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62
464화
– 삐이익.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와 함께 프리시카와 라카미, 이롤리타가 범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워낙 기세가 등등했던 터라, 그는 차마 맞서 생각도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며 장창을 크게 휘두를 뿐이었다.
거친 파공음과 함께 발을 멈칫거린 이롤리타가 창끝이 바로 앞을 스침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점프해 범석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이야앗!”
창대를 들어 간신히 상단 치기를 막은 범석이 뒤이어 파고들며 검을 뻗는 라카미로 화급히 상체를 뒤틀었다. 덕분에 중심을 잃은 그가 아찔한 기분을 만끽했다. 여기서 프리시카가 공격해오면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무사히 자세를 회복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프리시카가 반 박자 늦게 진입해왔던 탓이다.
요란한 금속음과 함께 튕겨 나가는 그녀의 검을 본 라카미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찰나의 시간이 늦었을 뿐이지만 프리시카가 이런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까 1라운드 때에도 한쪽 팔을 잃은 범석에게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당한데다가, 2라운드에서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정말 짜증스러웠다.
“프리시카! 너 뭐해! 빨리 들어왔어야지!”
“미, 미안해요. 언니.”
“너 또 딴 생각한 거야?”
“아, 아니요. 다리가 꼬여서 늦었을 뿐이에요.”
입술을 잘근 깨문 라카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마음에 안 들지만, 돌발 상황으로 늦었다는 데 계속 타박할 수는 없었다.
“쳇. 다음부터는 그런 실수하지 마. 범석 님을 쓰러뜨릴 기회가 그리 흔한 나오지는 않는단 말이야.”
“아, 알겠어요.”
칼자루를 고쳐잡은 프리시카가 검을 바짝 세우고는 범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라카미와 이롤리타는 주변을 돌며 그를 둘러싸려 하고 있었다.
‘포위되면 절대 안 돼. 그럼 당한다.’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은 범석이 계속해서 자리를 이동했다. 상대가 셋이나 되기에 3면을 내어주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절대 뒤쪽은 내어줘서는 안 됐다. 등에는 눈이 달리지 않았기에, 상대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오는 프리시카를 쳐다보며 당혹스러운 듯 안면을 구겼다. 기운을 차렸는지 왠지 그 표정이 너무 다부져 보였다.
‘아니. 프리시카는 언제 또 회복한 거야! 이왕 이렇게 된 일. 나를 아예 골로 보내겠다는 뜻인가?’
범석이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정신없어할 그녀만 믿고 이 승부를 받아들였는데, 이러면 정말 곤란했다. 아무리 그라지만 전력을 다해 덤벼오는 S급 검투사 셋과 싸워 승리를 점하기란 무척 어려웠다. 게다가 프리시카는 나머지 둘보다 훨씬 출중한 실력을 지닌 검투사였다.
그때 프리시카가 힘껏 검을 추어올리고는 그를 향해 내달렸다.
“단단히 각오하세요!”
빠르게 횡으로 그어진 검을 창대로 간신히 막은 범석이 그대로 앞으로 밀고 나갔다. 이에 라카미와 이롤리타가 포위를 완성하고 그의 등을 향해 검을 뻗었다.
위기의 순간이지만, 이를 이미 예측했던 범석이 프리시카를 밀치고는 그대로 크게 창을 낮은 궤도로 360도 회전시켰다. 삼면을 동시에 막기 어려우니, 잠시 접근을 차단할 셈이었다.
회전이 멈춰지자 그가 바로 이롤리타를 향해 도약하며 창끝을 뻗었다.
“이얏!”
다급히 검을 뻗어 창을 막으려는 이롤리타. 하지만 이내 창대가 아래로 급격히 휘어지더니 바닥을 치고 다시 허벅지를 향해 치솟아 올랐다.
창.
청명한 소리와 함께 크게 진동하는 검을 양손으로 느낀 이롤리타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자신의 옆을 스치는 범석을 바라봤다. 조금 전 공격은 포위를 빠져나가기 위해 견제 차원으로 던진 것이 확실한데, 당하는 자신의 입장으로서는 너무 위협적이었다.
검을 되돌리는 일이 약간만 늦었어도 자신은 허벅지를 베어 부분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었을 터였다.
이때 라카미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이롤리타에게 향했다. 그녀 탓에 범석이 무사히 포위를 빠져나갈 수 있었던 탓이다.
“이롤리타! 거기서 네가 피하면 어떻게 해!”
“그럼 어떻게 해요! 아니면 제가 당하게 생겼는데요!”
이롤리타의 당당한 변명에 라카미가 얼굴을 붉혔다.
