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71
473화
“이얏!”
짧은 외침과 함께 장창의 궤적이 에우리네에게 다다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왼손에 든 방패로 막고는 안정된 자세에서 일보 전진했다.
반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다. 창은 일정 간격을 유지 못 하면 파워의 강도가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뒤로 물러나 거리를 확보한 범석이 깊게 창을 내지르며 방패와 방패 사이의 공간을 노렸다.
쾅하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에우리네의 방패가 살짝 어긋났다. 중심축에서 벗어난 방패 모서리에 강한 힘이 한 점에 모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금 자세를 바로했다.
‘휴~ 위험했어. 방패에 튕겨서 어긋나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창끝이 몸쪽으로 밀고 들어왔으면 크게 당할 뻔했어.’
간담을 쓸어내린 에우리네가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빠른 이동과 방향전환을 위해, 몸동작에 기교를 가미시킨 것이다. 그럼 범석의 타격점이 많이 흐트러지기에, 그만큼 당할 위험이 감소하였다.
“야. 에우리네. 무리하는 것 아니야?”
“상관없어요. 어차피 5분만 버티면 되는 일이고,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범석이 창을 크게 한 번 휘젓고는 피씩 웃었다. 자신의 말뜻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스텝을 밟으면 자신이 노려야 할 타격점을 쉽게 맞출 수는 없지만, 역으로 공격을 받는 듀얼 실더는 자세가 흐트러질 위험성이 아주 컸다. 방패는 형태가 면이었기에, 공기의 저항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검방 중에서도 스텝을 밟는 자가 있기 있었다. 바로 에우리네 같은 이가 바로 그 부류에 속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술을 연마하고 경험을 쌓았기에, 그런 기술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패 하나와 둘은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방패 하나를 다루는 데에 익숙해져 있더라도, 둘을 착용하게 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그도 듀얼 실더로서의 발전을 위해 스텝기술을 적용해봤지만,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커 그만두었다. 점프로 인한 바람의 저항에서 방패 둘을 컨트롤 하기란 무척 어려웠다.
‘후후. 쟨 뭐야? 전혀 쓸데없는 기술까지 익혔네. 역시 혼자 익힌 것이라, 뭐가 좋고 나쁘고를 모르고 있나? 아무리 권투와 비슷하다지만, 권투 장갑과 방패가 같을 수는 없지.’
범석이 덩달아 에우리네의 스텝에 맞추어 함께 뛰었다. 같은 리듬을 탄다면 타격점을 잡기 쉬웠다.
그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에우리네가 실수하기를 기다렸다. 방패가 출렁거리는 그때가 바로 공격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특별히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티는 잘 나지 않지만, 그녀의 방패들이 묘하게 뒤틀리는 모습이 계속 보이고 있었던 탓이다.
“에우리네. 대단한데. 우리 얘들은 몇 년간 듀얼 실더로 있음에도 익히지 못한 스텝까지 밟다니 말이야.”
“후후. 이게 뭐 어렵다고요.”
“아니 생각과 달리 듀얼 실더가 스텝을 밟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역시나 S급 검투사답구나. 하하하.”
조롱기가 섞여 있었지만 에우리네는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범석을 잘 막아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1분여만 흐르면 그녀는 무승부를 기록하며 범석을 승부대결에서 제외시킬 수 있었다.
“혹시 지금 별로 시간이 없지 않나요? 잔말 말고 오시기나 하세요.”
“하긴 그렇겠네. 자. 그럼 간다!”
범석이 장창을 한 손에 쥔 채로, 나머지 한 손을 허리에 착용한 카타나에 칼자루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몇 번의 도움 발을 밟은 후, 맹렬한 기세로 에우리네에게 달려들었다.
거친 파공음을 내며 휘갈겨지는 장창이 어이없게도 그녀의 한참 머리 위로 스쳐 갔다. 마치 그 모습이 범석이 장창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모습이라, 에우리네는 당황한 빛을 역력히 흘려댔다. 아무리 한 손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런 황당한 공격을 해올 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허공에서 맴돌던 장창이 반원날을 날카롭게 세우며 상하로 그어졌다. 역시나 했던 그녀는 급히 스텝의 박자를 높이며 한쪽 방패를 위로 추어올렸다. 아무래도 그가 노리는 바가 끌어치기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여기서 반원날에 걸려 방패가 떨어져 나가거나 크게 뒤틀어지면 몸 일부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 잔수에는 당하지 않아요!”
당당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에우리네가 순간 표정을 경직시켰다. 장창이 아무런 타격감 없이 스치기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창을 되돌리는 동작을 반동 삼아 카타나를 발검하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남은 하나의 방패로 크게 꺾어 범석의 발검을 막아내었다.
