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51
453화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군. 나도 자네의 심정을 잘 알지. 엘프에게 당했을 때, 그 쓰라림은 아무나 알지 못하지. 알겠네. 자네를 돕겠네.”
“감사합니다.”
범석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다면 빈센트 감독을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이 프리시카를 노린다는 것을 모르지만, 자신은 그가 프리시카를 채플린 위스퍼에 선물하려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프리츠 사장까지 나서 준단다. 빈센트 감독은 꼼짝없이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프리시카를 노리는 인사 하나를 단념시켰을 뿐이었다. 하계 월드 워커 옥션 마켓에서 그녀를 영입하고자 하는 부호가 한둘은 아닐 터였다.
프리츠가 웨이터가 가지고 온 샴페인을 나열하는 레베카를 바라봤다.
“그런데 레베카. 팀 생활은 할 만하냐?”
“네. 일단은 경기에 자주 참여할 수 있으니까요.”
다행인지 프리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레베카는 자신의 영향 탓인지 검투를 무척 좋아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할아버지의 채플린 위스퍼 단장 제의를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검투사 생활을 영위할 정도였다. 덕분에 팀이 발전하고 경기에 참여하지 못했을 때 크게 실망해 안타까웠는데, 갓즈나이츠에 이적한 후부터 기분이 한결 좋아진 듯싶어 아주 다행스러웠다.
“다행이구나. 그런데 창술 수련은 어떠냐?”
“글쎄요. 아직은 먼 것 같아요. 그래서 경기에서 선을 보이지도 못하고 있어요.”
프리츠가 뜬금없다는 시선으로 레베카를 쳐다봤다. 창술은 검술에 비해 단순해 수련과정이 무척 짧았다. 그저 적절히 찌르고 종종 창대로 치는 동작만 있을 뿐이니, 그다지 배울 것도 없었다. 레베카 만큼의 전투 센스만 있다면 금세 경기를 치를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설마 너? 그저 경기만 치르자고 갓즈나이츠에 간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나중에 할아버지께 크게 혼쭐이 날 거다. 네가 단장직을 그만두는 일에 허락하신 이유가 바로 갓즈나이츠의 창술을 배운다는 것이니까.”
“아이. 아빠도 참. 범석 씨 경기하는 모습 보셨잖아요. 그런 창술을 어떻게 한두 해 만에 배워요. 열심히 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곰곰이 갓즈나이츠의 경기를 떠올려본 프리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딸아이 경기라 자주 시청한 탓에, 범석이 어떤 창술을 구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긴 그의 창술은 일반 검투사의 창술과 좀 다른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긴. 그렇군.”
그 사이 단상 위로 빈센트 감독과 일부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올라서더니 행사가 시작되었다. 기자들은 아니었지만, 일부 행사요원들이 오늘을 기리기 위하기 연신 그 모습과 사진과 영상에 담아댔고, 여기저기에서 샴페인 터지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자리의 모인 군중은 익살스러운 행사 사회자의 진행 멘트에 웃음을 터트리는가 하면, 일부는 웨이터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즐겁게 맛보고 있었다.
“자. 그럼 우리 채플린 위스퍼의 월드리그 우승을 일군 감독님을 모셔보겠습니다.”
빈센트 감독이 단 앞으로 나오자 초청객들과 함께 범석이 손뼉을 쳐댔다. 좀 배가 아프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아량은 그도 가지고 있었다.
곧 빈센트 감독의 연설이 시작되고 그는 샴페인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그리고 살짝 연회장 문을 바라보는 순간, 경악한 눈빛을 지었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발생한 것이다.
바로 드레스 차림을 한 데레사가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젠장 할! 못 온다더니!’
대충 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도 오리라고 단정 짓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대비해 안젤라 여사에게 연락해 데레사에게 많은 업무를 부과하라고 부탁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어머니의 명까지 어겨가며, 이 자리를 찾을 줄은 몰랐다.
그가 전자수첩을 한 번 만지작거리더니, 황송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프리츠 사장님?”
“무슨 일인가?”
“아무래도 잠시 팀에 다녀와 봐야겠습니다.”
“팀에는 무슨 일로?”
“조금 사고가 있는 모양입니다. 잠시 처리하고 다시 와야 할 것 같습니다.”
프리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사고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갓즈나이츠 훈련 캠프까지는 고작 몇 분 거리였다. 잠시 화장실 가는 셈 치고 다녀와도 탓할 것이 못됐다. 오늘 행사순서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알겠네. 그럼 얼른 다녀오게.”
“네. 감사합니다.”
레베카가 함께 일어나며 말했다.
“범석 씨. 저도 갈게요.”
