
“그, 그렇습니까?”
“그래. 실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 무슨 생각으로 팀 버스를 이렇게 만들었냐? 고가의 정보 정찰 장비로 아예 도배했던데?”
“그, 그게 주차할 때 필요해서요.”
“아니 주차하는데 이런 장비들이 왜 필요해?”
범석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슈트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정말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렉스터 경감과 친하고 자신이 의도한 바는 없다지만, 도촬을 위해 이런 전문 장비들을 깔아났다고는 도저히 말 못했다.
“크흠. 그렇기야 하지만……. 그게…….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기 위해서죠.”
“오늘 같은 날?”
“네. 전에 저도 흑사회에게 납치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만전을 기하기 위해 아론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해가 가는지 렉스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에 범석은 마가렛과 함께 루카스 회장에게 납치 살해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범석이 이런 장비를 사들였다고 해도 하등 이상이 없었다.
“그렇군. 하긴 너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지.”
마지막으로 헬멧을 착용한 범석이 렉스터에게 옆으로 갔다. 조그마한 홀로그램 화면에 포박구에 묶여 있는 여인의 모습이 담겨 탓이다. 상황으로 보아 안젤라가 확실해 보였다.
“안젤라 여사님이군요. 그런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데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겁니다.”
“아니 그저 잠들었을 뿐이다.”
범석이 황당한지 헛바람을 내뱉었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납치된 상황에서는 저리 편하게 자다니 넉살도 좋아 보였다.
“네? 이 상황에 잠을 자요?”
“그래. 놈들이 이동을 준비하는지, 방금 수면제를 주사했다.”
깜짝 놀란 범석이 렉스터를 급히 바라봤다. 주사라면 살해를 목적으로 독액을 투입할 수도 있는 일, 그 상황에서는 중무장 특수 기동대를 투입했어야 옳았다.
“네? 수면제 아니면 어쩌시려고요?”
“후후. 그러니까 아론이 대단하다는 거 아니냐? 환기구로 침투한 초소용 카메라로 주사제 캡슐에 문구를 확인하고 수면제임을 파악했다. 그래서 작전을 펼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거다.”
“아. 그래요? 다행이군요.”
범석이 지긋한 표정으로 아론 내부에 있는 카메라 렌즈를 쳐다봤다. 정말 이 상황에서 유용한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이거 너무 오냐오냐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론에게 설치해준 장비가 경찰들도 감탄할 정도라면,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그때 아론의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대다수 엘프들이었는데, 눈빛을 보니 제법 단련된 자들 같았다. 뒤를 따라 들어온 여행객 차림의 한 남성이 렉스터 경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렉스터 경감.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이제부터 모든 작전은 우리가 책임지겠으니, 자네는 물러나 있어라.”
이에 렉스터 경감이 간단한 거수경례를 붙이며 뒤로 물러섰다.
“네. 바트 경정님.”
바트 경정이 멀뚱멀뚱 서 있는 범석을 유심히 바라봤다.
“자네는 누군데 여기에 있나?”
범석이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했다. 저자가 자신에게 말을 걸 줄은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 자세를 가다듬고 정중하게 말했다.
============================ 작품 후기 ============================
큰 태풍이 올라온다네요. 워낙 커서 피해가 클 듯 보인다는데, 좀 비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바람 비 피해 조심해주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