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96
498화
‘으음. 나쁘지 않지만, 얘 어디 아픈 것 아니야?’
시란은 현재 머리 위로 여러 기계 장치가 달린 헬멧을 쓴 채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그녀가 싸우는 곳은 가상 속의 세계. 상대는 다름 아닌 범석이었다. 아무리 실재인물이 아니기는 했지만, 데이터는 그의 실제 경기에서 비롯되었기에 시란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범석이 넌지시 에르피나를 바라봤다.
“좀 난이도가 높은 것 아니야?”
“네. 아주 높죠. 하지만 시란이 한번 싸워보고 싶다고 부탁을 해 와서, 특별히 선처해 주었어요.”
“아무리 선처라지만, 이러면 훈련의 의미가 없잖아. 지금 계속 두들겨 맞고만 있다고.”
에르피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래서 저도 최근까지는 적절한 상대를 대상으로 가상대련을 펼치게 했는데, 아무래도 필요할 듯 보여서 오늘만 특별히 허락했어요.”
“왜지?”
“자기가 최고인 줄 알거든요. 시란은 현재 저희 엘프 학교에 머무는 아이 중 가장 뛰어나지만, 자만심은 그 이상이에요. 반드시 이른 시일 내에 고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돼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홀로 유아 독존할까? 내 생각에는 저런 시뮬레이션 대련보다는 차라리 고만고만한 다른 아이들과 실제 대련을 시키는 편이 낫다고 보는데.”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지만, 다른 아이들은 전혀 상대도 안 돼요.”
범석이 살짝 놀란 눈을 떴다.
“그래? 어느 정도나 하는데?”
“한 Y0급 정도요? 그쯤 실력 되는 가상 현실 상대로 거의 5할 정도의 승률을 보이고 있거든요.”
긴 휘파람을 분 범석이 색다른 시선을 시란을 바라봤다. 지금 그녀는 갓 엘프 학교를 졸업할 나이. Y0급 실력을 갖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게 정말이야?”
“네. 저희는 다른 엘프학교와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니까요. 훈련 시설도 최상이고, 기본적인 학습 외에는 모두 검투에만 매진하니, 다들 실력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이해가 가는지 범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반 엘프 학교는 다양한 학문과 스포츠를 가르치기에, 어떤 특정 분야에 매진하게 할 수 없었다. 여기에 자신들이 제공하는 고급 훈련시설 같은 것도 전혀 없어, 성장도가 극히 낮았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데 다른 아이들의 실력은 어때?”
“다들 나쁘지 않아요. 올해 졸업하는 얘들은 최소한 상위급의 에어리어 리그급 검투사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범석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럼 앞으로의 사업 전망이 기대되었다. 지금이야 별로 알려지지 않아 일심회 회원과 몇몇 팀 관계자 외에는 구매자가 선뜻 나서고 있지 않지만, 그녀들이 검투계로 나가 활약을 보인다면 전 세계에서 스카우터들이 몰려들 터였다.
“후후. 아주 좋아. 우리 에르피나가 수고가 많다.”
“아니에요. 다 주인님을 위해서인데요……. 그리고 저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에르피나가 흐뭇한 시선으로 시란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들이 구매하지 않았다면 여느 스포츠팀에 팔려 수십 년간을 주인 없이 살았어야 할 운명이었다.
운이 좋다면 프로팀의 시선을 피해 일반 주인에게 판매됐을 수도 있겠지만, 시란의 잠재능력을 봤을 때 이는 거의 불가능했다. 저만한 아이가 다른 엘프 학교에서 두각을 발휘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테니, 학교 관계자들이 높은 수입을 얻기 위해 해당 지역 프로팀에 구매 의사를 타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녀는 최소 30년 이상, 프로팀을 전전긍긍해야 했다.
하지만 이 학교로 온 이상 얘기가 달랐다. 범석은 모든 엘프 학생들을 개인회사 성격의 팀에 판매할 생각이었기에, 그녀들은 일반 프로 스포츠팀에 종사하는 엘프들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됐다.
범석이 가상 시뮬레이션 기계 장비를 살피더니, 넌지시 에르피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거 종료 어떻게 시키지? 한 번 시란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데…….”
“아. 그러세요? 그럼 제가 종료해드릴게요.”
그녀가 스위치를 내리자, 눕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시란이 헬멧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유리 칸막이 너머에 있는 에르피나를 쏘아봤다. 한창 재미난 때에 종료를 시켜 짜증이 난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범석을 보더니, 황급히 문쪽으로 나아갔다.
“범석 님!”
시란의 눈빛에는 잔뜩 존경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프로 검투사를 꿈꾸는 그녀로서는 세계 최강인 범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 기쁠 수가 없었다.