“지금 네가 당하는 게 문제야. 만약 거기서 네가 당할 것을 각오하고 범석 님의 앞길을 막았으면, 우리가 바로 등 뒤로 달려들어 제압했을 거라고! 너 설마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아뿔싸한 이롤리타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워낙 생소한 데다가 다급하게 벌어진 일이라, 잠시 자신의 역할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연합 플레이는 크게 두 가지 역할로 구분되어 있는데, 하나는 주공을 맡으며 상대를 쓰러뜨리는데 전념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방어에 주를 두며 상대의 수를 소모하게 하는 일이었다. 가장 약했던 이롤리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후자. 지금 그녀는 살아남기는 했지만,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언니. 잠시 잊었어요.”
라카미는 더는 추궁하지 않고 입맛만 다셨다. 그녀 역시 이적을 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이롤리타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롤리타의 전 소속팀은 데빌 스프릿즈로, 당시 그녀는 팀 내 제2인자 자리에 올라있었다. 그렇기에 연합 플레이에서 주공 역할만 맡았을 뿐, 지금의 서브 역할은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쉽게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최근 주인을 얻은 터라, 사랑에 간절한 시기였다.
멋진 활약으로 언론의 시선을 끌면 주인도 기뻐할 터이니, 세간에 주목받지 않는 이런 서브 플레이를 내심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알았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정말 집중해야 해. 알겠지?”
“네.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라카미가 멀찌감치 거리를 벌린 범석에게 다가갔다. 2번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내심 안타깝지만, 지금은 이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기회는 언제든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자. 다들 한꺼번에 달려들어!”
병장기의 충돌음이 연거푸 들려왔다. 맹렬한 기세로 공격하는 세 명의 S급 검투사의 위력이 실로 대단했던 터라, 범석은 끊임없는 후퇴로 겨우겨우 생존만 모색할 뿐이었다. 계속되는 치명적인 공세는 그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고 있었다.
‘이거 미치겠군. 프리시카만 믿고 당당하게 저들과 맞붙겠다고 했는데 이런 꼴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야. 이대로 2라운드에서 패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겠어. 첫째로 클라크 감독부터 쏘아댈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프리시카는 어째서 저리 펄펄 날아다니는 거야! 젠장!’
범석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지금까지의 프리시카의 플레이를 볼 때, 아무래도 자신의 정신 공격을 이미 극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처럼 처참하게 밀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는 격돌이 일어날 때마 밀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는 켈로트의 S급 검투사 3인방과 맞서 나갔다.
차창. 차. 창. 깡.
휘몰아치는 회전하는 창끝이 프리시카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예측이라는 했다는 듯이 그녀는 쉽게 검으로 쳐내 막아내고는 연이은 검격으로 쏘아붙였다. 범석은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뒤로 이동하며, 이롤리타의 검격을 창대로 쳐냈다. 뒤이어 동시에 달려는 프리시카와 라카미가 그를 향해 검을 뻗었다.
위기의 순간. 그는 얼굴 앞으로 날아오는 검끝을 확인했지만, 모두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젠장 할!”
창하고 소리와 그의 헬멧 양 귓전으로 두 개의 검날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같은 지점을 노린 그녀들의 검들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궤도가 어긋난 것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범석이 곧바로 창대를 올려 검들을 걷어내고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꼼짝없이 당하는 줄 알았는데?’
어리둥절한 범석의 시선을 뒤로하고 프리시카가 라카미에게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언니가 거기가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먼저 얼굴 쪽을 노렸으면 다른 곳을 파고 들으셨어야죠.”
라카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시기상 자신이 검이 약간 늦었으니, 그녀의 불만은 당연했다. 자신만 연합 플레이를 제대로 했다면 서로의 검이 공중에서 충돌을 빚을 리가 없었고, 이번에 확실히 범석을 잡을 수 있었다.
“아. 미안. 타이밍이 워낙 공교로워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어.”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다음부터는 확실히 해주세요.”
“아, 알았어. 염려하지 마.”
프리시카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심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범석의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려졌다.
원래 프리시카는 동료의 실수에 아주 관대한 편이었다. 근래에 자신과 자키드, 아멜리에의 등장 이후로는 성격이 다소 급해진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이 많은 라카미의 사소한 질책을 나무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전 두 명이 동시에 뿌린 공격은 타이밍 상으로 그다지 차이가 없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가 좀 어려웠다.
‘둘이 팀 내에서 세력다툼을 하나? 실력은 좀 차이가 나지만, 순위도 비슷한데다가 라카미가 나이가 많으니 프리시카를 젖히고 팀의 주도권을 잡으려 할 수도 있잖아.’
하지만 지금의 추론이 납득가지 않는다는 듯 범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프리시카는 이번 월드컵만 마치고 팀을 떠날 아이이고, 라카미는 은퇴할 시기가 가까워진 검투사인지라 특별히 팀 주도권을 두고 싸울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 아까 라카미가 한 타박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프리시카 저거 은근히 뒤끝 있네. 그 상황에서는 충분히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잖아.’
