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73
475화
“오냐. 오거라!”
해밀턴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범석이 팔을 크게 휘저었다. 곧 해밀턴의 안면으로 빠르게 날아드는 창대. 그는 공격방향 쪽으로 이동하며 팔뚝을 이용해 그것을 쳐냈다.
비록 위험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창대 뒤에 모가 있기에 긁는 동작을 가미하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차라리 몸을 부딪쳐 미리 막는 편이 안정적인 플레이를 유지하는 길이었다.
범석이 바닥에 처박힌 창대를 수습하고는 반월날 부위로 힘껏 해밀턴을 향해 내리쳤다.
“야앗!”
검을 맞대어 창을 우측으로 젖혀버린 해밀턴이 측면으로 빠지며 범석과의 거리를 벌렸다. 충분히 역공을 펼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목적은 엄연히 승부를 오랫동안 끌고 가는 일이었다. 왕과 같은 꼴을 모면하려면, 될 수 있으면 공격을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그는 범석이 따라붙자 계속해서 물러서며 간격을 유지했다.
창. 차창. 캉. 창.
여러 번의 타격음이 들려온 후, 범석이 스스로 물러나 심호흡을 내쉬었다. 이 상태에서 더 압박해 들어갔다가는 체력 손상이 극심했던 탓이다.
게다가 해밀턴은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었기에, 들어간다고 해도 효과적인 타격을 얻어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휴식은 바로 깨어졌다. 낌새를 눈치챈 해밀턴이 바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던 탓이다.
인상을 찡그린 범석이 해밀턴의 검격을 창대로 막아내고는 맹렬한 기세로 공세를 가했다.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가장 적당한 기회가 바로 공격할 때였다. 그러나 반격이 시작되자 해밀턴은 바로 수세적인 자세로 바뀌고는 그의 창격을 조심스럽게 쳐내 가고 있었다.
‘젠장 할! 이 영감탱이. 아예 작정하고 내 체력을 소모하게 하려고 하네. 전혀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아.’
해밀턴의 플레이는 아주 지능적이었다. 방어로 일관하는 듯 보이는 하지만, 범석이 완급을 조절하려고 하면 바로 공격을 시작해 템포를 완전히 엉키게 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라면 범석도 얼마 안 가 크게 지치게 되었다.
‘역시 연륜은 무시할 수 없어. 정말 단체전 전술만 완벽히 소화해 낼 수 있다면 무서운 적으로 돌변할 거야.’
해밀턴과 왕이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팀플레이에서 극히 약한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범석이야 과거 다른 게임의 플레이를 통해 파티나 레이드를 경험했고, 자키드는 렘란트가 아예 검투사로 만들 작정을 하고 키웠기에 초반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들은 얼떨결에 문화체육부의 사업에 참여해서인지 단체전이 뭔지 경험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와중에도 3~4년 만에 W2급 검투사로 성장하며 유명 월드리그 팀 주전을 꿰찼다.
가히 대단한 자들로 계속 검투를 경험하다 보면 갓즈나이츠로서는 절대 무시 못할 존재로 거듭날 것이 확실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머리가 굳은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큰 단점은 머리만큼은 여전히 노쇠해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노련함과 경륜이 있지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습득이 무척 느리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단체전에 대한 깊은 묘리를 익힐 수 없을 터, 아직은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가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해밀턴의 미간을 향해 기습적으로 창끝을 먹였다.
“후후후. 고놈. 정말 팔팔하구나.”
간신히 상체를 젖혀 피한 해밀턴이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범석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직접 맞대응하기보다는 타격점을 흐트러뜨려 될 수 있으면 회피해볼 속셈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창격을 경험한 결과, 쉬이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첫째로 그의 공격에서 막는 과정에서 나오는 데미지로, 손목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로로 휘두르는 창격에는 딱히 충격을 완화할 방도가 없었다. 점프로 피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그랬다가는 범석의 밥이 되기 십상이었다.
“햐앗!”
연이어 가로로 휘둘리는 창대를 검으로 막은 해밀턴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그를 상대해보려고 했지만,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뒤떨어지는 신체적 능력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놈의 창술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 사력을 다하지 않은 듯 보이데, 내가 이리 일방적으로 밀리다니 말이야. 이거 5분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군.’
해밀턴이 우려의 눈빛으로 범석을 주시했다. 엄밀히 따져본 결과 그의 기술은 자신을 능가했다.