작은 소리의 둔탁음과 함께 다시금 뻗어오는 창끝. 이번 발검도 허수라고 판단한 그녀는 높이든 방패를 내렸지만, 창끝은 아무런 타격감 없이 옆으로 흐르더니 방금 발검을 막은 방패의 모서리에 반원날을 걸고 있었다.
이윽고 힘껏 당겨지는 창과 함께 휘청거리는 에우리네가 한쪽 방패를 흐트러뜨렸다. 다행히 떨구는 것은 모면했지만, 몸의 일부가 열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범석은 그대로 그곳을 공격하기보다는 발길질로 안정된 자세의 방패를 걷어찼다.
그의 목적은 에우리네를 쓰러뜨리는 것이지, 부분 행동불능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러면 좋기는 하지만, 지금은 확실하지도 않은 노림수에 허비할 시간은 없었다.
범석이 급히 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나는 에우리네를 쫓았다. 여전히 그녀는 스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아직은 가능성이 있었다.
“햐앗!”
쭉 뻗는 창끝이 에우리네의 목 언저리로 향했다. 그녀는 다시금 방패를 추스르며 창이 이동하는 궤적에 가져다 대었다.
쿵하는 소리와 거칠게 밀려 올려지는 방패. 그녀는 뒤이어 날아오는 카타나를 막기 위해 나머지 방패를 급히 휘저었다. 그때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방패가 크게 흔들렸다.
스텝을 밟는 와중에 급히 방패를 되돌리느라 미쳐 공기의 저항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약간의 타이밍 손실을 보았고, 그의 카타나는 방패의 모서리를 젖히고 그대로 에우리네의 좌측 옆구리를 타격했다.
“경기 종료!”
심판이 알리는 경기 종료 신호와 함께 범석이 긴장 어린 시선으로 전광판 시계를 바라봤다. 초침이 0을 가리키고 있기에, 이번 타격이 무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판정에 파리해진 얼굴에 혈기가 돌았다.
“오범석 승!”
잠깐의 경직에서 풀린 에우리네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범석을 바라봤다.
“아, 아니. 어떻게 정면으로 제 듀얼 실드를 뚫을 수 있었던 거죠? 대련 시뮬레이션에서는 분명히 제가 5분 이상을 버텼다고요.”
대련 시뮬레이션은 훈련 장비 중 하나로, 상대의 기술과 동작을 분석해 만들어진 아바타와 가상의 대결을 펼치는 장비였다. 많은 데이터와 경기자료가 입력되기에 그 신뢰성은 무척 뛰어났다. 에우리네는 여기서 듀얼 실드로 범석과 싸워 열이면 아홉을 5분 이상을 버텼다.
갓즈나이츠도 몇몇 갖추고 있기에, 범석도 대련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글쎄다. 혹시 내가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동작을 선보여서가 아닐까?”
“어떻게요?”
“간단하지. 나는 네 약점을 파악했고, 그의 걸맞은 행동을 취했다. 당연히 다른 때와 전투방식이 다르니, 대련 시뮬레이션이 파악할 수는 없겠지. 대련 시뮬레이션은 상대의 머릿속까지는 담아낼 수는 없거든.”
이는 에우리네도 알고 있는 바이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 약점이라는 것이 뭐죠?”
“으음. 그건 말해줄 수 없지. 정 궁금하면 네 스스로 알아봐라. 후후.”
범석이 아무런 언질 없이 뒤돌아섰다. 약점을 말해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대답하기가 싫었다. 적을 성장시켜봐야 그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추호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사실 오늘 대련으로 범석은 앞으로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에우리네라지만, 홀로 자신을 5분간 완벽히 막았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었다.
이제 자신을 마크하기 위해 각 팀에서 듀얼 실더를 전문적으로 양성할 터, 여기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한층 더 어려운 상황에서 마크맨들과 싸워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이거 아무래도 팀 전력을 더 상승시켜야겠어. 역시 프리시카를 영입하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하나?’
듀얼 실더라고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두 개의 방패로 이동속도가 느리다는 점과 공격력이 극악할 정도로 약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마크맨들은 프리롤을 뛰는 자신을 쉽게 쫓을 수는 없었고, 본진을 기습할 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이 등을 돌리는 찰나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지만, 공격할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따로 공격이 가능한 마크맨을 추가로 하는 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범석은 항시 홀로 2명 이상의 마크맨을 상대했기에, 그 가능성은 더욱 컸다. 게다가 방패에 뾰족한 모를 달아둠으로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자신 이외의 전력을 상승시키면 별문제가 없었다. 지금 범석이 우려하는 팀은 리얼히어로즈나 에이션트 워리어즈등과 같은 강팀. 다른 중위권 이하의 팀들은 자신에게 2명을 배치해버리면 본진 대 본진에서 밀려 결국 무너져내렸다. 그렇기에 범석은 프리시카가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만 있다면 현재의 모자란 전력으로도, 하나 모자란 강팀 본진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후후. 에우리네. 아주 잘했다.”