전에 만났을 때는 뭣도 모른 상태라 엉겁결에 스쳐 지나갔고, 시일 지나 깨달았을 때는 엘프 학교 학생들의 프로팀 훈련장 출입을 엄격히 막고 있던 터라 먼발치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범석이 자신 앞에 서 있는 시란를 바라보더니,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 그녀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네가 시란이냐?”
“네. 제가 시란이에요.”
“으음. 그래. 에르피나로부터, 상당한 실력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시란이 두 귀가 펄럭일 정도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평상시의 행동은 아니지만, 지금을 어쩔 수 없었다. 거목 앞에서 자신의 키가 크다고 떠벌리는 일이 팔불출이나 벌이는 짓거리임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방금 가상 시뮬레이션에서 시란은 범석의 아바타에 의해 개박살이 난 상태였다.
“아, 아니에요. 아직 많이 모자라요. 훌륭한 검투사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범석이 은근슬쩍 에르피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전혀 잘난 체하는 모양새가 아닌 탓이다.
“그래?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지?”
“조금 전까지 범석 님의 가상 아바타와 싸워봤는데, 전혀 상대가 안 됐어요. 아직 제가 부족하다는 뜻이죠.”
“으음. 그렇군. 그런데 어디가 부족하다는 뜻이지?”
시란이 심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막상 따지고 들어오니,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반항도 못해볼 정도로 당해, 정작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그게 아무래도 전부인 것 같아요.”
“그중 가장 부족한 곳은?”
“그……. 그게……. 딱히…….”
범석이 팔짱을 끼며 그녀를 지그시 노려봤다. 역시나 이번 훈련의 의미는 없었다.
“아무래도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 같군. 하나만 묻자. 대체 넌 이 가상 대련을 왜 한 거냐? 보아하니 아무런 소득도 없던 것 같은데?”
“저, 저기 엘프 학교 내에서는 저를 상대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요.”
“물론 그 점은 이해하지만, 오늘 가상 대결에서 굳이 내 아바타를 고를 필요는 없잖아. 너와 맞는 상대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리 네가 젊다고는 하지만, 이렇듯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좋지 않다.”
시무룩해진 시란이 턱을 바짝 내렸다. 존경해 마지않은 검투사를 만났는데, 첫 마디가 꾸중이었다. 그녀로서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해요.”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
“제 실력에 맞지 않은 상대를 골라서요.”
“그렇지. 하지만 네가 죄송해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냐?”
시란이 뜬금없다는 시선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건 이번 훈련에 임한 네 정신 상태에 따라 다르다. 시란. 오늘 이 대련을 한 목적이 뭐지?”
“그, 그게. 한 번 범석 님과 붙고 싶어서 그랬어요.”
“어째서? 네 기량의 발전을 위해? 아니면 재미있을 듯 보여서?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였냐?”
시란이 고개를 이리저리로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솔직히 대답했다.
“흥미가 동해서 그랬어요. 역대 최강이란 범석 님의 실력이 어떤지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흥미라? 재미로 한 거라는 뜻이지?”
“딱히 말하자면 그래요.”
“그럼 나도 오늘, 네 훈련이 전혀 효과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재미로 한다면 뭘 해도 나쁘지 않았다.
범석은 지금의 실력을 갖추게 된 이유는 그간 경험한 수많은 게임이 그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게임을 한 이유는 재미. 특별한 다른 목적이 있어서 아니었다.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몹도 수없이 상대해봤고, 이리저리 치이고 깨지며 공략법을 찾아다닌 것이 지금의 실력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당연지사 범석으로서는 재미를 위해 자신의 아바타와 싸운 시란을 탓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내가 지금 최강의 검투사로 올라선 이유도 바로 검술에 재미를 들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오늘날과 같이 최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겠지.”
“그래요? 어째서요?”
“재미는 곧 가장 순수한 노력을 낳고, 이는 최상의 학습효과를 낳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는 검투사로서 아주 소중한 자질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칭찬 모드에 시란이 헤벌쭉 웃었다. 최강의 사나이로부터 최상의 자질을 지녔다는 데에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었다.
“그럼 계속 이런 훈련을 해도 되나요?”
“당연히 안되지. 아무리 네가 검투에 재미를 붙였다고 해도, 그걸로는 모자라다. 또 다른 하나가 반드시 있어야 최강을 노릴 수 있다.”
“그래요? 그건 또 뭔가요?”
“승부욕이다. 반드시 상대를 이기겠다는 의지 말이다.”
