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46
448화
“후후. 좋아. 이제 처지가 뒤바뀌었다. 에우리네 각오해라.”
에우리네를 바라보는 범석의 입가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가 대장인 셀리아와 등을 맞대고 2인진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에우리네라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자신은 언제든 치고 빠지는 전략을 취하며 주변 공간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녀는 셀리아의 등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결코 함부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에우리네가 만약 자신의 공격을 피해 이동한다면 리얼 히어로즈 대장은 그대로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방패를 곧추세웠다. 이제 범석이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자신은 커다란 페널티를 안고 싸워야 했다. 셀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이동할 수 없다는 점과 티엘라의 저격이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든지 오세요!”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리얼 히어로즈 검투사들의 비명을 들으며 범석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이번 1라운드는 갓즈나이츠의 승리로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기쁨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는 에우리네에게 달려들었다.
창. 쾅.
길게 이어지는 청명한 타격음과 함께 에우리네의 왼쪽으로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아무리 등의 안전을 도모했다고 해도, 범석이 약간만 옆으로 이동해 공격을 가한다면 측면이 티엘라에게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범석의 검을 막음과 동시에 방패를 옆으로 들어 올려 화살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덕분에 한 박자 느려진 그녀의 방패는 연이은 범석의 검격에 대응할 수 없었다.
곧바로 에우리네는 왼쪽 어깨에 강한 타격을 입고는 방패를 놓쳐버렸다.
“후후. 역시 안 되겠지? 이런 상황에서 나를 이길 수…….”
조롱기 어린 언사를 내뱉던 범석이 중간에 말을 멈추고 숲 쪽을 주시했다. 재차 이어진 화살 공격이 에우리네의 머리를 강타하고는 튕겨 나간 것이다.
‘티엘라도 참나, 내 먹이에는 손대지 말아야지.’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허물어뜨리는 에우리네를 다시 바라본 범석이 고개를 흔들어댔다. 이런 면이 검투 경기의 묘미였지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쓰러지는 그녀를 보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뭐 어쩔 수 없겠지. 아무리 에우리네라도 이런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는 없으니까.’
그는 서서히 정리되어가는 주변을 바라보고는 곧 검끝을 내렸다. 셀리아를 비롯한 몇몇 리얼 히어로즈 검투사들이 저항하고 있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저격에 노출된 상태에서 갓즈나이츠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은 휘하 검투사들에게 자신감과 기회를 줘야 하니, 그는 전투를 멈추고 제자리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와 함께 철교를 넘어 갓즈나이츠의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 이거 대단합니다! 갓즈나이츠! 월드 리그 우승 후보인 리얼 히어로즈의 상대로 홈 무적 신화를 또다시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정말 장난 아닌데요. 하여간 이번 1라운드 경기를 본 리얼 히어로즈 감독은 지금쯤 무척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이토록 어이없이 패배해버리면 팀 사기가 떨어져 리그 경기에도 큰 지장이 있을 테니까요.
– 네. 그렇습니다. 검투 경기는 기세 싸움. 이런 패배를 당하게 되면 소속 검투사들은 크게 주눅이 들게 되고, 다음 경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죠. 아무래도 리얼 히어로즈 감독은 오늘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다시 생각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의 발언에 더그아웃 쪽으로 들어가는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을 바라보던 해설자가 말을 이었다.
– 여하튼 갓즈나이츠. 오늘 단단히 벼르고 온 모양이군요. 최근 리그 경기에서 후보급 검투사를 대거 참여시켜 주전들의 체력을 비축하더니 결국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 하하하. 네. 현재 리그 4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우승이 불가능하기에 리그 컵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실 리그 컵을 들어 올리는 일도 무척 영광이죠. 안 그렇습니까?
– 네. 맞습니다. 세상에 많은 프로 검투팀이 있지만, 월드 리그컵을 들어 올린 팀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니까요. 창단 후 8시즌을 보낸 신생팀이 리그 컵을 들어 올린다니 무척 기대됩니다. 물론 채플린 위스퍼가 작년 7시즌 만에 들어 올린 예가 있어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하여간 대단한 일이죠.
– 네. 물론입니다. 게다가 갓즈나이츠는 채플린 위스퍼와 달리 자신들만의 손으로 일구어낸 기록 아닙니까? 확실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리마 시티 콜로세움 중앙을 가로지르는 숲을 훑어보더니 흥에 겨운 듯 말했다.
– 하여간 갓즈나이츠. 지난 가을시즌과 지금 봄 시즌의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전혀 딴 팀 보는 것 같습니다.
– 후후. 아무래도 지난겨울 휴가 시즌에 숲을 추가한 일이,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듯싶습니다. 그리고 티엘라를 영입한 일도 큰 몫을 한 듯 보이고요. 사실 따지고 볼 때 오늘 승리의 관건은 티엘라였지 않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오 범석 검투사에다, 티엘라. 여기에 특색있는 홈 콜로세움까지. 갓즈나이츠는 이제 강팀의 면모를 갖췄다고 해도 손색이 없는 듯 보입니다.
