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497
499화
리마 시티의 체육부지에 있는 블루 버드의 훈련 캠프 앞으로 플라잉 카 한 대가 내려서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범석이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정문으로 걸어가 인터폰에 입을 대고 말을 걸었다.
“저기. 잠시만 문 좀 열어줄래?”
– 싫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범석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떠올리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경정님. 장난치지 마시고 빨리 열어주십시오.”
– 크크크. 어떻게 알았냐?
“목소리를 들으면 다 아는데. 뭘 모릅니까?”
이윽고 정문 너머에 있는 경비실에서 외투를 껴입은 렉스터가 실실 웃으며 걸어나왔다.
“여어 범석아. 잘 왔다. 어서 들어와라.”
락이 풀리자, 범석이 천천히 문을 열고 훈련 캠프로 들어섰다.
“아니. 건물 안에 계시지 여기까지는 왜 나오신 겁니까? 지금 날씨도 제법 추운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냥 심심해서.”
“그래서 그런 썰렁한 장난을 치신 겁니까?”
“뭐. 원래는 더 있었는데, 네가 내 정체를 알아채서 그만뒀다.”
범석이 머리를 휘휘 저어댔다.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대화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경정님.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뭘?”
“아니 제가 며칠 전에도 또 오늘 오면서 연락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글쎄 여기서 나눌 만한 대화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하긴 이 추운 날씨에 계속 밖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범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죠. 아무래도 긴 대화가 필요할 듯 보이니까요.”
“그렇지. 자. 그럼 갈까.”
렉스터가 바로 범석을 무인 전동차를 태워 사무실 건물로 향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2층에 있는 응접실이었다. 미리 스팀을 틀었는지 내부는 무척 따듯했기에,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그리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자리에 앉은 범석이 사무원이 가져온 커피를 홀짝 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때? 생각해 보셨습니까?”
“글쎄다. 이번 네 제의는 나로서도 애매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네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팬들의 성화도 생각해야 하고, 팀 성적도 관리해야 하니까 말이다.”
범석이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그가 렉스터에게 제의한 내용은 몇몇 블루버드 주요 검투사에 대한 임대였다. 시믈리아와 실피네로 둘 다 W2급에 오른 아이들이라, 팀 내에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반년 간이라지만, 이들을 임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큰 문제는 갓즈나이츠와 블루 버드는 내부야 어쨌든 외견상으로는 사이가 좋은 않은 더비 팀이라는 사실이었다. 적대 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자신의 팀을 희생할 수 없는 일. 이번 임대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아마 첫째로 팬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겠죠. 하지만 오죽 급했으면 제가 이런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지금 갓즈나이츠는 스쿼드 부족 문제로 우승 전선에 크나큰 장애가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검투 팀에서 쓸만한 검투사들을 영입해오고 싶어도, 몸값이 장난이 아니라 주저되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아니 있더라도 다른 경쟁팀의 방해가 만만치 않아, 영입이 성사될 지도 의문인 상황입니다.”
“하긴 네 팀 사정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 우승 유력 팀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겠냐? 잘 극복해야지.”
“그래서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시믈리아와 실피네만 대여해 오더라도 저희 팀 사정은 훨씬 나아집니다.”
현재 갓즈나이츠의 가장 큰 문젯거리는 고질적인 스쿼드 부족이었다. 지금까지와 검투사를 돌려가며 잘 버텨 왔지만, 시즌 후반은 틀렸다.
검투사들도 서서히 지쳐갈 시점이고, 결정적으로 월드리그 팀들의 GA컵 참여도 시작되었다. 아무리 범석이 GA컵과 리그 컵을 포기한다고 마음먹어도, 월드리그 우승 유력팀 체면에 과거처럼 아마추어 검투사를 내보낼 수는 없는 일. 어쨌든 후보급 이상의 실력을 지닌 검투사들을 내보내야 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체력 손실로 이어지니, 갓즈나이츠 팀에 부담이 되었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 팀 사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블루 버드는 하이른 센트럴 리그에서 제법 잘 나가지 않습니까? 지금 자그마치 6위나 하고 있고요. 그럼 강등은 별 문제 없는 것 아닙니까?”
“당연히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그게 바로 문제다. 우리 리그 6위라고 하지만, 현재 2위 팀과는 승점 7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아직 승격 토너먼트에 진출할 기회가 있는 이 시점. 팀 내 주요 검투사를 외부로 돌린다면 팬들의 반발이 만만치가 않아. 보나마나 올해 승격 토너먼트 대회를 포기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테니까 말이다.”