“아니야. 사무적인 일이니, 나 혼자 갔다 와도 된다. 넌 아버님과 함께 여기에 있어.”
“그래요? 그럼 빨리 오실 거죠?”
“음. 일단 가보고. 늦을 것 같으면 연락 줄게.”
“네. 알겠어요.”
레베카가 다시 앉자 범석이 부리나케 일어나 연회장 측면을 돌아 입구 쪽으로 갔다. 쪽문으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채플린 위스퍼 팀 관계자가 행사진행을 위해 사용하기에 좀 어려웠다. 그는 데레사가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문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범석 씨! 여기에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가냘픈 여인네의 목소리에 범석이 인상을 구겼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데레사였기 때문이다. 연회장이 넓기는 하지만, 그는 키가 크기에 쉽게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었다.
하지만 범석은 여전히 분주하게 걸음을 옮겼다. 못 들은 척하려는 것이다. 워낙 행사에 참여한 사람이 많고 붐비고 있기에, 목소리가 묻히는 일은 다반사로 벌어졌다.
“범석 씨. 어디 가요?”
범석이 문밖으로 빠져나갈 찰라, 기어이 데레사의 손에 붙잡혔다. 급한 걸음이라도 달려오는 그녀를 제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는 연회실 복도로 나선 후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데레사 양 아닙니까?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니 불렀는데도 왜 쳐다보지도 않으신 거예요?”
“아. 워낙 사람이 붐벼서 제가 못 들었나 봅니다.”
범석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자, 데레사가 묘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래요?”
“하하하. 네. 사실 전 어딘가에 집중하면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만, 전 특히나 심하죠.”
“확실해요?”
“네. 제가 검투사로 성공한 이유도 바로 이 버릇 때문이죠. 다른 잡념이 없으니, 검투에만 열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묘할 정도로 설득력 있게 들렸던 터라, 데레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저 나이에 그런 검술 실력을 쌓으려면, 어느 정도 남들과 다른 면이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평론에서도 검투 경기에 참가할 때 그의 집중력은 아주 대단하다고 했다.
“뭐.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지금 어디 가세요?”
“아. 팀 내 무슨 일이 좀 생겨서 급히 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그게 좀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되는 일이라서요. 정말 이 점 양해 부탁합니다.”
데레사가 삐친 얼굴로 고개를 팩 돌렸다.
“저와 범석 씨 사이에 비밀이 어디에 있어요. 혹시 제가 오는 모습을 보고 싫어서 가는 것 아닌가요?”
“아니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오늘 연회장에 오며 데레사 씨가 안 계신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무슨 일로 가시는지 말씀 주세요. 아무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까 염려 마시고요.”
범석이 난감한 듯 가만히 머리를 쓸어 올렸다. 없는 얘기를 어떻게 토해내겠는가?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면 데레사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볼 터이기에,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 했다.
“아. 그게 월드컵 본선에 관한 일입니다. 이번에 월드컵 본선이 저희 에이번드 지역에서 열리는 바람에 저희 팀도 여러 가지로 할 일이 많거든요. 홍보차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춰야 하고, 개막식 때 먼저 입장함은 물론 누군가 한 명이 대표로 나가 선서식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 행사 진행을 계획하는 데 있어 좀 차질이 있나 봅니다. 그래서 이를 조율하기 위해 협회 쪽과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어 가는 겁니다.
”
“그래요? 그럼 전화 연락으로 처리하면 안 되나요?”
“그게 좀 어렵습니다. 제 의사를 결정하려면 자료를 참조할 필요가 있는데, 그게 팀 내 집무실에 있습니다. 게다가 절전 차원에서 코드까지 뽑고 왔던 터라, 리모트로 사무용 컴퓨터를 부팅시킬 수 없기에 자료를 뽑아올 수 없는 상황이고요.”
“하지만 밑의 직원에게 가서 컴퓨터를 켜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것도 좀 곤란합니다. 저녁 시간이라 대부분 퇴근한 상황이고, 제 컴퓨터에는 비밀 자료가 아주 많거든요. 그래서 항시 보안 락을 걸어놓고 나오는데, 함부로 들일 수는 없죠.”
다행히 이해하는지 데레사가 납득했다. 전에 그녀가 사는 지역인 마이라야에서도 월드컵 경기를 연적이 있어 여러모로 바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거대 프로 팀을 경영하다 보면 갖가지 비밀스러운 일 처리가 있게 마련이었다.
“하긴 그렇겠네요. 좋아요. 그럼 저도 같이 가겠어요.”
“네? 저를 따라온다고요? 혹시 데레사 양. 오늘 행사에 참석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아니요. 전 범석 씨가 보고 싶어 왔어요. 행사는 부수적으로 참여하는 것뿐이고요.”
