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범석의 원룸이 오늘 하루도 북적거렸다. 그를 비롯한 6명의 엘프들이 살기에는 집안이 너무 좁아터졌던 탓이다. 그래도 그 누구도 불평 한 마디 던지는 엘프는 없었다. 덕분에 주인과 살을 맞댈 기회가 그만큼 늘었던 연유에서였다.
“자자. 오스칼. 에르피나. 빨리 짐 챙겨. 오늘 오후에 홈경기가 있다며.”
이미 원룸 앞 베란다에는 드래곤나이츠팀에서 보낸 팀 전용 플라잉카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스칼과 에르피나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녀들은 범석의 채근에 얼른 짐 보따리를 챙기고는 급히 플라잉카를 탔다.
“주인님! 다녀올게요!”
“그래. 오늘 경기도 열심히 해라.”
윙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날아가는 드래곤나이츠의 전용 플라잉카가 어느새 시선 멀리 사라져갔다. 이를 범석이 뿌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녀들은 드래곤나이츠 소속 검투사로 지금까지 리그경기에 참가한 일은 두 번밖에 없었지만, 뛰어난 활약으로 지역 스포츠언론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노련한 경기운영이 빛을 발하는 에르피나는 현역 검투사들 못지않은 체력으로 팀이 승리하는데 일조를 했고, 오스칼은 특유의 강인한 힘으로 미친 듯이 상대진영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흑광우라는 엽기적인 별명까지 얻기까지 했다. 이에 언론들은 부상병동이라는 제목 하에 부르던 드래곤나이츠팀을 과거 보다 더 전력이 상승됐다는 논평으로 바꾸고는 올해의 우승전망에 전혀 이상이 없다는 투로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범석으로서는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이 덕에 계속해서 자신에게 이적제의가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녀들의 임대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임대를 원하는 팀들로 큰 골치를 앓았다. 그 시기에 에르피나와 오스칼을 또다시 임대를 보낸다면 내년 초에 열릴 승격토너먼트대회에서 큰 전력 손실을 안고 경기에 임해야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팀에 프로딱지가 붙는 일보다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범석은 이내 베란다에 아론이 서자 그 안으로 탑승했다. 뒤이어 다이아나를 비롯한 나머지 엘프들이 뒤따랐다. 몇 분후 이들이 탑승한 아론이 오늘의 훈련장소인 리마시티체육공원에 도착했다.
“자자. 다들 내리자!”
범석의 외침에 감독인 다이아나를 선두로 레이미, 비너스, 에리카가 차례로 아론에게서 내렸다. 이미 운동장에는 몇몇 소속팀원들이 가볍게 몸을 풀며 오늘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근처 나무그늘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세 명의 엘프를 손짓으로 불렀다.
“안드레아, 치리아, 미를리. 자 이쪽으로 와.”
그녀들은 이번에 새로 팀에 들어온 외부영입 검투사들이었다. 이적 건으로 소속 검투사들이 비자 범석이 팀 사이트와 검투사협회 사이트에 공고를 내 모집한 검투사들로, 모두가 다년간 프로경험이 있는 출중한 실력자들이었다. 특히나 치리아 같은 경우는 나이가 어린 반면 잠재능력이 높아 잘만 키운다면 와이드리그에서도 큰 활약을 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런데 그녀들 같은 실력자가 갓즈나이츠 팀에 왜 들어왔느냐? 바로지난 GA컵에서 크게 활약을 해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리그전이 끝이 난 후 많은 프로팀들이 하위리그나 아마추어리그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되었다. 그럼 해당 팀은 자금 압박을 받아 소속검투사들의 연봉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협회는 해당 팀에게 징계를 하는데 가장 보편화된 방법이 마이너스승점제도였다. 이 페널티를 받는다면 더더욱 재승격도 힘들뿐더라 자칫 한 단계 아래의 하위리그로 떨어지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대게의 프로팀들은 연봉이 들어가는 검투사와 계약을 할 당시, 팀이 강등을 당한다면 방출 혹은 연봉삭감사항을 꼭 기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에어리어팀이 강등되어 아마추어리그로 떨어질 때였다. 리그 경기도 없거니와 기껏 참가할 수 있는 세 번의 대회에서는 쥐꼬리만한 상금밖에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금의 확보는 극히 어려웠다. 게다가 아마추어협회에서 주는 페널티는 엄청나 해당 팀으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리그경기가 없는 상황이니 승점삭감을 할 수가 없을 터. 아예 가을에 열리는 새미프로대회와 봄에 열리는 승격토너먼트대회의 참가자격을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해당 팀은 눈물을 머금고 자산목록에 잡혀있는 검투사들을 제외한 연봉이 소요되는 팀원들 중 많을 수를 방출시켜야했다.