왕이 힘없이 돌아오는 에우리네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간발의 차이로 범석을 쓰러뜨리는 일에 실패했지만, 그만하면 아주 잘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에우리네와 상대한 범석은 5분여 동안 맹공을 퍼부었기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을 터였다. 이제 자신과 해밀턴이 잘만 해주면 자키드라도 한 번 해볼 만했다.
에우리네가 고개를 돌려 범석을 바라봤다.
“그래도 아쉬워요. 제가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으면, 확실히 저희 팀의 승리인데요.”
“괜찮다. 그 정도라면 네 할 일은 한 거다. 그리고 사실 난 경기 막판. 속으로 약간 걱정 좀 했다.
네가 저놈을 쓰러뜨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이다. 그동안 난 두 번 정도 갓즈나이츠와 경기를 벌였지만, 저놈과 1대 1로 싸워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놈이 대단하다는 얘기만 들었지,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녔는지 정확히 짐작하지는 못한다.
”
“그래요? 혹시 팀 내의 대련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없나요?”
“후후. 있긴 있지. 그런데 난 그걸로는 상대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인간과 디지털화된 데이터가 같을 수는 없는 법이거든. 특히나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더 그렇지.”
같은 생각인지 에우리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도 대련 시뮬레이션 시스템 속의 범석과 맞상대해 여러 번 성공적인 결과를 맛보았지만, 오늘 전혀 다른 결과가 벌어졌다. 역시 상대는 직접 검을 맞대보아야 실력을 알 수 있었다.
“하긴 그렇겠네요. 그럼 무운을 빌겠어요. 왕님이 저분을 이기면 우리의 승리니까요.”
그 말에 왕이 머리를 긁으며 대련의 장으로 걸어나갔다. 아무리 싸워본 적이 없지만, 그도 눈이라는 것을 달고 살았다. 나중에 신체적으로 모두 성장한다면 모르지만, 지금의 능력으로는 그를 이길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검도 협회 원로로써 너무 약한 면모를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신입 드래프트를 통해 검투계에 오기까지 검투사들을 겉만 뻔지르르한 맹물로 보고 있었다.
바로 힘만 센 초보 검사들이 그가 본 검투사들의 참모습이었다. 당연히 범석에게 질 것 같다는 사실을 죽어도 다른 검투사들 앞에서 인정하기 싫었다.
“뭐. 가능하다면 그리해보지.”
왕이 중앙에 서자, 범석이 이번에도 창을 집어들었다. 검으로 상대해볼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번 승부대결은 월드컵 우승을 결정짓는 자리였고, 왕은 전형적인 검사였다. 분명히 창을 상대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을 터이니, 유리할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터였다.
“왕님. 오늘 저와 처음 싸워보시죠?”
그가 들고 나온 창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왕이 말했다.
“아니 검사라는 놈이 창이 웬 말이냐? 대체 널 가르친 도장이 어디야?”
“저 검투사인데요?”
“네 프로필에 과거 검도 도장에 다녔다는 내용을 봤다. 당연히 창술 따위를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후후. 제가 다닌 도장이 정통이 아닌 좀 가라라서, 별것 다 가르쳐주더라고요.”
왕이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댔다. 확실히 일부 도장에서는 다양한 무구를 가르치기는 했다. 하지만 다양한 만큼 깊이가 없는 법. 어떻게 범석과 같은 자를 길러 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협회의 최고 어르신이자 감독인 렘란트 씨의 말로는 범석의 무예는 자신들보다 훨씬 깊다고 했다.
“그런 놈이 잘도 여기까지 성장했구나.”
“제가 워낙 천재라서요. 하하하.”
“하지만 정신 수양은 덜 되었구나. 그런 말은 올바른 정신의 소유자라면 쉽게 내뱉을 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범석으로서는 그 말 밖에 자신의 처지를 변명할 길이 없었다.
“후후후. 어떻게 합니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무능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데요. 그런 식으로 남을 깎아내리기 보다는, 그냥 제가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죠.”
왕의 이마에 순간 힘줄이 굵어졌지만, 이내 안정을 취했다. 그가 도발하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놈. 입담 하나는 걸구나.”
“원래 제가 그렇습니다.”
그 사이 심판이 이들에게 차례로 눈치를 주었다. 잔말 말고 시합 준비나 하라는 것이다. 시합을 재개할 할 때가 거의 다되어 가는 탓에, 잡담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심판이 잠시 시계를 확인하다가 바로 경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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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 이브날입니다. 모두들 즐거운 한가위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