“아니 그래도 일단 참석하셨으니, 자리를 빛내 주셔야죠. 그냥 가시면 채플린 위스퍼 쪽에서 섭섭해할 것 아닙니까?”
“상관없어요. 어차피 방명록에 이름을 남겨놓았는데다가, 저 하나 빠진다고 누구도 알지 못해요. 그리고 범석 씨도 가시는데, 저라고 가지 말라는 법은 없죠.”
할 말이 없는지 범석이 더는 혼자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일이 있다지만, 자신도 이렇듯 떠나가는데, 그녀만 남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대답했다.
“뭐. 그렇다면 같이 가시죠. 대신 제가 일 처리할 때는 밖에 계십시오. 밖에 알려지면 곤란해서요.”
“호호호. 네 그럴게요.”
범석은 하는 수 없이 데레사를 데리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마냥 여기에 서 있다가 다른 채플린 가문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면, 여간 곤란하지가 않았다.
훈련 캠프로 돌아온 그는 데레사를 응접실에 처박아 두고 자신의 집무실에서 노닥거렸다. 없는 일을 처리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범석은 한참을 인터넷 서핑을 하며 노닥거리고는, 날이 저물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이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좀 일이 복잡해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혼자서 응접실에 있었던 데레사가 하등 상관없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지으며 일어섰다.
“아니. 괜찮아요. 불쑥 찾아온 제 잘못이니까요.”
진심이라면 참으로 괜찮은 여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불청객이라지만, 이리 혼자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화를 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범석은 그녀의 이런 마음가짐이 가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하하.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저희 식사하러 갈까요?”
“식사라뇨?”
데레사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은 저녁이 한참 넘은 시간이었다.
“저. 식사도 하지 않고 왔어요. 설마 모른 척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아직 식사 전입니다. 그럼 저희 나가실까요?”
“네. 오늘은 제가 낼 테니, 장소는 부담 없이 고르세요.”
“호오?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아주 잘 아는 식당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시겠습니까?”
“네. 얼마든지요.”
하며 범석이 그녀를 데리고 팀 내 식당으로 찾아갔다. 데레사와는 될 수 있는대로 외부에서 식사하지 않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다. 괜히 잘못 밥을 먹었다가는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식당 내에 불을 켜며 말했다.
“자.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데레사가 난감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식사하러 가자고 해놓고, 고작 이런 곳에 오다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없던 터라, 조리를 해주는 요리사도 없었다.
“아니. 여기서 먹자고요?”
“하하하. 네. 싫습니까?”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괜찮으신가요? 보아하니 식당 직원들도 다들 퇴근한 것 같은데요.”
“상관없습니다. 제가 하면 되니까요.”
“범석 씨가 요리하신다고요?”
“네. 사실은 제가 데레사 양에게 꼭 좀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요. 뭐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데레사가 손을 마구 저어댔다. 비록 상대가 범석이라지만, 연인을 위해서 식사를 손수 대접해 준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아니요. 전 괜찮아요.”
“후후. 그럼 근처에 앉아 계십시오. 제가 잘 요리해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한 식당 테이블에 앉자, 범석이 주방 안으로 들어가 주방도구를 챙겼다. 그가 오늘 할 서브요리는 알리신이 팍팍 순댓국에 홍어회이고, 밑반찬으로 오징어 젓갈류와 게장을 대접할 예정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보신탕을 꺼내 들고 싶지만, 그도 취향 상 차마 먹지 못해 포기했다.
요리 재료를 모두 준비한 그는 물을 끓임과 동시에 능숙한 칼질로 홍어회를 썰기 시작했다.
‘으윽. 이게 무슨 냄새야! 이거 화장실에 온 기분이잖아.’
홍어회에서 비롯되는 달짝지근한 암모니아 향기가 식당 전체로 번져 나갔다. 잠시 기대를 하고 있던 데레사는 코를 틀어막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범석이 지금 하는 요리들은 한국인이 아니고서야, 손쉽게 접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휘하 엘프들이야 그동안 주인을 위해 잘 적응해왔지만, 데레사는 결코 아니었다.
얼마후 범석이 홍어회와 묵은 지, 삶은 돼지가 담긴 접시와 함께 새우젓을 그녀가 앉아 있는 식탁 앞에 내려놓았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냄새에 질색하는지 데레사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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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에 풍선이 날아가는 모습을 봤는데, 이거 완전히 UFO더라고요. 가로수 등불이 반사되어 밑부분만 밝은 빛을 냈는데, 아래로 축 늘어진 끈만 아니었으면 사진기 찾으려고 난리 칠 뻔했습니다. 이거 괜히 사람들이 풍선을 UFO를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에이 순간이나마 혹시나 했는데요. ㅠㅠ.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