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89
491화
화창한 9월의 주말 오후. 세노사이드 시티 콜로세움은 다가오는 가을을 쫓아버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홈팀인 메넥스 오딘즈와 원정팀인 갓즈나이츠의 시즌 6차전 경기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장내와 TV 앞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여기 세노사이드시티 콜로세움에서는 메넥스 오딘즈와 갓즈나이츠가 경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출전할 검투사는…….
아나운서의 중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범석이 더그아웃 투명 칸막이 턱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지그시 경기장을 쳐다봤다. 나름의 감상에 젖어든 탓이다. 이미 올 시즌 6번째 경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는 오늘 처음 경기장을 찾았다.
‘후후. 오늘 반드시 6연승을 먹어간다.’
5차전까지 진행된 지금 현재. 갓즈나이츠는 5연승으로 리그 공동 1위에 올라있었다. 여느 시즌때 같았으면 앞의 공동이라는 글자를 빼야 옳았지만, 워낙 강팀들이 득세하는 시기라 두 팀이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바로 채플린 위스퍼와 에이션트 워리어즈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범석은 에이션트 워리어즈는 그다지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프리시카를 내보냈을 때, 이미 그들은 리그 우승에서 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해의 우승 경쟁은 채플린 위스퍼와 갓즈나이츠의 싸움으로 결정될 것이 틀림없었고, 변수가 있다면 현재 3위를 달리고 있는 리얼 히어로즈였다. 이들은 검투사 대부분이 상위 평준화되어 있어 상대하기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의 갓즈나이츠가 아니다. 작년처럼 쉽게 안 된다.’
범석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물과 창을 손질하는 리콜라에게 눈길을 주었다. 오늘 그녀는 갓즈나이츠 검투사로 첫 출전이지만,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비록 세간에는 A0등급으로 알려졌지만, 범석의 기대치는 W0급 이상이었다. 만약 그녀가 기대에 부응하기만 한다면, 갓즈나이츠는 무결점의 팀 구성을 이룩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이아나는 여간 걱정이 아닌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평상시 훈련 때 보이는 리콜라의 실력은 월드리거로서 한참이나 함량 미달이었다.
“주인님. 그런데 리콜라 저 아이 괜찮을까요?”
“뭐가?”
“주인님께서 계속 괜찮다고 하시는데, 옆에서 바라보는 저로서는 믿음이 가지를 않아요. 솔직히 말한다면 왜 저 아이가 저희 팀에 있는지 이해가 안 돼요.”
“후후. 그렇게 믿음이 안 가?”
다이아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네. 게다가 오늘 그녀는 주력으로 출전해서 더 불안해요. 일단은 후보로 뛰게 해서 실력을 검증받는 것은 어떻겠어요?”
“그럴 필요 없어. 저 아이는 분명 제 활약을 다할 테니까.”
“물론 주인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팀 감독인 저로서는 아주 껄끄러워요. 자칫 그녀가 초반에 당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오늘 경기가 어려질 수 있으니까요.”
범석이 지그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리콜라가 실수를 해서 초반에 당했다고 하더라도, 갓즈나이츠에는 자신을 비롯한 프리시카, 티엘라가 있었다.
“너.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것 알고 있지? 설마 한 명 모자란다고 우리 팀이 메넥스 오딘즈에게 밀릴까? 우리 갓즈나이츠는 작년의 그 팀 아니다.”
“그렇기야 하지만……. 휴~ 알겠어요.”
다이아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젖더니 물러났다. 주인인 그에게 이 정도의 항의를 했으면 감독으로서 할 도리는 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모든 운을 하늘에 맡기고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이어 범석이 자신의 무구를 챙겨 들고 문밖을 나섰다. 오늘따라 좀이 쑤시는 터라 더는 더그아웃에 있을 수 없었다.
“자! 오늘도 반드시 승리한다!”
“넷!”
입장 터널에 서있던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훨씬 우렁찼다. 오랜만에 주인이 참가하는 경기라, 기운이 났던 탓이다. 시즌이 시작되고 한 달여 동안 자신들끼리 경기를 치르자니 맥이 좀 빠졌었다.
얼마 후. 그녀들은 입장 신호와 함께 보무도 당당히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리콜라! 오늘 잘 부탁한다! 절대 우리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래 넌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오늘 갓즈나이츠의 영광은 너에게 달렸다. 파이팅!”
홈 관중석에서 뜻밖에 리콜라에 대한 응원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얼마 전까지 슈퍼 히어로즈라는 와이드 리그 팀에서 활동해오던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갓즈나이츠에 영입 직후 그녀는 전 세계 스포츠 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았다. 신데렐라 검투사라고 말이다.
