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87
489화
“쳇. 놓쳤군. 하지만 잡은 것이나 다름없지. 후후.”
그물을 빠져나온 범석이 리콜라가 멀어져 간 하늘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엘프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열 받기는 하지만, 이름과 소속을 파악한 이상 그녀는 자신의 손에 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그는 모두 MR보안요원들을 철수시키고 데레사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돌아갔다.
몇 주 후 이적시장이 끝나갈 무렵. 그는 다시 아크 로얄 시티를 찾아왔다. 리콜라를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 동행한 자는 데레사가 아닌 에스더였다. 영입만 한다면 그녀는 절대 범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인을 떠나는 엘프는 절대 없으니까 말이다.
슈퍼 히어로즈 검투 팀의 정문 앞에 선 에스더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범석을 쳐다봤다.
“이사장님. 정말 리콜라라는 아이를 영입할 건가요?”
CCTV카메라에 넌지시 시선을 둔 범석이 바로 대답했다.
“응. 아니라면 내가 널 데리고 여기까지 왜 왔겠냐?”
에스더가 마땅치 않은지,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본 리콜라는 그저 그런 에어리어급 검투사에 불과했다. 기술적인 면은 아주 훌륭하지만, 신체적인 면모가 크게 떨어져 갓즈나이츠에서 뛰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월드리그와 슈퍼 히어로즈 팀이 소속되어 있는 와이드리그는 2단계 차이지만, 아예 질적으로 틀렸다.
“그렇지만, 리콜라라는 아이는 전혀 쓸모없는 검투사 같아요. 괜한 돈 낭비가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아니. 분명 팀에 많은 도움이 될 정도로 쓸모있는 아이다. 그러니 나만 믿어라.”
“으음. 이사장님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플레이 영상에는 특출함이 전혀 엿보이지 않았어요. 월드리그는커녕 센트럴리그에서도 활약하기 어려울 걸요? 그리고 지금 와이드리그에서 뛰는 것도, 후보라 가능한 것이지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고요.”
범석이 넌지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네.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래요.”
“그래? 그런데 그 조사 데이터가 잘못되었다면?”
에스더가 바로 고개를 저어댔다. 자신이 확인한 정보는 경기 영상이었다. 이 이상 확실한 데이터는 없었다.
“하지만 전 경기 영상을 보고 결론을 내릴 것인데요?”
“그래. 바로 그래서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경기 영상 자체가 오류거든. 알았냐?”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녀는 경기 때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
에스더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설마 요? 제가 보기에는 전력을 기울이는 듯 보이던데요? 다이아나나 레이미, 에르피나도 제 의견에 동의했고요.”
“하긴 겉으로 보기에는 절대 구분할 수 없으니, 그렇게도 보이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절대 아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실력을 철저히 숨기고 있어.”
“아니 어째서요? 그 나이면 워커 옥션 마켓으로 빠지기 위해 수작을 부릴 나이도 아니잖아요?”
“응. 하긴 그럴 나이는 아니지. 하지만 모든 엘프가 워커 옥션 마켓에 가기 위해서만 수작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럼 다른 방식으로도 주인을 얻는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
범석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다른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리콜라는 그런 이유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아니 왜요? 엘프가 주인도 얻지 못하는데,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후후. 아니 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지?”
“주인도 못 얻는데, 굳이 명예를 얻을 기회를 박찬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하긴 명예 좋지. 모두가 열광을 해주니 좋지 않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명예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 엘프들에게는 틀리다. 상위리그에 올라가도 얻을 것이 없으니……. 아니 자유를 속박당하는 결과만 맞이하니까…….”
그렇기는 했다. 상위 리그에서 활약한다는 것은 그만큼 몸값이 높아진다는 얘기였기에, 팀에서는 그에 걸맞은 투자도 병행했다. 문제는 그 투자가 엘프의 호주머니와 인권 향상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투자에서 추가되는 명목은 검투사 품위유지비를 빌미로 한 팬서비스와 엘프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감시하기 위해 매니저 비용. 그리고 약간의 용돈 향상이었다. 이를 살펴보면 팀의 투자가 엘프들에게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에스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갓즈나이츠는 그렇지 않지만, 다른 팀은 좀 엘프들의 감시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드리그 팀들은 불의의 사태를 대비해 검투사당 5~6명의 매니저를 두어 24시간 관리 감독한다고 했다. 당연히 그들 엘프들에게 자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하위팀들은 얘기가 달랐다.
적은 입장 수입으로 자금적인 한계가 있으니 그 많은 매니저를 배치할 수 없었고, 해당 엘프 검투사들은 어느 정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곳 슈퍼 히어로즈 같은 하위팀은 1명의 매니저만 붙일 수 있을 뿐이고, 야간 같은 경우는 경비팀이 숙소를 감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으음. 그렇기는 하죠. 네. 이해가 되네요. 그럼 리콜라라는 아이가 명예보다는 자유를 갈망한다는 얘기인가요?”
