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91
493화
“주인님. 아무래도 어려울 듯 보여요.”
다이아나의 걱정 어린 말에 범석이 대답했다.
“뭐가?”
“일단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전면전을 펼치자는 계획 말이에요.”
착잡한 표정을 지은 범석이 바로 동조를 표했다. 1라운드에서 채플린 위스퍼의 견고한 방어를 직접 경험하고 확인해 본 터라, 이해가 갔다.
“하긴 네 말도 맞다. 아까 접근하려 했는데, 확실히 쉽지가 않았어. 암만 봐도 철저히 대비하고 나온 듯 보인다.”
“그럼 계속 같은 전략을 고수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통하지 않는 전략을 계속 쓰는 것은 고사 이래로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분명 범석도 그런 부류가 아닌바, 다이아나의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바로 플랜 2를 실행하려고요.”
플랜 2. 이름은 거창하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전면전이었다. 즉 전체가 돌격해 일시에 승부를 보자는 것이다. 원래는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실행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으음. 좀 위험할 텐데……? 채플린 위스퍼에서 계속 방어로 나서는 이상, 공격 측인 우리가 불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방법은 전혀 없지 않아요.”
“방법이라니……? 쓸만한 생각이라도 떠올랐어?”
“네. 아멜리에의 편술을 막는 거예요.”
그 말에 범석이 관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채플린 위스퍼와의 단체전에서 그가 제일 우려하는 바가 바로 아멜리에의 쌍편술이었다. 전면 공간 전체를 점하는 듯한 채찍의 회오리는 공격자로 하여금 돌격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정말 가능해?”
“네. 주인님이 좀 위험을 감수해야겠지만, 가능할 거예요.”
“어떻게?”
“1라운드 초반 아멜리에는 쌍검을 들고 있었어요. 바로 주인님의 초반 돌진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죠. 만약 2라운드에서도 같은 식으면, 어쩌면 그녀가 채찍을 드는 일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범석이 위험을 감수하고 초반에 치고 들어가면 아멜리에는 채찍으로 무구를 갈아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럼 돌진이 한결 수월해지니, 승리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야 그렇지만, 내가 도강 중에 당하면 어떻게 하지? 공중에서는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또 쉽사리 그 기회를 놓칠 아멜리에도 아니고.”
“물론 그렇지만, 주인님이 도강 중에 굳이 당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제가 보건대 주인님은 아멜리에의 실력보다 우위에 있어요. 아무리 도강 중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당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야 하지만 만약의 경우도 있잖아.”
“그럼. 2라운드도 무승부죠. 우리에게 여전히 티엘라가 리자 님이 남아있는 이상. 저들은 결코 숲 속으로 들어올 수 없어요.”
범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계 3대 정글 전의 대가가 바로 범석, 티엘라, 리자였다. 이 둘이 있는 이상 숲 속에서는 아멜리에도 쉽지 않았다. 참고로 지난해 채플린 위스퍼의 포리스트 엘프즈와의 원정 전적은 무승부였다. 티엘라가 갓즈나이츠로 이적되어 없는 와중에도 말이다.
“일리가 있군. 확실히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갓즈나이츠가 숲 속에서 채플린 위스퍼에게 지는 일은 없겠지.”
“네. 그럼 주인님. 해보시겠어요?”
범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피식 웃었다.
“어떻게 달리 방법이 없는데, 해봐야지.”
“네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전 이번 전략을 다른 아이에게도 통보할게요.”
“그래. 나중에 실수가 없도록 잘 설명하고.”
“네. 염려하지 마세요.”
다이아나가 돌아가자 범석이 묵묵히 경기장에 펼쳐진 숲 속을 바라봤다. 그동안은 팀의 든든한 방패막이를 되어 주어 고마웠는데, 오늘만큼은 좀 짐이 되고 있었다.
애증. 정말 이 표현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자신이 행동불능 상태에 빠져들면 다시금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자 그가 곧 장창과 카타나를 들고 더그아웃을 나섰다.
“자! 가자! 이번에는 반드시 이긴다!”
고함을 내지른 범석이 창을 든 손을 번쩍 들고,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는 앞으로 아멜리에라는 걸출한 검투사 앞에서 도강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뭐 잘되겠지.’
팬들의 응원 속에 숲으로 진입해 들어간 범석이 시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시내 근처에서 쌍검을 쥐고 당당히 서 있는 아멜리에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봤다. 이거 막상 앞에 두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범석이 뒤를 따라오는 티엘라와 프리시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려면 그녀들의 도움이 필수였다.