중계진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범석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섰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마중 나오는 다이아나에게 손짓으로 인사하고는 차분하게 미소지었다.
“어때? 나쁘지 않았지?”
“최상이었어요. 중간에 리얼 히어로즈가 적절한 대응을 해와 고민했었는데, 주인님께서 리자 님을 숲 전투 지역으로 보내 상황을 역전시키셨어요. 정말 훌륭한 판단이셨어요.”
다이아나는 진실로 감탄하고 있었다. 주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그는 정말 대단했다. 자신도 리자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처럼 빠른 판단을 하지 못했다.
범석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뭘. 당연한 순서를 밟았을 뿐인데……. 그런데 다음 2라운드 작전은 어떻게 갈 거냐?”
“글쎄요. 1라운드가 워낙 잘 풀려서 플랜 2-3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플랜 2-3이라면 전격적인 공격을 의미했다. 빠른 공격으로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인데, 성공만 한다면 손쉽게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다만 프리롤을 셋이나 운영하기에, 본진의 수가 적다는 점이 문제였다. 자칫 리얼 히어로즈 검투사들이 숲 입구에서의 기습적인 난전을 노린다면 큰 피해를 볼 수 있었다.
“괜찮겠냐? 좀 위험한 전술일 텐데?”
“네. 이번도 당연한 수순이니, 뜻대로 잘 풀리리라 생각돼요.”
“어째서?”
“현재 리얼 히어로즈는 1라운드 패배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패배의 원인은 초반 우리에게 후방을 빼앗긴 요인이 아주 컸고요. 아마도 저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후방으로 급격히 이동해 자리를 지키려 들 거예요.”
“그래? 만약 저들이 숲 입구에서 매복한 후, 난전을 벌여 온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럼 수적 열세에 놓일 우리 본진이 크게 당할 공산이 크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아요. 오늘 경기는 5라운드 전체를 소화해야 하기에, 체력적인 면을 염려하는 리얼 히어로즈로서는 2라운드에서 2진을 출전시킬 수밖에 없어요. 이들을 가지고 저희의 주력을 막을 수는 없는 일. 수세적인 플레이로 일관할 가능성이 아주 커요. 그리고 숲 입구에 매복하는 일도 생각하기 어려워요. 저들은 우리가 숲 속 전투에서 큰 우위를 가지고 있고 믿고 있거든요. 또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해 우리의 방심을 노린다고 해도, 저희가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이번 작전을 펼치면 본진보다 주인님을 비롯한 프리롤이 먼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게 되니, 미연에 상대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거든요. 즉 주인님께서 먼저 진입해 들어가셨을 때 시야에 리얼 히어로즈 검투사들이 없다면 작전 중지를 명하면 만사 해결이에요.”
범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도 같은 의견이기 때문이다.
플랜 2-3의 주요 골자는 세 명의 프리롤이 빠르게 상대 지역으로 넘어가 공격을 감행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본진보다 앞서 나가니, 상대의 의도를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숲을 나갔을 때 적이 보이지 않는다면, 매복일 가능성이 컸고 작전 중지를 명하면 그만이었다.
“으음. 그렇겠군.”
“하지만 문제는 리얼 히어로즈가 1라운드 작전 그대로를 유지할 때에요. 그럼 초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갈 테니까요.”
“후후. 1라운드에 저리 허무하게 패한 저들이 같은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만약 채택했다고 해도 1라운드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면 되고.”
“그렇지만 프리롤을 셋이나 두는 터라, 적의 후방을 점거해야 할 본진의 수가 크게 모자라는데요?”
“상관없어. 나와 리자가 급히 가세하면 된다. 그리고 리얼 히어로즈가 2진을 보내온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으음. 하긴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범석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신의 벤치로 향했다. 2라운드를 대비해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갓즈나이츠가 이번 경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성적은 5전 전승. 아무리 1라운드가 금세 끝났다고 해도, 충분한 휴식을 취해 체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경기의 관건 중 하나는 얼마나 주전들을 더 활용할 수 있느냐였다.
대략 20여 분여 후. 범석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광판에 출전 검투사의 명단이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경기가 시작된다는 신호탄이었다.
‘후후. 미야미와 제시라……. 느낌이 아주 좋은데.’
범석이 속으로 언급하고 있는 검투사들은 리얼 히어로즈의 후보 검투사들이었다. 이들의 주특기는 궁. 아무래도 티엘라의 저격에 대비해 배치한 듯 보였다.