방어에 주를 두고 있기에 버티기는 하지만, 실제 승부를 가리는 대결이었다면 보나 마나 패배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범석이 지금 사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의 창술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는데, 하나는 일방 창사들이 사용하는 찌르기와 휘젓기등의 일반적인 기술로 일관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봉선창법으로 알려진 기교 넘치고 현란한 창술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선보인 전투 법은 전자. 후자에 가까운 창술은 티클 만치도 선보이지 않았다.
‘하긴 체력소모가 극심하니 봉선창법을 사용하기란 어렵겠지. 그래도 아쉬운 데, 놈이 전력을 다한 기술을 막아보고 싶었는데…….’
봉선창법은 최대 단점은 시전을 하는데, 체력소모가 심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범석은 다른 리그 경기를 펼치는 가운데에도 힘겨운 상황에 봉착하지 않는다면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키드를 앞둔 지금 자신을 상대로 사용하기란 무척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는 사용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그는 자키드와 상대할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밀턴이 검을 중단에 세우고 목청껏 소리쳤다.
“이놈! 빨리 와랏! 시간이 얼마 없다!”
범석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시간이 없다는 소리에 잠시 전광판 시계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2분 남짓 남은 시간을 보고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그다지 촉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유롭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대련 시간 중 반 이상이 지난 와중에도 범석은 제대로 해밀턴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이대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긴 한숨을 몰아쉰 범석이 창대를 수평으로 내려 허리에 걸었다. 바로 봉선창법의 기수식 자세 중 하나였다. 벌써 사용하기에는 이른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해밀턴을 쓰러뜨리지 않고는 자키드에게 나아갈 수 없었다.
“좋습니다. 이제 갈 테니 각오하십시오.”
마른 침을 꿀꺽 삼킨 해밀턴이 중단에 위치한 검을 살짝 좌측으로 꺾었다. 봉선창법이 펼쳐질 때 가장 처음 가격되는 곳이 바로 왼쪽 안면 부위였다.
“오냐! 와랏!”
허리에서부터 회전을 시작한 범석이 창끝이 그대로 해밀턴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다. 이미 예상했던 바였기에 해밀턴이 여유롭게 막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이제 퉁겨져 나온 방향이 어디인가와 범석의 회전 자세가 어떤가에 따라 공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이윽고 하체를 향해 쭉 뻗어 올라오는 창대를 확인한 해밀턴이 무릎으로 막고는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그렇지만 범석의 창끝은 열추적 장치라도 단 양 바로 따라붙으며 그의 목 언저리를 노리고 있었다.
“이익!”
간신히 검을 휘저어 막아낸 해밀턴이 꿈틀거리며 뒤틀린 창끝을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복부를 향할 줄 알았는데, 그의 몸이 회전함과 동기에 그대로 방향을 꺾어 발등을 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감탄할 시간도 없던 그는 황급히 발을 빼며 옆으로 몸을 기울이며 옆으로 한 바퀴 회전했다.
하지만 공격이 이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바닥을 퉁긴 창끝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금 그의 안면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치겠군!”
상체를 크게 젖히며 회피한 해밀턴이 기겁하며 허리를 뒤틀었다. 창끝이 시선 바로 앞으로 스쳐 지나가기가 무섭게 위로 치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즉 창대 공격이 하체 쪽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겨우겨우 검으로 막아냈지만, 이내 경악한 듯 눈을 부릅떴다. 손으로 전해지는 창대의 힘이 아주 미약했던 탓이다.
범석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이번 공격은 한 손으로 이루어졌음을 뜻했고, 나머지 한 손이 비어있음을 가리켰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리자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범석은 나머지 한 손으로 허리에 꽂힌 카타나를 발도하고 있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안면을 타격 당한 해밀턴이 바닥을 구르며 범석을 바라봤다. 정말 이 정도의 검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창으로 자신의 시선을 빼앗은 후, 실제 결정타는 보이지 않는 사각을 통해 날린 발도술이었다.
‘크크크. 렘란드 님이 최강의 실전 검사라고 하더니, 하등 틀리지가 않아. 창피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수에 당했어.’
땅에 누운 해밀턴이 밝은 웃음을 지으면 청명한 하늘을 바라봤다. 검도계의 큰 어르신인 렘란트 이상의 괴물이 하잘것없는 검투계에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런 자와 리그경기를 통해 계속 겨룬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를 스치듯 지나치는 범석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체력적인 소모도 걱정되지만, 이번 수는 자키드에게 사용할 필살기 중 하나를 소모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지금 이렇듯 선보였으니, 그에게 절대 통하지 않을 터였다.
“와아아! 오범석 최고다! 이제 하나 남았다! 반드시 이겨라!”