범석이 곤란한 듯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려댔다. 확실히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응원팀이 아직 위를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서 미리부터 포기해버린다면, 팬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나위가 없었다. 아무리 못해도 블루 버드 팀 게시판이 욕지거리로 뒤덮일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였다. 하물며 더비 팀을 돕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러할 터였다.
“물론 이해가 가는 바이지만,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나중에 한 번 근사하게 블루 버드 팀을 밀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는 흥미가 가는지 렉스터가 귀를 솔깃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범석의 도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솔직히 그가 원하는 검투사들은 전부 그의 소개로 영입했던 렉스터의 휘하 엘프들이었다.
“어떤 도움을 준건데?”
“우리 팀에서 엘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계시죠?”
“응. 잘 알지. 왜 거기에 쓸만한 애들이 꽤 있냐?”
“꽤가 아니라 거의 다입니다. 못해도 저희로 말미암아 다른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질이 다소 떨어질 정도는 됩니다.”
검투는 물론이거니와 야구나 축구등, 세계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너나 할 것이 모두 엘프가 주축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좋은 유망주들을 영입하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했고, 엘프 학교에는 다양한 스포츠팀에서 방문한 스카우트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범석은 아예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유망주들을 뽑아왔다. 아마도 다른 스포츠계에도 작으나마 충격이 있으리라 예상되었다.
“오? 이거 상당한 자신감인데?”
“네. 잠재능력이 높은 애가 꽤 되니까요.”
“그래서 그 아이들을 어쩌겠다는 건데?”
“제가 쓸만한 애들로 추려 블루버드에 싸게 공급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못해도 경정님은 큰돈을 버시게 되고, 블루버드 팀은 나날이 발전하게 될 겁니다.”
렉스터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자신이 범석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으면 언제든 이런 떡고물이 무수하게 떨어져 내렸다.
“그럼 우리 팀이 월드리그에 진출할 정도는 되냐?”
“물론이죠. 다들 성장만 잘 시킨다면 못해도 월드리그 하위권 팀에는 들 겁니다.”
“후후. 듣기만 해도 짜릿한 얘기군. 우리 블루버드가 월드리그 팀이 된다니…….”
렉스터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월드리그. 전 세계 만여 곳이 넘는 검투 팀 중 스무 팀만이 올라갈 수 있는 무대. 블루버드가 그 주인공이 된다고 생각하니, 설ㅤㄹㅔㅆ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그는 검투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관심이 가십니까?”
“관심이야 가지. 하지만 여전히 고민이 된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우리 블루버드 팀은 어찌 됐든 홍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그래서 윗선에서는 물의가 일어나는 일은 극구 꺼린다. 아마도 이번 일로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크게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렉스터가 바로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도움을 받은 것이 얼마큼인데, 이대로 모르는 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를 돕고 싶었다.
“아니.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요?”
비릿하게 웃은 렉스터가 그에게 얼굴에 바짝 가져다 대었다.
“위에다 큰 소리 땅땅 칠만한 비빌 언덕을 하나만 만들어줘라.”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비빌 언덕이라뇨?”
“에이 알면서 왜 이래?”
“서, 설마 윗선에 바칠 뇌물을 원하시는 겁니까?”
렉스터가 바로 손사래를 쳐댔다. 전혀 의도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비빌 언덕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좀 더 고차원적인 얘기다.”
“뭔데요?”
“이번에 문제가 생겨서 윗선에서 말이 나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날 참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가 경찰 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는 자체가 말이 되겠냐? 나왔어도 진작에 나왔어야 옳지. 그동안 흑사회 놈들이랑 붙는 바람에 여의치가 않아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 놈들이 사라진 마당이니, 계속 머물 필요는 없지 않겠냐? 즉 이제 내 삶을 찾아야겠다는 뜻이다.
”
대충 감이 오는 범석이었다. 렉스터는 축구광. 경찰이라는 조직에 얽매 지금 검투 팀 단장을 역임하고 있지만, 사실은 축구팀 이사장을 꿈꾸는 자였다. 이제 자본도 있겠다. 7년간 블루버드를 운영해오며 스포츠 조직 경영도 배웠겠다. 이제 슬슬 축구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되었다.
“그럼……? 설마 프로 축구팀?”
“하하하. 맞다. 나도 이제 제 할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었지만, 신체 개조 시술도 받아야 하고. 크흐흐흐. 난 축구계의 오 범석이 될 참이다. 푸하하하하!”
조기 축구에서 제법 실력을 쌓은 듯 보이지만, 제2의 오범석을 꿈꾸다니 하여간 꿈도 야무졌다. 하지만 꿈꾸는 일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 법.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후후. 렉스터 경정님도 직접 플레이를 뛰시게요?”