활을 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건은, 안정된 자세였다. 특히나 티엘라는 나무로 몸을 은폐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저들은 세밀한 조정이 있어야만 정확한 샷이 가능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리얼 히어로즈 진형의 움직임에 상당한 제약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런데 궁사를 배치한 상황에서는 방진의 방어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였다.
궁사들은 필연적으로 방패를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갓즈나이츠 주력의 파상공세를 적절히 막기는 어려울 터, 가장 선호할 전략이 바로 경기장 둘레의 벽을 배수진 삼아 버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초반에 빠른 후퇴가 필수지.’
리얼 히어로즈의 초반 빠른 후퇴. 다이아나가 세운 플랜 2-3이 이에 대한 대비였다. 즉 저들의 궁사 배치는 티엘라를 견제하고자 함이지만, 역으로 갓즈나이츠에게는 전략 성공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흥이 겨운 범석이 더그아웃을 나서며 다이아나에게 칭찬 한마디를 내던졌다.
“후후. 다이아나. 아무래도 가위바위보에서 네가 이긴 모양인데.”
“네. 그럼 잘 부탁드려요.”
고개를 주억거린 범석이 밖으로 나가서 줄을 맞춰 선 후, 입장 신호와 동시에 경기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시내가 바로 앞, 숲 지역까지 이동하고는 여유로운 얼굴로 2라운드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 삐이익! 경기 시작!
“리자! 티엘라! 간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과 동시에 범석과 리자, 티엘라가 과감하게 시내를 뛰어넘었다. 후퇴하는 상대 검투사들의 뒤를 치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선 가까이에서 등을 보이며 달리는 리얼 히어로즈의 검투사를 쳐다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저들이 자신이 바짝 뒤를 따라붙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빠르게 후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 예감을 강하게 받은 범석은 곧바로 허리에 꽂혀 있던 비도를 하나 뽑아들고는 숲을 나서자마자 바로 힘껏 도약했다.
“됐다! 성공이다!”
공중에서 투척 자세를 취하는 범석의 시선이 가장 뒤에 떨어져 있는 에텔의 등에 꽂혔다. 그녀는 자신이 공격을 받게된다는 사실도 모른채, 후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윽고 스로잉 되는 2개의 단도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하나의 화살이 후위에 있던 리얼 히어로즈 검투사들의 급소를 정확히 타격했다.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
“갓즈나이츠! 멋지다!”
“잘했다! 갓즈나이츠!”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지는 세 명의 리얼 히어로즈 검투사들로 홈팬들이 흥분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쉽게도 대장인 셀리아는 놓치기는 했지만, 추격 기습전이 성공해 후미들 모두가 전멸하며 순식간에 양 팀의 수적 비율이 12대 9로 변모했다.
대대수가 멀쩡해도 이길까 말까인데, 세 명이나 당했다. 이제는 갓즈나이츠가 승리했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는 범석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환하게 웃으며 티엘라에게 명령했다.
“티엘라! 숲에서 대기하며 저격을 노려!”
“넷!”
티엘라가 숲으로 몸을 숨기자, 범석이 리자를 데리고 숲 속 입구에서 나오는 본진에 달려갔다. 이를 본 제시가 궁을 꺼내 그를 노려보려고 했지만, 티엘라가 쏜 화살이 정확히 허리에 꽂히며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덕분에 정신이 없던 리얼 히어로즈는 더욱 혼란에 빠지며 우왕좌왕 댔다. 배수진을 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사이에 벌어진 4명의 희생은 아주 뼈아팠다.
새하얗게 탈색된 얼굴을 한 셀리아가 모두를 향해 외쳤다.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야! 모두 힘을 내서 갓즈나이츠를 상대해!”
하지만 한 번 추락한 사기는 그다지 회복되지 않았다. 리얼 히어로즈 검투사는 기세 좋게 달려드는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을 전의 잃은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자. 간다!”
이후의 2라운드 경기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수적열세와 전의 상실에 빠진 리얼 히어로즈로서는 갓즈나이츠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다.
에우리네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 버텨봤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체력 비축을 위해 벤치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곧 그녀들은 선두에 선 범석의 칼과 티엘라의 저격 앞에 산산이 무너져 내리며 차례로 쓰러져갔다.
이에 리얼 히어로즈는 2라운드에서도 패배를 당했고, 경기를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숲을 기반으로 한 갓즈나이츠의 강함을 절실하게 깨달았고, 더 이상의 체력과 전의를 잃기에는 앞으로 걸어갈 길이 험난했다.
결국 이날 갓즈나이츠는 리얼 히어로즈를 라운드 스코어 4승 1무로 꺾고는 리그 컵을 들어 올리기 위한 라운드 승수를 하나만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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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무심코 이번 9월 달력을 펴봤는데, 추석이 토일월입니다. ㅠㅠ. 작년 부터 휴일이 왜 이러나 모르겠습니다. ㅠㅠ.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