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World RAW novel - Chapter 504
506화
‘어떻게 해야 하나? 뭐 상관없으려나?’
생각해보니 그다지 문제는 없을 듯 보였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공간. 여기서 납치 사건을 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타지라는 점이 걱정되지만, 하여간 납치 장소로 적당하지 않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괜한 걱정을 했다고 판단한 범석이 옷깃을 가다듬고 검투사 대기실로 향했다.
“뭐, 뭐지?”
불연 듯 법석의 눈빛에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CCTV 카메라가 꺼져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작동하면 렌즈 옆 작은 붉은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데, 이 복도를 촬영하는 CCTV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걸어오는 행인도 수상쩍었다. 슈트를 껴입어 정체를 숨기고 있었는데, 자신을 계속 힐끔거리는 것이 다소 이상했다. 물론 응원을 나온 현지 팬일 수도 있지만, 이 복도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쳇. 이런 간탱이가 부은 작자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그것도 혼자서 말이야.’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훈련 캠프에 두문불출하며 외부로 나가지 않았다. 모두가 우승에 전력을 기울이고자 함이었지만, 납치를 시도하려는 자들에게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터였다.
갓즈나이츠의 훈련 캠프는 산중에 자리 잡고 있어 외부에서 침입하기 난해한 면이 있었고, 캠프 상공에는 수많은 버드 카메라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침입 즉시 발각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상당수의 엘프 경비원과 현역 월드리그 검투사들은 상당한 부담감이 되었다.
아마 상당수의 중무장한 병력이 동원되지 않는 한 그의 납치는 불가능하리라 생각되었다.
긴 한숨을 내쉰 범석이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젠장 할. 이러면 빨리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잖아?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짧은 순간이지만, 범석은 결정을 내렸다. 오늘 경기를 망쳐도 38차전 경기에서 채플린 위스퍼를 잡으면 우승할 수 있지만, 루카스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
회장은 그가 앞으로 순탄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상대였다. 게다가 자신이 여기서 빠져나간다면 휘하 검투사들이 걱정되었다.
놈들이 여기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니, 자신이 빠져나간다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여어. 이게 누구십니까. 오범석 검투사 아니십니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사실 전 범석 씨의 열렬한 팬이거든요.”
수상한 사내의 말에 범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자가 착용하고 있는 슈트는 리얼 히어로즈의 것이었다.
‘이 자식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야? 아예 수상한 자라고 대놓고 알려오는군.’
범석이 긴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
“휴~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일단 팬이라고만 알고 계십시오. 자. 그럼 어쩌시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저에게 잠시 납치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경기를 치르러 가시겠습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선택하십시오.”
범석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이 루카스 회장의 제삿날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이 납치범은 마가렛의 입김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안심한 범석이 그를 향해 나긋이 말했다.
“납치 쪽으로 하죠.”
“그렇습니까? 그럼 잠시 저와 동행해주시겠습니까?”
“아. 그 전에 잠시 저희 팀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 싶군요. 이대로 가면 걱정할 듯 보여서요.”
납치범 아닌 납치범이 곤란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끄덕거렸다. 자신들과 범석의 협력 관계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미 인근 CCTV카메라 모두를 작동불능 시켜놓은 상태였다.
“으음.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만나고 오십시오. 괜히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하시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쯤은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빨리 다녀오십시오.”
납치범들이 대기하는 사이, 범석이 검투사 대기실로 들어가 다이아나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고 오늘 경기를 부탁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놀란 듯 보이지만, 이내 긍정을 표했다.
루카스 회장이 어떤 작자인지 알고 있었기에, 반드시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휘하 엘프로서 주인에게 우승을 받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주인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은 더 중요했다.
이후 검투사 대기실을 떠난 범석이 납치범들과 함께 내부 주차장에 있는 흰색 벤을 타고 어딘 가를 향해 날아갔다.
“여기입니까?”
한 산중으로 벤이 내려서자 범석이 한 납치범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허름한 산채가 하나 보였는데, 감금하기 적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네. 그렇습니다.”
“혹시 여기에 데레사 양도 있습니까?”