“그런 듯 보이지만, 사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글쎄? 삐뚤어진 명예를 위해 자유를 갈망할지도 모른다고나 할까? 그 아이는 검투사로서 보다는 다른 곳에서 명예를 찾는 듯 보인다.”
범석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엘프의 특성이 나름 성격도 대변하기 때문이다. 리콜라의 특성은 ‘은둔의 히어로’. 영웅은 명성이 따르기 마련이니, 딱히 그녀가 명예를 싫어한다는 볼 수 없었다.
여기에 앞에 은둔까지 붙어있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명예가 아닌 뭔가 신비주의적인 명성 쪽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적발의 중년 남성이 밖으로 나왔다. 바로 슈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담당자인 하인츠였다. 그는 잔뜩 밝은 표정을 하고는 범석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범석 씨. 자. 빨리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범석이 천천히 그를 살피더니, 말했다.
“그런데 정말 제가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소속 검투사들의 동요가 심할 텐데요.”
“어휴. 무슨 걱정을 그리하십니까? 그녀들이 언감생심 월드리그 팀인 갓즈나이츠에 간다고 생각할 리가 있겠습니까? 걱정일랑 놓으시고 어서 들어오시죠.”
“네. 감사합니다. 그럼 사양치 않겠습니다.”
범석과 동행한 하인츠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거 웬 떡인가 싶은 것이다.
현재 범석이 원하는 검투사는 리콜라. 그녀의 몸값은 현재 800만 크랑이 고작이지만, 영입 상대가 월드리그 팀인 갓즈나이츠라면 얘기가 180도로 바뀌었다.
아마 못 받아도 두 배, 그가 선심만 쓴다면 수천만에서 잘하면 1억 크랑 이상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 돈으로 쓸만한 핵심급 검투사를 여럿 구매할 수 있을 터. 팀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후보급 검투사를 판매해서 이런 행운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반드시 리콜라를 마음에 들어 하게 만든 후, 떠넘겨야 했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죠.”
그가 안내한 곳은 2층의 응접실이었다. 여는 응접실과는 그다지 않지만, 리콜라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할까? 그녀는 범석을 보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자신을 잡으러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아니. 당신이 왜?”
이에 하인츠가 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도닥거렸다.
“어때? 놀랐지?”
“그……. 그렇죠. 제가 놀라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후후. 미안하다. 워낙 믿기지 않은 사실이라 나도 확신하지 못해 말을 못했다. 이해해다오.”
“아니 그래도 그렇죠. 이런 일이 있다면 바로 얘기해 주셨어야죠.”
그의 불만은 이해가 가지만, 하인츠로서는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후보라지만, 그녀는 팀의 재산이었다.
가능성 낮은 일에, 괜히 바람을 불어넣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 범석에게 그녀를 반드시 팔겠다는 의지만 없었다면 그녀는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다.
소문으로 들어보니, 범석은 엘프의 간절한 눈빛에 무척 약하다고 했다.
“하하하. 이해해라. 다 모두가 좋자고 한 일이니까.”
리콜라가 잔뜩 긴장해있던 시선을 풀었다. 그때 그녀는 철저히 자신을 숨겼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당연히 그가 알고 왔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곧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콜라. 오랜만이군. 그동안 잘 지냈지?”
리콜라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일단 그와는 초면. 저리 아는 체를 할 리가 없었다.
“절 아시나요?”
“으음. 몇 주 전에 만났잖아? 벌써 잊어버렸어? 그때 네가 나에게 그물을 쏘고 달아났잖아.”
침을 꿀꺽 삼키는 리콜라가 얼굴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저를……. 분명히 전…….”
“그게 뭘 숨긴 거라고……. 티를 팍팍 냈고만…….”
“저……. 전 그런 적이 없었는데요…….”
“있어. 네가 모를 뿐이지. 하여간 빨리 앉아라.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 그게 무슨 뜻이죠? 서……. 설마……. 저를 붙잡아서 경찰…….”
바로 그녀의 허리를 꼬집는 하인츠가 날카로운 눈매로 쏘아봤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협상 방해는 용납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앉기나 해. 범석 씨는 너를 구매하러 오셨단 말이다. 너 갓즈나이츠에 가기 싫어?”
청천 병력과도 같은 소리에 리콜라가 표정을 수습하고는, 얌전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아무리 그녀가 상위리그 팀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지만, 갓즈나이츠만은 예외였다.