이에 팀에서 쫓겨난 프로검투사들은 다른 프로팀을 찾다가 여의치 못했을 때는 낮은 연봉으로도 승격가능성이 많은 세미프로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바로 갓즈나이츠 같은 프로를 지망하는 검투사 팀에 말이다. 지금 언론의 평가로는 내년 초에 열릴 에이번드 에어리어리그로 가는 승격토너먼트에서 갓즈나이츠팀을 승격 제 일 순위 팀으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범석이 다이아나와 레이미를 이끌고 와 그녀들과 대면을 시켜주었다.
“얘들아. 여기 있는 엘프들은 다이아나와 레이미라고 하는데, 우리팀의 감독과 코치다.”
안드레아를 비롯한 새로 들어온 팀원들이 다이아나와 레이미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전 안드레아라고 해요.”
“저는 치리아라고 해요.”
“저는 미를리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미리 그가 언급을 한 적이 있었던 터라, 다이아나와 레이미가 친근하게 그녀들을 맞이했다. 이는 에리카와 비너스도 마찬가지. 초면임에도 불과하고 친근한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곧 이 같은 현상은 팀 전체로 퍼져나갔고, 범석은 훈련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뤄가면서까지 분위기를 띄웠다. 훈련도 무척 중요하기는 하지만, 팀원 간의 친목도보도 전력향상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자. 훈련은 정각 10시에 시작한다.”
그때 그에게로 엠마가 뒷짐을 쥔 채로 슬그머니 다가섰다.
“저, 저기. 범석님. 이거요.”
수줍어하는 모습의 그녀의 손에는 잘 갈무리가 되어 있는 편지봉투 하나가 들려있었다. 러브레터로 예상한 범석이 야릿한 시선을 한 채로 잽싸게 봉투를 낚아챘다.
“오. 이게 뭐야. 설마 고백편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엠마가 연신 고개를 저어댔다.
“호호호. 아니에요. 저희들이 주는 선물이에요.”
“저희들? 선물?”
“네. 저를 받아주셔서 고맙다고 흑사회 선배들이 범석님께 이리 선물을 준비했어요.”
범석이 실망 반, 흥분 반의 심정으로 봉투를 뜯어보았다. 러브레터가 아님이 무척 안타깝지만, 그 대단한 흑사회가 주는 선물이라니 기대가 되었다.
그는 이번에 새로운 팀원들을 들이며 1년 연봉으로 105만 크랑을 날리는 바람에 거의 무일푼의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오스칼과 에르피나가 벌어오는 출전수당과 승리수당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흑사회가 엠마를 받아줬다는 이유로 이리 선물을 보내왔다. 아마도 과거 1500만 크랑을 줬다 빼앗은 전적이 있으니, 이를 감안해서라도 아마 좀 더 성의를 보일 것으로 사료되었다.
그리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범석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뭐, 뭐야? 2박 3일 리지호텔숙박권?’
리지호텔은 오사하라는 유명 휴양지에 있는 숙박시설의 이름이었다.
오사하.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있는 천연의 관광도시로, 다양한 휴양시설 및 도박시설로 휴양객들에게 크게 각광을 받고 있었다. 범석도 TV에서 이 도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흑사회에서 엠마를 받아드린 감사의 선물로 이 지역 호텔숙박권을 제시했다는 점이었다. 아예 주지를 말지. 이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범석은 당장에라도 구겨서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엠마의 면전 앞이라 간신히 참았다.
“이게 뭐니?”
“리지호텔 2박 3일 숙박권이요.”
범석이 다시 한 번 숙박권을 확인보고는 미소를 짓고는 엠마를 쳐다봤다.
“그럼 이 바쁜 와중에 나보고 휴양지에 놀러가라는 얘기야?”
“그냥 놀러 가시라는 얘기는 아니고요. 자 이것도 받으세요.”
그녀가 주머니를 뒤지자, 범석이 일그러진 인상을 폈다. 그럼 그렇지 흑사회가 이따위 종이쪼가리 한 장으로 입을 싹 씻을 까닭이 없었다. 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가 주는 동그랗고 평평한 모양의 물건을 받아들었다.
무슨 도박장에서 사용하는 칩 같았는데, 황금빛 테두리에 양면에 100크랑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이건 또 뭐냐?”
“오사하도시 전체에서 사용되는 돈과 같은 것이에요. 도박도 할 수 있고, 음식도 사먹고 게다가 놀이기구 같은 것도 탑승할 수 있어요.”
범석이 눈을 껌뻑껌뻑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돈 대용? 좋다 이거다. 그런데 100크랑 가지고 뭘 어쩌라는지 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적선하는 금액치고는 제법 크기는 했지만, 범석은 거지가 아니었다.
“그, 그래서? 흑사회에서 이걸 나에게 주는 목적이 뭔데?”
엠마가 주위를 살피더니,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다.
“사실 전에 범석님에게 1500만크랑이 크게 탈이 날 빤했어요. 다행히 다음날 수거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범석님이나 저희나 모두 큰일이 날 빤했다고요. 청년기업연합회에서 그 때의 일을 파악하고 공세를 취하려고 했거든요.”