“너희.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잘해야 한다? 알겠지?”
“네. 믿고 맡겨 주세요. 확실히 임무를 완수할게요.”
그녀들의 다짐에 범석은 마음속 근심을 완전히 지울 수가 있었다. 프리시카는 현재 세계 4위에 올라있는 출중한 검투사였고, 티엘라는 최강의 궁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좀 어려운 미션이기는 하지만, 그녀들은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좋다. 그럼 너희만 믿는다.”
나무 뒤에 몸을 가린 범석이 왼손에는 장창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카타나의 칼자루를 잡았다. 몸이 공중에 띄워진 상태에서 쌍검을 든 아멜리에를 상대하면, 무구 하나로는 모자랐다.
– 삐이익!
호각 소리와 함께 범석이 재빠르게 시냇가로 내달리더니, 도강을 위해 힘껏 점프했다. 건너편에서 이 장면을 목도한 아멜리에는 웬 떡이냐 달려가다가 몸을 움찔하고 멈췄다. 그의 뒤를 따라 프리시카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예리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오는 화살 하나. 워낙 교묘한 지점으로 날아오기에 피할 수 없던 그녀가 급히 한 손에 든 검으로 쳐냈다. 하지만 이번 한 발이 아니었다. 건너편에 있던 티엘라가 화살을 죔과 동시에 도강을 위해 점프하고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하지?’
순간 고민은 했지만, 아멜리에의 판단은 빨랐다. 여기서 범석을 제거하러 들다가는 자신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동료의 협조가 있다면 가능해 보임직도 해 보였지만, 그녀들은 뒤로 급히 빠지는 상태였다. 그리고 설령 동료들이 돕는다고 해도 피해야 할 일이었다. 정신이 없지 않고서야 숲 속에서 갓즈나이츠와 단체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빼며 숲 밖을 향해 내달렸다.
“후후. 됐다! 그럼 바로 플랜 2로 간다!”
건너편에 착지한 범석이 잔뜩 미소를 지었다. 프리시카와 티엘라의 도움으로 아무런 방해도 없이 도강에 성공한 탓이다. 그럼 이번 전략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곧바로 아멜리에의 뒤를 쫓아 숲 밖으로 나갔다.
“자. 빨리 진형을 형성해!”
중구난방으로 숲을 빠져나온 갓즈나이츠 검투사들이 시급히 추행진을 구성했다. 워낙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허술하기 이를 때가 없지만, 상관없었다. 자신들도 시간이 없었던 만큼 채플린 위스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금 채 방진을 구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팀의 중추인 아멜리에는 도착하지도 못했다.
“전면전이야! 빨리 진형을 굳건히 해!”
대장인 아비스의 외침에 채플린 위스퍼 검투사들이 진형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아멜리에의 뒤를 바짝 쫓는 범석이 바로 앞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아멜리에. 더는 못 간다.”
범석의 외침이 바로 뒤에서 들려오자 아멜리에가 옆으로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그녀가 지금 동료 틈에 끼어들고자 한다면 간신히 구축한 진형에 균열이 가게 되었다. 그럼 뒤이어 치고 들어오는 갓즈나이츠의 본진에 쉽게 무너지게 되었다. 지금은 방해되지 않도록 빠져 주는 편이 현명했다.
‘좋았어! 아멜리에를 잡았다!’
졸지에 아멜리에와 홀로 상대하게 된 범석이 잔뜩 기분 좋은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그녀만 잡는다면 채플린 위스퍼는 그저 그런 강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절대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후후. 아멜리에 어쩌냐? 나와 상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를 바라보던 아멜리에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까 도강하려던 범석을 잡으려고 잠시 시간을 허비한 것이 그리 후회될 수가 없었다. 덕분에 후퇴가 잠시 늦어졌고, 그와 홀로 상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실 본심으로는 그와 맞붙어 승부를 겨뤄보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팀을 위한다는 마음에 참고 인내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손을 불끈 쥐며 쌍검을 그를 향해 교차했다.
“뜻밖의 상황이지만, 저도 원하는 바에요. 전 범석 님이 저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든요. 오늘 반드시 쓰러뜨려 세간의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전 세계 검투팬들에게 널리 알리겠어요.”
“후후. 그게 과연 쉬울까?”