시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해 못 할 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범석의 아바타와 싸워서는 안 된다는 말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으음. 이해가 안 돼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그 전에 먼저 질문을 하지. 네가 나를 이기기 위해 지금 뭘 해야 하냐?”
“물론 실력을 쌓아야겠죠.”
“맞다. 하지만 재미삼아 무작정 내 아바타와 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네가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적절한 상대를 찾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내 아바타는 그 대상이 아니다. 아니 극구 피해야 하지. 절망감에 빠져 검투에 대한 네 열정이 식을 수 있으니까.”
“그럼 누구를 상대해야 하나요?”
“한 하위급 센트럴 리거 정도면 적당하겠다. 간신히 붙을 수 있지만, 잘하면 이길 수 있는 상대. 그런 자가 바로 네가 넘봐야 할 상대다.”
그녀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알았어요. 범석 님 말대로 할게요.”
그가 시란의 어깨를 도닥거리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런 식으로 계속 계단을 밟다 보면 훗날 훌륭한 검투사가 될 거다.”
“네. 열심히 훈련해서 꼭 범석 님을 이기는 실력자가 될게요.”
참으로 큰 포부라 가소로웠지만, 범석이 방긋 웃었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혼쭐을 냈겠지만, 시란은 하여간 자라나는 새싹이었다. 어차피 검투사로 생활하면 단맛 쓴맛 보다 보면 알 일. 벌써부터 기를 죽일 필요는 없었다.
“후후. 꼭 그래라.”
“네. 그럼 전 또 훈련을 갈게요. 오늘 조언 정말 고마웠어요.”
시란이 다시 가상 시뮬레이션 실로 들어가는 사이, 범석이 살며시 그녀의 정보창을 열어보았다. 지난날 보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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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시란.
구분 : 엘프(2년).
소속 : 갓즈 나이츠 GC.
명성 : 2.
악명 : 12.
H유무 : 무.
스테미나 : 8800/8800.
사회성 : 72, 근력 : 89, 체력 : 88.
민첩 : 83, 균형감각 : 82, 지능 : 97+10.
정신력 : 81+10. 판단력 : 82, 재주 : 15.
운 : 58.
현재기량/잠재능력 : 74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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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열정의 검신.
특이 사항 : 갓즈나이츠의 엘프학교의 학생. 높은 지적 능력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현재 같은 또래 중 최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음. 선봉에 특화되어 있으나, 중견의 소양도 쌓고 있음. 주 무기로는 카타나를 선택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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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 언제 봐도 정말 대단한 아이란 말이야.’
범석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988이나 되는 최상급의 성장능력과 80대 후반을 마크하고 있는 근력과 체력. 여기에 민첩과 균형감각, 정신력 등이 80에 이르고 있었고, 지능은 97을 찍고 있었다. 가히 대단한 유망주라고 평가할만했다.
게다가 ‘열정의 검신’이라는 특기는 발동 시 150분간 모든 능력치를 +10을 올려주는 기능이 있었고, 부수적으로 +50%의 학습효과와 평소에도 지능과 정신력을 +10 시켜주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력이 발전성에 큰 영향을 미침을 볼 때, 시란의 성장은 매우 빠르리라고 예상되었다.
‘좋아. 아주 좋아. 제대로 발전해 나가고 있어. 후후후.’
범석은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런 유망주가 속속히 팀에 가세만 된다면, 거대 자본 팀의 공세를 거뜬히 물리칠 수 있었다. 아니 먼 훗날 언젠가는 그들이 자신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대며, 검투사들을 데려가려 할지도 몰랐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기다리는 일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범석이 대견스러운 시선으로 에르피나를 바라봤다. 현재 시란의 능력치는 중급의 센트럴 리거급.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녀의 노력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에르피나. 다시 말하지만, 정말 수고 많았다. 시란. 저 아이. 정말 기대가 된다.”
“아니에요. 모두가 수고한 결과죠.”
고개를 끄덕인 범석이 유리 칸막이 너머에 있는 시란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 그런데 시란은 언제 졸업하지?”
“으음. 다음 시즌 시작 전에는 졸업하게 돼요. 그때 세 살이 되거든요.”
엘프의 졸업 시기는 개인의 탄생 날짜에서 정확히 3년째 되는 해였다. 생산 시기도 천차만별인데다가 구매자도 한 시기에 몰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군. 그럼 그때까지 절대 다른 팀과 판매계약을 맺지 말고. 내게 데려와. 알았지?”
“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에요.”
“그래. 그럼 나는 다른 아이들을 살피러 갈 테니, 계속 수고해라.”
“네. 주인님.”
이후 가상 시뮬레이션 통제실을 나온 범석이 엘프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미래의 자신의 엘프를 점찍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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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