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77
479화
루카스 회장이 특사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은 범석은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사태파악에 나섰다. 그자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로 극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방심하고 있다가는 자칫 또다시 죽음의 위기에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젠장 할! 감옥에 있다고 너무 안일했어. 특사로 빠져나올 줄이야……. 휴~.’
범석이 잠시 루카스회장의 재판 당일을 떠올렸다. 당시 그의 변호인단은 살인미수죄를 극구 부정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부서진 철문이 그 계기가 되었다. 워낙 튼튼하게 제작된 문이라, 망가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련 전문가들도 줄줄이 나와 루카스 회장이 의도하지 않았다면 부서질 문이 아니라고 증언을 하자, 살인미수보다는 피고가 주장한 단순 협박죄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이에 검찰 측은 뒤늦게 등장한 무장 괴한들을 예로 극구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도 부정이 되었다. 빠져나온 범석이 루카스 회장을 죽이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흑사회의 경호원을 불렀다고 변명을 토로한 것이다.
당연히 불법 총기 무장에 대해서만 경호원들이 뒤집어쓰고 루카스 회장은 여기에 대해서도 무혐의로 결론지어졌다. 아니 회장을 죽이려 했던 일로 역으로 범석이 재판에 서게 될지 모르는 사태로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서로 합의를 보는 결과까지 낳았다.
하지만 당시 흑사회는 몰락 중이었고, 여러 거대 세력을 등에 업은 범석의 힘은 강했다. 덕분에 간신히 판관들을 설득하게 했고, 살인미수로 루카스 회장에게 2년 형을 선고받게 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때 합의를 보지 말았어야 했어. 덕분에 너무 쉽게 풀려났잖아.’
살인미수죄는 합의 여하에 따라 형량 차이가 아주 컸다. 그래서 범석도 주저했지만, 휘하 엘프들이 바짓자락 잡고 울고 다른 연인들이 계속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허락했다. 그녀들로서는 주인과 연인이 재판석에 서는 것을 반길 수가 없었다.
범석이 살기 어린 눈매를 하고는 루카스 회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어쩌면 잘된 일일지 몰라. 나를 죽이려 했는데, 편히 지내게 할 수 없지.”
범석이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루카스 회장이 갇힌 곳이 제법 시설 좋은 감옥이기 때문이었다. 아늑하고 널따란 실내 공간에 품격있는 인테리어. 여기에 품질 좋은 식사에, 원한다면 여러 실내 레저활동도 가능했다.
모두가 기업형 민자 감옥의 폐해로 범석으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외부로 나가지만 못할 뿐이지, 이건 거의 호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에 마가렛에게 그가 경관 감독하에 인터넷을 통한 체팅과 게임까지 즐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분해서 집무실 책상을 빠개버렸다.
‘좋다. 루카스 회장. 나오게 된 것을 후회해주게 해주마.’
범석이 천천히 루카스 회장을 엿 먹일 방법을 떠올렸다. 첫 번째 방법은 수작을 부려 다시 감방에 처넣는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있는 양반이라 다시 편안한 감옥으로 갈 테니, 다소 꺼려졌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그자의 모든 재산을 훌러덩 날려버리는 일이었다. 지금쯤 예전의 지위를 되찾으려 갖은 애를 쓸 터, 똑똑한 사기꾼 한 놈만 붙이면 제법 재산을 축낼 수 있었다.
물론 회장이 제법 머리가 비상하고 사회경험이 많은 인사라 쉽게 당할 리가 만무하겠지만, 자신이 측면에서 지원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임 직했다.
세 번째는 그가 가장 구미를 당겨 하는 방법으로 바로 세상과 하직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자신도 당했기에, 명분도 있었다. 다만 그와 여전히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자칫 형사기관에서 자신을 의심하고 수사를 해오면 여러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다.
“일단 이 일은 좀 더 생각해 봐야겠군. 당장 정하자니 고민이 돼.”
그때 범석의 품 안에서 호출 벨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꿀꿀해 받고 싶지 않았지만, 중요한 일일지 모르니 일단 전자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간이 화면에 뜨는 번호를 보자 그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가장 받고 싶지 않은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데레사 요것이 또 왜! 정말 미치겠네!’
의도는 보지 않아도 빤했다. 루카스 회장의 출옥과 함께 왔으니, 자신을 어찌해보려는 속셈이 분명해 보였다.
바보가 아니라면 그녀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내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범석은 잠시 꾸물거리기만 했을 뿐, 결국에는 전화를 받았다. 계속 피해 다니는 것보다는 정면에서 부딪혀 루카스 회장의 수작을 깨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범석은 데레사에게 크게 한 방 먹일 패를 여러 장 가지고 있었다.
“여어. 이거 누구십니까? 데레사 양이 아닙니까?”
– 오랜만이에요. 범석씨. 그간 잘 지냈죠?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 최근에 연락이 없기에, 궁금해서요.