순간 아멜리에가 우려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채플린 위스퍼 본진을 공격해야 할 갓즈나이츠의 본진이 슬금슬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만 봐도 단체로 덤벼 여기서 자신을 쓰러뜨리려는 모양으로 인식되었다.
“남들이 방해가 없다면 그다지 문제는 없을 걸요.”
범석이 장창을 허리 인근에 위치시키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갓즈나이츠 본진이 이쪽으로 오는 이유는 아멜리에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채플린 위스퍼 본진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자신의 엘프들은 자신의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이 자리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자. 그럼 와라.”
아멜리에가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전진을 멈추고 옆으로 빠졌다. 의도가 한 것이 아닌,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으로 툭 건드려 길을 열어보았지만, 그가 빠르게 뒤로 이동하며 창끝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바람에 진입이 어려웠다. 지금 범석의 창끝은 그녀의 움직일 방향을 철저히 막고 있었다.
아멜리아가 여전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창끝을 긴장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언제 뻗어 나올지 모르니, 감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녀는 범석을 창끝을 따라 주변을 빙빙 회전할 뿐이었다. 긴 리치가 이렇게 부담스럽게 다가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안됐다. 지금의 형태에서는 아멜리에만 체력을 낭비하는 꼴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내달리는 반면, 범석은 제자리에서 천천히 방향만 바꾸고 있었다.
곧 아멜리에가 위험 부담을 안고 그의 창끝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렇다면 강제로 길을 여는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녀는 창대를 향해 쌍검을 마구 휘두르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후후. 역시나 아멜리에인가? 평범한 수로는 통하지 않네.’
범석의 창끝 견제는 그녀의 재빠른 검격에 철저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한 번 장난삼아 해본 동작인데, 아멜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런 창술에 잠시 헤맬 정도의 그녀라면 절대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그가 곧 몸을 날리더니, 장창을 크게 회전시켰다. 봉선 창법의 진수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창. 차창. 캉. 창.
거친 타격음이 경기장을 안을 퍼지는 가운데, 아멜리에의 표정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사방을 점하듯 날아오는 창끝의 향연이 그녀를 긴장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종종 시전되는 반월날의 베기 공격은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였다.
“뭐야! 말도 안 돼! 어째서…….”
교묘한 굴곡 타고 날아드는 변형검을 쳐낸 범석이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간신히 막던 공격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여유로웠다. 창은 리치가 길기에 제대로만 막으면 검면이 휘어져 도 검끝이 그의 몸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가 창대를 길게 휘두르며 말했다.
“후후. 원래 사람은 자신 스스로에게 관대한 법이거든. 과거의 나로 생각하고 덤벼들었으니, 이리 고생을 하지.”
범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아멜리에가 정체되는 가운데, 계속 성장해왔다. 게다가 그동안 갓즈나이츠와 채플린 위스퍼 간의 경기에서 그녀는 진형 속에 숨어있느라 범석과 홀로 상대해 본적이 거의 없았다. 당연지사 그의 발전을 제대로 눈치 챌 리가 없었다. 그는 이미 신체능력 대부분을 풀로 채운 상태였다.
몸을 크게 회전시킨 범석이 연달아 아멜리에를 공격해 들어갔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전 최고예요!”
“아이 참. 몇 번이나 말해. 이제 아니라니까. 그냥 오늘 패하면 넌 자키드 씨랑 놀아.”
그의 너스레에 아멜리에가 극도로 화가 난 표정으로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곧이어 손쉽게 막히며 사방으로 튕겨져나갔다. 정심을 가다듬어도 모자랄 판에, 저리 심기를 흐트러뜨리니 범석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사실 그녀가 범석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방어로 일관했어야 옳았다. 그럼 운만 좋았다면 무승부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
곧 범석의 창끝이 크게 뒤로 젖혀지더니, 그녀를 향해 휘갈겨졌다. 잔뜩 원심력 담긴 일격이라 막대한 파워가 담겨있었다. 아멜리에가 급히 막으려 쌍검을 교차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바로 무지막지한 힘이 담긴 창대가 그녀의 검 하나를 한없이 멀리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를 아득 문 아멜리에가 하나 남아있는 검을 범석에게 겨누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검이 하나 사라졌으니 그녀의 최대의 무기인 쌍검술은 사라진 상태였다.
이에 공격을 멈춘 범석이 창대를 어깨에 걸며 그녀에게 말했다.
“자.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테니까. 가서 검을 주워와.”
한없이 교만한 말투에 아멜리에가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이라면 쉽게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데, 그는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대결에서 지게 되면 범석은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