“네. 이미 납치해와 감금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희가 댁들 편이라는 점을 모르니,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비밀을 아는 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아. 그렇겠군요. 그런데 당신들 추후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납치범이 안면 쉴드 사이로 작은 미소를 지어 보냈다.
“루카스 회장이 도착하는 즉시 당신들을 구원할 겁니다. 그리고 자수해 감옥으로 가야겠죠.”
“으음. 괜찮습니까?”
“후후. 상관없습니다. 그만한 보상이 주어지고 형량도 얼마 안됩니다. 그나저나 내리시면 다른 납치범에게는 아무 말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전혀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요? 그럼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납치범이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 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저들 모두가 알아서 우리 편에 설 겁니다.”
“으음. 그래요?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거의 지면에 가까워지자 납치범이 말했다.
“그럼 일단 지금은 잠이 든 척하십시오. 저들에게 발각되면 큰일입니다.”
“네. 그러죠.”
벤이 내려서자 산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내 둘이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범석을 데리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포크. 역시 네놈은 대단해! 장담하기에 설마 했는데, 정말 혼자서 저 작자를 잡아오다니 말이야.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냐?”
“후후후. 다 수가 있지. 영업기밀이니까 알고 싶으면 한턱 제대로 쏘라고.”
“하하하. 그러지. 어차피 이번 일만 마치면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이 마련되니까, 소개비조로 아주 근사하게 쏘지.”
“훗. 그래. 그럼 기대하고 있겠다.”
그 말을 하고 난 포크가 기절한 척 있는 범석을 둘러매고는 산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손목과 발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기에, 타인이 보면 마치 포박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낡음 마루바닥을 지나 몇몇이 보초를 서고 있는 중앙 쪽 지하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사방이 돌로 된 통로를 따라 한 철제문 앞에 섰다. 제법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지난번 실패가 귀감이 된 모양이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데레사 양이 있을 겁니다. 잠시 후 깨어나는 척하고는 그녀를 다독여주십시오. 임산부라 안심을 시킬 필요가 있을 겁니다.”
“흐흠. 그래야겠죠. 그런데 안에는 CCTV 같은 것 없습니까?”
“없습니다. 급히 바닥을 파 만든 동굴이라 그런 것을 설치할 시간이 없었고, 굳이 설치할 필요도 없었죠.”
“그래요? 다행이군요.”
포크가 살며시 철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또 공간이 나오며 보초가 서 있는 철제문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이쪽도 단단히 대비한 듯 보였다.
‘이거 괜찮으려나? 방비가 너무 철저한데?’
그래도 일단 마가렛을 믿기로 했다. 뭔가 대비를 했으니, 당당히 납치되라고 요청했을 터였다.
“여어. 포크? 결국, 해냈군. 역시 네놈은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달라. 세계 최강의 검투사를 혼자서 잡아오다니 말이야.”
“혼자니까 잡아온 거다. 여럿이 나서면 경계를 보일 수 있기에, 접근하기가 어려워. 그리고 접근만 한다면 그 어느 장사라도 내 앞에는 꼼짝할 수 없지.”
“크크크. 그래. 너 잘났다. 그럼 빨리 놈을 가두고 넌 가서 쉬라고. 무척 고생했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쉬고 싶으니, 빨리 문이나 열어라.”
“크크크. 알았다.”
적발의 사내가 총을 겨누는 사이, 금발의 사내가 천천히 철문을 열었다. 데레사가 빠져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여인이고 몸이 불편하다지만, 그녀는 개조인간이었다.
문이 반쯤 열리자 포크가 범석을 철문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다시 철문을 잠기는 모습을 보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범석을 모셔왔으니 이제 마가렛에게 보고해야 했다.
‘서, 설마 범석 씨?’
전등 불빛 아래에서 쭈그려 앉아 있던 데레사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에게 다가갔다. 범석까지 잡혀 왔다니,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범석 씨! 괜찮으세요!”
그가 눈을 뜨더니, 살며시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좀 더 기절하는 척하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데레사의 건강을 생각해서 더는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법 똑똑한 여인이라 상황 판단이 빨랐기에, 그리 걱정이 없었다.
“쉿.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은 조용히 계십시오.”
낌새를 차린 데레사가 극히 조용히 말했다.
“네. 알겠어요.”