범석이 겸연쩍은 표정을 연기하며 말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근래에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했습니다. 월드컵에다 뭐다 정말 정신이 없었거든요.”
– 아. 그렇군요. 그럼 지금은 시간이 있으시겠네요.
“아. 몇몇 남은 일이 있기는 하지만, 네. 그렇습니다.”
– 그럼 혹시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지금이요? 거의 저녁때가 다 되어 가는데요. 준비하고 그쪽으로 가고 하면 꽤 시간이 걸릴 텐데요. 그리고 설령 가더라도 리뉴 시티는 지금 새벽녘일 테고요.”
– 괜찮아요. 저 지금 리마시티에 와 있어요.
범석이 입맛을 다셨다. 이거 졸지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녀를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시 따라다니는 MR보안 직원이 있을 테니, 꺼릴 것도 없었다. 연락만 해보면 그녀가 뭘 꾸미고 있는지 대충을 알 수 있었다.
“뭐. 그러도록 하죠. 곧 나가겠습니다.”
– 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통신을 끊은 범석이 마가렛에게 연락을 넣어 잠시 데레사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그다지 수상쩍은 일을 벌이지 않고 있기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이에 그가 곧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리마시티의 로메오 거리에 도착한 범석이 만남에 광장 앞에 서 있는 데레사를 확인하고는 급히 걸어갔다. 반갑지는 않지만,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반가운 척을 해야 했다.
“이야. 데레사 양. 오늘 참 예쁘십니다.”
지금의 칭찬은 예의가 아니었다. 오늘 데레사는 정말 예뻤다. 수수한 레이스 달린 하얀 원피스에, 붉은 구두. 출렁거리는 윤기 있는 흑발까지. 그리고 어찌나 화장을 예술적으로 했는지, 마치 미의 여신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데레사가 전혀 겸손을 보이지 않으며 대답했다.
“원래 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인은 아름다워지는 법이니까요.”
‘이것 봐라. 완전히 직격타를 날리네. 아주 작정을 했군.’
순간 움찔한 범석이 급히 표정을 수습하고 밝게 웃었다.
“하하하. 데레사 양의 사랑을 받다니, 정말 그 남자가 누군지 참으로 부럽군요.”
“부러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범석 씨도 잘 아시잖아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남성인지 말이에요.”
그녀가 사랑하는 남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지칭하는 자가 누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전에 그녀는 범석에게 애정을 극구 표시한 적이 있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저군요.”
“네. 잘 아시네요. 바로 범석 씨. 당신이에요.”
“이거 너무 행복해서 말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저희가 마지막에 만날 날 실망하고 떠나셔서 살짝 겁이 났거든요.”
데레사가 살며시 입가를 떨었다. 그날 느낀 감정은 실망이 아닌 분노였다. 자신에게 이상한 음식은 먹임은 물론 개고기까지 먹으러 가자니 용서가 안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범석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요? 그래서 연락이 없으셨군요. 사실 그날 정말 몸이 안 좋아서 갔을 뿐이에요. 그리니 절대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 착각이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하.”
데레사가 잠시 시간을 확인하더니, 범석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식사 전이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제가 좋은 맛집을 찾아냈어요.”
“오. 그렇습니까? 어딘데요?”
“여기서 좀 걸어야 해요. 골목길에 있는 식당인데, 제법 보신탕을 잘 끓인대요.”
범석이 순간 얼굴을 경직시켰다. 전에 그녀에게 보신탕을 먹으러 가자고 한 것은 단순히 쫓아내려는 수작일 뿐, 그 자신은 절대 먹지 못했다. 현실에서 아버지의 뱃속에 들어간 자신의 애견이 자꾸 떠올라, 보신탕이라면 냄새도 맡지 못했다.
“그, 그게……. 얼마 전에 끊었습니다.”
“아니 왜요?”
“아무래도 데레사 양이 꺼리는 듯싶어서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 가지 음식쯤 못 끊겠습니까?”
“그래요? 고마우신 말씀이지만, 전 관계없는데요. 자. 가시죠.”
데레사가 팔뚝을 잡고 끌자, 범석이 다리로 굳게 바닥을 지지했다. 일주일을 굶는다면 모르겠지만, 도저히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 하하하. 다음에 가면 안 될까요? 먹는 계절이 아니라서요.”
“아니 그럴리가요? 알아보니 지금 같은 여름이 제철이라고 하던데요. 설마 아닌가요?”
땀이 삐질 흐른 범석이 이마를 훔쳤다. 별걸 다 알아보고 온 그녀였다. 그런 보신 문화는 일부 동양계 출신만 알고 있었다.
“그런가요? 참 특이한 일이군요. 탕이라면 뜨거울 텐데, 여름에 먹다니요……. 하하하. 그냥 저희 근처 중국집으로 가시죠. 제가 근처에 아주 요리를 잘하는 집이 알고 있습니다.”