하위팀에서 전전하던 그녀가 올해 강력한 월드리그 우승팀인 갓즈나이츠의 주력으로 영입되었다니, 언론이 관심을 두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당연지사 전 세계 검투 팬들 사이에 그녀의 이름은 각인되듯 기억되었고, 이번 첫 출전을 기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에어리어 리거급 검투사가 월드리그에서 뛰면서 보일 추태도 꽤 흥미진진한 볼거리이기 때문이다.
이에 아나운서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 마디 늘어놓았다.
– 이거 너무 뜻밖이지 않습니까? 갓즈나이츠에서 리콜라 같은 검투사를 영입하다니 말입니다. 사실 갓즈나이츠는 이사장이자 소속 검투사인 오 범석 검투사의 안목으로 성공적인 트레이드를 하기로 유명한 팀 아닙니까? 그런데 저런 검투사를…….
– 네. 그렇죠. 저도 이번에는 너무 뜻밖이라 아주 놀랐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며칠 전부터 리콜라의 과거 플레이 영상을 봤는데, 역시나 영 아니었죠. 기술적인 능력은 제법 뛰어나지만, 신체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아주 많았거든요. 힘도 저조하고, 체력도 문제가 많고, 여기에 민첩성은 물론, 균형감각까지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확언하건대 리콜라는 월드리그에서 뛸만한 그릇이 절대 아닙니다.
이번에는 갓즈나이츠가 큰 실수를 한 듯 보입니다.
아나운서가 범석의 뒤를 바짝 쫓아가는 리콜라를 보더니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있었던 것이다.
– 아.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오늘 리콜라가 주력으로 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영입에 실패했다고 해도, 몇 주간의 검증할 시간이 있으니 실력을 평가할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첫 출전에 주력이라니, 이게 뭔 말입니까?
– 저로서도 그 점이 이해가 안 갑니다. 주력으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죠. 분명 뭔가는 있긴 한데 알 수가 없으니…….. 하여간 오늘 상대인 메넥스 오딘즈도 무척 답답해 할 겁니다.
그러는 사이 경기장 중앙에 도착한 리콜라가 선봉 맨 앞에 서서는 양손에 각각 그물과 창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메넥스 오딘즈의 방진을 긴장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녀는 오늘 임무는 예봉. 가장 먼저 적과 충돌하기에, 책임이 아주 막중했다.
범석이 이런 그녀의 뒤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리콜라.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만 해. 그럼 네가 우리 팀 주력인 데 대해 그 누구도 딴말하지는 못할 거다.”
“네. 알고 있어요. 저도 자신이 있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 대화를 곁에서 엿들은 샤일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리콜라는 연습경기 내내 첫 충돌과 동시에 멀찌감치 날아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지금 자신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샤일라로서는 자못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휴~ 어쩔 수 없지. 엘프들은 주인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하는 존재니까. 어차피 나와 티엘라가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샤일라가 옆에 서 있는 티엘라의 어깨를 두드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날렸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자신들끼리라도 잘해보자는 것이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 삐이익! 경기 시작!
시작과 함께 준비하고 있던 리콜라가 힘차게 앞을 향해 내달렸다. 그 기세가 워낙 대단한지라 바라보는 샤일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습 때는 느림 거북이라 뒤쫓아가기가 짜증이 날 정도였는데, 지금은 웬걸 사력을 다해도 뒤쫓기가 버거웠다. 마치 딴 엘프를 보는 것이 아닌가 착각될 정도였다.
이는 메넥스 오딘즈 검투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쟤. 보통이 아니잖아!”
하지만 때는 늦은 상태였다. 이미 리콜라는 면전에 도달한 채 세차게 그물을 뿌리고 있었다.
휘리리릭.
그물에 휩싸인 2번과 4번 검투사가 벗어나고자 애를 쓰는 가운데, 리콜라의 재빠르게 꿈틀거리는 창끝이 4번 검투사의 복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쉽사리 당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워낙 뜻밖의 상황이라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번 검투사의 머리를 집고 높이 점프한 리콜라가 진형 맨 뒤에 서 있던 9번 검투사의 안면에 그대로 창끝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검을 뻗는 11번 검투사의 손목을 잡고는 그대로 엎어 쳐 버렸다. 그녀는 도시의 히어로로 활동하기 위해 체술도 만만치 않게 익히고 있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메넥스 오딘즈. 리콜라의 활약으로 초반 어이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 그,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정말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가운데 무너진 샤일라의 티엘라가 무너진 중앙라인을 간단히 돌파하고서는 리콜라의 옆에 섰다.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선봉들의 눈빛은 바로 호감.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동료로서 하등 문제가 없었다.
그 사이 범석과 프리시카를 비롯한 갓즈나이츠의 중견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메넥스 오딘즈의 검투사들을 급습해 하나씩 처참하게 바닥에 때려눕혔다.