범석이 창끝을 다시 앞으로 내밀며, 켈로트의 S급 검투사 3인방의 공격에 대비했다. 지금은 그녀들의 충돌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지금 위기를 극복하는데 사력을 다하는 편이 나았다.
“자. 간다!”
이번에는 먼저 그가 공격을 가했다. 평범한 식으로는 저 세 명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변화가 심한 창술을 시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단점이 있지만, 이후의 라운드를 생각하다가는 2라운드는 필패였다.
곧 그는 허공을 수놓은 창을 라카미의 안면에 뻗는 척을 하더니 그대로 상체를 뒤틀어 뒤쪽으로 접근해 오는 프리시카와 이롤리타를 향해 휘둘렀다.
휘이잉!
거친 파공음과 함께 길게 그어진 범석의 창이 다시금 라카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돌진하려 했던 그녀는 뜻밖의 공격에 황급히 검을 올려 막아보려 했지만, 창끝조차 스치지 않았다.
범석이 슬며시 창대를 빼 궤적을 변경시킨 것이다. 곧 그의 창은 바닥을 튕기더니 이내 길게 뻗어 나오며 라카미의 복부로 향했다.
간신히 몸을 날려 회피한 라카미가 급히 일어서며 외쳤다.
“얘들아! 조심해! 범석 님의 움직임이 장난이 아…….”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몸을 날렸다. 범석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그대로 창을 내리찍은 것이다. 다행히 이롤리타가 그 사이를 가로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다음 공격에 필시 당했을 터였다.
이롤리타가 먼지를 털 여유도 없이 간신히 자세를 취하는 라카미의 옆에 섰다.
“언니. 아무래도 범석 님이 무리하는 듯 보여. 위력적이기는 하지만, 계속 저런 움직임으로 일관하다가는 금세 지칠 거야.”
날카로운 지적에 라카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창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라면 오래가지 못했다.
“좋아. 그럼 일단 방어에 일관하며 체력이 소모되기를 기다린다.”
그러자 마침 가세한 프리시카가 고개를 흔들어댔다.
“안 돼요. 공격해서 단숨에 쓰러뜨려야 해요.”
“무슨 소리야? 시간만 끌면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고?”
프리시카가 주먹 쥔 손에서 엄지를 펴, 본진을 가리켰다. 자신들 세 명이 빠진 덕에, 지금 켈로트 대표팀은 에이번드의 본진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만약 저 상태에서 난전으로 번졌다가는 순식간에 전멸하게 되었다.
라카미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임무는 본진이 버티는 사이 어떻게든 범석을 끝장내는 일이었다.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임무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겠네. 어쩔 수 없지.”
“그럼 저부터 들어갈 게요. 뒤를 따르며 보조해줘요.”
“알았어. 프리시카. 부탁해.”
슬며시 미소 지은 프리시카가 그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갔다. 이후 라카미도 이롤리타와 보조를 맞추며 그녀를 뒤따랐다.
‘쳇. 또 오는군.’
그녀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잠시 휴식을 취했던 범석이 인상을 찡그리며 창대를 꽉 움켜잡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한 터라, 새롭게 시작된 전투상황이 반가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다시 수세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그가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대로 힘껏 도약했다.
“자. 와라!”
사나운 기세로 날아가는 창끝이 그대로 프리시카의 검에 막혀 뒤틀렸다. 다음 수를 위해 급히 창을 되돌려야 함이 옳았지만, 뜻밖에 범석은 그대로 쭉 밀었다.
비켜나간 방향이 얄궂게도 이롤리타의 허벅지를 향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는 창끝에 스치는 묵직한 느낌을 받고는 자신의 허리를 향해 날아오는 프리시카의 검격을, 창대로 간신히 막아내었다. 그리고 크게 몸을 회전함과 동시에 그녀의 하체를 향해 창을 휘두르고는 뒤로 물러섰다.
약간의 틈을 만들어 방금 얻은 믿기지 않은 성과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 이롤리타를 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분 행동불능 상태였다. 지금 이롤리타는 왼쪽 다리만 쓰지 못할 뿐, 다른 부위의 움직임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쪽 다리를 못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롤리타는 치명적인 손실일 입었다고 할 만했다. 기동성을 잃었으니, 다른 마크맨과의 연동이 불가능한 탓이다.
============================ 작품 후기 ============================
휴. 머리 아파 죽겠네요. 아는 분이 쏜다고 해서 맥주바에 갔다가 싼 양주를 마셨는데, 머리가 아픕니다. 이상하게 전 양주만 먹으면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체질 탓인가요? 아니면 싼 양주만 먹어서 그런가요? ㅠㅠ. 아무래도 내일은 좀 고생할 것 같네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