데레사가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이 정도까지 말했으니, 눈치를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절대 보신탕을 먹지 못했다.
‘그럼 내가 이 작자에게 속은 거야? 참 나 어이가 없어서…….’
분하기는 했지만, 데레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끌고 가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는 범석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할 입장이었다. 그리고 데레사도 꺼려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요? 그럼 그쪽으로 가시죠.”
“하하하. 네. 감사합니다.”
“뭐. 감사라고 할 것까지 있나요……. 자 안내해 주세요.”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린 범석이 그녀와 함께 장림원으로 향했다. 이 근처에 사람을 만날 일이 있으면 자주 애용하는 중국집이었다. 곧 그곳에 도착한 그는 작은 룸을 빌어 데레사와 함께 들어갔다. 그리고 볶은 밥과 함께 깐쑈새우를 시켜 간단한 만찬을 즐겼다.
“참. 맛있네요. 아주 즐거운 식사였어요.”
“하하하. 다행입니다. 자. 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요?”
“글쎄요? 범석 씨가 원하는 대로 가세요. 전 범석 씨와 함께 아무 곳이나 상관없어요.”
“하하하. 그럴 수야 있나요. 숙녀분이 원하는 곳으로 가야죠.”
“그래요? 그럼 범석 씨와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따라오시겠어요?”
웃고는 있지만, 날카로운 눈매를 짓는 데레사로 범석이 불안감을 느꼈다. 이거 괜히 양보했나 후회가 될 정도였다. 자칫 이상한 덫으로 끌고 가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단단히 준비해 가지고 왔다. 가방에 호신용 무구를 챙겼음은 물론, 독약을 감별하는 센서가 달린 젓가락 형태의 장치도 준비했다. 그래서 아까도 중국집에서 먹는 음식마다 일일이 찔러보고 확인했다. 게다가 자신들 뒤에는 MR보안 직원이 알게 모르게 따라붙고 있었다.
“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자. 얼마든지요.”
“쉽게 허락해주셔서 다행이네요. 정말 저로서는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하하하. 아니. 어디로 가시는데 용기까지 언급됩니까? 이거 겁이 나는데요.”
“가보시면 알아요. 자. 가시죠.”
그녀의 안내로 걸음을 옮기던 범석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바로 레인보우 호텔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텃밭이나 다름없기에, 안심되는 장소였지만, 데레사의 의도가 사뭇 두려웠다.
‘설마. 정말로?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에이 아니겠지.’
하지만 그의 부정은 곧 부정되었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목적지가 역시나 레인보우 호텔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방금 마쳤으니, 또 식사하지 않은 터, 그 의도는 분명했다.
“호텔 커피. 정말 괜찮죠. 자. 들어가시죠.”
호텔로 들어선 데레사가 식당가로 향하지 않고, 곧장 객실을 예약하는 카운터로 향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에 범석은 주저가 되었지만, 선뜻 따라나섰다.
만약 데레사가 무언가를 노리고 자신과 밤을 보낼 생각이라면, 역으로 크게 옭아맬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기에 능욕루트는 아닐 터, 만족만 시켜주면 반드시 호감도가 상승하게 되었다.
너무 낮아 좀 시일이 걸리겠지만, 완벽히만 휘어잡으면 그녀는 자신의 손에서 놀아나게 되었다.
‘후후. 루카스 회장 잘못 생각했어. 덫을 놓으려면 제대로 놔야지.’
희미하게 웃은 범석은 데레사의 뒤에 섰다. 그녀는 지금 방 예약을 하는 중이었다.
“70134호실요?”
“네. 손님.”
엘프 카운터 직원과 데레사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범석이 끼어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역력히 표시되고 있었다.
“데레사 양.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제가 싫으신 건가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워낙 갑작스러워서요.”
“갑작스럽긴요. 전에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연인으로 지내자고요. 저희가 오랫동안 연락을 취하지 못한 것도, 계속 미적미적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안 그래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 제 말대로 해주세요.”
그때 범석이 데레사의 손에 든 키를 빼앗아 들더니, 다시금 카운터 직원에게 넘겨주었다. 거절의 표시가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방은 왠지 불안했다.
“VIP용 키로 바꿔줘. 너 나 잘 알지?”
넌지시 그를 바라본 카운터 직원이 바로 키를 수습해 새로운 키를 전해주었다. 범석은 항시 VIP대접을 받기에, 일반 객실에 머무는 경우가 없었다.
이에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짓고는 VIP실이 있는 맨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어제부터 신작을 새롭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전문서적을 완전히 이해못했지만,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서요. 전에 폐기한 한권 넘게 쓴 불량과 이전에 쓴 글을 읽어보니 오류가 잔뜩 눈에 띄더라고요. 어느 정도 기본지식이 박혔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 글도 끝날 때가 되서 신작을 빨리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머지는 신작을 쓰면서 익혀갈까 합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즐거운 시간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