– 역시나 리콜라의 활약이 주가 된 것이겠죠?
– 흐흠. 네. 당연한 얘기입니다. 초반에 세 명을 한꺼번에 쓰러뜨렸으니, 수훈 갑이라고 할 수 있겠죠. 허허허. 그나저나 이거 갓즈나이츠에게 한방 제대로 먹었는데요.
– 뭐가 말입니까?
– 리콜라의 실력을 철저히 숨겨 오늘 가볍게 승리를 따냈으니 말입니다. 사실 메넥스 오딘즈가 저리 쉽게 당할 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랬다. 메넥스 오딘즈는 현재 2승 1무 2패로 리그 10위를 달리고 있는 안정적인 중위권 팀이었다. 아무리 갓즈나이츠가 강해도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저리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확실히 리콜라의 실력을 숨겨 방심을 노린 점이 이번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아나운서가 경기가 끝나는 장면을 목도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 네. 그런 듯 보입니다. 리콜라의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초반 3명의 검투사가 당한 것은 그만큼 방심했다는 방증이니까요.
중계진들이 떠드는 가운데, 범석과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조용한 경기장 안을 걸어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너무도 어이없는 패배에 홈 팬들로서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날 갓즈나이츠는 가볍게 3승을 따내, 시즌 6승을 거머쥐었다.
깊어져 가는 가을녘이었다. 데레사가 살짝 볼록해진 배를 매만지며, 어느 호텔 방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아버지라고 자청하는 루카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후후후. 내 딸. 어서 와라…….”
현관 앞까지 마중 나와 반갑게 마중하는 루카스를 바라본 데레사가 밝게 웃었다.
“네. 아버지. 그동안 잘 계셨었어요?”
“뭐. 못 지낼 것도 없지. 최근 낚시에 취미가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낸다.”
“아. 그래요? 하지만 너무 취미에만 빠지지 마세요. 여가로 인생을 낭비하기에는 아버지의 재능이 너무 아깝잖아요.”
“후후. 하긴 그렇지. 그렇지 않아도, 찌를 가만히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사업 구상도 있지?”
“아? 어떤 사업을 시작할 참인데요?”
루카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글쎄? 아직은 구상 중이라 말할 단계가 아니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 정리되는 대로 말씀 주세요. 도울 것이 있다면 저도 기쁜 맘으로 나설게요.”
“후후후. 괜찮다. 범석이라는 놈을 상대하기도 벅찰 텐데, 네게 그런 짐까지 씌울 수는 없지. 새로운 사업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놈의 마음을 잡는데 사력을 다해라.”
데레사가 그 앞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세요. 벌써 반쯤 넘어왔으니까요. 이제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저에 대해서 무한한 방심을 보일 거예요. 그때는……. 잘 아시죠?”
“후후. 알다마다. 하여간 이번 일만 잘 처리해라. 그럼 네 공은 평생 잊지 않고 마음에 담고 사마.”
“아니 괜찮아요. 딸이 아버지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요.”
“아니지. 혈육 간의 거래야말로 더욱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다. 핏줄이라는 정 때문에 이리저리 손을 벌리기만 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의가 상하게 된다.”
“호호호. 네 알았어요. 그럼 기대할게요.”
루카스가 넌지시 데레사를 바라봤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했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뭐 말이냐?”
“언제쯤 범석 그자를 제거할 건가요?”
“글쎄다. 내가 출옥한 지 겨우 서너 달이 지났을 뿐이라,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건 천천히 두고 생각해 보자.”
그녀가 한숨을 푹 내리 쉬며 말했다.
“휴~ 그래도 전 최대한 빨리 끝냈으면 바람이 있어요. 그자가 계속 추근대니, 여간 짜증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계속해서 지나가는 기회가 무척 아까워요.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지금껏 전 그를 완벽하게 제거할 기회를 많이 포착했었어요.”
루카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로서는 그녀의 제의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일단 참아라.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뭐.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쉽고 짜증이 나요.”
데레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사이, 루카스가 그녀의 배를 슬며시 바라봤다. 왠지 평소보다 나온 듯싶었기 때문이다.
“데레사. 그런데 배는 왜 이러냐? 좀 나온 듯싶구나?”
“아.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래요. 오늘 급히 나오느라 아침을 먹지 못했거든요.”
“저런……. 끼니는 제때 찾아 먹어야지. 무슨 일을 하든 건강이 최우선이다.”
“네. 저도 알고 있으니, 너무 염려마세요.”
데레사의 대답에 루카스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눈가에는 이채를 지을 수가 없었다. 식사 후 나온 배치고는 형태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소에 그녀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몸매관리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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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