“그래! 자키드는 전에도 이겼잖아! 방심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
팬들의 응원에 범석이 착잡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말은 쉽지만, 자키드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행히 선봉인 아스라와 중견인 왕이 허튼짓을 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소모된 체력은 적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 자키드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이전의 패배 직후 절치부심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대비를 철저히 하고 나왔을 터였다.
잠시 후 잠시 이어진 휴식 시간이 끝이 나자 심판이 범석과 자키드를 호명했다.
“오 범석 검투사. 자키드 검투사. 나오세요.”
대련 장 중앙에 자리에 범석이 자키드를 올려다보며 한껏 미소를 지었다.
“이거 자키드 씨. 오랜만에 붙네요.”
“후후. 그래. 그동안 네놈과 붙기를 기원하며, 이 급한 성격에 나도 많이 참아왔다. 오늘 네놈을 이겨 반드시 최강의 자리를 되찾아올 것이다.”
“글쎄요? 지금의 저를 이긴다고 자키드 씨가 진정한 승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좀 지쳤는데요.”
“그건 네 잘못이지 나를 탓할 것이 못 된다. 그깟 조무래기 넷을 상대하면서 체력을 낭비했다는 자체가, 네가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다. 나같으면 굳은 몸을 풀 기회로 삼으며, 더욱 유리한 상황에서 너를 맞이했을 거다.”
입맛을 다신 범석이 패배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해밀턴과 왕을 쳐다봤다.
“해밀턴님! 왕님! 자키드 씨가 여러분을 조무래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바로 자키드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두 어르신은 살기 어린 눈으로 뚫어지리라 노려보고 있었다.
“자키드. 이놈! 나중에 두고 보자.”
“이놈이 뭐 어쩌고 어째! 하여간 너 오늘 제대로 해라! 패하면 돌아가서 단단히 혼쭐이 날 테니까 그리 알고!”
입술을 잘근 깨문 자키드가 부릅뜬 눈으로 범석을 쳐다봤다.
“야! 너 정말 이러기야! 그런 걸 고자질하면 어떻게 해!”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럽니까? 가서 혼나면 되죠.”
“아니 이 자식이! 하여간 너 오늘 단단히 각오해라. 절대 봐주질 않을 테니까!”
범석이 바로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글쎄요. 특별히 각오할 필요는 없는 듯 보이는데요.”
“뭐? 그럼 내가 만만하다는 뜻이냐!”
“아니 그렇지는 않고요. 상황이 좀 그렇다는 뜻이죠.”
“무슨 상황?”
“지금 저 뒤로는 넷이나 남았지만, 자키드 씨는 혼자지 않습니까?”
자키드가 피씩 웃으며 멀찌감치에서 앉아있는 티엘라를 비롯한 에이번드를 대표 검투사를 바라봤다. 뛰어난 검투사들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이길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후후. 쟤들이 날 이길 것 같으냐?”
“그렇지는 않죠.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사실은 자키드 씨와 제가 비긴다면, 이번 대회의 우승은 우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라트 쪽의 검투사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너. 설마 일부로 무승부를 노린다는 것은 아니겠지?”
“왜요? 여기서 비기면 저희가 월드컵에서 우승합니다. 팬들의 기원을 위해서 못할 것도 없죠.”
자키드가 두 눈을 부라렸다.
“좋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 보자. 나는 무승부를 원한다고 무승부를 할 수 있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글쎄요. 그건 보면 알겠죠.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범석이 양손으로 창대를 굳세게 잡았다. 심판의 손이 올라감을 보고 곧 경기가 시작됨을 알았던 탓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결이 시작되자, 바로 뒤로 물러나며 자키드와의 간격을 벌렸다. 일단 시간을 벌어볼 심산이었다.
“이놈이! 단단히 각오해라!”
육중한 그의 몸에서 나오는 검격이 살벌한 파공음을 내며 범석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역시나 현역 최강의 신체를 지닌 그답다고 생각한 범석이 창대를 막음과 동시에 측면으로 회피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충분히 맞대응할 수도 있지만, 굳이 불리함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하하하. 그런 수에는 절대 안 당합니다.”
연이은 강력한 공격 속에 범석이 조롱기 섞인 언사를 던지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자키드를 잡기 위해서는 그의 급한 성정을 밖으로 끄집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범석은 이번 승부를 절대 무승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에 작은 오점이라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4승 1무와 5전승이 같을 수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아. 조카들의 융단 폭격이 끝났습니다. 역시나 지갑이 황폐화 됐군요. 휴~ 그럼 모두들 얼마남지 않은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