“그럼 전 당분간 기절한 척을 할 테니, 모르는 척 해주십시오.”
“네. 염려하지 마세요.”
그녀가 지금까지의 근심을 덜어버리고 환히 미소 지었다. 지금 범석의 말투로 보아 뭔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라면 이 상황에서 그가 저리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었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른 후, 그가 막 정신을 차린 것처럼 일어나 데레사와 시선을 마주했다.
“많이 놀라셨죠?”
“네, 네. 좀 그랬어요.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요?”
“루카스 회장이 움직였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그자가 저까지 잡아온 거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회장이 데레사 양을 배신자로 낙인 찍어놓은 모양입니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네. 오면서 확인내용입니다. 확실합니다.”
데레사가 가녀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토록 따르고 충성했는데, 이런 식의 보답이 오다니 화가 난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범석과의 관계만 숨기려고 했을 뿐, 회장을 해치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자가 저와 범석 씨와의 관계를 눈치챈 것이군요.”
“네. 그런 모양입니다.”
데레사가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 잘 해결될 테니까요.”
“정말요?”
“네. 이번 저들의 계획은 우리 일심회의 손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잡혀 온 것도, 고의였습니다. 바로 놈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데레사가 크게 안도했다. 역사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이제 자신과 아이는 살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지금까지 어떻게 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야 죽어도 상관없지만, 지금 뱃속에 있는 우리의 아이는 살아야 하니까요.”
“후후. 염려하지 마시고, 안심 푹 놓으십시오. 다 잘될 겁니다.”
“네.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할 일은 없나요?”
범석이 고개를 흔들어댔다. 마가렛이 철저히 준비했기에, 딱히 자신들이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유유히 노닐다가, 일 처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면 됐다.
“그냥. 이대로 지내기만 하면 모든 일이 알아서 풀리게 됩니다. 단지 너무 밝은 표정을 지으면 안 되겠죠. 놈들이 눈치채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니까요.”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그쯤은 알고 있어요.”
범석이 데레사를 포근히 안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시간이 모두를 해결해 줄 터였다.
터벅터벅.
쇠창살 너머로 묵직한 발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적막에 싸인 공간이라, 조심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소리가 사방으로 울리게 되었다. 그래서 범석이 최대한 조용히 데레사와 대화를 나눈 것이다.
곧 외부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포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이쪽입니다.”
“알겠네.”
중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자는 아무래도 루카스 회장 같았다. 항시 만남을 가져왔기에, 범석이 모를 수는 없었다.
‘참나. 루카스 회장 팔자도 좋군. 그냥 집구석에서 기다리면 될 것을 여기까지 기어오다니 말이야.’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심심하던 차에 범석도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미 모든 증거가 확보되어 회장을 장시간 콩밥을 먹일 여건이 마련되었지만, 같은 값이면 완전히 우려를 지우는 편이 좋았다.
곧 내부 철문이 열리자, 범석은 당당한 시선을 보내는 루카스 회장과 작슨을 볼 수 있었다.
“여어. 이게 누구 시던가? 범석 군이 아닌가? 이거 정말 오래간만이군.”
“아.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지금쯤 보호 관찰을 받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특사 조건이 바로 그것이었을 텐데요?”
“하하하.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잠시 시간을 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곧 자네를 보낼 텐데, 배웅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범석이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글쎄요. 저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는 않은데요.”
“후후. 그게 마음대로 되나? 내가 가라면 가야 하는 것이 지금 자네의 입장일세.”
“하하하. 회장님. 매정하게 왜 이러십니까? 그래도 과거에는 제법 친분이 있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정분을 생각해서 이만 풀어주시죠. 그럼 저도 회장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루카스 회장이 쭈그려 앉더니,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후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응당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하지 않겠나?”
“전 별로 회장님께 죄지은 것이 없는데요.”
“후후. 그건 자네가 빤빤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네. 내가 감옥에서 얼마나 범석 군을 간절히 떠올린 줄 아나?”
“하지만 그건 루카스 회장님이 자처하신 일 아닙니까? 전 별로 회장님을 감옥에 처넣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봐 형량을 줄여드린 것이고요.”
회장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 말을 믿을 정도로 회장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리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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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전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