“당연하지. 신체 개조 시술을 괜히 하겠냐?”
“그럼 원하시는 바가 프로 축구팀 조직에 도움을 달라는 얘기겠군요?”
“그래. 쓸만한 아이로 몇몇 골라줘라. 내가 아주 넉넉히 돈을 주고 사갈 테니까……. 어때?”
범석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미래를 대비해 엘프 시장과 엘프 마켓의 인력과 규모를 크게 확장할 생각이었다. 그럼 당연지사 유입되는 유망주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날 테니, 이 중 몇몇 배정해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뭐. 그리하도록 하죠. 그런데 언제부터 시작할 예정이십니까?”
“으음. 글쎄다? 생각난 김에 다음 시즌부터 시작해 볼 수 있겠지만, 훈련 캠프 부지도 사들이고 여러 시설도 설치해야 하니 다다음이 낫겠다고 생각된다.”
“그럼 일단 올해 엘프 공장에서 들어온 아이들 중 다섯을 특별히 뽑아 체력 단련을 시키겠습니다. 괜찮겠죠?”
“어느 정도 되는 아이들로?”
“글쎄요. 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월드리거로 성장할 수 있는 애들로 선정해 드리겠습니다.”
렉스터가 만족스러운 입가에 걸었다. 그 정도면 대만족이었다.
“하하하. 고맙다. 그리고 축구 기본기 훈련도 시켜줬으면 좋겠는데……. 물론 코치는 내가 뽑아서 파견해 줄테고 말이다. 어떻게 안되겠냐?”
그 말에 범석이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금까지는 영입한 엘프들을 검투사로만 만들 예정이었는데, 가만 보니 다른 스포츠 계통으로도 확장시키는 편이 낫다고 생각된 것이다.
렉스터가 프로 축구계로 진출하면 지금 검투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전염되게 될 터, 시장이 넓어지게 되었다. 미리 여기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뭐. 그러죠. 제가 특별히 연습용 축구장까지 건설해 놓을 테니, 코치만 보내십시오.”
“오? 그래? 하하하. 고맙다.”
범석이 손뼉을 치며 지금의 대화를 종결시켰다. 이번에 그가 블루버드에 찾아온 이유는 렉스터의 꿈을 펼쳐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 그럼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요. 대여 건은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일단 약속대로 시뮬리아와 실피네는 대여해주고, 여기에 쉐릴도 보내주지. 어때 괜찮지?”
범석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슬그머니 그에게 던졌다. 쉐릴은 블루버드 팀의 핵심 차원을 넘어선 최고의 에이스였다. 중견을 주로 맡았는데, 검방도 잘 다루고 성격도 차분해 후미로도 적격이었다. 아마 임대만 되면 크게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이런 아이를 내어주면 렉스터가 받아야할 팬들의 질타 공세는 더 커졌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팬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뭐. 하는 김에 확실히 짤릴 구석을 만들어야지. 잘못하다가 팬들의 반발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곤란해진다.”
“뭐. 그야 그렇지만……. 쩝 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렉스터가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럼 임대료는 어떻게 할까?”
“일단 6개월간 지급할 그녀들의 연봉을 저희가 모두 부담하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3,000만 크랑도 지급하죠.”
“뭐.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 하지만 3,000만 크랑의 지급은 빼라. 우리끼리 무슨 그런 돈을 주고받고 그러냐. 다 좋게좋게 사는 거지…….”
범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리 푼돈이라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편이 좋았다. 어차피 렉스터에게 많은 이득을 챙겨줄 터이니, 여기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됐다.
“후후. 원하신다면 들어 들어야죠. 그럼 고맙게 빌려 가겠습니다.”
“그래. 자 그럼 사인은 나중에 하고. 일단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 잔 빨러 가자. 너랑 술좌석을 한지가 얼마나 됐는지 기억도 안 난다.”
“하하하. 네. 좋죠. 자 가시죠.”
범석이 흐뭇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지 임대에 불과하지만, 이번 트레이드는 그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시믈리아와 실피네, 넨시가 들어오면 갓즈나이츠의 활용 가능한 스쿼드는 33명. 피곤한 후반 시즌의 여정에 큰 힘이 될 터였다.
그래도 여전히 검투사 자원이 모자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그컵과 GA컵, 여기에 리그 경기까지. 갓즈나이츠가 치러야 할 경기는 산더미 같았다. 아마도 이어지는 시즌 후반, 스쿼드 문제로 큰 어려움이 뒤따르리라 예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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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