이에 범석도 차분히 앉아 하인츠를 바라봤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가격 협상에 들어갈까요? 자 그쪽에서 원하시는 구체적인 금액이 얼마입니까?”
“하하하. 제가 무슨 리콜라의 가치를 알겠습니까? 범석 씨께서 그녀를 원하는 마음만큼만 제시해 주십시오. 그럼 제가 곰곰이 생각해서 결정 내리겠습니다.”
아무래도 하인츠는 먼저 금액을 제시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거래에서는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알 수 없으니, 선제 시는 금물이었다. 너무 싼값을 제시하면 자신들이 얻을 이득이 감소되었고, 너무 비싼 값을 제시하면 거래 자체가 무산될 수 있었다.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던 범석이 손가락 3개를 폈다. 그가 리콜라의 몸값으로 잡은 최대치가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30억 크랑 말이다.
그러자 두 주먹을 쥔 하인츠가 벌벌 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주 마음에 든 금액이지만, 더 뽑아먹을 것이 없는지 테스트하려는 것이다.
“3, 3천만 크랑이라……. 나쁘지 않은 금액이지만, 영 고민이 되네요.”
그 말에 범석이 피식 웃었다. 저 금액을 가지고 벌벌 떠는 하인츠가 귀엽게 보였기 때문이다. 3천만 크랑은 그가 생각하고 있던 금액의 100분지 1이었다. 인식의 정도가 이 정도 차이가 나면 협상 자체가 무의미했다.
“후후. 그렇습니까? 그럼 하인츠 씨는 얼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그가 손가락을 펴기를 계속 주저하더니, 결국 다섯 개 모두를 다 들었다.
“5천만 크랑은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라면 저희도 만족할 수 있으리라 보입니다만…….”
“훗.”
범석이 피식하고 또 웃었다. 그 금액도 귀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인츠는 달리 생각한 모양이었다. 바로 꼬리를 내리면서 제시 금액을 낮췄다.
“뭐. 만족한다고 할 뿐이지, 이 금액을 다 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아니면 상호 간에 거래할 필요가 없겠죠. 더 낮은 금액이라도 저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흠.”
“아. 그래요? 그럼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4천만 크랑이면 어떻겠습니까? 저로서는 꽤 합당한 금액 같습니다만…….”
그 제의를 하고 난 프리츠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범석의 눈치를 살폈다. 4천만 크랑은 리콜라 몸값의 5배였다. 거래만 성립되면 대박 그 자체였다.
“뭐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요.”
범석의 답변에 긴장이 풀린 프리츠가 심호흡을 내쉬었다. 바로 긍정을 뜻했기 때문이다.
“하하하. 네. 그렇죠. 절대 나쁜 금액은 아니죠. 하하하. 그럼 이쯤에서 합의를 보시겠습니까?”
“글쎄요? 그건 잠시 생각해봐야겠는데요…….”
뜻밖에 부정을 표하는 범석이었다. 4천만 크랑이라면 잔돈 소비하는 셈 치고 언제든 뿌릴 수 있는 금액이지만, 과연 득이 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현재 그가 생각하는 리콜리의 실력은 W0급. 이런 검투사를 4천만 크랑에 날름 먹어가면, 슈퍼 히어로즈 팀이 속앓이를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 그녀의 활약 때마다 불만이 터져 나올 터이니, 잡음이 들려오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현재 갓즈나이츠는 월드리그 팀. 체면도 중요하니, 이런 금전적 이득만을 중시한 거래는 회피함해야함이 옳았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인츠가 더욱 거래가를 낮췄다.
“그럼 3,500만 크랑 어떻겠습니까? 그 금액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니 원하신다면 3,000만 크랑에도 넘길 용의가 있습니다.”
고개를 저은 범석이 손가락 두 개를 펴며 말했다.
“2억 크랑 드리겠습니다. 단 양자 간 모두. 차후에 이번 거래에 대해 그 어떠한 불만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기재되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2, 2억 크랑요? 2천만도 아닌 2억요?”
“네. 물론입니다.”
하인츠가 벌떡 일어서더니, 그의 손을 맞잡았다. 2억 크랑이라면 자신이 예상한 최대치의 2배였다. 비록 거래에 대한 불만 제기가 불가능하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자신이 더 원하는 바였다.
“물론입니다! 그럼 원하는 조건을 다 들어드리죠!”
“하하하. 자. 그럼 빨리 계약을 하시죠. 이적 만료기간이 모래라서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거래를 끝마쳤다. 하인츠로서는 거금 2억 크랑을 손에 쥐었으니 만족했고, 범석은 수십억 크랑의 가치를 할 리콜라를 아무런 잡음 없이 얻었으니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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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가고 월요일이네요. 모두들 꿋꿋이 버티시고요. 전 내일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