그건 대략 범석도 눈치를 까고 있었다. 청년기업연합회와 흑사회와의 적대관계를 봤을 때. 놈들이 그런 불의한 행위에 잠자코 눈감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아마추어연맹에 이 행위를 알리고 자신들에게 큰 페널티를 부과하도록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었다.
“그런데?”
“그래서 이렇게나마 성의를 보이는 것에요. 저희가 저번처럼 직접 큰돈을 안겨드리면, 아마 놈들이 이를 관계기관에 알려 제 프로경력을 무위로 만들려고 할 것에요. 돈을 주고 프로생활을 했다며 말이에요.”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지만, 범석으로서 무척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 만큼 현재 그의 주머니사정은 빈약했다. 물론 마이크로엔지리어링 사 주식을 27만주나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의 주가가 주당 164크랑으로 원금을 약간 까먹은 상태였다. 인간의 심리상 팔기가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휴. 아무래도 에이번드 세미프로대회에 참가해야 자금사정이 좀 풀리겠군.’
혀를 쩝 다신 범석이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사정이 이렇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기분전환 겸 여름휴가를 떠나는 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좋아. 그런데. 이 숙박권. 몇 명까지 투숙할 수 있어? 그리고 기한은 언제까지고?”
“2명이고요. 모레부터 삼일간이에요.”
음흉한 미소를 지은 범석이 엠마를 향해 진득한 눈빛을 날렸다.
“우리 같이 갈까?”
“그건 힘들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실력이 미진해서 계속 훈련을 쌓아야 해요. 한 시도 아까운데, 휴가를 떠날 시간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건 범석님도 잘 아시잖아요.”
혀를 쩝 다신 범석이 고개를 주억였다. 말마따나 그녀의 실력을 무척 부족한 상태였다. 최근에 기량이 좀 나아졌기는 했지만, 검을 잡은 지 채 세달 뿐이 안 되는데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내년 초봄에 열릴 승격토너먼트대회에서 후보로라도 참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본연의 실력을 키워나가야 했다.
‘그럼 누구를 데려갈까?’
소유 엘프를 차례로 떠올리던 범석이 일단 오스칼과 에르피나를 제외시켰다. 걔들은 드래곤나이츠에서 임대생활을 하고 있던 탓에, 2박 3일간이라는 시간동안 휴가를 떠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다이아나와 레이미 또한 안됐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상태에서 감독과 코치인 그녀들까지 없다면 제대로 된 훈련이 수행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엘프는 에리카와 비너스뿐.
‘아무래도 비너스가 좋겠군.’
에리카는 팀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비너스는 팀 창단 때부터 함께 생활을 해온 탓에 그다지 문제가 없었고, 또 듀얼쉴더라는 특별한 역할분담을 맡기에 코치격인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훈련이 이뤄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현재 팀 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니, 포상차원으로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오사하의 해변에서 자신과 함께 피나는 훈련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생각을 마친 범석이 막간의 휴식시간에도 방패를 열심히 휘두르던 비너스를 불렀다.
“비너스 이리와!”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비너스가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잽싸게 튀어왔다.
“네. 주인님.”
“비너스. 너는 내일모레 나와 오사하로 특별 전지훈련을 떠난다. 모래 위에서 힘들게 훈련을 할 테니, 단단히 준비하도록 해.”
그 말에 비너스의 표정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주인님과 단 둘의 훈련여행. 아무리 힘이 들어도 엘프인 그녀에게 그만큼 기쁜 소식이 없었다.
“네. 확실히 준비할게요.”
“좋아. 그럼 돌아가서 훈련 준비해. 이제 오늘 훈련을 시작할 테니까.”
“네. 주인님.”
들뜬 걸음으로 팀원들에게 다가가는 비너스가 절로 찢어지는 입으로, 레이미와 다이아나에게 오늘 범석에게 들은 말을 자랑하듯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며칠간 훈련에 빠져야하니, 감독과 코치인 그녀들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를 지그시 바라보던 범석을 향해 엠마가 가벼운 말투로 한 마디 툭 던졌다.
“아참. 그리고 방금 전 칩은 꼭 슬롯머신에서 사용해야 해요. 꼭이요.”
이에 그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박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진 오사하에서 한 게임조차 하지 않고 온다는 자체가 실례였다.
“뭐. 그러지.”
이후. 범석이 다이아나에게 다가가 훈련시작을 하라고 명하고 팀원의 대열로 들어섰다. 이제 감독이 생겼으니 그는 프로검투사와 이사장 일에만 힘을 쓰면 됐다.
============================ 작품 후기 ============================
휴~ 날씨가 또 더워지는 감이 있네요. 그 동안은 시원해서 정말 글쓰기 좋았는데요. 아무래도 또 글 쓰는 속도가 느려질 것 같습니다. ㅠㅠ;;;;;;
그럼 모두들 앞으로 이어질 여름날 더위조심하고요. 오늘 뜻깊은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